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던 결혼이었다. 내 의사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없던 나에게 갑자기 주어진 것이었다. 진하고 아주 깊게 흠이 나버린 어떤 기억을 덮어버리기에는 너무 작은 결혼이었다.
나에게는 아까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 앞에서 웃을 수가 없었다.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얼굴이 굳었고 손길이 둔해졌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사람을 대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 사람은 바보처럼 나를 잡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영혼 없는 반응을 해도 그것마저 좋다는 듯이 꺄르르, 하고는 웃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웃음과는 완전히 달랐다. 바쁘다고, 야근이 있다고 하면 야근이 끝날 때까지 나를 기다렸다. 문자 대화창의 끝이 내 메시지인 적은 없었다. 그 사람은 그랬다. 진짜 한 없이 바보 같고, 한 없이 멍청했다.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하지 않는 나마저도 우리의 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 사람과 나는 처음 만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결혼하게 될 사이가 됐다. 사실은 그 것이 아예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몰랐다. 어쩌면 그 사람은 그것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그렇게 마음을 주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한 달 만에 관계가 바뀌어버린 속에서도 나는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더 했다면 더 했다. 그 사람도 역시 변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향해 웃고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고 나를 끌고 여기저기를 다니곤 했다. 그렇지만 웨딩드레스를 보러 다니거나, 예식장을 알아보거나, 혼수를 알아보러 가지는 않았다.
- 원우 씨가 결정하는 대로 따를게요.
남들보다 급하게 준비되었다. 갑자기 관계가 변했던 것처럼 갑자기 날짜가 정해졌다. 내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그 사람의 앞에서 제대로 웃을 수도 없었고 여전히 그 사람에게 가는 모든 행동과 손길이 둔했다. 아무 표정도 없이 커피만 마셔대고 있는 나에게 그 사람이 말했다. 결혼식까지 딱 두 달이 남았던 날이었다. 커피 대신 시킨 차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있던 그 사람에게 나는 딱 두 마디만 말했다. 결혼, 해요.
나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그냥 받아드리고, 그 사람은 여전히 나를 잡고 있었다. 내 말에 그 사람은 그저 웃었다. 그리고 마시지 못하고 있던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런 일에 익숙해진 탓이라고, 나중에는 생각했다. 내 기억이 미치는 가장 오래 전인 다섯 살 때도 나는 늘 정해진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말하는 대로 따랐고, 그게 옳은 거라고만 생각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도 나는 부모님이 원하는 과로 진학했다. 부모님은 나의 대학생활까지도 다 정해주곤 했다.
과거보다 더 자유로웠다. 보다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내 생각이 거부당하기도 했고 내가 옳은 거라고 믿고 살았던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기도 했다. 그래서 휴학을 했다. 제대 후 바로 복학을 하라고 했던 부모님의 말을 ─ 부모님이 만들어놓았던 것뿐이었다는 걸 알게 된 운명을 ─ 처음으로 듣지 않았다. 제대 후 나는 일 년을 더 휴학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너를 만났다. 얼굴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던 너는 휴학계를 내러 간 학교에서 나에게 당돌하게도 물었다. 제 스타일이신데 이름이 뭐예요?
대학 생활의 마지막 일 년을 제외한 그 이전은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너도, 너와의 관계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머리에서는 계속해서 옳지 않다는 것을 아는데도 몸은 계속 옳다고 행동했다. 그게 내가 너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의 전부였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처음이었다. 너를 만날 때마다 나는 이 것이야말로 완벽히 어기고 거스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또 생각보다 내 마음이 깊었다고 생각했다.
‘어제 어디 갔었어.’
‘어디가긴, 아파서 집에서 쉬었다니까.’
‘…아니잖아.’
‘….’
나만큼은 아니어도 나와 똑같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내 표정을 살피는 너의 표정도 똑같았다. 아무런 변명이나 사과도 없이 너는 나만 보고 있었다. 더 이상 웃지 않았다.
- 요즘 누구 만나는 것 같던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던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뒤통수밖에 보이지 않아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말투에서부터 이미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 수 있었다. 대답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핸드폰은 진동 하나 울리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고 기가 찬웃음도 나지 않았다. 졸업을 몇 개월밖에 남기지 않고 있었다. 너와 다시 만난 것은 졸업식이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이별을 통보했다. 사실 이미 다 마음은 정해져 있었고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었다.
졸업 이후에는 태어날 때부터, 아니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던 내 미래를 따라 갔다.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인턴 자리부터 시작했다.
예식장은 붐볐다. 새로운 부부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억지로 웃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그 사람은 신부대기실에서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내 앞에서는 그렇게도 잘 웃던 그 사람의 웃는 모습이 오늘따라 힘들어 보이기만 했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났던 그 만남을 주도하기까지는 엄마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 그걸 무시할 수 없었기에 ─ 모두 내 운명이라 생각했다. ─ 자리에 나갔던 것뿐이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살았지만 너와의 시간을 지우기라고는 쉽지가 않았다. 처음이었고, 그게 사랑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많은 변화를 느꼈고 너 때문에 또 다시 변화했다. 그 깊었던 기억을 다른 것들로 채워 넣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엄마는 그 깊이를 그 사람으로 채우길 바랐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줄 수 없었다. 너를 떠나고 있었던 시간 동안 많은 것들로 채워도 점점 더 깊어지기만 했다. 나는 차라리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기를 바랐다.
- 저는 원우 씨랑 있는 게 좋은데,
‘나는 형이랑 있을 때가 제일 좋은데.’
- 우선 만나 봐요, 그럼 좋아질 때가 오지 않을까요?
‘만나면 형도 나한테 빠질 텐데.’
그 사람이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발목을 잡았다. 깊어지고 또 깊어지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은 역시,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가 정해놓은 운명이었다. 머리는 계속해서 나를 멈춰 세웠지만 역시나 몸은 그렇게 따라주지 않았다. 이미 그 사람이 주어진 것이었다.
아까보다 하객들이 들어오는 속도가 확연히 느려졌다. 예식장 안에는 하객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진짜 결혼을 하긴 하는 구나.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떤 두근거림이나 설렘, 혹은 행복.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신부 대기실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정갈하게 정리 된 부케를 들고, 면사포까지 쓴 그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여전히 나를 보며 웃고만 있는 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부모님 만난 거지.’
‘….’
‘진짜 날 좋아하긴 했어?’
‘…미안해요, 처음부터 그럴 마음은 없었어.’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너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결국에 나는 다 거스를 수 없는 건지. 내게 주어졌던 것은 너와 지금까지 모르고 지냈던 나인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핸드폰을 울리고 있는 엄마인지. 휴학을 하고 너를 만나면서 생각했었어. 그 동안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운명들이 진짜가 아니었다고. 그건 다 날 위한 것이었다는 거짓말 속에 감춰진 어떤 검은 것들이었다고. 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머리로도 잘 모르겠어.
길었던 너와의 질긴 인연도 모두 끝이었다. 먼저 카페를 나와 집까지 걸어갔다. 그 때가 아마 가장 추웠던 날이었다. 목도리로 얼굴 반 이상을 가리고 지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그저 얇은 코트 하나만 걸치고 걸었다. 내 옆으로 지나가는 많은 연인들 가운데서 나는 걸음을 멈춰 섰다. 이미 너와 있었던 카페와는 많이 떨어진 곳이었다. 뒤돌아도 더 이상 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냈다. 연락처는 지웠지만 익숙하게 11자리 숫자를 눌렀다.
[나도 내가 진짜 사랑이었는지 모르겠다.]
전송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문자 메시지 목록에서 그 11자리 숫자를 지워버렸다.
하객을 맞이하는 일도 거의 막바지였다. 눈에 띄게 새로 오는 하객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계속해서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려니 이보다 더 고단할 수가 없었다. 주먹으로 아려오는 허리를 두드렸다. 온통 새하얀 예식장을 쉬지 않고 쳐다보고 있었더니 눈까지 퍽퍽해져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 안녕하세요
눈을 비벼서 그런지 잠시 시야가 요동쳤다. 바로 앞에서 인사하고 있는 하객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다시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눈을 몇 번 깜박거리는 과정과 함께 시야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정상으로 돌아온 시야와 함께 똑같은 말이 들려왔다.
- 오랜만이네요.
내내 내리지 않고 한껏 치켜 올라가 있던 입 꼬리가 순식간에 내려가 얼어붙었다.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앞머리까지 깔끔하게 올린 너가 내 앞에 서 있었다. 혼자 집으로 돌아갔던 그 추운 날이 떠올랐다. 내 손과 마주 잡은 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반대로 내 손에서는 힘이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힘이 빠져가는 내 손을 너는 더 꽉 붙잡고 있는 꼴이었다.
- 축하해요, 이렇게 빨리 결혼할 줄은 몰랐네.
담담하게 말하는 말투가 썩 불편했다. 불편했다, 보다는 낯설어서 너와 겉모습만 똑같은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애써 시선을 피하고 손을 빼내려는 나의 행동에 너는 변함없이 입 꼬리를 올려 웃다가 손을 내렸다. 내 옆으로 서 있는 엄마는 다른 하객들과 이야기하기 바빴다.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 와, 그것도 너가.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기계처럼 내뱉은 말에 너는 똑같이 웃어주곤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돌아서 정장 자켓 안 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축의금을 넣는 너의 모습을 지켜봤다. 유난히 겉에 축의금이라고 써진 봉투가 두툼했다. 여전히 해사하게 웃었지만 미묘하게 느낌이 달랐다.
쌓인 많은 축의금 봉투 가운데 여전한 너의 필체로 너의 이름이 적힌 그 유난히도 두툼한 봉투만 빼왔다.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돈의 액수를 확인하려한 것은 아니었다. 노란 빛깔의 오만 원 권이 수북하게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워져 있는 작은 쪽지 하나를 집었다.
[나는 사랑이었어. 그 때 받았던 돈, 다시 넣었어.]
손에 들린 쪽지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잘게 떨리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떨려왔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까. 그 때 내 감정이 진짜 사랑이었던지. 손에 들려 흔들리고 있던 쪽지를 구겼다. 돈은 다시 봉투로 들어갔고 구겨진 쪽지는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깊게 파인 기억의 끝에 닿으려면 너무 많이 내려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