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구] 난
2021. 1. 9. 18:48

 

 

 

 

딱히, 눈치가 콩알만큼도 없어서 굳이 제 자취방을 두고서 누나의 신혼집에 신세를 지기 시작한 건 결코 아니었다.

 

 

 

“김민규, 나 없는 동안 원우 씨 괴롭히지 말고 말 잘 들어.”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가족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싸늘하게 식은 눈빛과 날이 선 말투로 쏘아댄 김민희가 조금도 눈을 맞추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고개를 돌려버린다. 본래 사이가 좋은 남매는 아니었다. 남매보다는 남에 가까운 사이었지. 언제부터 틀어지게 된 건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명문대 학사 학위에 해외 유학파인 자신이 그저 여자라는 이유로 학창시절 내내 변변찮게 공부해서 지방대를 졸업한 나에게 밀린다는 것을 예전부터 아니꼽게 여기곤 했다. 그리고 그 노골적인 적의는 내가 자취방 계약 만료와 동시에 재계약을 걷어차고 저의 두 달 된 신혼집에 덜컥 발을 들였을 때 본격적으로 칼날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괴롭히기는 시발, 내가 애새끼도 아니고. 앙칼진 눈빛을 거두고 유유히 방을 나서는 김민희의 뒤통수에 대고 상스러운 욕설이나 씹어대고 있으니, 문 너머로 김민희의 가식적인 목소리와 조곤조곤하게 속삭이는 나지막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빠뜨린 거 없이 다 챙겼죠? 특별한 고저 없는 어투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그 목소리의 감미로움을 곱씹어내기를 몇 분, 대화가 마무리 될 즈음에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답답한 열기로 가득한 협소한 공간의 공기와 달리 환기가 원활히 이루어져 시원하고 가벼운 공기가 폐부를 타고 들어온다. 크게 숨을 들이쉬며 현관으로 시선을 돌린다. 제 어깨에 손을 얹고 거리를 좁혀오는 김민희의 허리춤에 어정쩡하게 감겨 있는 팔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자, 잠깐만요. 처남이 보는데…….”

 

 

 

아무래도 내가 좋은 시간을 방해한 눈치였다. 조금은 상기된 얼굴을 하고서 나를 흘끔거리는 눈초리가 여간 바쁜 게 아니었다. 허리를 그러쥐던 하얗고 가는 손가락이 어쩔 줄 모르고 떨리고 있다. 어깨 너머로 다시 한 번 매서운 눈빛이 따끔하게 나를 찌른다. 허공에 대고 두어 번 손을 휘적거렸다. 안 볼 테니까 하던 거나 마저 하세요. 그 둘을 지나쳐 곧장 부엌으로 들어와 냉장고를 뒤적였다. 새로 장만해 번쩍거리는 냉장고가 아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주린 배를 채울만한 건 생수가 고작이었다.

 

 

냉장고 문을 닫으니, 언제부터 서있던 건지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얹고 있는 매형이 제 눈가를 긁적이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원래 안경을 썼던가? 마른 제 체형에 딱 떨어지는 정장을 갖춰 입고 있는 걸 보니 곧 출근을 할 모양이었다. 할 말 있으세요? 퉁명스럽게 나가는 말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형은 옅은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보는 내 안면 근육이 다 떨리네. 손에 잡히는 머그컵 하나를 잡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누군가 반쯤 마시다 도로 넣어 둔 생수를 머그컵 안으로 죄다 쏟아 넣었다.

 

 

 

“오늘 계속 집에 있을 거죠?”

 

 

매형이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연 건 내가 막 머그컵을 입에 가져갔을 즈음이었다. 매형의 물음에 생각할 뭣도 없었지만 괜스레 뜸을 들이며 냉수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오랜 시간 냉장고 안에 방치되어 차갑게 식은 냉수가 입안의 체온으로 미지근하게 내려간 뒤에야 목구멍 너머로 넘겨냈다.

 

 

“아마도요.”

 

 

 

대학 졸업 후 제 갈 길을 찾아 나간 친구들과 달리 직장은커녕 아르바이트 하나 하지 않으며 속 좋게 살고 있는 내가 갈 곳이라고는 편의점과 PC방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오늘은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고작 한 모금 마신 탓에 머그컵 안은 여전히 투명한 액체가 한 가득 넘실거리고 있었다. 먹은 것도 없는 속이 더부룩해진다. 당장이라도 토악질을 해야 할 것 같은 역한 기분에 손에 그러쥐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새하얀 머그컵에는 파란색 하트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분명 매형과 김민희가 커플로 맞춘 것인데, 나머지 하나는 어디 있더라. 분홍색 하트 머그컵.

 

 

 

“그럼 저녁 같이 먹을 수 있겠다.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아무 때나 연락 줄래요? 퇴근길에 사올게요.”

 

 

 

아, 내가 부셨던가.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나는 참을 수가 없던 것이었다.

 

 

 

부모님을 통해 김민희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에는 별 감흥 같은 것이 없었다. 김민희의 남편 될 사람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겹게만 느껴지는 상견례 자리를 채우게 된 건 김민희가 되도 않는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몰아내기 위해 남편이라는 구실을 끌어안고 있는 발판일 뿐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유치하고 치졸한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며 김민희가 진심으로 결혼을 할 작정이라는 건 당일이 되어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깽판 한 번 시원하게 치고 나오려 작정을 했으나 상견례 날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앞에 놓인 맛좋은 음식을 깨작거리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 두 번이나 속을 게워내야 했다. 하얀 피부에 멀끔한 인상. 아니, 그보다는 저를 소개하며 오물거리던 얇고 붉은 입술과 내 앞으로 내밀어지던 고운 손가락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기어코 얹히게 만들었다. 미친년, 어디서 그런 걸 물어온 거야.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 참을 수 없이 몰아치는 추악한 감정에 몇 번이고 억지로 입안으로 손을 넣어 구역질을 시도했다. 더 이상 뱉어지는 거라곤 누리끼리한 위액이 전부일 때까지, 속안을 간질이는 불쾌함을 죄다 쏟아내기 위해.

 

 

 

속이 허전해지면 꾸역꾸역 무언가를 씹어 삼키고, 다시금 찾아오는 아릿한 통증에 스스로 구역질을 시도하는 무모한 자해를 멈춘 건 자신을 전원우라고 소개하며 선뜻 악수를 권하던 그 남자가 나의 매형이 된 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눈을 뜨고 간신히 숨만 가느다랗게 이어가는 시체 같이 무력하게 하루를 보내고, 버리고 있자니 역겹게도 매형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나를 붙들었다. 다시 한 번 그 얼굴을 보고 싶다. 붉은 입술로 제 이름을 불러주는 발칙하고 선정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망설일 수가 없었다. 본능이 이성을 앞서나간 지는 이미 한참이 지나버린 후였다. 무기력하던 저를 이토록 흥분시키는 게 똑같은 남자라는 것도, 심지어는 제 친누나의 남편이라는 사실도 본능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턱없이도 모자란 것이었다.

 

 

“정말 이걸로 괜찮아요? 더 맛있는 거 사줄 수 있는데.”

 

“지금도 충분히 맛있어요.”

 

 

변변찮게라도 끼니를 때운 건 없었지만 저녁 시간이 다 되도록 허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입으로 밀어 넣는 것이 밥인지 돌인지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런 말없이 숟가락만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는 나를 곁눈질하며 눈치를 살피던 전원우는 한 입 크게 떠먹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저도 느릿하게 숟가락을 손에 쥐었다.

 

 

 

침묵이 길어지니 눈에 띄게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진다. 단둘이 자리를 하고 있는 게 티는 안내려 했으나 꽤나 어색한 모양이다.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려 부단히도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훤하다. 그 노력이 가상해 요리조리 피하던 시선을 그 골똘한 눈동자에 고정을 시킨다. 고개를 숙이고 조그마한 머리통을 굴리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올린다. 저를 쳐다보고 있을 줄 몰랐는지 곧장 눈이 마주침에 여과 없이 당황한 기색을 보인다. 오물거리던 입을 멈추고 멋쩍게 웃어 보인다. 도로 고개를 숙인다.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더니, 이내 제 손으로 귓불을 만지작거린다. 새하얀 손가락이 붉은 귓불을 감싸 올린다.

 

 

 

잔뜩 붉어진 귓불을ㅡ.

 

아, 미친.

 

 

 

돌연 열이 뻗쳐오른다. 때 아닌 욕설에 거두어졌던 시선이 도로 내게 머무른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시선이 나를 따라 움직인다. 나를 올려다보는 시선이 여전히 붉다. 테이블이 크게 흔들리며 단출하지만 정갈하게 차려져있던 밑반찬들은 엉망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둘 중 누구도 그곳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혹시, 화났어요?”

 

 

어깨를 우악스럽게 잡아 누르는 내 경우 없는 행동에 그는 묻는다. 화가 났냐고? 전혀. 나는 전원우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분명 절절 끓는 무언가를 주체하지 못하고 속병을 앓고 있다. 간질거리는 느낌은 역겨웠으나 메스껍지만은 않았다.

 

 

 

발버둥치는 부산스러운 움직임 없이, 그저 가만히 제 위를 올라탄 나를 응시한다. 머뭇거리던 손끝이 부드럽게 어깨를 그러잡는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거예요? 손길과 퍽 어울리는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귓가에 안주한다. 어깨를 다독이는 듯 쓰다듬는 손길에, 아아, 뒷골이 저릿하게 당기기 시작한다. 아랫배 그 아래가 뭉근하게 저려온다. 지레 겁을 먹은 표정을 짓고 있는 주제에 외면하지 않는다. 그 눈동자에 내 모습이 담겨있다는 사실에 감당할 수 없는 뜨거움이 크게 벅차오른다. 문득 고개를 들어올린다. 유리창에 비친 나를 마주하고 있자니, 탄성이 절로 뱉어진다. 어딘가 엇나가도 제대로 엇나가 못나게 비뚤어진 두 눈과 벌겋게 상기된 얼굴이 먹잇감을 앞에 두고 입맛을 다시는 짐승의 그것과 유사했다. 마주하고 있으면 겁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열기에 잠식되어 자꾸만 마르는 입술을 혀를 빼어 물어 축인다.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녹아내리는 한이 있더라도, 더 축축하고 뜨거운 무언가로 푹 적시고 싶다. 홧김에 시작한 객기가 한없이 간절해진다. 본래 뾰족한 제 송곳니가 오늘따라 날카로이 보인다면 그건 그저 내가 유난스러운 걸까.

 

 

 

“나 지금 형한테 키스할 거예요.”

 

“……처남.”

 

“그게 싫으면 지금 당장 나 밀치고 도망쳐요.”

 

 

 

으르렁거리는 제 모습에 기가 죽은 듯 움츠러드는 건가 싶었으나, 의외로 피하지 않는다. 눈이 마주할 때마다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눈알을 굴리며 얼굴을 붉히는 앙큼한 짓은 대체 누구한테 배운 건지. 감추는 것 없이 제 뜻대로 뭐든 해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김민희는 결코 아닐 터, 사내새끼 눈도 못 마주치고 쩔쩔 매던 것을 떠올리면, 또 다른 발칙한 년의 싸구려 같은 모션도 아닌 것 같은데.

 

 

 

“정말 괜찮아?”

 

“…….”

 

“좆같지만 김민희랑 나, 남매잖아. 꽤 닮았다고. 앞으로 김민희랑 어떤 짓거리를 하던 내가 생각이 날 텐데.”

 

“…….”

 

“감당할 수 있어?”

 

 

 

생뚱맞게 짧아진 건방진 말투에도 흐트러짐이 없다. 그저 간간히 어깨를 가볍게 그러쥔 손을 꼼지락거리며 움직일 뿐이었다. 하악을 움직일 때마다 관절이 으드득거리는 곱지 못한 소리가 울린다. 턱 근육이 뻐근하게 맞물린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맛 좋은 먹잇감의 조금도 놓치지 않겠다는 위협적인 기세였다.

 

 

“아니, 됐다. 감당할 필요 없어.”

 

 

 

 

내가 언제부터 남의 걱정을 이리도 살뜰히 하며 배려 넘치게 굴었다고, 꾸역꾸역 참고 있는 건지.

 

 

 

“그건 내가 할 거니까.”

 

 

 

너는 그 개 같은 처남 소리 집어 치우고, 내 이름 불러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