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향이 은은하게 잠든 체취는 나를 황홀하게 했다. 모두에게 익숙할 냄새였지만 도통 맡아보지 않은 그런, 신기하고 기분 좋은 향이었다. 항상 일시적인 만남이 되어야 한다, 라는 생각을 바꿔준 사람이었다. 한 번이라도 더 그 기분 좋은 향을 맡고 싶었다. 7월 16일, 내 생일의 어제였다.
あなたの香り, 당신의 향기
written by. cKin
연인과 백일이 되어간다며 여자 친구에게 잘 어울리는 향수를 추천해 달라는 손끝에서 좋은 향이 났다. 인위적인 향기로움보다는 자몽처럼 시큼하며 달콤한 향. 아름다운 향취를 가진 남자를 가진 여자가 굳이 여러 가지를 섞어 넣어 만든 향수를 갖고 싶을까, 원우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직접 제조한 향수 중 연한 분홍빛으로 둘러싸인 제품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향수의 이름은 인어의 눈물입니다.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인어의 눈물은 붉은 진주가 되어 나온다죠. 여기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낸 제품입니다. 한 번 시용해 보시겠어요?”
“아, 네.”
“그럼 손목을 내어주세요.”
민규는 본인의 손목을 기꺼이 내놓았다. 원우는 제품의 뚜껑을 열어 그의 손목에 소량을 뿌렸다. 민규는 향수를 맡을 줄 잘 몰랐던 것인지 곧바로 코앞에다 갔다 대었고, 이내 캑캑대며 향이 좀 진하다는 말을 했다. 원우는 엉뚱한 행동을 하는 민규에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맡는 방법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니 곧 민규는 감탄을 내지르며 정말 좋은 향이 난다며 신기해했다.
“이거 본인이 만드신 거죠?”
“아, 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아뇨. 아뇨. 향이 너무 좋아서요.”
민규는 무해하게 웃으며 계속해서 손목의 향을 맡았다. 원우는 생각했다. 이제 슬슬 그의 원래의 향이 사라지고 있다고. 원우는 민규의 본래 향이 사라지기 전 작게 외쳤다.
“손님이 그 향수보다 더 좋은 향이 나세요.”
애인 분이 참 좋으시겠어요. 예의를 띠는 미소를 지으니 민규는 급히 본인의 옷 냄새를 맡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요? 여자 친구는 뭐 좀 뿌리고 다니라고 하던데. 역시 향수 만드시는 분은 다르나 보네요. 감사해요.”
원우가 예쁘게 포장해준 향수를 든 민규였다. 돈을 결제하고 문을 열고 나가는 민규의 뒷모습을 보고 원우는 아무도 들리지 않게 읊조렸다.
“그 향을 못 맡으신다니, 불쌍한 애인 분이시네요.”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민규는 여자 친구와의 백일 기념으로 원우에게서 향수를 사러 왔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어린 아이의 얼굴을 하고 원우에게 모든 사정을 어버버거리며 뱉어냈다. 원우는 그 모습이 꽤 귀여워 웃음을 머금다가 희미하게 나는 낯설고 좋은 향에 다시 정신을 차려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그러니까, 여자 분들이 좋아하는 향수가 뭐예요?”
정말 하나도 아는 것 없이 온 민규였다. 몇 십초 고민을 했을까. 원우는 가게 안에 진열되어있는 곳으로 걸어가 망설임 없이 ‘인어의 눈물’이라는 이름의 향수를 집었다. 향이 좋다고 했다. 그렇게 민규는 ‘인어의 눈물’을 구입했고, 목적을 마친 향은 원우에게서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리고 원우는 생각했다.
그 체취를 다시 맡을 수 있다면 다음날은 최고의 생일을 보낼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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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좋아한다. 한창 청춘을 즐겨야 했을 시절,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었다. 모든 이에게 숨겨야 했다. 숨기기 위해 온갖 짓을 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인 애인을 사귀어보기도 하고, 남들의 신경을 신경 써 별 감흥 없는 키스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누가 그랬던가. 어떻게 표현하든 감정 따위는 쉽게 들켜버린다고. 그게 더욱 애인 사이라면. 애초에 난 연기를 잘하지 못했다. 덕분에 연애 기간은 매우 짧았다. 짧으면 3일, 길면 100일 내외가 다일 것이다. 짧을 때는 상대방의 눈치가 매우 빨랐다거나 나와 연애 경험만을 쌓으려고 만났을 경우가 높다. 만약 길었다면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보단 상대방이 나를 지나치게 좋아해서 내 감정을 눈 감고 꾸역꾸역 참아왔을지도 모른다. 차이는 건 항상 나였고, 마음을 빨리 놓는 것도 나였다. 그래도 연애는 계속 됐다. 여자와 말이다.
7월 16일. 그날도 여자와의 연애 중, 100일의 어제였다. 전부터 향수가 갖고 싶다고 하여 이 부근 유명한 향수 판매점을 찾았다. 조향사가 잘생겼다나 뭐라나. 목소리도 좋고 키도 크고. 향수도 잘 만든다는데. 아마도 후기를 쓴 이 사람은 향수를 잘 만든다는 건 아무래도 뒷전인 듯 했다. 물론 나도 그러했고. 얼굴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무작정 찾아갔다. 여자 친구의 선물을 산다는 목적으로.
유리로 된 문을 밀고 들어가니 진하지 않은 라벤더향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온몸의 감각을 들깨웠다. 그리고 바람 소리에 인기척을 느꼈는지, 정장을 갖춰 입은 한 남자가 구두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향수 전문점 ‘Shine Dimly(샤인 디믈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사람들의 말대로 낮아서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졌고, 키도 큰 편이었으며 향수도 좋아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말에 하나 덧붙이고자 한다. 조명 탓인지, 향기 탓인지. 처음 본 그 남자는 지금껏 사귄 어느 여자들보다 ‘예뻤다.’ 심장이 제대로 뛰기 시작했다.
다음 날, 백일이 되었을 때 그녀에게 선물을 주었다. 예쁜 그가 해준, 아름다운 포장으로 감싼, 눈부신 향기를 가진 향수를 직접 건네주며 말이다. 그녀는 기뻐했다. 초승달 눈을 하고, 상현달의 입을 내게 보였다. 감흥이 없어졌달까. 그래도 기뻐하는 모습에는 소량의 희열감을 느끼곤 했는데. 왠지 모르게 오늘은 그 향수가 백일이자 이별 선물이었으면 했다. 향수를 고민도 없이 본인의 몸에 묻히는 그녀에게 눈을 맞추었다. 방실거리는 그녀를 미안한 표정을 하며.
“수연아. 예쁘지.”
“응! 어디서 산 거야?”
“그거, 내가 첫눈에 반한 사람한테.”
“…뭐?”
“미안, 우리 여기까지하자.”
수많은 연애 속 처음 뱉은 진심이었다. 진심은 수연의 초승달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게 했다. 설마, 이게 이별 선물이었어? 모든 걸 억누르는 듯 말하는 수연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려왔다.
“핑계를 그렇게 대? 그냥 농담이라고 말해.”
“수연아.”
“그딴 식으로 그만하려고,”
“그만해.”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수연의 울음을 멈추게 했다. 향수를 그녀의 손에 꼬옥 쥐어주고, 먼저 카페를 빠져나왔다. 후덥지근한 날씨는 그녀의 마지막 문자를 무시했다.
어제 갔던 향수 전문점은 이른 오전 탓이었는지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다. 불 하나 켜있지 않은 매장 안을 기웃거리며 언제 오나, 굉장히 큰 키임에도 불구하고 까치발을 들며 그가 오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눈곱도 보이지 않는 그의 흔적에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그냥 가야하나, 하고 발을 돌릴 참이었다. 라벤더 냄새다.
“…저기요?”
조심스럽게 어깨를 톡톡 친 사람은 수연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게 해준 장본인이었다. 예상했음에도 놀란 몸은 뒷걸음질 치자, 그는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오늘 백일 선물은 잘 하셨나요?”
“…아, 그게.”
“여자 친구 분이 좋아하시던가요? 아니, 아직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군요.”
혼자 묻고 답하는 그는 꽤 귀여운 면도 가지고 있었다. 홀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앙증맞기 짝이 없었다. 저절로 올라가 버린 입꼬리가 주체를 하지 못했다. 풋, 하고 바람 빠진 소리를 내자 그제야 날 보더니 말했다.
“아니네요. 오늘 만나셨네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어제 그 향수랑 손님 향기가 섞여있거든요. 여자 친구 분이 사용했군요.”
조향사라 냄새에 예민한지 본인이 한 질문에 답을 찾아낸 그였다. 대단하다는 얼굴을 하자, 그는 가게의 문을 열며 물었다.
“근데 여자 친구 분 만나신 거 치곤 데이트가 빨리 끝나셨나 봐요. 아직 11시 조금 넘은 시간인데.”
그의 물음에 아, 하고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텅 빈 거리에 시선을 두었다.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봐요.”
“그래요? 그거 여성분들에게 인기 많은 제품인데.”
“그래서 차였어요.”
“네에…?”
물론 차인 건 여자 친구 쪽이지만요. 뒷말을 아끼며, 놀랜 그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슬쩍 웃었나, 착각이었다. 오히려 그는 당황하며 다른 걸 추천해드릴 걸 그랬나 봐요, 했다. 나는 그가 왜 미안해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연과의 데이트를 뿌리치고 그를 보러 온 건데 말이다. 그 아이보다 당신이 더 좋아서 여기 온 건데. 이것도 또 생각에서 그쳤다. 그저 괜찮다며 어느 정도 예상했다며 그의 탓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도…, 하는 그에게 손사래를 치며 향수 진열대로 몸과 함께 말의 요점을 돌렸다.
“그럼 이젠 저한테 어울리는 향수를 골라주세요.”
내 말에 오픈 준비를 하던 그는 말이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그는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질문에 문제가 있었나. 다시 여러 향수에 시선을 옮기자, 돌아오는 목소리는 표정과 달랐다.
“딱히 없어요.”
“…네?”
“빈말 전혀 아니고, 손님 향기 그 자체가 좋아요.”
“무슨….”
“어제도 말씀 드렸듯이 말이에요. 그 냄새는 향수로도 못 만들어요.”
만들고는 싶지만요. 이제야 난한 표정을 풀고 오픈 준비를 마저 하는 그가 보였다. 얼굴은 천천히 불타올라, 귀까지 빨개지고 말았다. 내 향기가 좋다니. 덤덤하게 말하는 그의 얼굴이라서 더 가슴이 간질거렸다. 어제처럼 똑같이 팔을 들어 내 냄새를 킁킁 맡았다. 하지만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고, 오히려 가게 안 라벤더 향이 이미 옷에 배인 것 같았다.
“저기, 정확히 제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나요?”
“네?”
“저는 아무런 냄새도 안 나서요.”
그는 내 말에 기다렸다는 마냥 내게 걸어오며 말했다.
“향수를 제조하기 전에 일본 과학 잡지에서 본 적이 있어요. 좋은 냄새라고 느끼는 체취는, 유전자 배열과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
“…한 마디로 유전자부터. 몸이 상대를 원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참 부끄러운 얘기를 고저 하나 없이 말한다. 살짝 뜸을 들이는 것 같았지만. 그가 말하는 의미가 정확하지 못해 갸우뚱했다.
“무슨 뜻인가요? 그거.”
“다 아시잖아요.”
“…….”
“손님도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를 버리고 여기로 오셨잖아요.”
아까 웃은 게 착각이 아니었구나. 은근히 기뻐하며 어떻게 알았지, 하고 천진난만하게 눈웃음을 그리자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내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가만한 라벤더향이 진하게 코를 찔러왔다. 괜시리 야한 기분을 주는 향이라는 걸 오늘에서야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지금 가게엔 무슨 향이 나죠?”
“…라벤더 향이요?”
“글쎄요. 나는 가게에 뭘 뿌리는 걸 안 좋아해요. 라벤더를 중심으로 만드는 향수도 전혀 없는데.”
“…….”
“왜일 거 같아요?”
입술이 닿을락 말락, 사이에 오고가는 숨들이 간지러웠다. 취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한 글자씩 곱씹으며 속삭였다.
“키스할까요?”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얕게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그의 조그마한 얼굴을 붙잡고 입을 갖다 대었다. 내 몸에 가려 밖에서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은 나만이 볼 수 있었다. 눈을 감지 않았다. 아니, 감지 못했던 것이었다. 제 목에 두른 팔이며, 눈을 감고 입을 벌려 내 키스를 격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진심을 다한 키스였다.
「그는 오늘 결국 가게를 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른 여부도 아니었다. 나 하나였다. 당신의 향기를 원하는.」
「당신의 향기는 생애,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선물이었다. 오늘은 7월 17일, 가장 행복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