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탕] 그들만의 연애 시트콤 : C
2021. 2. 21. 23:57

 

 

 

1. 갈! 갈!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오락가락, 춥다가 덥다가 변덕을 부리고 있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민규에게는 아직도 여름이 남아있는 것 같아 힘들었고, 더위를 조금 덜 타는 원우에게는 아직 추워지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아 안도하게 되었다. 해가 쨍쨍한 날이면, 민규는 여름이 아직 가려면 멀었다며 반팔티를 입었고, 원우는 저녁의 가을바람이 차갑다며 긴 셔츠를 입고는 했다.


 
"덥지도 않아?"

"네가 뭘 몰라서 그래. 요즘 가을 얼마나 빨리 지나가게."


 
가을이라고 발음할 게 아니라, 진짜 '갈!'이라고 순식간에 발음해야 할 것 같다니까. 자신의 말이 웃긴지 혼자 갈!갈! 거리며 웃는 원우였다. 민규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조금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수많은 책을 읽은 이유가 저런 개그나 하려고 그랬나 싶었다. 느껴지는 민규의 (한심한) 애정 어린 시선에, 원우는 자신만만하게 웃어보였다.


 
"왜, 너무 탁월한 개그라서 반했냐?"

"뭐라는 거야. 이러려고 나 무시하고 책만 읽었구나 싶어서 본 거야. 착각은 곤란해."

"진짜 너무하다. 나에 대한 애정이 식었어."

"그게 또 왜 그렇게 가는데!"


 
오늘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어떻게 애인의 개그를 받아쳐줄 생각도 없냐고 따지는 원우와, 그걸 어떻게 받아 치냐며 투닥거리는 것은, 이제는 그냥 일상이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다투고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이제는

 

"어휴, 그래도 나 아니면 누가 형 받아 주냐."

"그래, 좀 이해심도 기르고."

"이미 충분하거든."

"진짜 뭐라는 거야."


 
이 정도로 평화롭게 넘어갈 잔재주가 생긴 덕에 헤어질 위기도 몇 번이나(?!) 넘길 수 있었다.


 
2. 우리의 사랑은 여름보다 뜨겁다

이 정도 다툼은 장난으로 여기고 다시 포옹이나 뽀뽀에 집중하는 짬밥이 생겼다. 언젠가 질리도록 키스를 한 이후로, 눈만 마주치면 서로의 입술만 보였고, 싸우다가도 욕하고 소리를 꽥꽥 지르는 입술에 시선이 꽂히게 된 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되면, 싸우다가도 입술이 찢어지든, 피가 맺히든 아무 생각도 없이 입술로 박치기를 했다. 김민규가 기억하기로는, 전원우는 눈도 안 감고 있었다. 전원우는 김민규가 무지막지하게 빨아들여 나중에는 입술에 부항을 뜬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한 5분을 투자하여, 분노 속의 키스가 끝나면, 언제 싸웠냐는 듯,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두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소대로 -요즘 꽂힌- 갈, 갈 개그를 하는 원우와 이젠 그냥 그걸 들으며 귀여운 짓 그만 하고 이리 오라며 손을 흔드는 민규로 돌아와 있었다.


 
"너 진짜 키스 조금이라도 못 했으면 내가 가만 안 뒀어."

"아이구, 전원우, 누가 보면 키스로 세계 챔피언 드신 분인 줄."

"어쩌라고, 이 조랭이 떡 같은 게."

 

-조랭이 떡을 닮은- 민규의 팔뚝을 찰싹, 내리치자, 민규가 또 왜 때리냐 하면서 우는 소리를 내었다.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저 싸움과 키스 루트가 쉴 새 없이 반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3. 선풍기와 보일러

원우는 밤이 되니, 춥다면서 보일러를 틀기 시작했다. 조금 따뜻, 미지근, 노곤한 수준이 아니라 찜질방 불가마 수준으로 온도를 올리는 것 같다며 민규가 그렇게 툴툴대었다. 아직 11월 되기 전까지는 여름이거든요. 말도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더운 곳에서 자기 싫은 민규는 원우에게 등짝을 맞기 직전까지 불만을 표했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선풍기. 10월이 코 앞인데 선풍기는 무슨 선풍기냐며, 황당해 하는 원우에게

 

"내가 쪄죽는 것을 보기 전에 허락해 줘."

 

라고 비장하게 말을 하고는, 인터넷 쇼핑으로 벽걸이형 선풍기를 구매했다. 원우는 9월 말에 선풍기를 손수 다는 민규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반팔 입고 다니는 것도 신기한데, 선풍기까지…."

 

좀 어이가 없지만, 그래도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그를 위해 입을 다물기로 했다.

 

"선풍기 청소도 네가 다 해."

 

"당연한 얘기를."

 

민규의 선풍기 때문에, 두 사람은 그나마 밤에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원우는 등이 따뜻하니 만족스러웠고, 민규는 보일러 때문에 땀이 난 것을 식혀주는 선풍기가 있어 질 높은 수면을 하는 것 같았으나

 

"모기!"

 

날이 선선해지면서, 모기가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아직까진 긴팔, 긴바지를 입고 자는 것이 아니라서 모기에 물리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환장하겠네, 진짜. 모기장도 뚫고 들어오는 놈팽이들 때문에 둘의 피부는 이미 불그죽죽하게 모기 자국만 남아 있었다. 에X킬라도 효과 없어. 원우는 진저리를 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선풍기 세게 틀고 자면 안 오려나…."

 

민간요법인 것 같았지만, 위이잉 소리가 크게 들리도록 강하게 틀고 있으니, 모기가 조금 덜 오는 것 같기도 했다. 효과는 만족스럽긴 한데, 방이 더 추워져서, 보일러 온도는 조금 더 올라갔고. 이게 과연 여름인지 아니면 가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더위를 잘 타는 사람과 추위를 잘 타는 사람이 만나 그려낸 신(新)풍속도에 가까운 현상이었다.

 

"이게 추운 건지 더운 건지…."

"그럼 넌 이불 덮지 말고 자."

"그건 너무하다. 이거 없으면 모기한테 다 물어뜯길 거 같은데."

"그럼 얌전히 덮어."

"네."

 

물론 전기세와 난방비가 좀 많이 나와서 곧 있으면, 뒷목을 부여잡고 낑낑대겠지만. 두 사람은 요 애매한 여름과 가을의 경계를 즐겨보기로 마음은 먹었다. 마음은.

 

 

 

 

 

4.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시사철 불구하고 ‘아메리카노는 무조건 차가운 것으로 먹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위를 많이 타는 민규도, 추위를 많이 타는 원우도 그 의견에는 언제나 뜻이 맞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엄동설한에도 손에 꼭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길거리를 활보했다. 사실 지금 날씨에도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으면 손가락이 차갑게 곱아버리기 일쑤인데, 꼭 고집스럽게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상쾌하고 깔끔한 맛이 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엣취…!"

 

그리고 이렇게 감기에 걸린 와중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꿋꿋이 마시는 민규였다. 어쩌다 감기 기운에 골골대던 원우에게 뽀뽀를 하다, 원우는 금세 감기에서 해방되었다. 문제는 김민규가 감기를 옮겨 받아 더 심해진 것이었다. 추워서 두터운 옷을 입고, 목이 따가워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면서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니면 마시지 않는 고집에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 감기 전염시킨 원우마저도 똥고집 부리지 말라며 민규를 타박했다.

 

"그냥 다른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 되잖아."

"지금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땡긴다고."

"아니, 네가 춥다고 했잖아."

"여기서 마시면 안 추워."

"어휴, 감기 심해지든 말든 너 알아서 해라."

 

민규는 얼굴에서 마스크를 내리고 빨대를 물었다. 어떻게든 턱에 수염난 것은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턱에다 걸친 것을 본 원우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신기하게 먹는다."

"뭐가 신기해, 다들 이렇게 하던데."

"아니, 뭐 그런 것도 있고, 내 남자친구지만 좀 특이하다 싶어서."

"형도 감기 걸렸을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크림 잘 찾아 먹으면서. 나만 이상하대."

"너는 더위도 잘 탄다면서, 추위를 잘 타는 사람보다 감기에 잘 걸리냐?"

"추위 잘 타는 사람들은 옷 두껍게 입잖아. 그리고 누구 때문에 걸린 건데."

"누가 직접 옮겨 가져갔잖아. 말은 똑바로 해."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것에, 카페 주인이 카운터에서 눈치를 주었다. 찌릿. 텍스트로 표현하면 정말 정확하게 '찌릿'이라고 나올 것처럼 말이다. 소심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두 사람은, 조용히 아메리카노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나가겠다고 하니 흔쾌히 일회용 잔에 부어주고, 나가주어서 고맙다는 표정이었달까…. 찬 음료를 들고 있는데 찬 바람이 불자 손 끝이 시려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원우도 손이 시려웠는지 안 그래도 긴 소매를 끄집어 잡아 당겨 손을 가리고 잔을 잡고 있었다. 민규도 최대한 음료가 담겨 있는 부분에는 손을 닿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진짜 웃긴다. 우리 롱패딩 입고 다니는 계절이 오면, 그 때는 장갑 끼고 마시자."

"스키 탈 때 쓰는 거 어때?"

"그것도 나쁘지 않고. 나는 김민규가 먼저 쓰면, 나도 쓸래."

"차암나, 이상하다 싶으면 무조건 나한테만 먼저 시키더라."

"그럼, 어떻게 하면 먼저 쓸 거야?"

"한 시간 착용 때마다 뽀뽀 1분에 한 번씩 해 주면."

"그냥 쓰지 말자."

"아, 왜애!"

 

손 시리니까 빨리 들어가자. 원우는 괜히 말을 돌리며 민규를 잡아끌었다. 민규는 찬바람이 코와 목에 들어갈까 봐 마스크를 다시 올리고 원우의 뒤를 따라 걸었다. 손에는 얼음이 녹지도 않고 있는 아메리카노를 들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