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어느 때냐 묻는다면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요란스러운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게 되는 습관은 아무리 피곤해도 바뀌질 않았다. 일이 많지 않아 드라마를 보다 잠이 들어도, 밀린 집안일에 청소까지 끝내고 나서야 겨우겨우 일을 시작해 찔끔찔끔 동이 트는 걸 보고 잠이 들어도.
눈을 뜨면 어제처럼 같은 시간이었고, 같은 풍경이었다.
고롱고롱 코를 골며 아직 곤히 잠들어있는 아이를 보면 정말 생생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한 편이 저려왔다. 매일 아침, 아이의 얼굴을 보며 느끼는 것이 참 많았다. 이렇게 예쁜데, 이렇게 착한데…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환경에 매번 나 자신을 탓하고 미워했다. 원체 눈물이 많은 터라 금세 감성에 물들어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내자 꾸물대던 작은 눈망울이 어느새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 압쁘아…, 왜 우러여…? ”
제 몸을 가득 감싸고 있는 이불 뭉치에서 꼬물꼬물 작은 손이 튀어나오더니 이내 벌겋게 달아오른 내 뺨에 살포시 온기를 전했다. 아이의 손은 그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편안했다. 이미 흘러버린 눈물 자국을 닦아내주는 아이의 눈가에도 금방 눈물이 차올랐다. 나를 닮아 눈물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을 닮아 눈물이 많은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20대의 반을 함께 살아왔던 그 사람과의 추억들은 생각보다 쉽게 정리되어 버려졌다.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어색함과 불편함 따위는 하나 없이 마치 약속했다는 듯 안녕을 고하고 아쉬울 것 없다는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처음부터 서로의 애틋한 사랑을 바라고 만난 사이도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나마 동떨어진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어줬던 아이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손을 잡고 따라온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면서 엄마의 부재를 알게 되었다. 처음 발을 디딘 어린이집에서 하루 반나절을 보내고 나면 그 날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배웠는지, 새로 사귄 친구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고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는지 제일 좋아하는 볶음밥을 먹으며 오물거리는 그 입이 잊고 있었던 그 사람의 존재를 물었을 때,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는 그 말을 생경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맑은 눈동자를 빛내며 내게 물음표를 건네는 아이는 제게 엄마라는 존재가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두 발로 걷지 못해 하루온종일 그 사람 품에 안겨있었던 날들의 기억이 아예 없는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의 얼굴은 완전히 기억하지 못해도 나와는 다르게 높았던 그 사람의 목소리를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언제인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더 아가였을 때,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주었었다고, 그 사람이 내 엄마일까 하고 묻는 아이에게 나는 선뜻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아이는 뭐라고 할까. 그 사람이 보고 싶다고 할까 아니면 그저 고개를 끄덕일까. 그 어떤 대답을 들어야 하더라도 언젠가는 말해주어야만 했다.
아이는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망설이는 원우의 모습의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이어지는 조용한 고백에 귀를 기울였다. 가장 좋아하는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로 해주는 얘기들은 처음으로 듣는 엄마에 대한, 아이에게는 흥미롭고 신기한 것이었다. 하지만 눈을 반짝이며 듣는 아이의 눈에 비친 것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며 울음을 삼키고 있는 가장 싫어하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아빠가 웃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단순한 아이는 아빠가 우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연신 미안해라는 말만 되새기는 원우의 품을 파고든 아이는 들썩이는 어깨를 따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이의 눈가가 짓무를 정도로 따라 울자 그제야 눈물이 멎은 원우는 여전히 들썩대는 작은 등을 토닥이며 아이가 좋아하는 낮은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원우의 물기 어린 목소리에 금세 진정을 찾은 아이는 곧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잠에 들었고 그날 밤 원우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었다.
“ 아빠아…, 미운 생각 해써여? ”
아이가 울면 항상 그렇게 얘기했다, 미운 생각을 했느냐고. 아이가 잠에서 깨어 울면 그렇게 물어봤다, 미운 꿈을 꿨느냐고. 그러니 아이도 내가 울면 똑같이 물어왔다. 미운 생각을 했느냐고.
“ 아냐…, 아빠가 하품해서 눈물이 난거야. ”
“ 하아품? ”
“ 응, 하품. 우리 여울이도 밤에 졸리면 흐아암- 하는 거. 하아품. ”
“ 으응…, 아빠 졸리면 더 자도 되여…. 여우리가 재워주께! ”
아빠 또 잠들면 여울이 오늘 어린이집 못 데려다주는데? 그래도 아빠 더 자도 되요? 원우가 통통하게 오른 아이의 볼 살을 아프지 않게 꼬집으며 말하자 무언가가 생각난 듯 조그마한 제 손바닥을 짝 하고 마주치며 오늘 새 친구드리 만나요오! 하고 베시시 웃음을 짓는다. 맞아요, 오늘 여울이 새로운 어린이집 가서 새로운 선생님들이랑 새로운 친구들 만날 거지요? 네에!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개며 말하는 원우를 보며 대답한 아이가 원우가 하는 모양새를 가만가만 보다가 이내 저도 고사리 같은 손을 이리저리 뻗으며 원우를 따라 이불을 개기 시작했다. 아직 겨울 이불을 덮고 자는지라 꽤 무거울 텐데도 공기가 들어가 불룩 튀어나온 부분을 팡팡 내리치기까지 하며 원우만큼이나 깔끔하게 정리를 했다. 삐죽 솟아나온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며 원우가 잘했다 칭찬해주자 아이는 오도도 달려가 원우의 품에 쏙 안겨 배고프다 귀여운 투정을 부렸다. 우리 여울이 잘했으니까 볶음밥 해줘야겠다! 우와아아아, 아빠 체고!
전에 살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조금 더 인적이 드문 동네로 이사를 온지 2주째였다. 처음 일주일은 천천히 짐정리를 한답시고 흘려보냈으며 그 다음 일주일은 동네에 적응한답시고 원우는 아이의 손을 잡고 매일 산책을 하며 가끔씩 마주치는 아파트 주민들과 얕은 친분을 쌓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원우에게 조금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원체 사교성이 없고 사람 사귀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격인지라 먼저 말도 못 붙이는 원우에게 항상 도움을 주는 것은 여울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무엇에게나, 누구에게나 궁금한 것이 많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며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새로운 존재란 재밌고 의미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원우는 항상 아이를 위해 새로운 환경을, 새로운 사람들을 만들어주려고 애를 썼다.
“ 압빠! 고야이, 고야이! ”
볶음밥을 만드는 원우를 기다리며 티비를 보던 여울이는 화면에 비춰지는 노란 길고양이를 보며 해맑게 원우를 불러댔다. 원우를 닮아서인지 여울이는 고양이를 좋아했다. 삼색이 냥이니, 턱시도 냥이니, 깜둥이 냥이니 제각각 이름을 붙여줄 줄도 알면서 어디를 만지면 좋아하고 어디를 만지면 싫어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아이가 이리 좋아하니 고양이를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같이 한 알레르기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아이와 고양이를 오랫동안 가까이 두는 것은 웬만하면 피하게끔 했다.
“ 여울이, 볶음밥 먹자! ”
“ 우와아- 보끔바압! ”
좋아하는 베이컨과 야채들을 송송 썰어 넣고 고양이 얼굴 모양의 케찹이 올라간 볶음밥을 보며 아이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 위에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라니! 아이는 마냥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잘 먹게쓰니다! 하고 조그마한 제 숟가락 위에 볶음밥을 가득 담아 입 안으로 날랐다. 그렇게도 좋은지 우물우물 음식물을 씹고 삼켜내는 내내 원우를 보며 눈웃음을 짓는 것을 보며 원우도 아이를 따라 입 안 가득 볶음밥을 넣어 씹었다.
어린이집에는 등록 전화만 해놓고 첫 등원을 하는 날인지라 원우는 챙길 것이 꽤 많았다. 여울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과 여울이의 성격, 성향 등 아이의 정보를 담은 메모수첩 그리고 여울이가 꼭 챙겨달라고 했던 고양이 간식까지. 작은 종이 쇼핑백 안에 꼼꼼히 담아 넣고 아이의 외투와 양말을 챙겼다. 여울이, 양말 신어야지요? 원우가 아이를 부르자 대답 대신 작은 발을 구르며 오도도 달려온 아이가 원우 앞에 제 발 한 쪽을 쏙 내밀었다. 작은 발을 감싸며 양말을 신겨주는 원우의 손에 아이는 간지러운 듯 몸을 베베 꼬아댔다. 다른 한 쪽까지 양말을 신겨주고 두툼한 외투까지 입혀주자 아이는 나갈 준비가 다 된 것을 알았는지 원우의 손을 잡고 현관으로 이끌었다. 새로운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한 아이는 왼쪽 신발에 오른쪽 발을 끼워 넣으며 원우를 재촉하고 원우는 그런 아이의 발에 맞는 신발을 다시 신겨주었다. 아이의 신발과 디자인은 같지만 사이즈만은 다른 신발이 원우에 발에 꼭 맞게 들어가고 나서야 굳게 닫혀있던 현관문이 열렸고 바깥 공기를 타고 들어온 찬 냄새가 아파트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차가운 공기에 원우는 입고 있던 코트를 여미며 붙잡은 아이의 손을 더 꽉 쥐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짧은 시간임에도 아이는 즐거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자꾸 원우를 자신의 기분이 들떠있음을 마구 티를 냈다. 차에 올라타 아이용 안전벨트를 꼼꼼하게 매어주고 원우도 운전석에 자리했다. 잊지 않고 챙긴 종이 쇼핑백도 조수석에 고이 올려둔 채 원우는 익숙하게 동요 CD를 틀었다. 기다렸다는 듯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아이를 보며 원우는 여전히 행복함을 느꼈다. 차로 10분 남짓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에 간다는 것이 과연 이렇게도 행복해도 되는 일일까, 원우는 왠지 모르게 가슴 한 켠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을 느끼며 조금 더 속도를 내었다.
원우가 조금 더 속도를 낸 덕분인지 예상시간보다 빨리 도착한 부녀는 여울이의 앞장 선 힘찬 걸음에 따라 무사히 어린이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노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병아리가 콕콕 그려져 있는 앞치마를 입은 선생님이 마중 나와 있음을 본 여울이는 왠지 모를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더니 선생님 다리에 매달려 마치 수영이라도 하는 듯 다리를 동동 굴렀다. 어어, 여울아! 선생님 아야 하신다! 죄송합니다, 여울이가 새로운 사람을 워낙 좋아해서…. 당황한 원우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병아리가 그려진 앞치마를 입은 선생님은 괜찮다고 해맑게 웃으며 여울이를 안아 올렸다. 그 틈에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선생님 얼굴을 쓰다듬고 만지작거리는 여울이를 보며 원우는 안절부절 못했다. 말린다고 억지로 데려오면 대성통곡할 아이를 알기에 쉽게 떼어내려 다가가질 못했다.
“ 하하, 괜찮아요! 억지로 떼어내면 애기 막 울죠? ”
“ 아, 네…. 죄송해요…. ”
“ 진짜 괜찮아요! 여울이랑 저희랑 잘 맞을 것 같아요! 그치, 여울아? ”
네에에! 우렁차게 대답하는 여울이를 보며 선생님은 고개까지 젖히며 웃었다. 원우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에 다녔던 어린이집에서는 여울이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가정교육이 어떻고 저떻고 떠들어대는 뒷이야기까지 들었는데 그런 걱정은 조금 덜어도 되겠다, 아니 안 해도 되겠다 싶었다.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진심이 느껴졌다. 이 사람이 정말 괜찮은 것인지, 아님 괜찮은 척을 하는 것인지. 원우는 그런 것이 신경 쓰였다. 사람의 감정의 멋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원우는 자꾸만 그랬다. 그것이 아이와 자신을 위한 최선의 방어 방식이라고 원우는 생각했다.
“ 아, 아버님한테 제 소개를 안 드렸네요! 저는 앞으로 여울이와 함께하게 될 담임, 윤 정한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 아…, 네. 여울이 아빠 전 원우라고 합니다. 저야말로 여울이 잘 부탁드려요. ”
“ 하하, 아버님 걱정 안하시도록 제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희 부담임도 소개시켜 드릴게요! ”
민규 쌤! 민규 쌤!
병아리 앞치마를 입은 정한 쌤이 크게 손짓하며 누군가를 부르자 어린이집 입구에서 아이들 등원을 도와주던 다른 선생님이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왔다. 허리를 굽히기에도 모자라 쭈그려 앉아서 아이들을 반겨주다가 일어서서 걷는 모습이 마치 키다리 아저씨 같았다. 원우도 그다지 키가 작은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양이가 그려진 앞치마를 입은 그 선생님은 원우가 고개를 조금 올려다보아야지만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울이 아버님! 저는 부담임 김 민규라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칠 법한 공수인사를 하며 눈이 휘어지도록 웃는 그 얼굴이 마치 강아지 같았다. 왜 그 인터넷에서 유명한 웃는 강아지 사진… 이 선생님 얼굴 위로 겹쳐 보였다. 정한의 품에 안겨 꼬물거리던 여울이는 옆에 다가와 인사하는 민규를 가만가만 보더니 갑자기 버둥거리며 내려달라 소리쳤다. 원우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이가 버둥거리며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는 민규가 입은 앞치마, 정확히 말하자면 고양이가 있었으니까.
“ 압빠아! 고야이! 선새미! 이거 고야이에요! ”
발이 땅에 닿은 아이는 고양이 앞치마를 입은 민규 곁을 맴돌며 연신 고양이를 외쳤다. 민규는 아이의 행동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여울이의 말과 행동에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맞장구까지 쳐주는 모양새를 보였다. 여울이는 잘 웃어주고 리액션이 큰 사람들을 좋아했다. 무리 중에 꼭 한명씩 있는 분위기 메이커처럼 별거 아닌 것에도 크게 오버하며 웃고 공감해주는 그런 사람들처럼. 고양이 앞치마를 입은 민규 선생님이 자신의 말에 웃어주고 공감해주니 여울이는 등에 날개가 달린 듯 날아갈 기세로 민규에게 안겨들었다. 그런 여울이를 가볍게 안아들은 민규는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는 원우를 보며 괜찮다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그렇게 고양이, 고양이하며 난리를 치던 여울이도 민규 품에 안기니 더 이상 버둥거리지 않고 얌전히 민규의 어깨 언저리에 둘러진 앞치마 끈만 만지작거렸다.
“ 아…, 죄송해요. 아이가 고양이를 정말 너무 좋아해서…. ”
“ 괜찮습니다! 아이가 동물에 관심이 많고 좋아한다는 건 정말 좋은거에요! 그러니 너무 걱정마세요, 여울이 아버님! ”
웃으며 답하는 그 얼굴 위로 또 강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원우는 갑자기 화끈거리는 귓불을 문지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 앞치마를 입은…, 강아지를 닮은 선생님…. 옆에서 그들을 바라보던 정한이 상황을 정리시키지 않았더라면 원우는 아마도 내내 그 자리에 서서 고양이와 강아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이를 무사히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온 원우는 아침에 하지 못했던 설거지를 하고, 가볍게 집안 청소를 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자꾸 강아지 생각이 났다. 집 근처를 배회하며 원우를 기다리는 길고양이 간식을 챙기면서도 정말 이상하게 강아지가 떠올랐다. 고양이용 참치 캔을 따주니 제 손등에 머리를 부벼오는 고양이를 보며 원우는 생각했다. 강아지도…, 강아지도 이렇게 만지면 부들부들할까? 고양이는 머리나 턱 언저리를 만져주는 것을 좋아하는데 강아지는 어디를 만져주면 제일 좋아할까? 고양이는 참치 캔과 츄르를 가장 좋아하는데…, 강아지는 어떤 간식을 제일 좋아할까? 누구 하나 답변해주는 이도 없지만 원우는 처음으로 고양이가 아닌 강아지에 대한 질문들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여울이 때문도 아니고, 고양이 때문도 아닌…, 오늘 처음 본, 고양이 앞치마를 입은, 강아지를 닮은 선생님 때문이었다.
그 날 밤, 원우는 새로운 궁금증을 가지고 끙끙 앓다가 정체 모를 꿈을 꿨다. 집 앞에 자주 나타나던 길고양이가 여느 때처럼 간식을 받아먹으러 원우 집 주변을 배회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덩치 큰 강아지…, 아니 개가 나타나 살랑거리는 고양이 꼬리를 잡을 듯 말 듯하며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는 꿈. 심지어는 고양이와 그 고양이 크기의 10배 쯤은 더 커 보이는 개가 서로 코를 맞대고 얼굴을 부비는 장면까지 보아버렸다. 이건 그냥 꿈인데…, 그저 꿈일 뿐인데 원우는 무언가 보면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선잠이었는지 꿈 때문인지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깬 원우는 거실로 나와 찬 물을 들이켰다. 여울이가 첫 등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 아이는 새로운 어린이집과 새로운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좋아하는 볶음밥에는 손도 대지 않고 온종일 쫑알쫑알 원우에게 자신의 하루일과를 보고했다.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들에게 어울리는 그들만의 별칭이 있는 듯 했는데 여울이 반을 맡은 병아리 앞치마 선생님은 천사 쌤이라고 했고, 고양이 앞치마 선생님은 멋쟁이 쌤이라고 했다. 멋진 강아지라…, 원우는 저도 모르게 멋지게 차려입고 강아지처럼 헤헤 웃고 있는 민규를 상상했다. 멋대로 생각하고 상상해서 만든 이미지였지만 어쩐지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아이가 잠에서 깨어 등원을 준비하는 아침에도 원우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고양이 앞치마를 입은 강아지를 닮은 선생님. 멋쟁이 선생님. 멋쟁이 강아지. 멋쟁이 민규 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아이에게 외투를 입히던 원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압빠…, 얼굴이가 아뜨뜨! 압빠, 아푸요? 시뻘개진 원우의 볼을 감싸며 걱정을 담아 묻는 아이에게 원우는 평소처럼 능청스레 답해주질 못했다. 혼란스러운 원우가 얼버무리는 동안 아이는 이미 현관문 앞에 서서 고양이 앞치마를 입은 멋쟁이 쌤을 만나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득, 원우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강아지를 닮은 멋쟁이 선생님은 고양이 앞치마를 입고 있는건지. 오랜만에 원우에게 생긴 새로운 궁금증이었다. 여울아. 웅? 멋쟁이 선생님은 왜 고양이 앞치마를 입고 있을까? 원우는 아이가 자신에게 새로운 것을 물어보듯이 자신도 아이에게 새로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물어보았다. 발에 신발을 끼워 넣다말고 골똘히 고민하던 아이는 이내 박수를 짝! 치며 원우에게 답했다. 물어보믄 대지요! 응? 멋쟁이 선새미한테 물어보믄 대자나요, 압빠! 벌써 궁금증을 해결한 것처럼 좋아하는 아이에게 그건 할 수 없다고, 못 한다고 원우는 말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자신이 내어준 답을 실천하기 위해 원우를 재촉하고 끌어당겼다. 멋쟁이 선새미는 고야이 앞치마를 입었지요 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더니 원우에게 파이팅! 하고 힘을 실어줬다. 그 모습에 원우는 결국 웃고 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고양이 앞치마를 입은 강아지를 닮은 멋쟁이 선생님을 보면 꼭 물어보겠다고. 이토록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궁금증의 해답을 꼭 얻어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