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타] 애매함에서 확실함이 되는 법
2021. 2. 20. 10:06

 

 

 

 

아 이런 미친, 조급하게 핸드폰을 보던 민규가 결국 폰을 집어던졌다. 머리가 아파 관자놀이를 눌렀는데 힘조절에 실패했는지 더럽게 아프기만 했다. 침대 위로 던져진 핸드폰에는 1이 사라지지 않은 카톡창이 떠있었다. 전원우랑 연락이 안된지 딱 열두 시간이 지났다.

 

 

 

 

[전원우 어디야?] 1

 

[원우형] 1

 

[딱 한 번만 읽어주라...] 1

 

[원우형 내가 다 잘못했어] 1

 

[용서 안 해줘도 돼] 1

 

[대답 한 번만 해줘 형] 1

 

[형] 11:23

 

형, 그 한 글자가 일방적으로 보내진 문자들의 주인의 심정을 담았다. 아침에 만난 이후로 단 한 번도 연락이 온 적이 없었다. 대체 왜?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디서부터 틀어진 건지, 민규는 다시 생각해봤다.

 

 

 

두 사람은 별 사이 아니었다.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예 모른다기엔 쓸데없이 잘 아는 사이. 밤에만 같이 지내고 낮에는 마주치면 인사만 하는 사이. 동거하지만 한 번도 같이 집을 나간 적이 없는 사이. 누가 너 쟤 알아? 하면 알긴 아는데 잘 모른다고 대답하는 사이. 김민규와 전원우는,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것이 없었다. 누군가 김민규와 전원우를 붙여놓는다면, 마치 코끼리와 냉장고를 붙여놓은 것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모두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원체 색다른 것에 끌리는 법. 사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지인 관계는 아니 실로 애매한 관계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사랑과 우정 중간에 서 있지만 썸보단 가깝고 사랑보다는 먼 사이.

친구와 연인 사이에 서 있지만 친구라기엔 멀면서도 연인만큼 가까운 관계.

정말 하나도 안 맞고 안 어울리지만 서로에게 자꾸 이끌리는 이상한 조합.

 

둘이 이 정도로 안 맞기에 많이 싸우고 또 많이 풀었다. 서로를 가장 잘 아는 것 같아 보였다. 어떻게 하면 서로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있을지 알고 있다고 자부해온 터라 자신감이 있었고, 싸워도 안 무서울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인간의 오만함이 얼마나 치졸하고 한심한 것이었는지 민규는 뼈저리게 느꼈다. 저는 원우를 잘 알지 못했다. 원우가 집을 나가고 반나절 내내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어디 갔을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원우는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하면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정말 하나도 안 맞았기에, 민규는 눈 앞이 막막했다.

 

전화 좀 받아라. 어디 있는지라도 알려주면 가서 뭐라도 할 텐데. 원우를 오래 봤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전부 자고 있는 모습이었다. 즉, 원우를 제대로 본 적은 없다는 의미다. 어떻게 너를 찾을까, 어떻게 너와 화해할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내가 형을 찾아도 될까? 화해해도 될까? 말해도 될까?

 

전원이 꺼져있어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끄고 던져버린 민규가 한숨울 내쉬었다. 내가 전원우라면 어디에 있을까? 어떤 방법을 써야 받아줄까? 고민이 많아 어지러운 머리를 싸매던 민규가 불현듯 이름 몇 개를 떠올렸다.

 

권순영, 이지훈, 문준휘.

 

원우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니 분명 이 중 한 명의 집으로 갔을 것이다. 민규가 던졌던 핸드폰을 잡아 들고 연락처를 뒤져보았지만 한 명의 전화번호도 없었다. 이게 뭐야, 자괴감에 빠진 민규가 침대에 누워서 베개로 얼굴을 덮었다. 형은 저번에 보니까 내 친구 전화번호 다 있던데. 원우가 보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정말 솔직히 보고 싶다.

 

 

원우랑 절대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양쪽에서 호감을 보이던 관계였다. 원우는 몰라도 민규는 그 이상이었다. 전혀 다른 것에 끌리는 본능을 억제할 마음이 전혀 없던 민규는 원우를 사랑한다고 그냥 가서 말해버릴까, 수도 없이 고민했다. 그 마음이 고작 그 뻔한 말에 막힐 거라 생각했던 오만한 모습이 한심했다. 우리 무슨 사이야? 그러게. 그때 그러게라고 대답하면 아니되었다. 아마도 원우가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니었을 거다. 사실 어쩌면 나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상대방이 원하는 답을 해주기 싫은 얄팍한 반항심 때문에, 불퉁하게 대답해버렸다. 너는 아마 고백을 바랐겠지만, 내 오만함과 반항심은 이렇게 해도 네가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아마 매사에 꼼꼼한 전원우라면 최선책 뿐 아니라 차선책, 그 이외의 선택지까지 다 계획했을 지도 모른다. 성격보다는 사실 뭐, 늘 예상 밖의 모습을 보여주는 나 때문일지도. 하지만 그에 비해 나는 원우의 겉모습, 아니 겉모습도 제대로 보지 않고 잘 알고 있다고 변명하며 차선책은 무슨, 최선책조차도 일이 일어난 후에야 생각하는 주제에. 이런 처량한 모습에 내가 자꾸 싫어진다.

 

지잉, 지잉. 핸드폰이 울리자마자 우당탕탕 가며 집어들었다. 원우인줄 알고 다급하게 간게 허무하게 연락은 명호에게 온 것이었다. 얜 또 뭐야? 민규가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김민규, 너 원우형이랑 싸웠냐? 니가 언제 봤다고 형이냐? 언제 봤기는, 지금 우리 집 거실에서 축 처져 계신데. 뭐?

 

등신아, 형이 얼마나 너가 와주길 기다렸는지 알아? 왜 형 친구네 집 안가고 우리 집으로 온 건지는 알아? 형도 지쳤다. 응답이 없는 전화에 화가 난 명호가 신경질 내며 말했다. 네 그 똑똑한 뇌 좀 굴려보라고, 네 머리는 장식이냐? 그제야 민규가 전화를 끊었다. 병신, 이제야 정신 차렸네. 명호는 다시 거실로 나갔다.

 

물 좀 드릴까요 형? 아, 응.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가 붉고 눈물 자국은 없어질 생각을 안 했다. 눈물이 줄줄 흘러 이러다 탈진할까 걱정되었다. 물을 받으러 냉장고를 열었을 때, 누군가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초인종은 장식이냐? 명호가 소리를 지르고는 이내 문을 열어주었다. 민규가 명호를 보고는 인사조차 않고 원우에게 달려들었다. 원우야, 내가 미안해. 대환장! 당장이라도 김민규 뒤통수를 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던 명호가 민규의 품에 파묻힌 채로 살짝 웃고 있는 입가를 봐버린 후로 그냥 한숨만 뱉었다. 맨날 나만 죽어나요.

 

원우형, 우리는 아무 관계도 아니야. 원우는 그 얘기를 듣고 민규를 밀어냈다. 아무 관계도... 아니야? 절망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민규가 다시 원우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뭐든 할 수 있어. 친구던, 썸이던, 연인이던.

 

나는 개인적으로 마지막 선택지가 좋은데, 형은 어때? 민규가 웃자 원우는 이내 흘리던 눈물을 박박 닦고 민규의 품에 파고들었다. 좋아, 난 좋아. 두 사람은 마치 드라마를 찍는 것 같았다. 어쩜, 고백하는 방법도 가지가지하다. 명호가 염병이라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저렇게 보니까 진짜 안 어울리는게, 완전 하얗고 마른 검은 머리 남자랑 까맣고 근육질의 갈색 머리 남자. 김민규와 전원우를 벗어나 둘은 그림체 다른 미남이었고, 다 달랐다. 연상이 되지도 않는 모습인데, 사실은 그래서 꽤 잘 어울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