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에펠탑 효과 上
2021. 1. 10. 01:39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

 

 

 

 

***

 

 

성격 자체가 내성적인 편이다. 낯도 많이 가려서 누군가와 인간관계 맺는 거 자체도 어려워한다. 그래도 막상 친해지게 되면 말도 많이 하고 꽤 깊은 관계의 친분을 유지했다. 물론, 고등학교를 자퇴하기 전에는 말이다. 일찍이 내 성 정체성이 어떤지 알고 있었다. 남자를 좋아했다. 같이 무리 지어 다니던 친구 중 한 아이였다. 지금 와서 떠올려 보려고 해도 이름도 얼굴 생김새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냥 나보다 키가 컸었던 거로만. 하여튼, 그 친구를 고등학생 때 짝사랑을 했었다.

 

 

 

물론, 첫사랑이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거 보면 사랑은 아니었던 거 같다. 덕분에 학교도 인간관계도 모두 무너졌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걸 굳이 입으로 얘기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부모님께도 말씀 못 드렸다. 말한다고 해도 들어주지도 않을 거 같아서였다.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 다시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고 하는 건 정말 나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먼저 다가가서 아는 척을 하는 성격도 그럴 용기도 없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다들 하나둘씩 친구들을 사귈 때 나는 그 틈에 끼지도 못하고 그저 책상에 앉아 책만 읽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 있던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주던 친구가 그 친구였다. 그때 당시에는 정말 그 친구 뒤에서 후광이 빛났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친구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나름 재밌게 학교생활을 했었다. 

 

 

 

같이 다니는 친구 중 이 친구와 제일 친했었다. 고민 같은 게 생기면 나에게 먼저 와서 말을 하고 나는 그 고민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더 가까워졌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깐 그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도 어느새 더 커져 있었다. 행동 하나하나에 설레고 가슴 떨렸다. 어떨 때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 잠도 못 이룰 정도였다. 그만큼 그 친구를 많이 좋아했다. 나름 첫사랑이었으니깐 더 설레했을 거다. 

 

 

 

 

그 친구는 운동을 좋아했다. 공부는 못 해도 운동은 기가 막히게 하던 친구여서 학교 농구부 1학년 주장도 했었다. 그 덕분에 여자애들한테 인기도 많았다. 당연히 고백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특이하게 오는 고백들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또 나에게로 와서 고백을 받았는데, 받지 않았다고 일일이 다 말해주었다. 살짝 나에게도 희망이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이었다. 2학년이 되자마자 나에게 또 다른 고민을 털어놓았다. 옆 반 여자애를 좋아한다고. 그 얘기를 듣자마자 그 당시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애써 덜덜 떨려오는 손을 숨겼다. 하지만 손을 숨겨봤지만 속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좋아해."

 

 

말이 먼저 튀어나와 버렸다. 말을 뱉은 나도 그 말을 들은 그 아이도 크게 놀랐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뱉은 내 고백에 놀란 것도 잠시 심하게 일그러드는 그 친구 표정을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 그 뒤로 그 친구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학생이니깐 학교에 가야 했었다. 그다음 날 울며 겨자 먹기로 학교에 왔을 때는 이미 소문은 퍼진 상태였다. 나쁜 놈. 네 비밀이란 비밀들 나는 다 지켜줬었는데…. 금세 소문은 다른 반까지 퍼졌는지 쉬는 시간마다 반으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때 느꼈다. 우리 속에 들어가 있는 동물들이 딱 이 기분일까.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가방을 챙겨서 무작정 학교를 나왔다. 다른 친구 놈들의 경멸 어린 시선도 수군거리는 소리도. 그저 무서웠다. 그 뒤로 며칠 정도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돌아간 학교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같이 일 년을 재밌게 보내던 친구 놈들도 좋아하던 그 아이도 모두 나에게 다가오기를 꺼려했다. 다행히도 친구 놈들은 나를 피하기만 했지 괴롭힘 따위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소문이 많이 퍼지기는 했는지. 어느 학교에나 꼭 있는 문제아 같은 놈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질 낮은 음담패설은 기본이고 그냥 복도를 지나가다 엉덩이를 툭 만지고 가기도 했다. 거기까지는 참을 만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수위도 높아지고 괴롭힘도 점점 심해졌다. 하루하루 정말 힘들었다. 부모님께 말할 수도 없고. 안 좋은 생각들도 해봤다. 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겁이 너무 많았다. 전학이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내가 살던 곳에서 다른 고등학교까지는 너무 멀었다. 결국에는 자퇴를 결심했다. 

 

 

 

그렇게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합격한 뒤 더 공부해서 원하던 대학에 들어왔다. 고등학교를 그만둔 직후에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학교에 다닐 때보다 공부도 잘 되고 나한테는 잘 맞는 생활이었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와서 학교에 다니고 군대도 다녀왔다. 많지는 않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친구들도 생겼다. 나름 잘 지내고 있지만 역시 누군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걸면 움츠러들기 바쁘다.

 

 

 

 

 

 

 

01

 

 

 

 

 

올해 복학을 하니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았다. 그나마 안면이 있던 동기들은 다 올해 졸업을 해버리고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원래도 조용했지만, 더욱 조용히 학교를 다니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깐 벌써 2학기다. 복학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당시 짧았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눈썹을 가릴 정도로 길어졌다. 머리 한 번 다듬어야겠네. 머리를 한 번 긁적이고 메고 있던 백팩을 고쳐 맨 뒤 강의실로 들어갔다. 

 

 

 

 

 

강의실로 안으로 들어오니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았다. 아, 이 강의 우리 과만 듣는 거 아니라고 했지. 전공에 꼭 필요한 교양이라고 해서 신청을 했는데. 같이 다니는 과 친구 중에 혼자만 오전 강의를 신청해버렸다. 나쁜 놈들 내가 그때 알바 때문에 신청 못 하니깐 내 것 좀 대신해 달라고 했더니. 오전 강의라는 빅 엿을 선사해줬다. 그냥 조용히 수업만 들어야지….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지만 안 듣는 편도 아니라서 중간쯤에 교수님이 잘 보일 거 같은 자리에 앉았다. 아직 수업 시작하려면 오 분 정도 남기는 했지만, 오전 강의라서 그런가? 강의실이 꽤 한산하다. 교양 책을 꺼내고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 앉으려는 건지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연스레 시선이 향한다. 가방을 뒤지고 있던 손을 멈추고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혹시 여기 자리 있나요? 웃으며 물어오는데, 그 모습이 퍽 잘생겼다. 그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다시 한번 더 물어본다. 혹시 여기 자리 있나요? 너무 따스하고 다정한 물음에 대답도 못 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웃으며 내 옆자리에 앉는 남자.

 

 

 

 

"다행이다. 저는 김민규라고 해요."

 

"네?"

 

"김민규요. 경영학과 다니고 있어요."

 

"아, 네…."

 

 

 

갑작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고 다니는 학과까지 말하는 탓에 적잖게 당황을 했다. 누군가 이렇게 먼저 말을 걸어오면 당황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고 얼른 수업이 시작하길 기다리며 딱딱하게 굳은 채 앞만 바라보고 있으니 옆에서 또 말을 걸어온다.

 

 

 

 

"이름 안 알려주실 거예요?"

 

"무슨 이름..."

 

"그 쪽 이름이요. 나는 내 이름도 알려주고 학과도 알려줬는데."

 

"아... 원우요. 전원우. 영문과...."

 

 

 

 

 

영문과 다니시는구나. 이름 되게 예뻐요. 둥글둥글. 원우 씨라고 불러도 되죠? 잔뜩 굳어서 뻣뻣한 나와 달리 웃으며 말을 이어가는 남자. 기분이 좋은지 환하게 웃으며 자꾸 대답을 채근해온다. 마지 못해 네, 편할 대로 부르세요…. 대답하자 한층 더 밝아진 목소리를 하고 옆에서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냥 조용히 다니고 싶은데.

 

 

 

 

02

 

 

 

 

 

민규와 마주치는 일이 요즘 들어 잦아졌다. 아침에 듣는 교양도 같아서 매번 강의실 안에 들어가면 원우 씨하고 큰 소리로 불러온다. 그럴 때마다 강의실 안에 시선들이 다 나를 향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 민규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멀찍이 앉는다. 그럼 민규는 또 짐을 챙겨 와서 옆에 앉는다. 그리고는 같이 앉아요. 라며 해맑게 웃어 보이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가 있겠어... 

 

 

 

 

"네, 앉으세요..."

 

"감사해요."

 

 

 

그리고는 웃으면서 가방에서 짐을 정리한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만 보고 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민규와 눈이 마주쳐 황급히 나도 얼른 가방에서 교양 책과 필기구를 꺼냈다. 어색함과 불편함이 싫어서 민규를 피해 맨 뒤로 왔는데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된 거 같다. 뒷자리에는 오히려 앉으려는 사람이 없어서 단둘만 뒷자리에 앉아 있으니 평소보다 배로 어색하다. 아직 강의는 시작도 안 했지만, 얼른 강의가 끝나서 밖으로 나가고 싶다. 민규와 있기에는 아직 너무 어색하고 불편하다.

 

 

 

 

수업이 시작되고 어색함에 잔뜩 긴장을 한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러온다.

 

 

 

 

 

 

"저기... 원우 씨."

 

"네?"

 

"혹시 연필이나 볼펜 하나만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필통을 두고 와버렸어요. 연필 하나 빌리는 게 뭐가 그렇게 미안한 일이라고 정말 미안하단 듯 울상인 표정이다. 잠시만요. 말을 하고 얼른 필통에서 볼펜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그러자 또 환하게 웃으면서 고마워요. 말을 하고 수업을 듣는다. 문득 드는 생각이지만 민규 씨, 웃는 거 진짜 개구쟁이 같다. 지금처럼 진지하게 강의를 들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평소에는 눈만 마주쳐도 시선을 피하느라 잘 보지 못 했는데 민규 씨 진짜 잘생겼다. 자꾸만 시선이 간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자꾸 그렇게 쳐다보면 저 쑥스러운데."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웃어 보인다. 잠깐 쳐다본다는 게 계속 쳐다보고 있었나 보다. 얼굴에 열이 확 오른다. 부끄럽다. 그런 나를 아는 건지 놀리려고 더욱 짓궂게 말을 하는 민규.

 

 

 

 

"원우 씨 때문에 얼굴 뚫리는 줄 알았어요. 저 얼굴에 뭐 묻었죠?"

 

"네?"

 

"잘생김."

 

"아..."

 

 

 

 

웃을 줄 알았는데, 미안해요…. 잘생김이라는 말과 함께 검지로 자신의 볼을 콕 하고 찔러 보이며 웃는 민규 모습에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으니 미안하다며 잔뜩 시무룩해 한다. 그 모습이 꼭 풀이 죽은 큰 강아지 같아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03

 

 

 

 

 

 

 

원우 씨를 처음 본 건 2학기 복학을 준비할 때였다. 복학 기념으로 술 한잔하자는 친구 놈들 성화에 못 이겨 학교 근처 주점을 갔었는데. 그 주점 안에 원우가 있었다. 친구들이랑 온 건지 작은 테이블에 세 명이 함께 앉아 술을 마시며 웃고 떠는데, 술이 오른 건지 발그레한 볼을 하고 해사하게 웃어 보이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다. 짧게나마 본 그 모습을 보고 사람이 웃을 때 예쁘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짧은 순간이기도 했고 주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난리인 친구 놈들 때문에 그때는 말을 걸 생각도 하지 못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부어라 마셔라 하는 놈들 때문에 오랜만에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셨었다. 새벽녘까지 마시고 다음 날 늦은 오후가 돼서야 학교 근처에 사는 동기 놈 자취방에서 깨어났는데. 일어나자마자 몰려오는 두통에 자리에서 일어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냉장고를 열어 물을 꺼내 마셨다. 어느 순간 부터 필름이 끊겨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주점 안에서 친구들과 모여서 예쁘게 웃어 보이던 원우의 모습은 선명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름도 번호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 그냥 잊어버리려고 했다. 

 

 

 

 

그 날 일을 잊어버릴 때쯤 우연히도 두 번째 본 장소는 학교 근처 커피숍이었다. 복학 신청을 하려고 학교에 들렀다. 잠깐 들린 거였는데. 거기서 일을 하는지 유니폼을 단정히 입고 손님을 대하는 모습에 또 한 번 시선이 향했다. 학교 근처라서 사람도 많고 힘들 텐데, 힘든 기색 없이 일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단정하고 예쁠까. 마시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빨리 마시고 다시 카운터로 가서 아메리카노 두 잔을 더 시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맞으시죠? 주문 확인을 하는 목소리를 듣는데. 와, 목소리도 좋아…. 최대한 티는 안 내고 카드를 건네고 계산을 하기까지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금방 커피는 나왔다. 픽업대에 커피를 가져다준 여자 직원분께 아메리카노 한 잔은 저분한테 좀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당황하더니 알았다며 음료를 가져다주는 모습을 보고 커피숍을 빠져나왔다. 앞으로 이 커피숍에 자주 오게 될 거 같다.

 

 

 

 

세 번째 만남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이었다. 학교 강의실. 수강 신청을 완전 망쳐서 오전 강의를 잡았는데, 거기에 원우가 있었다. 우연이 세 번 이상이 되면 필연이라는 얘기를 어디서 한 번 들었던 적이 있다. 강의실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원우를 보고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나갔다. 

 

 

 

 

 

"혹시 여기 자리 있나요?"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놀란 건지 잠시 멈칫하다 고개를 젓는다. 

 

 

 

"다행이다, 저는 김민규라고 해요."

 

 

 

 

 

 

 

04

 

 

 

 

 

 

원우를 만나기 전까지 정말 죽도록 듣기 싫었던 오전 강의가 이제는 누구보다 기다려진다. 아침잠이 많아서 항상 고생이었는데, 수요일 오전만 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몇 주 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원우와 꽤 가까워졌다. 아직 말 몇 마디밖에 못 해봤지만 나름 크나큰 발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 몇 마디 겨우 나누는 게 어디야…. 강의가 끝나면 말도 걸기 전에 쌩하니 나가 버리는 원우 때문에 허탈했던 적이 꽤 있었지만 낙심하지는 않는다. 빨리 더욱 친해지고 싶다.

 

 

 

수업 중이나 수업 전에 하는 말이 전부지만 갈수록 원우에게 더욱 관심이 간다.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다짐해본다. 오늘은 꼭 점심 같이 먹자고 해야지.

 

 

 

 

학교에 와서 강의실 안을 바라보자 항상 앉던 자리에 원우가 앉아있지 않았다. 혹시 몰라 주위를 둘러보니 원우도 원우 닮은 사람도 오지 않았다. 언제쯤 오려나…. 우선 매일 앉던 자리로 가서 앉아 원우가 오기를 기다렸다. 강의실 문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문이 열리는 소리나 기척이 느껴지면 딴짓을 하다가도 문 쪽을 바라봤다. 원우 씨 언제 오지….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을까. 강의 시작 직전이 돼서야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원우가 보인다. 회색 후드에 까만 백팩을 메고 강의실로 들어오는 원우를 보자마자 반가움에 손을 작게 흔들며 원우 씨하고 불렀다. 하지만 그런 나를 보지 못한 건지 맨 뒷자리로 가서 앉는다. 

 

 

곧 강의가 시작할 테지만 원우를 따라 짐을 챙겨 뒷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같이 앉아요."

 

"네, 앉으세요..."

 

"감사해요."

 

 

 

 

 

 

교수님이 들어오시고 강의가 시작되자 우리의 대화는 또 끝이 났다. 항상 강의 시작 전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었는데.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냥 수업을 들어야 하나 생각할 때 가방을 열어 보니 필기할 공책만 있고 필통을 놓고 왔다. 아, 아침에 나야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원우에게 작게 말을 걸었다. 흔쾌히 볼펜을 받았다. 고마워요. 웃어 보이며 나도 진지하게 수업을 들으려고 하는데 자꾸만 옆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누군가 이렇게 쳐다보는 것에 익숙한 편이었는데, 원우가 자신을 이렇게 바라본다는 생각을 하니깐 급 긴장이 된다. 

 

 

 

뻣뻣하게 굳은 나를 원우는 알기는 할까. 내 시선은 앞을 보며 애써 교수님 수업을 보고 있지만, 전혀 수업 내용은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신경이 온통 나를 쳐다보는 원우에게만 쏠린다. 결국에는 못 참고 고개를 돌려 원우를 바라봤다. 

 

 

 

 

 

 

05

 

 

 

 

 

전원우 진짜 미쳤지.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민규가 웃는 얼굴로 점심을 같이 먹자는 말에 나도 모르게 동의를 하고 지금 학교 근처 식당에 와서 밥을 먹으러 왔다. 어쩌자고 여기를 따라온 건지. 그냥 밥만 먹는 건데도 긴장 돼서 자꾸만 땀이 차는 손바닥을 무릎 위에 올리고 쥐었다 폈다 해본다. 웃으면서 내 앞에 앉아 얘기하는 민규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 빨리 밥만 먹고 가야겠다. 

 

 

 

민규와 있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민규가 말을 하면 어떻게 내가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 긴장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밥이 나오고 간간이 민규가 물어오는 말들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입안 가득 넣은 밥을 우물거리며 먹었더니 볼이 빵빵해진 나를 보며 또 웃어 보이는 민규. 부끄러움에 얼른 씹어 삼키려고 할 때쯤.

 

 

 

 

"저 원우 씨한테 관심 있어요."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닐까. 민규의 말에 놀라 사레가 들렷다. 컥컥거리고 있으니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물을 건네준다. 얼른 물을 받아 마셨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또 한 번 말을 해온다.

 

 

 

 

"저 장난하는 거 아닌데. 저 진짜로 원우 씨한테 관심 있어요."

 

"아…."

 

 

 

 

방금까지 해맑게만 웃어 보이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민규와 눈도 못 맞추겠다. 갑작스러운 민규의 고백에 심장이 빠르게 뛴다. 심장이 뛰다 못해 손까지 떨려온다.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얼굴에 손부채 질을 해보지만 식지 않는다. 겨우 고개를 들어 민규와 눈을 맞췄다. 곧은 시선으로 쭉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민규와 눈이 마주하자 심장이 툭 떨어지는 기분이다. 이 기분은 뭐지. 누군가가 나를 좋다고 해줘서 단순히 떨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이 사람이 좋아지려고 해서 그런 건지. 글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