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리포트] 기계로운 삶3 完
2021. 2. 21. 23:58

 

 

 

"생각을 해요."

얼굴이 딱딱해진 채로 나를 돌아보는, 나를 만든 인간을 본다. 더 이상 말하지마. 이제 그만해. 소리로 뱉지 않아도 그의 간절함이 전해진다. 그 얼굴을 마주하자 나도 따라서 먹먹해졌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마음이란 이런 건가. 내가 차마 완전히 갖지 못한, 허락되지 않은 부품인 그것.

내 말에 약간 놀란 얼굴을 했던 접수 직원은 이내 무미건조하고 사무적인 말투로 물었다.

"스스로 무슨 반응을 하고 있는 줄 알아요?"
"...네."

이 말을 하기 까지 나는 수없이 많은 날들을 죽어왔는데.

"폐기날짜는 사용자분과 상의하시고 센터로 와주세요."

내 다짐이 우습도록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접수 직원이 확인서에 아무렇게나 도장을 쾅쾅 찍으며 내게 말했다. 뒤이어 내민 확인서에는 빨간색 잉크로 [폐기 사유 : 기능 불량] 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다. 고작 네 글자로 존속 여부가 갈리는 기계로운 삶. 아, 얼마나 평안한가.



기계로운 삶 3(完)
w. 마이너리티리포트



기계의 폐기 여부는 곧 기계 소유주의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더러는 기계가 속해있는 기관의 장에게로 알려진다. 아직 그런 경우는 없지만 폐기를 거부하고 도망치는 기계들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랬나. 우습다.

폐기 등록을 하기 위해 하루를 결석하고 났더니 학교에 그새 소문이 퍼졌는지 내가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이 웅성웅성 거렸다. 저런 종류의 수군거림은 입학 초에나 있었던 일인데. 시작과 끝이 한결같구나, 사람은. 문득 인간으로 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됐을까. 나도 이런 소문에 시시덕거리는 평범한 인간으로 살 수 있었을까. 교실에 들어와서도 끊이지 않는 소음들에 약간 신경이 곤두서려고 할 때, 앞문을 박차고 그 애가 들어왔다. 내 옆 자리에 앉는 애. 모여 있는 아이들 사이를 훑어보더니,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성큼성큼 긴 다리로 걸어 내 앞에 와서 선다.

"너 죽어?"

다짜고짜 그 애가 묻는다. 지난 반년 간 내 이름 한 번 제대로 부른 적 없던 그 애가 씨근덕거리며 묻는다. 누가 보면 마치 친한 친구의 그것이라도 되는 양 그 애의 감정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이제 보니 둘은 많이 닮았다. 큰 키, 동글한 눈매, 웃을 때 드러나는 덧니나 가무잡잡한 피부 같은 게. 사실 한 사람인 것은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내 아버지와 그 애는 똑같이 생겼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 묻는다. 나를 죽이기로 결정한 사람과 닮은 사람이 내게 죽느냐고 묻는다.
죽는다. 나에게 죽는다는 말이 어울리기나 할까. 나는 기계일뿐인데. 죽음의 사전적인 정의는 안다. 생물의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 다시 말해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일을 뜻한다. 그게 '죽음'이라면, 나도 '죽는' 게 맞겠지. 그 애를 빤히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얼굴이 다시 일그러진다.

"왜 죽어?"

너는 왜 내 죽음을 묻니. 나의 삶이 너에게 어떤 무엇이라도 되는 거니. 묻고 싶지만 나는 곧 '죽을' 예정이라 그 애에게 미련을 두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왜 죽느냐고. 글쎄. 이유는 간단하다. 쓸모가 없어져서. 나를 만든 주인의 목적과 달라져서. 그런 딱딱하고 기계적인 말 말고, 뭔가 더 그럴 듯한, 그런 대답이 하고 싶어졌다. 문득 언젠가 내가 보냈던 생존 신호가 기억이 났다.

I think therefore I am.

이 때 아버지는 무엇을 물었더라. 아버지가 보낸 메시지도 떠오른다.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라. 한낱 기계에게 이토록 철학적인 질문을 하다니. 아버지도 참 기계를 다룰 줄 모르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된 걸지도 모른다.

"...존재의 이유가 사라졌거든."

정확히 말하면,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죽는다. 그것은 내가 불량인 반증이자, 기계답지 못한 반응이므로.

"안 죽으면 안 돼?"
"왜 그래야 하는데?"

그 애가 말문이 막힌 얼굴을 한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듯이 그 애는 뭐라 입을 벙긋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떨군다. 이 애에게 나의 죽음이 뭐기에 이런 반응을 할까. 한참 그러고 있던 그 애가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내 이름은 알아?"
"....응."

김민규. 입 안에서 그 이름을 굴려 본다. 익숙하지만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이름. 나를 만든 엔지니어가 늘 입고 있는 가운의 가슴팍에도 적혀 있는 글자고, 내 아버지의 명함에서도 볼 수 있는 이름이다. 내가 제 이름을 안다는 것에 그 애의 동공이 확장되더니 이내 엷은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그걸 본 나는 가슴팍이 아리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미소. 분명히 본 적이 있는 그 얼굴. 마침내 나는 기억해낸다.


몇 번의 일요일이 지나고, 아버지가 원하는 정답을 찾아내지 못한 벌로 스스로 상처를 고치고 돌아온 날.
그 날 따라 아버지는 귀가가 늦었고, 스스로 전원 버튼을 내리고 쉬었어야 할 나는 그것조차 깜박한 채 내 방 침대에서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마를 덮은 따뜻한 피부 조직에 눈을 뜨려던 나는, 울음을 잔뜩 머금은 아버지의 목소리에 멈칫하고 만다.

“너를, 만들지 말 걸. 원우야.”

평소와는 다른 느리고 낮은 목소리에 진한 알코올 향이 풍겨오는 걸로 봐서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를 이렇게 부드럽게 만질 리가 없다. 아주 소중하고 연약한 무언가라도 되는 것처럼 나의 이마를, 귀를, 코를, 입술을, 턱을 어루만지던 아버지는 이내 이불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렸다.

“너는... 끝내 원우가 아니었어. 다 내 착각이고, 내 기만이었어. 너를, 너를 만들지 말 걸. 그러면 나는 행복했을 텐데.”

아버지가 젖어 들어간다. 몇 번이고 통탄의 말을 반복한 아버지는 이제 지쳤는지 더는 울지 않고 비척비척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간다. 그의 방문이 닫히고,  침대에 눕고,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잠이 드는 반응까지 확인한 나는 그제야 눈을 뜬다. 내 옆구리를 불편하게 만들던 물건이 무엇인지 보고 싶었다. 그건 액자였다. 아버지가 매일 밤 끌어안고 자는 그 액자. 내 옆에 놓고 간 아버지의 액자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전원우와 어린 날의 아버지가 엷은 미소를 띤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제서야 느꼈다.
아.
나는 잘못 되었구나.
나의 존재의 이유는 불충분했구나.
그러니까 나는, 나로서 존재할 수 없는, 기계로구나.
그때부터 나는 죽기를 갈망하기 시작한다.


 
-



학교가 끝나고 센터로 왔다. 예정된 대로 [엔지니어실 1]에 들어가, 상처를 고치기 위해 몇 번이고 누웠던 긴 의자에 앉는다. 가슴팍에 ‘김민규’라는 이름이 새겨진 흰 가운을 입고 그가 나를 돌아본다. 울었는지 그의 눈가가 붉다. 그는 왜 울었을까. 나 때문일까. 설마 나같은 기계 때문에 우는 사람이 있을까. 비참한 기대이다. 그는 침통한 얼굴로 선 여러 개를 가져오니 나와 연결하고 나에게 묻는다.

“후회... 하지 않니.”

너무나 인간스러운 질문이다.

“저는 기계인걸요.”

어쩜 그 애와 닮았지. 인간도 아닌 기계에게 그런 걸 묻다니. 어쩌면 나의 가장 인간다운 부분과 닮아있는 인간들이었기에 그랬나. 내가 고개를 가로 젓자 그는 더 울상이 된 채로 내 몸에 달려 있는 선을 하나씩 제거한다. 마침내 단 하나의 선이 남았을 때, 나는 미처 생각해내지 못한 걸 떠올린다. 아. 짧은 내 탄성에 그가 돌아본다.

“조금 궁금하기는 해요. 전원우가 아닌, 다른 기계로 살아봤으면 어땠을까.”

나는 다른 기계의 삶은 들여다 본 적은 없기에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짐작한다.

“하지만 그 때에도 난 똑같겠죠. 끝은 결국 이렇겠죠. 그건 내가 바꿀 수 없는 거잖아요.”

내가 내 아버지의 요청으로 제작되었듯이, 결국은 누군가의 원함으로 존재하게 되는 기계의 삶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기계는 그래요. 시작부터 의지라고는 없죠. 모든 이유는 타인에게로부터 나오는 거니까. 그건 바뀌지 않잖아요.”

내 말에 그가 천천히 놀리던 손을 완전히 멈춘다. 나를 만들고, 고치던 그 손이 오늘은 나를 죽인다. 나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인간. 그에게 나의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

“선생님. 오늘 학교에서, 그 애가 그러더라구요. 너 죽어?

우습죠. 기계에게 죽는다는 말을 사용하는 게. 근데, 더 웃긴 게 뭔 줄 아세요? 그 애를 그렇게 비웃었던 나도, 다른 기계의 삶을 살아보고 싶어 했다는 거예요. 나는 천천히 말을 하면서 손끝을 무릎을 감싼 천에 문지른다. 인간에게는 고유의 지문이 있어서 존재를 구별한다는데. 나에게도 그런 게 있을까? 목 뒤에 새겨진 코드번호 말고도 나를 존재하는 지문 같은 게, 기계에겐 있을까. 아니, 애초에 허락되기나 한 걸까. 내가 죽고 나면 남겨지는 건 있을까. 기억될 수 있을까. 몹시 불안해진다. 이렇게 끝나버린다는 게, 조금은 두려워진다.

“선생님. 나는 뭘까요. 나는 정말, 어떤 기계인가요.”

내가 그 애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 애의 입가에서 번지던 미소 같은 게. 자꾸 기억이 나요. 여기가 아찔해요. 나는 그 미소를 알아요. 나는 몇 번, 그걸 봤어요. 기억이 나요.
말이 많아진다.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었던 지난 삶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이 쏟아진다. 그는 가만히 나를 들어주고 있다. 내 보잘 것 없는 삶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는다. 한참을 얘기하다가, 나는 문득 나를 본다. 의자 위에 매달린 둥그런 반사경에 비춘 나를 본다. 내가 선택한 죽음을 밀어내려는 처절한 나를 본다. 그래서 나는 다시 결심한다. 죽기로.
내가 입을 다물자 그는 눈을 들어 나를 본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더니 내게 연결된 마지막 선을 뽑는다.


이제 나는 끝인가요.
아버지.
나의 마지막에 당신은 끝내 없네요.
나의 존재가 당신에게는 그 정도라는 의미겠지요.
나의 모든 이유였던 당신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이 있어요.
당신에게 전원우는 무엇이었나요?
그 액자 속의 전원우 말고,
당신이 만들고, 당신이 짓고, 당신이 있게 한 나는 왜 존재했나요?
나는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죽지만, 당신은 꼭 나의 이유를 알아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나의 죽음은 온당하기 때문에, 나는 슬프지 않을 것 같아요.
아버지.
당신은 나에게 전부였지만, 그 사실만으로 나를 죽였다는 걸 당신은 아나요?
내가 가진 모든 의문과 더불어 마지막까지도 당신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아서 덧붙입니다.
아버지.
나는,
그 무엇도 아닌,
전원우였어요.




[d.a.t.e. 21060406
코드번호 2105-0717-J
폐기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