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악마가 산단다.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렴.
바람에 실려온 이야기다. 물론 나에게만.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전해 들었겠지만 나는 부모님이 없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날 임신하셨을때 사고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내가 4살이 되던 해 돈을 벌겠다고 나를 외할머니에게 떠맡긴 뒤 도시로 떠나시고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부모님의 얼굴은 기억도 안난다. 그래서 4살때부터 외할머니와 둘이서 살아왔는데 몇달 전 외할머니마저 내 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없는 것 보다, 어머니가 날 버리고 떠난 것 보다, 외할머니의 죽음은 너무 큰 슬픔이었지만 꾸역꾸역 살아내다보니 그 마저도 무감감해진 것 같다.
다시 하던 얘기로 돌아가자면, 그 숲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바람에 실려온 이야기에 의하자면 말이지.
하지만 동네 어른들과 다르게 우리 외할머니는 살아계실적 내게 말하셨다. 숲에 사는 악마가 사람을 잡아먹는 다는 말은 다 새빨간 거짓말이란다. 악마는 사실 굉장히 착하니 무슨 일이 생겨서 도움이 필요할 때는 숲으로 도망치렴. 그렇게 말씀하시던 외할머니의 눈가는 미세하게 붉어졌었던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했던 말은 정말이었다. 숲에 사는 악마는 사람을 잡아먹기는 커녕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준다. 지금 내 앞에 서있는 이 남자가 악마라면 말이다.
"이 악마의 자식!!!!저리 꺼져!!!"
"너네 엄마도 너 버리고 도망친거라며? 우리 동네에서 꺼져버려!"
"너네 할머니도 너가 죽인거야!!"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나는 동네사람들이 날 볼 때, 왜 경멸이 가득찬 눈을 하고있는지 몰랐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알게되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던 날 밤 숲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뒤로 어머니는 악마와 간통했다는 말도 안되는 소문에 시달리시다 못 버티시고 날 버리고 도망가셨고.
갈 곳을 잃은 어머니에 대한 조롱과 경멸의 말들은 나를 향하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어린 내가 상처받을까 어린 손주의 귀에 그 소문이 들리지 않도록 애써주셨지만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신 후 나는 사람들로부터 어렴풋이 느껴지던 경멸의 이유와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사람들은 내가 눈에 보이면 욕을 하고 돌을 던지고 발길질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맞다가 죽겠다 싶던 날 나는 날라오던 돌들을 피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숲 속이었다. 달빛 한 점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어막을 치고있는 빽빽한 나무들에 이곳이 어딘지도, 어디로 가야 동네가 나오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냥 무작정 걸었다. 약간은 축축한 이끼들이 찢어진 신발 밑창을 적셔갔고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숲 속에서 하룻밤을 견디기에 내 옷차림은 너무 추레했으며, 공복에 힘도 빠져갔다.
숲 속에 있는 악마는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다는 외할머니의 말을 떠올리려해도 컴컴한 숲이 가져다주는 공포가 나에겐 더 현실감있게 다가왔다. 내 불행한 인생은 언제나 희망보다는 공포가 좀먹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래도 희망을 가지려 노력해봤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더 큰 상실감이었고 그 경험들은 쌓이고 쌓여 애초에 희망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악마의 자식. 곰곰히 생각해보면 정말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내가 태어나서 아버지는 돌아가신거고, 외할머니도 내가 악마의 자식이어서 돌아가신거고, 우리 어머니는 내가 끔찍해서 날 버리고 도망가신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악마의 자식이어서, 악마의 자식이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려하니 이렇게 고통스러운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잊고있던 공포가, 어딘지 모를 곳에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에 다시 찾아왔다. 그르렁거리는 소리에 등줄기에서 차게 식은 땀이 주륵하고 흘렀다. 빽빽한 나무들은 빛 한줄기의 침입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컴컴한 숲속은 짐승이 어디있는지 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그때 내 앞의 수풀이 잘게 움직이더니 살기로 번뜩이는 황금빛의 눈을 번뜩이는 늑대가 나타났다. 네발로 서있는데도 키가 나랑 크게 차이가 나지않았고, 심지어 앞발은 내 얼굴보다 컸다. 으르렁거리며 드러낸 이빨에 물리면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죽겠구나 싶어서 오히려 나는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얼굴보다 큰 그 앞발로 한번 땅을 걷어찬 늑대는 그대로 나에게로 뛰어 올랐고, 나는 다가올 죽음의 그림자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눈을 감았다. 제발 바로 목을 물어주길. 괜히 팔이나 다리를 물어뜯어서 사지가 물어뜯기는 고통을 겪고서 죽고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생 살을 뜯어내는 날카로운 이빨의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다.
감은 눈을 살짝 떴을때 바람이 빽빽한 나뭇가지들을 밀어내고 달빛 한 조각을 뿌려주었다. 그 덕에 내 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넓은 등이 보였다. 마법사들만 쓸 것 같은 검정색 로브로 머리끝까지 감춘 그 사람은 아직도 이빨을 드러내고 그르렁거리는 늑대에게 뭐라고 작게 중얼거렸는데 그 작은 중얼거림은 이 세계의 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소리라기보다는 감각? 의식을 불어넣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늑대는 뿜어내던 살기를 감추고 얌전히 등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를 향해 돌아선 사람은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잘생겼다. 나를 짓누르던 죽음의 공포도 잊은채로 순수한 감탄사가 입 밖을 통해 흘러나올 정도로.
"안녕?"
"아...안녕하세요"
"너가 원우지? 박씨할머니네 손자"
"어,어떻게..."
우리 할머니를 알고있다.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에 대답없이 내 얼굴을 빤히보더니 갑자기 나를 안아올렸다.
순식간에 시야와 멀어진 지면에 놀라서 말도 못하고 어버버거리고 있었는데 주변 풍경들이 빠르게 달릴때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더니 곧 엄청나게 커다랗고 낡은 성 앞에 도착했다. 이 숲 속에 이런 성이 있었어? 아니 그것보다 여긴 아직 숲 속인가...?
그 사람에게 안긴 채로 주변을 둘러보니 빽빽하게 빛을 감추던 나무들이 사라진 탁 트인 절벽위였다. 커다란 달이 밝게 빛나고있는 밤이었다.
"상처는 어쩌다 그런거야?"
"아..."
아까 동네애들이 던진 돌에 긁혀 상처가 났나보다. 자신의 방까지 나를 데려와 푹신한 침대에 나를 앉힌 그 사람은 어디선가 꽤 오랫동안 쓰지 않은듯한 상자를 들고 와 안에서 연고를 꺼내 내 볼에 발라주었다. 볼에 와닿는 손가락은 혹여나 상처에 손가락이 닿아 내가 아파할까 덜덜 떨리고 있어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다정함에 처음보는 사람 앞인데도 눈물이 흐를것같았다. 목이 메어와서 대답을 못하고있자 더 다친데 없냐고 물어오는 목소리에 입 안의 여린 살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숲은 늑대나 야생동물이 많이 사니까 위험해."
"물론 내가 있으니까 지켜줄 수는 있지만..."
"그래도 다 지켜줄 수는 없는거니까..."
큼큼. 헛기침을 하고 울것 같은 기분을 가라앉힌 뒤 물어봤다. 정체가 뭐냐고. 대충 예상은 갔다. 하지만 확인해둘 필요는 있으니까. 그러자 창가로 들어오는 달빛보다 환하게, 작게 방을 밝히던 촛불보다 따뜻하게 웃으며 그 사람이 대답했다.
"나는 악마야"
그리고 나는 너를 지켜주기로 너네 할머니랑 약속했었어...라며 말 끝을 흐리는 악마의 표정이 약간 서글픈 웃음으로 변했다. 우리 할머니랑 약속을 했다고?
"언제요?"
"어...너네 엄마가...내 숲에서 늑대한테 잡아먹힌 날에"
우리엄마는,날 버리고 도시로...도망갔는데. 놀랐는지 목소리가 볼품없이 달달 떨려왔다. 날 버리고 도망간 줄 알았던 우리 엄마가 늑대한테 잡아먹혔다니. 그래도 도시 어딘가에서 혼자서라도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가끔은 버리고 도망쳐버린 아들생각도 한번쯤 하면서 살아가다가, 그러다 언젠가 한번쯤은 날 보러 와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도 하고 있었는데. 눈 앞에 있는 악마의 얼굴이 뿌옇게 보였다. 아무리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엄마라도 이렇게 죽었다는 얘기를 전해들으니 눈물이 나려나보다. 내 표정을 살피던 악마는 악마답지않게 어쩔줄몰라하더니 큰 손으로 나를 와락 안고선 내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미안,미안해. 내가 도착했을땐 이미 늑대들한테 잡아먹힌 뒤였어."
원랜 늑대들이 사람을 잡아먹기 전에 악마가 나타나 사람을 구해주고 기억을 지운 뒤 다시 마을로 돌려보내곤 했는데, 그날은 자기가 한눈 파는 사이에 우리엄마가 운 나쁘게 죽어버렸고, 돌아오지 않는 딸에 걱정이 된 할머니가 숲까지 이르렀을 때는 이미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훼손된 딸의 시신에 할머니는 맨 땅의 흙을 부여잡으며 오열하셨다고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악마는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너무 미안해서, 할머니에게 앞으론 절대 이런일이 없게 하겠다고. 집에서 자고 있는 네 손자는 내가 무슨일이 있어도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내 숲으로 와"
"아 아니다 숲에는 늑대가 있으니까 숲 근처에서 이 호루라기를 불어. 그럼 내가 마중나갈게"
품속에서 꺼내 든 것은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로 된 호루라기가 아니었다.
달빛이 반사되어 더 빛나는 호루라기는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옆면에는 회오라기 문양이 새겨져있어 회오라기의 중심부에는 푸른색의 투명한 보석이 박혀있었다. 딱 봐도 값 비싸보이는 물건에 받기 힘들어져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내 손바닥을 억지로 펴서 위에 올려놓고는 호루라기를 감싸는 모양새로 내 손을 주먹쥐게 만들었다.
"박씨할머니랑의 약속이니까 받아둬"
그리고 악마가 엄지와 검지를 딱소리나게 부딪히자, 어느새 악마의 침대 위에서 내 방 침대 위로 풍경은 변해있었다. 꿈을 꿨나 싶었지만 주먹쥐고있는 오른손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호루라기의 감촉에 꿈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항상 그다지 평화롭진 않은 인생이었지만 오늘 하루는 정말로 많은 일이있었기에 긴장이 풀리자마자 피로가 파도치듯이 밀려왔고 그대로 딱딱한 나무침대에 누워 잠에 빠져든것 같았다.
이제 나도 내 편이 생긴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