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커튼 너머로 투과되는 빛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해는 진즉에 졌고 거의 다 식어가는 철제 난로만 희미하게 불빛을 내뿜었다.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이것도 곧 수명이 끝날 물건이었다. 형이 언제 온다고 했더라. 마트를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 오래 걸리는 걸 보니 이것저것 많이 사 오는 가 보다. 미역국이 먹고 싶다고 지나가다 스치듯 말했었는데 그걸 흘리지 않고 기억했나. 괜히 겸연쩍어 검지 손톱으로 볼을 몇 번 긁적거렸다. 아으으, 기지개를 쭉 켜고 습관적으로 왼쪽 팔목에 채워진 손목시계를 보는데 초침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맞다. 시계 약도 다 됐지. 형 나간 지 얼마나 됐더라. 기억나는 건 형이 나간다고 할 때 창문 너머로 해가 떠 있었다는 것 말고는 딱히.
세찬 바람이 끼익- 소리를 내며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딱 얼어 죽을 만큼 추운데도 굳이 현관문을 닫지 않았다. 원우 형이 위험하니까 문 열어두지 말랬는데. 그렇지만 곧 올 거니까 잠시 열어 둬도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다 양 뺨이 갑자기 따뜻해져서 놀랐다. 내가, 내가 울고 있었나?
빨리 와. 형.
IN TO THE LIGHT
도하
발단은 정말 뜬금포였다. 어디서 줏어왔는지 몰라도 찬이가 웬 숙박업체 전단지를 들고 왔다. 다짜고짜 형들 코앞으로 종이를 들이밀며 엠티 꼭 여기로 가자고 말도 안되는 생떼를 부렸다. 평소 귀엽게 봐 주던 후배라 귀찮아 하기보단 으구-하며 밉지 않게 볼을 꼬집어 주고 넘겼었는데, 막상 엠티 일정을 세워야 할 때가 오자 그 의견이 빛을 발했다.
천체 동아리 특성상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으로 가야 하니 마땅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적당히 괜찮은 장소 예약하려니 이미 옆 동아리가 먼저 짐 풀었다며 엄포를 놓았고 좀 시설 좋다 싶으면 가격이 너무 성수기 가격이었다. 고기 많이 먹으려면 그냥 싼 데 예약해요 형. 삼십 분째 숙박 사이트만 들락날락하는 원우 형 옆에 찰싹 붙어 모니터를 살피던 승관이 던진 말이었다.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야.
“아님 저번에 찬이가 얘기한 데 있잖아요. 거기 바닷가 쪽.”
나도 진짜 아무 생각 없이 던진 거였다. 늘어져 폰 게임을 하던 이찬이 갑자기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내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맞다! 원우 형! 우리 거기 가요!
찬아 형아 고막 터지겠다. 잠든 줄 알았던 정한이 형도 한마디 거들었다. 거들기보단 그냥 이찬 목청 알람 끄고 싶다는 소리였지만 싫다고는 안 했다. 다 구겨진 신천지 전단지 같은 걸 가방 밑바닥에서 찾아낸 이찬이 요란하게 전단지를 건넸고 예약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장소를 확인하고 나니 솔직히 걱정이 돼서 여긴 별로라고 언제 말할까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형은 의외로 얼굴에 부정의 낯빛을 띄우지 않았다. 장소는 처음 듣는, 존재조차 모르던 동해 끝쪽에 위치한 섬이었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새로운 곳 가 보면 좋지! 우리 이번에 나온 동아리 회비도 두둑하다?”
“나는 바닷가 좋아.”
승철이 형이 속도 없이 웃어젖혔다. 놀러 갈 장소가 잡히자 다들 학생 본분의 시험 기간은 고사하고 물 만난 고기처럼 여행 일정 짜느라 바빴다.
덕분에 나도 의도치 않게 동방을 들락거리며 회의에 참여했는데 항상 말하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었다. 부원들이 한참 시끄럽게 이것저것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정하고 나면 조용히 듣고 있던 원우형이 그래. 하고 대답했고 그것이 으레 회의의 종점이었다.
이럴 거면 왜 매번 전부 부르는지 모르겠다만 빠진다고 하기도 뭐했다. 그나마 부장인 원우형이 부원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듣고 결단 내는 표정이 좋아서 참을 만했던 것 같다.
나는 사실 다른 형들의 눈치가 아니라 원우 형의 눈치를 봤던 걸지도 모른다.
_
바닷바람은 거셌고 하늘과 바다를 가른 수평선이 낯설었다. 렌트한 버스 창문이 깨지도록 떠들더니 도동항을 거쳐 사동항까지 가는 동안엔 다 잠만 잤다. 원우형과 나만 빼고.
흔들리는 배 안에서 전날 먹은 햄버거가 체해 식도를 타고 올라왔을 때, 멀미도 없는 원우 형만이 조용히 책을 읽다 내 등께를 토닥여 주었을 때.
그 순간을 가장 후회한다. 그때 말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가자고.
_
주위 경관은 끝내줬다. 방파제 끝자락으로 투명한 진파랑의 바다가 끊임없이 부딪혀 오는 걸 멍하니 보다, 정한이 형이 손을 잡아끌었다.
속세와 멀어 보였던 섬은 외관과 달리 도시적인 틀들이 갖춰져 있었다. 시설이 좋다는 전단지의 광고는 우선 뻥은 아닌 듯했다. 별장을 가진 집주인 외에는 외부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개인 소유의 섬이었고 자신만 이곳에서 살기는 아까워 가끔 예약을 받아 섬을 공개한다는 실없는 소리를 했다. 창백한 얼굴의 부노인은 일주일에 한 번 물자들을 실은 배가 왕복되며, 창고처럼 쓰고 있는 무인 가게의 독특한 시설에 대해 언급했다. 과자사 먹을 수 있겠다, 그치? 찬이와 승관이가 신나서 속닥거렸다. 그리고 제일 거슬리는 소개는, 다소 복잡한 보안상의 이유로 방금 우리를 내려준 그 배 외에는 집으로 돌아갈 교통수단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일주일 동안 장기 숙박을 받은 것도 그 이유라고 했다. 일주일.
이곳에 있는 일주일 동안 상식과 도덕을 벗어난 일이 일어나더라도 아무도 모른다는 거였다.
불안한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다. 과묵히 웃고 있는 노인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기껏 공기 좋은 곳으로 멀리까지 놀러 왔는데 몸이 안 좋은 탓인지. 생각이 자꾸 삐딱선을 타 맘 편하게 즐길 기분이 안 났다. 부원들은 내가 배 위에서 멀미를 심하게 해서 표정이 좋지 않은 것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민규는 조금 쉬면 나아지겠지.
설명을 듣는 내내 껄끄러운 부분이 많았지만 그저 신나라 하는 그들 앞에서 나는 또 입을 다물었다.
놀러 와서 괜히 우울한 티를 내는 건 싫었다. 우리는 짐 정리도 하지 않은 채 트렌디한 별장 내외부를 아무렇게나 쏘다니며 구경했다. 정원까지 구경하고 나니 자연스레 바로 앞에 펼쳐진 물가로 하나둘 뛰어들어 물장구를 쳤다. 물 온도가 차가워질 즘 돼서야 온 몸에 짠내를 달고 맨발로 별장에 돌아왔다. 물을 싫어하는 원우 형만 제외하고선.
우리 빼고 아무도 없으니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기분이었다. 정신없이 놀고 씻자 배가 굉장히 고팠다. 밤에는 지수 형이 별장 구석 어디에선가 주워온 장작으로 어설픈 캠프파이어를 만들었다. 찬이와 준희 형이 실랑이를 벌이며 사온 엄청난 양의 고기들이 불판 위로 올라갔다.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드느라 약간의 모래 알갱이가 씹히는 고기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술기운과 분위기를 타 누군가 유치하게도 진실 게임을 제안했다. 주위는 모래 투성인지라 얇게 펼쳐 놓은 과자 봉지 위로 볼펜 하나를 돌렸다.
“형. 형은 나 별로 안 좋아하죠?”
이찬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직구를 날렸다. 찬이의 전단지를 가지고 여행 일정을 계획한 뒤로 유달리 껄끄러워 했던 건 맞았다. 그렇다고 찬이를 절대 싫어하는 건 아니었는데.
맞아 찬이 속상하게. 형들이 거들자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단단히 오해를 산 모양이었다.
“아냐 찬아. 형이 요즘 생각할 게 많아서 그랬어. 형이 찬이 얼마나 아끼는데.”
그쵸? 형이 날 싫어할 리 없어! 나 덕분에 섬으로 놀러도 오고! 단순하게 까르르 넘어가며 웃어넘기자 나도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옆자리에 앉은 찬이의 머리를 아무렇게나 헝클어뜨리고 나니 내 차례였다.
솥뚜겅만 한 손으로 볼펜을 세게 돌렸다. 승관이 앞에서 멈추나 했더니 살짝 빗겨나게 원우형으로 향해 있었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준휘 형이 재촉했다. 김민규 말 안 하면 벌주 원샷이야. 나는 속에서 꾹꾹 뭉치고 굴리던 말을 꺼냈다.
“형은…형은 왜 하필 저한테 동아리 가입하라고 했어요?”
어물거리며 시시한 질문을 내놓자 형들이 에이- 하며 훼방을 놓았다. 하지만 나에겐 나름대로 진지한 질문이었다. 학기 초 학관 게시판에서 알바 자리를 알아보고 있던 중에 딱 봐도 낯 가리는 마른 체형의 남자가 겁도 없이 답싹 내 손을 잡았었다. 그게 원우 형이었고 뭐냐는 눈으로 시선으로 보자 눈을 피했다 마주쳤다 안절부절못했다. 그 와중에도 손은 떼지 않았다. 슬슬 짜증이 나려던 참에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었다.
‘도, 동아리 가입해 보지 않을래?’
두꺼운 안경 너머로 비치는 투명한 눈동자가 약간의 부끄러움과 확신을 담고 있었다. 그러죠 뭐. 불특정 다수를 붙잡고 묻는 상투적인 질문에 예상 외의 대답이 돌아오자 그는 꽤 놀란 듯했다. 자발적 아싸였던 나는 별 흥미 없이 제안에 응했다. 그는 흥분에 찬 얼굴로 동아리 가입 신청서를 내밀었다. 사람이 대외 활동을 하고 살긴 해야겠다 싶었기도 했고. 그 땐 무슨 동아리인지도 잘 몰랐다. 맘에 안 들면 나오지 뭐. 가로로 샐쭉 찢어지는 눈매를 슥 훔쳐보다 싸인을 했다. 그렇게 발을 들인 동아리였는데,
‘별 좋잖아. 별.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멀고 차가운 곳에서 천천히 소멸되어 죽어가면서도 불평 없이 관망하고 있는 거잖아. 모든 걸. 혼자서, 외롭게.
암막 커튼을 친 동아리실에서 플라네타리움을 켜 놓고 별로 가득 찬 천장을 오랫동안 바라보던 선배가 입을 뗐다. 느리고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선배의 눈동자가 어느 때보다도 빛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별은 우리랑도 비슷해. 사람은 누구나 홀로 죽어 돌아가. 별도 멀리서 볼 땐 모여있는 것 같아도 사실 홀로 자리를 제 자리를 지키는 거거든. 몇 광년 씩 떨어진.
누구보다 모든 걸 이성적으로 재며 살다가도 작은 동아리 방 안에선 누구보다도 가장 이상을 쫓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 신기했다. 그 날 소파에 앉은 선배의 눈동자에 담긴 수많은 별들을 구경했다. 그렇게 매주 동방에 가서 굴곡 없는 동그란 상에 맺혀진 별들을 구경했었다.
내 질문에 형은 좀 이상한 답변을 내놓았다.
“음...어딜 가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이 생겼어..”
약간 취기가 오른 말투로 선배가 대답했다. 말도 안 돼. 얼굴이 화끈거렸다. 선배도 아무렇게나 내뱉은 답변이겠지. 다들 원우 형의 답변을 민규 관상이 성실한 부원이 될 상이었구나, 정도로 해석했지만 나는 그 이상이라는 걸 알았다. 지금껏 형을 졸졸 따라다니며 다른 사람들을 오해하게 만들었던 모든 행동의 정답들을 이미 형이 다 알고 있는 듯해서.
자극적인 질문들이 오가길 기대했던 분위기에 연달아 시시한 질답이 이어지자 김이 팍 샜다. 형들이 판을 엎자고 했다. 두 명이 짜증을 내며 널브러진 소주병들을 정리하고 막내 둘은 불꽃놀이 폭죽을 가지러 간다고 했다. 대답하자마자 잠이 들어 버린 선배를 갈무리하면서도 살짝 멍했다.
매서워진 바닷바람이 신경 쓰여 담요로 형을 꽁꽁 감싸다 말고 가만히 얼굴 곳곳을 뜯어보았다. 이러나저러나 참 특이한 사람이었다.
“형도 어디 가지 마요.”
혼자서 중얼거리는데 뒤에서 지수 형이 등을 툭툭 쳤다. 민규야 너도 같이 해. 형이 알록달록한 촌스러운 디자인의 폭죽을 내밀었다. 잠깐만요, 원우 형만 눕히고요.
아까 휘청거리면서 폭죽을 가지러 간다고 할 때 부터 불안했는데, 잔뜩 취한 막내 둘이 폭죽을 들고 모래사장 위를 마구 뛰어다니고 있었다. 정한이 형은 앉아서 손 가는 대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취하지 않은 건 술을 마시지 않은 나와 주량이 센 승철이 형 밖에 없었다.
라이터가 없어 꺼져가는 모닥불 장작 하나로 폭죽 심지를 태운 뒤 모래 바닥에 묻자 피이잉- 고막을 두드리는 굉음과 함께 새까만 밤하늘이 갈라지며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수놓여졌다. 별이 잔뜩 튀는 모양새랑 닮아 있었다. 아오 씨, 얘들아 폭죽 들고 뛰지 말라니까! 승철이 형이 소리를 질렀다.
아빠 다리를 한 내 허벅다리 위에 머리를 베고 누운 원우형이 몸을 웅그렸다. 추위를 타는 모양이었다. 그 모든 광경을 고요함과 시끄러움이 공존하는 밤바다 앞에서 보고 있자니 그저 마냥 행복했다.
지금이 딱 좋았다. 앞으로 어떻게 되든 좋다고 생각했다.
폭죽이 다 꺼져 갈 때쯤 선선하고 좋다며 형들은 모닥불 주위에서 잠을 청했다. 누워도 눈에 전부 차지 않는. 하늘을 꽉 메운 별들의 풍경이 그럴싸해서 기껏 예약해둔 방 놔두고 밖에서 자고 싶다는 심리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난 추운 형이 더 마음에 걸려 공주님 자세로 형을 들쳐업고 별장으로 갔다. 워낙 말라서 힘이 들진 않았다.
계시면 인사라도 드리려고 했는데 집주인분도 주무시러 가셨는지 별장 주위는 어두웠다. 우리들 말고 다른 사람이 별장에 머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현관을 잠그고 들어와 구석 침실 방에 형을 뉘었다.
“민규야? 다른 애들은?”
눕히는 동안 형이 깨 버렸다. 더 자야 하는 형이 깨는 게 싫어서 일부러 낮은 쇳소리로 대답했다.
“밖에서 잔대요. 추우니까 여기서 자요 형.”
으응-알았어. 금세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형이었다. 외투를 벗겨야 하나 싶었는데 그냥 냅두기로 했다. 차마 형 옆에서 자기에는 그림이 이상해서 이불을 가지고 와 바닥에 자리를 깔았다. 피곤해서 금방 잘 줄 알았는데 정신은 말똥했다.
창문 너머 경계가 흐릿해진 지평선과 잠든 형의 얼굴을 번갈아 구경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여기까진 나쁘지 않았는데.
잠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금방 깨고 말았다. 날이 밝기 시작하고 있었다. 커튼을 젖혀놓아 깬 게 아니라 밖에서 누가 밖에서 현관문을 미친 듯이 두드려서 깼다.
까치집이 된 머리를 헤집으며 문을 열자 승관이가 있었다. 얼굴 주변이 눈물로 범벅된 채로.
“형, 민규 형. 준휘 형이 없어졌어.”
덩달아 놀라 잠에서 깬 원우 형까지 데리고 바닷가로 나가자 정한이 형이 승철이 형을 껴안고 울고 있었다. 나머지 애들은 멍한 표정이었다.
“일어나서 마트를 가려고 형을 찾는데, 그게...”
설명을 요약하자면, 동트기 전 승관이가 배가 고파 일어났는데 모닥불 옆에서 자던 준휘 형이 없어져 있었다는 얘기였다. 처음엔 화장실에 갔나 싶었는데 기다려도 오지 않자 준휘 형을 찾으려고 정한이 형을 깨워 같이 섬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고 했다. 돌면서 섬 구경도 하고 형도 찾고 라면도 사서 올 생각이었는데, 그 작은 섬을 한 바퀴 돌 동안 준휘 형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는 거다. 정말 불안해져 항구까지 뛰어갔다 나온 승관이 방파제 사이에 끼어진 준휘의 담요를 발견하고 나선 둘 다 패닉이 되어 울고 있는 거였다. 멀쩡한 형이 갑자기 바다에 뛰어들 리도 없고.
승철이 형이 침착하게 말했다.
“설마 진짜 없겠어? 이따 집주인 할아버지한테 여쭤보자.”
정말 이상하게도 집주인도 종적을 감춘 채 하루종일 보이지 않았다. 우선 뭘 먹어야 하니 무인 마트에 가서 라면과 물을 계산하고, 별장에서 요리를 해 먹은 뒤 다같이 나가 찾았는데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섬은 다 도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이였다. 별장과 마트 외에는 건물도 전혀 없고 작은 풀숲만 섬의 나머지 부분을 채웠다. 해가 질 때까지 수십 번 돌고 뒤져도 성과가 없자 별장으로 들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밤이 되자 울음을 멈추지 않는 정한이 형 때문인지 꾹꾹 눌러 참았던 막내마저도 눈시울이 붉었다. 112에 신고 전화를 걸어 보았는데, 지금은 파도가 거세 실종 신고 접수를 해도 바로 도움을 주러 가긴 어렵다는 답변만 받았다.
훌쩍거림과 적막이 공존하는 거실 한가운데서 지수 형이 말문을 열었다.
“집주인과 잠깐 배를 타고 어디로 나간 건 아닐까? 항구에 배도 전혀 없었고. 내일까지 기다려보자.”
우리 중 항구에 배가 없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던 사람은 지수 형 뿐이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동난 지금, 형의 논리에 약간 안심이 되어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러나 곧 그 안심도 잠시뿐이었다. 어제 우리를 진정시키고 거실 소파에서 잠든 지수 형이 없었다. 통화도 받질 않았고 갑작스레 인터넷도 터지지 않았다. 어제 배 이야기를 꺼냈으니 항구에 가 있는 줄 알고 항구로 나가 보았는데도 형이 없었다. 집주인도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형의 짐들은 그대로였다.
“형 나 무서워요.”
또 그렇게 하루를 소비했다. 불안의 실체를 입 밖으로 꺼낸 찬이가 무릎을 감싸며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내가 여기 오자고 해서, 형들이....
“아니야 이찬. 네 탓 아니야.”
승철이 형이 찬이를 다그쳤다. 유달리 몸이 약한 정한이 형은 탈수 증세를 보이다 승관이를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옆에 선 원우형은 손톱 끝만 까득 물어뜯고 있었다.
형을 물끄러미 보다 핏방울이 맺힌 손을 치워내자 형이 초점이 희미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부장인 내 탓이야. 내가 잘..”
“그게 왜 형 탓이야?”
다 같이 정한 건데. 왜 지금 와서 형 탓을 해요. 상황도 상황인지라 말이 거칠게 나갔다. 잘못은 아무에게도 없었다. 서로 누가 누구를 탓할 것도 없었다. 잔뜩 예민해진 채로 다들 저마다의 불안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혹시나 또 누군가가 사라질까 싶어 다섯명이 거실에서 나와 잤다.
“환장하겠네.”
금연을 시도한다던 승철이 형이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보일러가 고장났는지 바닥이 엄청 찼다. 험하게 널부러진 이불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바닥을 굴렀다.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건 찬이와 원우 형 뿐이었다.
설마. 입꼬리가 제멋대로 파들거리는 게 느껴졌다.
“형. 정한이 형이랑 승관이는요?”
비이상적인 일들의 연속이었다.
_
결국, 몸을 벌떡 일으켜 앉았다. 나가 봐야겠다. 형이 절대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마트만 다녀온다고 하기에는 시간이 지나치게 흘렀다. 또다시 밤이 진득히 내려앉기 전에 형을 찾아야 했다. 형마저 잃을 순 없었다.
바닷바람에 지지 않으려면 몇 겹씩 껴입고 나가야 한다. 지수 형의 코트를 걸치고 정한이 형의 목도리를 둘렀다.
다섯 번째 맞는 섬에서의 밤이 꽤나 익숙한 듯 이질적이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형마저 없으니 철저한 고립이 피부에 와닿았다. 먼 수평선은 도통 적응하기 어려웠다. 어디서부터 섬을 돌아야 하나.
염려와 달리 형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리가 첫날 불을 피웠던. 채 치우지 못한 바스러진 모닥불 옆에서 바다를 향해 앉아 있었다. 양손엔 마트 비닐봉지를 쥐고서.
형은 바다와 맞서는 중이었다. 내 소중한 사람들을 돌려내라 시위하는 중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그 넓고 마른 등을 끌어안았다.
“형. 추워요.”
들어가요, 형. 천천히 돌아보는 얼굴의 눈께가 안쓰러울 정도로 발갛게 짓물러 있었다. 얼마나 속으로 삭힌 건지. 형이 떨리는 손으로 내 두 팔을 잡았다.
“민규야.”
“네.”
“이제, 이제 진짜 우리밖에 없어.”
“...”
어떡하지? 목젖 끝에 주렁주렁 매달린 혼란을 토해내지 못하고 그대로 삼킨 형이 와르르 품 안으로 무너졌다. 흐으, 얇은 어깨가 위아래로 미약하게 들썩였다. 부원들이 하나씩 사라져 갈 때도 절대로 울지 않던 형이다. 이젠 정말로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부재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신도 곧 그들처럼 사라질까 봐. 아니면 홀로 남아 언제 소멸할 지 모르는 외로움의 시간을 세어야 할까봐. 하지만 형은 훌쩍거리며 또 예상 외의 답을 내놓았다.
“벌 받나 봐.”
“...”
“처음, 흐, 처음 봤을 때부터…”
너에게 별을 보여주고 싶었어. 다른 부원들에겐 보여주지 않은 아끼는 것들까지. 내가 손을 잡아 이끌면 이끄는 대로 가만히 따라와 앉아 천장을 구경하는 네가 너무 좋아서, 매주 그 가짜 별들을 보며 이기적인 소원을 빌었어. 언젠가는 단 둘만이서 진짜 별들을 보러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래서 그랬던 거야.”
“…”
“나 때문에 애들이 사라진,”
더 이상 참을 수도 없어 선배의 턱을 그러쥐고 입을 맞췄다. 부원들이 사라진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모자라 엉터리 상상으로 자책하는 형에게 화가 났다. 더불어 형과 제 사이의 평행선을 인지한 순간부터는 형에게 닿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우린 같은 궤도 안이었다. 뒤통수를 아프지 않게 눌러 받치며 턱을 깊게 꺾었다.
맞닿은 입 틈새로 기쁨과 슬픔이 샜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감정들이 혀 사이로 얽혔다. 형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진심으로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형이 솜방망이 주먹으로 내 가슴께를 두드릴 때까지 우리는 한참이나 키스를 나누었다. 온몸에 흐르는 맥박들이 죄다 팔딱거렸다.
옅게 부어오른 입술을 떼고 눈을 떴다. 그 새 어두운 밤이 지평선을 집어삼킨 지 오래였다. 마주한 형의 눈 주위가 축축히 젖어 들어 있었다.
키스를 끝낸 후에도 형은 눈을 뜨지 않고 말했다.
“민규야.”
“…”
“난 이제 애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아.”
“원우 형.”
“내가 없어도 괜찮겠어?”
“그만.”
그만 말해요. 제발.
목 핏줄이 터져 나갈 때까지 악을 쓰고 싶었다. 하나도 안 괜찮을 거예요. 아주 많이, 혼자서 울어버릴 거에요. 왜? 왜 형마저 나를 두고 떠나려고 해요? 바깥세상 사람들도 그럴까요? 갑자기 이런 미친 일들이 벌어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누군가 우리를 구원하러 올까요? 난 이제 어떻게 해요?
또다시 부글부글 끓어 넘치려는 말들과 감정들이 눈동자 안에 잔뜩 고였어도, 탈력한 형을 끌어안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가지 마요. 사라지지 마요. 바닷바람에 식은 찬 몸을 갈비뼈가 다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흉부가 짓눌려 아팠는지 기침을 하면서도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래서 형은 한 뼘 더 멀어졌다.
코를 한번 씁 들이마신 형이 눈물을 세게 닦아내고 말했다.
“벌써 밤이네.”
“형.”
“저녁 먹고 자려고 했는데. 시간이 많이 늦었다, 미안해”
“…”
“마트에서 미역국도 사 왔는데. 내일 아침에 끓여 줄게. 형 요리 잘 한다?”
“…”
“대답해줘.”
“…네 형.”
”아으 피곤하다, 얼른 들어가서 잘래.“
_
고른 숨소리가 방 안에 낮게 깔렸다. 형의 눈 감은 모습이 예뻤다. 오늘이 지나면 형이 사라져 있을 걸 알면서도 깨우질 못했다. 조심스럽게 얇은 이불을 한 겹 더 덮어주고, 얼굴을 찌를 것 같은 머리카락 가닥들만 넘겨 올리길 반복했다. 현재를 원망하기보단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이 미친 일들 덕에 형의 마음을 확인할 기회가 올 수 있었노라고. 수많은 우연의 확률을 넘어 형의 마음을 확인한 댓가는 너무 크고 괴로웠지만, 결국 감사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으므로.
형의 이마에 입술을 내렸다. 내가 영영 잠들지 않으면 형이 사라지지 않지 않을까. 이기적인 생각들 뿐이었다. 형의 볼 위에 내 눈물이 묻어났지만 닦지 않았다.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형 옆에 웅크려 그의 배를 도닥이다 나도 잠에 빠져들었다.
_
꺼 두었던 핸드폰을 켜자 까만 액정 위로 핸드폰 배터리의 충전이 필요하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조금 늦게 로딩된 화면에선 여러 개의 문자와 부재중 목록이 쌓여 있었다. 최신 문자는 엿새 전으로 머무르고 있었다. 신고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조용히 자취를 감춘 듯했다.
형이 가지고 온 배낭 안을 뒤졌다. 옷가지 몇 벌과 책들. 그리고 플라네타리움.
여행 온 첫날 놀다 발견했던 3층의 작은 다락방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책장으로 좁게 난 창문틈을 밀어 가리자 꽤 쓸만하게 컴컴해졌다. 머리가 부딪치지 않게 주의하며 다락방 가장자리에 플라네타리움을 세워 두고 손에 잡히는 아무 필름이나 넣어 재생시켰다. 곧 낮은 기계 소음이 울려 퍼지며 방 안이 작은 우주로 가득 찼다.
형과 가장 자주 꺼내 보았던 우주였다.
눈에 띄는 가장 가까운 별들을 이으며 엉뚱한 별자리들을 만들곤 했었다. 필름이 닳아버릴 때까지 돌려 보아서 플라네타리움을 어느 곳으로 놓아도 금세 별자리를 짚어낼 수 있었다. 이번에 나 혼자 눈이 시릴 정도로 그 가짜 별들을 구경했다.
문득 형이 어느 별로 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나 빼고 모두가 가 있을지도 모르는 그 별에서는 외롭지 않나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엉덩이가 저릴 때까지 무릎을 감싸고 앉아 별만, 별들만 보았다. 눈 앞에 펼쳐진 가짜 별들이 나의 구원이었다. 그 안에 정착한 형을 꼭 찾아내고 싶었다.
이번엔 혼자, 다시 까무룩 잠이 들 때. 별들이 다가와 속삭였다.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고.
흔쾌히 그 손을 맞잡았다.
빨리 갈게. 형.
: 글에서 언급된 플라네타리움(planetarium)은 가정용으로 나온 작은 플라네타리움입니다.
천체 투영기를 뜻하며, 천체의 분포도와 운동을 교육하거나 천체의 운행을 게산하는 목적으로 쓰이기도 하고 민간에서는 감상용으로 흔히 쓰이는 물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