[Naut] Dispel Misunderstandings
2021. 1. 10. 02:09

 

 

 

 

항상 생각했어. 6년이 넘도록 너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들을.

 

 

 

 

 

60일째, 서로에게 안달이 나 짧은 시간이라도 서로의 온기를 붙잡고 있었던 기억들을.

 

 

6개월째, 서로의 눈만 뚫어져라 쳐다봐도 욕망에 찌들어져 미친 듯이 입 맞추던 기억들을.

 

 

6년째, 어느 날부터인지 그 온기는 희미해지기 시작했는지 눈조차 마주보지 못했어.

 

 

 

 

여전히 6개월의 길을 걷고 있는 나와는 달리, 너는 6년의 길을 걷고 있더라. 그 사실을 몰랐던 때에, 평소처럼 너의 눈에 비친 나를 보고 싶었거든. 넌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안하더라. 그런 네가 답답해서 야, 라고 네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로 널 불렀어. 그제야 내 눈엔 네가 비춰졌고 그런 너를 향해 미소를 지었는데 내 반대의 표현을 하는 너였어. 당황해서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동안 쌓아왔던 추억과 기억들을 찢어버리듯이 그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서 내 눈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어, 넌. 그전에 보였던 너의 젖어있는 눈동자에 타의적이고 한 차례적인 헤어짐, 이라고 생각했지. 근데 그게 내 착각이었는지 그 이후로 내 번호도 지우고 모든 걸 지웠더라. 모르는 전화번호는 안 받았잖아. 물론 넌 그래도 내 번호를 보고 기억은 했겠지. 내 번호 죽어라 외웠던 너였잖아. 기억도 잘 못했었는데. 그러고 나서 며칠 지나니까 낯선 여자 목소리가 없는 전화라며 대차게 거절해.

 

 

 

난 아직 너에게 할 말이 아직 많은데. 거리를 돌아다녀도 온통 너와 함께한 것들이 머릿속을 찌르고 찔러서, 잊으려고 해봐도 날 가만두지 않는 것들을 재울 수밖에 없더라. 집을 옮기고, 너를 담아놨던 모든 물건들은 창고 안에 던져놨어. 저 밖에 내던지자니, 그 추억들이 생생하게 기억나서 말이지. 피도, 눈물도 없던 내가 네 모든 것을 잠재우니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지더라고. 울고, 또 울었어. 내가 이렇게까지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던 순간이었어. 그 정도로 널 사랑했고, 나의 모든 것을 너로 채웠다는 사실을 다시 되새김질 했으며, 너는 날 비웠을지 몰라도 난 아직 비우지 못했다는 걸 알았어. 널 비우지 못한 나는 주마다 한 번씩 악몽을 꿨어. 우리의 마지막으로 시작해서, 처음 만났던 날과 처음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았던 날, 그리고 서로의 몸을 맞대며 지새웠던 첫 날밤을 말이야. 그 때는 행복했던 추억이 이제는 고통을 생성하는 악몽이 되더라. 그런 꿈을 꾸는 날마다 너의 없는 번호에 문자를 남기곤 했어. 구차해 보이지? 맞아. 근데 이런 나를 만들고 두고 간 건 너였고, 난 너에게 눈물을 준 나쁜 놈이라고 알더라고. 네 친구들이 날 볼 때마다 하는 건 다 욕뿐이었어. 내가 모르는 사실이 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진짜 나쁜 놈일까.

 

 

 

 

 

 

Dispel Misunderstandings

 

 

 

written by. NAUT

 

 

 

 

 

 

 

 

오늘도 그는 반듯하게 정장을 입고, 감정이 드러나지 못하게 모든 걸 감춘 채 출근 준비를 한다. 비록 식탁 앞에 의자는 비어있지만 혼자가 익숙해진 마냥 자연스럽게 밥과 국을 푸고, 채소와 고기를 볶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자신의 앞에 올려놓는다. 잘 먹겠습니다. 익숙해져 떨어지지 않는 말을 내뱉고 아침 식사를 해치워버리기 시작한다. 깨끗해진 밥그릇과 소량의 잔여물이 남아있는 반찬을 그릇들을 모조리 싱크대에다가 놓았다. 하기 싫다, 라고 내뱉은 말에 따르듯 화장실로 향했다. 이를 닦고, 물과 함께 입 안에 남아있는 음식 찌꺼기를 세면대에 뱉었다. 물과 섞인 음식 찌꺼기는 잠시 세면대에 머물다 뚫려진 구멍을 통해 내려갔다. 무모하게 그걸 바라보고 있다가 그는 다시 한 번 물을 입에 머금고 헹군 후, 뱉었다. 역시나 잠시 머물다 내려갔다. 너도 좀만 더 머물다 가지, 라는 말과 동시에 칫솔을 보관함에 꽃아 넣은 그는 너무 익숙한지 짧은 한숨을 내쉬고 스위치를 눌러 화장실의 불을 껐다. 어두워진 화장실에는 냉기만이 남았고 이내 그가 그리워하던 향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차키를 집어 들어 집을 나섰다. 또각또각, 평소와 다름없는 구두소리지만 오늘 그는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리 신경 쓰이는 소리이었던가, 하고 말이다. 지하주차장으로 갈 때까지 그 소리는 그의 귓가를 울렸고, 차에 올라타자 언제 났냐는 듯 뚝, 하고 멈췄다. 시동 버튼을 누르고, 엑셀을 밟은 후 운전대를 잡아 움직이니 타이어가 바닥에 쓸리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10분 정도를 밟고 멈추기를 반복했을까, 그의 일터에 도착했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인사들과 존경의 시선을 내치치 않고 그대로 받은 후, 많은 사람과 승강기에 탑승했다. 자신을 빼고 나누는 이야기들이 구두소리와 비슷하게 오늘따라 예민하게 들리는 그였다.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었다만 괜히 귀 기울여지는, 그런 상황 말이다. 들어봤자 별 시답지 않은 소리였다. 그 동안 몇 명의 사람이 내리고 마지막엔 그 혼자 남겨졌다. 자신 혼자 높은 층에 가다보니, 그것도 괜히 예민하게 외롭게 느껴지는 이 순간이 맘에 들지 않아 자신의 목을 옥죄이고 있던 넥타이를 성질내며 살짝 풀어냈다. 그의 층엔 도달했을 때는 고개 숙여 그에게 인사하고 관습인 마냥 그의 가방을 자연스레 받아내는 비서가 눈에 보였다. 아, 고쳐야 하는데. 너무나도 거만해진 자신의 태도에 속으로 한숨만 길게 내쉬는 그였다. 정성스레 올렸던 머리도 미워져 헝클었다.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아 비서를 통해 하루의 일과를 대충 흘려보내듯이 들었다.

 

 

 

 

“오늘 오후 1시에 사전 계약 맺었던 N그룹의 따님과 식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따님이요?”

“네. 회장님께서 몸이 편찮으신 따님을 대신 보내신다 하십니다.”

 

 

 

 

알겠습니다. 나가보세요. 비서의 인사를 받고 일을 진행했다. 걔는 또 무슨 꿍꿍인 거야, 하며 짧은 한숨과 함께 모니터의 전원을 켰다. 모니터가 켜짐과 동시에 맑은 알림이 그를 반겼고, 그는 이내 마우스를 잡고 일을 시작했다. 자판을 두드리고 책상 옆 놓아진 계약서에 사인을 남기고 끝에 ‘김민규’ 라는 자신의 이름을 필체로 남겼다. 다섯, 여섯 개의 계약서를 확인하고 그 밑에 있는 작은 봉투를 발견했다. 누가 놓고 간 거지. 처음에는 비서를 불러 이것이 무엇인가 물으려다 괜히 더 귀찮아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살짝 봉투를 뜯어 안을 확인하는 민규였다. 그 안엔 자신이 옛 연인과 즐겨봤던 뮤지컬 티켓이 덩그러니 있었고 단번에 기억나버린 시린 기억에 눈을 꽉 감았다. 이게 왜 여기 있는 건데. 작은 목소리로 비속어를 덧붙였다. 분명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나쁜 놈인데, 이 짓궂은 심장은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는지. 이내 그는 눈에 힘을 풀며 눈을 떴다. 또, 차마 버릴 수 없어 작은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잊자, 잊어. 또 일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옛 연인을 잊으려 애를 썼던 것처럼 말이다.

 

 

 

 

 

어느덧 시침은 1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그는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 그의 비서가 문을 열었고 그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긴 다리로 그 문을 통과했다. 생각보다 쌀쌀해진 날씨에 몸을 살짝 움츠리고 차에 올라탔다.

 

 

 

 

“약속 장소는 어딥니까.”

“WO-M 호텔 레스토랑입니다.”

 

 

 

 

꼭 자기만한 식당 예약해놨네. 민규는 작게 중얼거리면서 은빛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렸다. 1시가 살짝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났을까. 차는 약속 장소 앞에 우뚝 멈춰 섰으며 이내 문이 열렸다. 민규는 차에서 한발씩 내딛어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평균보다 훤칠한 신장에 뚜렷한 이목구비까지 시선을 집중시키기 좋았는지, 역시나 민규에게 수많은 시선들이 쏟아졌다. 이것 또한 익숙한 듯, 비서의 안내를 받고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비서의 안내를 받고 들어간 곳에는 낯익은 얼굴의 여자가 아무 표정 없이 반듯이 앉아 투명한 컵에 들어있는 물을 조금씩 들이켰다. 그녀는 민규를 기다리고 있었고, 민규가 자신의 앞에 나타나자 언제 표정이 없었냐는 듯이 밝은 미소를 띠었다. 민규는 그녀의 앞에 털썩하고 앉아 냅킨으로 자신의 손을 살짝 닦아냈다.

 

 

 

 

“진희경. 진짜 회장님 편찮으신 거야?”

“어. 어제 응급실에 가셨어.”

“난 또.”

“참나, 날 뭐로 보는 거야. 네 얼굴 보러왔다고 착각하는 거 아니겠지.”

 

 

 

 

그게 아니면 뭔데. 민규가 한심한 듯 희경을 쳐다보고는 옆에 놓여있던 물을 들이켰다. 희경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가방에 있던 네모난 종이를 책상 위로 건네었다. ‘청첩장’ 이라고 적혀져 있는 그 종이는 민규를 웃음 나게 만들었다. 희경은 이 녀석 보게, 하는 식으로 반응을 보다가 이내 핸드폰을 꺼내들어 누구에게 전화하는 듯 했다.

 

 

 

 

“어, 원아.”

 

 

 

 

낯설지 않은 이름에 흠칫했다. 민규가 옛 연인에게 부르던 애칭과 일치했으니 말이다. 입꼬리를 슬쩍 들어 웃으며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는 이내 표정을 굳혀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청첩장을 집어 들어 희경의 상대가 누구인지를 찾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여 열심히도 찾았다. 신랑, 신랑. 찾았다. 뭉툭한 손끝으로 신랑 옆에 적혀져 있는 이름 석 자를 읽어 나갔다. 그리고 다 읽었을 땐, 온 몸이 떨렸고 청첩장을 들고 있던 손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의 눈은 비정상적이게 뛰는 심장과 다르게 침착하게 그 이름 석 자를 다시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민규를 무시하는 듯, 희경의 옆엔 누군가가 서있었다.

 

 

 

 

“김 이사. 인사해.”

 

 

 

 

민규는 인사하라는 희경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의 옆에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나랑 결혼할 사람.”

 

 

 

 

전원우라고 해. 원우라는 남자가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민규랑 눈이 마주쳤을 때.

 

 

 

 

“전, 원우라고 합니다.”

 

 

 

 

낮은 목소리가 말끝을 흐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원아. 앉아. 민규는 희경의 말에 따라 그녀의 옆자리에 앉는 원우에 시선을 따랐다. 민규와 눈이 마주치면 마주칠수록 원우는 눈물이 울컥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다. 사냥감을 찾아다닌 맹수의 화난 눈빛이 아닌 물기에 젖어있는, 주인을 오랫동안 찾아다니다 이제야 만난 강아지의 눈을 하고 있었다. 희경이 자신을 소개하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오직 서로의 공간에만 있는 듯 했다.

 

 

 

 

 

그의 어머니의 부탁. 민규를 위해 잠시나마 떠나달라고. 돈을 건넨 그의 어머니였지만 받지 않고 자리를 떴고, 그 이후로 원우는 민규를 떠났다. 그 뿐이었다. 자신의 행복은 모르겠지만, 그의 행복을 위해서 떠났다고, 그의 연락을 받지 않으며 자기 위로를 할 뿐이었다. 계속 울리는 전화에 받으려다가도 그만 뒀다. 이내 원우는 전화번호와 폰 기종까지 바꿔갔으며 그에 대한 기억을 차차 지워갔다. 민규보단 빨리 지워갔다. 아니, 민규는 여전히 지우지 못한 것을 조금씩 지워나갔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지우고 지우지 못한 상태로 만났다. 둔탁해진 분위기를 희경은 잠시 눈 감은 채 지키자, 민규는 자리를 떴다.

 

 

 

 

“잠시 화장실 좀 갔다 올게.”

 

 

 

 

민규가 자리를 비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원우도 자리를 떴다. 민규가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 희경은 그저 물만 들이킬 뿐이었다. 밥도 안 시켰는데, 쩝.

 

 

 

 

원우는 당장 달려 나가서 민규를 찾기 시작했다. 화장실에도, 흡연 구역에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토록 보고 싶은 얼굴이었는데, 지웠어도 그리웠는데, 이대로 보지 못하는 건 싫은데. 원우는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맺힌 채 민규를 애타게 찾았다. 그 때, 원우를 누군가 껴안았고, 원우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항상 자신을 안을 때 뒷머리를 다정히 쓰다듬던 그의 손이었다. 맺혀만 있던 눈물이 울컥하며 쏟아져 민규의 어깨를 적셨다. 민규는 자신이 자리에 돌아왔을 때, 없는 원우의 행방을 물었다. 화장실 갔어. 립을 바르며 대답을 하던 희경에게 뭔가를 놓고 온 것 같다는 말만 남기고, 원우를 찾으러 가는 민규였다. 만나면 축하한다고, 날 버리고 저 여자랑 같이 살면 참 좋겠다고, 그런 생각은 화장실로 들어간 원우를 찾음과 동시에 떨궜다. 그런 원우를 민규는 껴안았고 습관 그대로 원우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내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울어버린 그에게.

 

 

 

 

“그만 울어. 원아.”

“…….”

“이러면 축하한다는 말도 못해.”

“…….”

“희경이랑 잘 살라는 말도.”

 

 

 

 

원우는 그 상태에서 얼굴도 들지도 못하고 계속 울었다. 소리도 못 내고. 민규는 그런 원우를 억지로 떼어내며 그의 얼굴을 다 감싸는 큰 손으로 눈물로 젖어든 그의 빨개진 눈 주위를 살며시 닦아주었다. 예쁘다. 여전히. 눈물을 닦아낸 후 내려간 손은 원우의 손을 살며시 잡아들었다. 민규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원우를 바라봤다.

 

 

 

 

“결혼반지, 없네?”

“그건…….”

“괜찮아. 지금 이 순간만큼은.”

“…….”

“그 반지 없었으면 좋겠어.”

 

 

 

 

원우는 잠시 동안 민규의 오랜만에 보는 얼굴을 훑다가 눈을 살짝 감았다. 민규는 그의 눈부터 입술까지 하나씩 내려 보다가 작게 발걸음을 떼었다. 그런 민규의 발걸음을 따라 조금씩 뒷걸음질 치다가 구두의 굽이 변기 아래에 부딪히면서 원우의 얇은 몸이 가볍게 앉혀졌다. 원우가 고통에 눈을 거슴츠레 뜨면 제게 등을 보이며 철컥, 하고 무언가를 잠그는 소리를 만들어낸 민규다. 그러고서 보이는 민규의 얼굴은 행복한 표정도 슬픈 표정도 아니었으며, 화난 표정도 아니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려낸 그 미소가 원우의 심장을 다시 한 번 더 뛰게 만들었다.

 

 

 

 

“6년 동안 우리가 별 야한 짓 다했어도 이런 곳에서 해본 적이 없는데.”

 

 

 

 

그때, 민규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원우는 보았고 아무 것도 끼워지지 않은 손으로 투박한 손을 감싸 쥐며 조용히 쓰다듬었다. 그러다 자신의 얼굴에 그 손을 갖다놓았다. 차가운 손이 원우의 피부로 다 느껴졌고 그 손은 따뜻함에 녹아들었다. 그에 민규의 눈 밑을 감싸고 있던 투명한 액체는 곧 낙루했고, 원우의 얼굴을 감싼 채로 허리를 구부려 넌지시 입을 맞췄다. 원우는 이에 응하듯 고개를 들어 다시 눈을 감고는 팔을 민규의 목에 둘렀다. 넌지시 맞췄던 입술은 서서히 깊게 맞물려갔으며 원우의 허리가 들려졌다. 참아왔던 그에 대한 애정과 욕구가 원우를 일으켜 세웠고 그 반동으로 쾅, 소리가 나며 민규의 등이 문에 부딪혔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원우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손을 허리에 옮기며 그 얇은 허리에 팔을 감싸 안은 민규다. 서로가 지기 보다는 서로를 원했다. 원우가 왜 그러는 지도 까먹은 채, 민규는 그런 원우의 격해진 입맞춤을 받아내고 또한 자신도 흘려 내보냈던 이슬도 떠나보내며 감정에 맡겼다. 묽어졌다가, 진해진 그들의 연정이 좁은 이 공간을 뜨겁게 메꿨다.

 

 

 

 

 

 

 

*

 

 

 

 

 

 

많은 것이 헝클어진 상태로 그 칸을 빠져나왔다. 머리부터 시작해 모든 게 엉망이었다. 다행이 거울 앞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고 희경이 기다리는 사실을 기억하고 부랴부랴 정리하고 화장실 밖을 급히 나왔다. 그런 민규와 원우 앞에는 이미 희경이 서 있었고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떻게 보면 민규의 입장에서는 불륜을 저지른 사람이니까 희경에게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풀죽은 강아지처럼 큰 몸을 구부렸다.

 

 

 

 

“새끼들아.”

“…….”

“재밌냐?”

 

 

 

 

희경의 낮아진 목소리에 민규는 흠칫했다. 옛 연정으로 남의 남편을 건드린 천하의 나쁜 자식이었고 잘못하면 법정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건 자기를 대차게 버리고 떠난 원우가 괘씸하다고 생각한 민규였다. 잘못은 원우가 아니라 민규의 어머니였지만 말이다. 희경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곤조곤 말했다.

 

 

 

 

“참나.”

“…….”

“전원우가 내 진짜 약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지.”

“……?”

“진짜였으면 네 감방에 쳐 넣었어. 미친 새끼야.”

 

 

 

 

민규는 자기가 잘못 알아들은 것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들고 다시 되물었다. 뭐라고? 진짜 약혼자가 아니라니.

 

 

 

 

“네 뒤에 있는 전원우 씨는 그냥 내 남편 대리인이고, 내 남편은 전원우라는 동명이인이야.”

“……시발.”

“응. 말도 안 되지? 나도 그래.”

“그럼 나한테 거짓말을 쳤다, 이거네.”

“음. 의도치 않게 속여 버렸지.”

“…….”

“쏴리.”

 

 

 

 

민규는 당황한 표정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원우를 돌아봤다. 반지 없었다는 게, 이거였구나. 원우는 민규의 말에 풉, 웃으며 민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 많이 늦었지. 그런 원우의 말에 민규는 다시 울컥하면서 원우의 허리를 바싹 끌어안으며 원우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원우는 그의 등을 토닥이기도 전에 다시 벌떡 일어나면서 눈 주위가 빨개진 상태로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어리광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는 민규다.

 

 

 

 

“그럼 그 때 왜 떠난 거야? 날 봐주지도 않고.”

 

 

 

 

그런 민규의 물음에 원우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보다 못한 희경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민규를 노려봤다.

 

 

 

 

“네 어머니가 너한테 떨어지라고 한 거야.”

“엄마가? 왜?”

“너 이 자리 오게 하려고. 네가 계속 원우 씨만 신경 쓰고 회사 경영, 이딴 거엔 관심 없어하니까.”

“허어.”

“이젠 허락해주실걸. 결국엔 네 잘못이야. 이놈아.”

“아, 진짜. 엄마는 그걸 말해주지. 왜 원우한테!”

 

 

 

 

민규의 대답이 이상하다는 듯 희경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야, 김민규. 근데 원우 씨가 너보다 형 아니야?”

“맞는데. 왜.”

“존나 뻔뻔하게 원우라고 하네?”

“…….”

 

 

 

 

찍소리도 못하게 하는 희경이 원망스러운지 표정을 굳히며 다시 원우에게 안겨들었다. 원우는 그런 민규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희경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내비친 후, 민규와 손을 맞잡은 채 레스토랑을 벗어났다. 희경에게 3년 동안 저리 밝은 민규의 미소는 처음이었고, 이를 내보이며 웃은 것도 처음 보았다. 역경과 고난을 헤쳐나간 후 자유를 찾은 순수한 어린이의 눈빛이었다. 모든 오해는 풀렸고 그들이 잘될 일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희경의 진짜 약혼자인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원아”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