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결국 너야
2021. 2. 20. 10:04

 

 

 

"형아"
"응 민규야"
그는 나의 우상이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형아 안 슬퍼?"
"슬프긴 뭐가 죽은 사람 그립다고 울고 슬퍼 할 시간도 없어. 그리고 넌 우리 부모님인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너네 부모님 돌아가신 줄 알겠네 울지마."
부모님이 돌아가시 던 순간에도 그는 울지 않았다.
고작 4살차이. 그 4년이 내겐 무엇보다 커 보였고, 그를 마냥 동경하게 되었다.







마냥 동경하던 그를 좋아하게 되었던 날.
이제 막 장마가 시작되었던 때 너는 23 이었고, 나는 19이었다.
"밍구우~귀여운 내 동생엥"
"형 술 마셨어요?"
"우웅.."
빈틈이 없어 보였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것 같았 던 형은 외로움에 약했다. 형이 17살 때를 기점으로 늘 여자나 남자를 한달 아니 하루 채 안 지나 새로 만났다. 이번엔 좀 길게 만나나 했더니, 딱 봐도 또 쓰레기 만나서 차였겠지.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에 우산 두개를 챙겼다. 전화 할 정도로 취했으면, 우산은 당연 없을 것이다.
모처럼의 주말이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 나에게 전화 한 형이 밉기도 했다. 어쩌겠는가, 그래도 날 의지한다는데.

터벅터벅 걸어 술집에 도착했다. 고등학생이 이 늦은 시간에 술집이라니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지만.
"형"
"웅!밍구다아 헤헤"
해맑다. 기분 나쁘게.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마주앉았다.
"오늘은 뭐 때문에 마셨어요?"
"밍잉구야..내가아..그렇게에..짜증나아?"
"왜? 그 새끼가 그랬어?"
말 없이 입을 웅얼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참 어릴 땐 강하던 사람이 이렇게나 약해지다니 같은 사람 맞나 싶다. 내가 동경하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가 버리고, 사랑 아니 사람하나에 이렇게 울고 있는 사람만 남은 걸까..
"왜 계속 쓰레기만 만나요? 그리고 고3을 이렇게 술 마시고 전화해서 부르는게 말이에요? 일요일인데.. 쉬지도 못 하고 왔잖아요...또 우산은? 안 가져왔죠 온 몸이 더 젖었네.. 내가 이렇게 꼭 잔소리를 해야..하아.. 말하는 제가 바보인거죠?"
눈에 눈방울이 맺혔다. 곧 흐를거 같아 더 말하지 않았다. 울면 귀찮으니까.
"가요. 데려다 줄게"
조용히 일어서는 형을 부축해주었다. 취했으면서도 잘 걷네..
"미..밍구야 추..추워"
아차.. 우산을 건에 준다는게 무의식적으로 나 혼자 쓰고 있었다. 순간 가로등이 커져 비에 젖은 형은 왜인지 모르게 빛이났다. 그때였을까? 동경이 귀찮음이 되었고, 귀찮음이 사랑이 된 순간.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원우형에게 반했던 순간, 내가 들어 갈 틈이 없다 하더라도, 쓰레기가 그 틈에 들어가고 그의 옆에서 다정히 있다 형을 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위해서, 이를 악 물고 공부했다.
결과는 형과 같은 대학, 수시합격.
그 소식을 형에게 전하자 영혼 하나없는 말투로 축하한다고 해주었다. 조금은 씁쓸했지만, 그래도 이거라도 어딘가.. 입꼬리 한쪽을 끌어올려 애써 웃어보였다.
"그래도 이제 형 학교 후배인데.."
"그래. 근데 시간 빠르긴 하네 너 9살 때가 어제 같은데 근방 열 아홉 되더니 이제 푸릇푸릇한 20살.. 난 24.. 왜 난 늙어가냐."
형의 말에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 4년차 난 진작 느꼈는데...
"그리고 민규야"
"네?"
"나 너 안 좋아하니까. 괜히 잘 보이러 하지마."
심장에 깊게 박히는 말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그 작은 틈도 내겐 허락되지 않는거야? 어이가 없었다. 그런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보는데, 미워하고 왜 그러냐고 따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 했다. 차가운 눈빛마저 사랑스러워 보여서.. 김민규 미쳤나보다





"너 진짜 그정도면 병이야. 진짜 멘탈도 좋다. 고3부터니까 히익! 2년이나 그 짓 했다고? 어우 난 못해."
나 대확생활은 생각했전것보다 순탄하다. 석민이라는 친구도 생겼고,과도 나름 적성에 맞았다.이런 말 듣는거만 빼면 더 좋을텐데.
늘 하는 소리가 이거다. 이자식,지 짝사랑 안 해봤다고 세상 속편히 살지.
"야 학식 먹을 때만이라도 그 생각 좀 안 하자. 넌 밥이랑 같이 눈치도 먹었냐?"
얄미운 표정과 말투는 아니지만 괜히 느끼기에 얄미워 조용히하라며 입에 소시지를 물려줬다. 그걸도 좋다고 우물거린다.
"에휴..넌 그냥 연애 하지마라."
"응?뭔?"
"가자 임마."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엉켜 밥맛이 뚝 떨어져버렸다. 이럴 때, 저 속편한 이석민이 부럽다.
"주호야~나 저거 핫바 사주라."
순간 움찔거렸다.분명 원우형 목소리. 그것도 애교부리는.
"야 너 왜 안가?"
멈칫한 나를 발견했는지 뒤에서 가자고 보채던 석민이 내 시선이 향한 곳을 보자 바로 수긍했다. 저 정도면 외로움을 달래는게 아니라 일부러 그러는거 같다. 나한텐 부담스럽다면서, 핫바 하나로 세상 행복하게 애교를 부리는 형이 마냥 밉다.
"하아..그냥 니가 사먹어 귀찮아."
화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이런건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 지금이라도 팔 끌고 데려와 이번엔 또 어떤 쓰레기냐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충동적인 내 행동이 안 그래도 박힌 미운 털, 더 커질까 주먹을 꽉 지고 석민과 건물을 빠져나왔다.
"오늘은 나 쳐다도 안 보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누구였어요? 주호던가?"
"응 만난 애들 중이 제일 잘생겼어."
아까하는 더 보니 신경을 안 쓰는거 같더니 정말 이사람 선수다. 마음 흔들기 종목에서.
"주호 어제도 데이트 약속 파기 하고 딴 사람이랑 놀 던데.. 이거 내 문제야?"
"아뇨."
"내 문제 아니지? 맞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내가 동경하던 사람이 맞나 의심이 든다. 그때는 이렇게 약하지 않았는데 반짝이던 사람이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변한 건지..
"형 안목이 문제네요. 진심으로 하나 물을게요 일부로 그러는 거에요? 아님 취향이 쓰레기인 거에요? 나는 아니에요?"
충동적인 말 아..미운 털 박히게 생겼다.
"그런거 물을 거면 나 갈게."
예상했던 결과다. 이럴 때만 생각대로 움직이는 형이 밉다. 나 답지 않게 방금까지 앉아있던 너의 자리에 앉아 아이처럼 울었다. 석민이의 위로 따윈 내게 닿지 않았다.



"너 진짜 그 정도면 병인 거 알지?"
나도 안다. 나 바보인 거. 2년 내내 틈을 찾지도 열지도 못해 미련적인 거.
"나도 알아. 조용히 해"
마음이 쓰린 느낌이다. 전원우는 다른 사람을 만난다, 달래준다, 또다시 빠진다 반복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낄 틈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아 수업 시간 다 됐다 나 간다! 힘내라 순정남."
전혀 위로 안되는 위로다. 이 모든 게 게임이라면 주인공은 나를 봐주지 않는 새드엔딩. 바꿔보려 해도 원우 형만 보면 에러가 뜬다. 에러 때문에 늘 틈은 열리지 않는다.
"젠장 강의 늦었다 악! 5층인데!"
멍하니 있다 늦어버렸다. 죽을힘을 다해 뛰었는데, 지각. 망했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데 교수님과 눈이 마주쳤다. 아 교수님 자비를 베푸세요 에프는 안돼
"김민규 몇 층 화장실을 다녀온 거냐 아주 얼굴이 땀 범벅이네 자리에 얼른 앉아라."
뭐지.. 명호가 대리출석해준 건가? 아닌데 걔 알바있다 던데..
"너 원우한테 고맙다고 해. 원우가 너 구라 쳐 준거야."
형이? 뭐지 나 엄청 싫어하는데 착각 말자 단순히 강의 겹치는데 나 없으니까 도와주는 거야 그래 도와주는 거.. 나 너무 장난감 같다 그런데 이런 것도 좋아하는 내가 더 싫다.






"야 너 그거 들었냐?"
"뭐?"
"그 왜 14학번 원우 선배 있잖아. 그 선배 18김민규 좋아한대. 꽤 오래됐다 그래 그니까 너 마음 접으라고 너 백퍼 까인다."
"엥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민규 원우 선배 좋아하는 거 대 놓고 티 내고 다니잖아 근데도 거부하더니 아니야?"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군. 그거 다 센 척하시는 거잖아. 원우 선배 부모님 돌아가시고 할머니 밑에서 살다 할머니도 얼마 못 가 돌아가시고 자기 주변에 사람 하나하나 다 죽으니까 민규도 죽을까 겁나셨다는 거지. 확실한 건 아냐 나도 주워들은 거라고."
"으.. 주변 사람들만 다 죽는다고? 소름 돋아."
"그래 그래서 그 선배 친구도 많이 없잖아."
이건 또 무슨.. 바로 위 학번 선배들이 자판기 앞에서 재밌는 이야기라도 하나 싶어서 가만 듣고 있자니 도무지 내 머리론 이해 안 되는 이야기뿐이다. 내가.. 지금 삽질하는 게 형도 그렇다고?
마음에 벽을 치고 내가 들어갈 틈을 막는 게 내가 죽을까 그렇다고? 그럼 고민은 할 필요 없다 해답을 들으면 망치가 쥐어졌으면 벽을 허물면 되는 거니까.







[원우 형 어디에요?]
[나? 이제 도서관 가려고 나왔지]
[그럼 잠깐 학교 앞 카페에 와 주세요 할 말 있어]
민규가 이상하다. 무슨 일인지 반말까지 쓰며 보자고 한다 이런 일은 진지하다는 건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내가 이래서 밀어냈다.
내 주변은 어릴 적 부모님부터 시작해 모두가 다치거나 죽거나 무슨 일이 생겼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만큼은 민규만은 잃고 싶지 않아서 옆에 두고 싶어서 좋은 형으로 남고 싶어서 좋아하는 거 알면서도 몰아내도 자석 달린 듯 돌아오는 민규에 그냥 벽을 쳤다. 소용없어도 벽을 쳤다. 민규가 망치면 나는 벽이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심각한 거야?"
"심각.. 하죠. 제 입장에선"
동공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릴 것만 같았다. 손도 진동을 하는 듯하다. 안돼 들키면..
"뭔데? 말해 봐 형이 할 수 있는 선에선 도와줄게 나 군대도 갔다 왔거든? 그러니까 어 말이야 군대 가서 애인이랑 안 헤어지는 법 같은 것ㄷ"
순식간에 겹쳐져버렸다.너와 나의 입술이 너와 나의 사이가. 저항해야 하는데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이대로 내어주고 싶다. 너한테 내 틈을, 내 마음을.
"너..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너 이런 거 성폭력이라는 거는 알아? 너 내가 신고하면 어쩌려고."
"제발.. 밀어내지 마요. 이제 그만해주세요. 원우 형. 원우야 나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들었어 형이 나 좋아한다는 거 나 안 죽어 나 어디 안 가 나 안 다쳐 형이 하는 행동에 다쳐. 그니까 이제 나 좀 받아 줘. 내가 동경하고 사랑에 빠졌던 형으로 돌아와 줘 잘해줄게 그 누구보다도 잘해줄게 제발.."
진심이 담긴 말은 나를 약하게만 만든다. 그래서 내가 외로움을 잘 타는 건지도 모른다 일부러 센 척하는 이유도. 알고 있다 너는 잘 해줄 거라는 거 눈에 보인다. 지금도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진심인지.
"아.. 미안해요. 괜히 불러내고.. 동의 없이 막.. 키스하고.. 그니까.. 저 신고해도 되니까요 그.. 대답ㅈ"
고백엔 고백으로 키스엔  키스로 대답을 해준다.
결국 망치가 이겨버렸다. 내 벽을 깨서 없애고 그 좀은 곳을 그 덩치로 욱여넣고 들어온다 그랬더니 가득 찼다. 민규랑 나는 꼭 맞는다 본래의 조각같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건, 내 틈을 가득 채워주는 건 다른 어떤 누구도 아니고 어떤 재료도 아닌 김민규 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