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 어서 오세요 "
오늘도 어김없이 비슷한 시간에 왔다.
" 카페라떼 한잔에 샷추가요 "
" 네, 3,200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
일주일에 4~5번 꼴로 오는 그 사람은 항상 카페라떼만 주문했다.
내가 여기서 일하고 나서부터 보이기 시작한거 같은 손님인데,
거의 올때마다 비슷한 시간에 와서는 올 때마다 내 뒤에 있는 메뉴판을
뚫어져라 정독하는거 같더니 항상 카페라떼만 주문했었다.
어제도 카페라떼 였고, 엊그제에도 카페라떼, 저번주에도 카페라떼를 주문했었고
다른사람이랑 같이 올 때에도 항상 카페라떼만 마셨다.
처음에 봤을 땐 날카로운 인상에 아메리카노만 마실 거 같아서 막 진상 부리면
어떡하지 같은 상상을 하면서 긴장을 하곤 했는데 의외로 라떼를 주문했었고,
나중에 우리 가게에 찾아오는 횟수가 잦아지고 나서야, 얼굴을 익히고 그 사람이
메뉴판을 찾는 척을 하면서도 카페라떼만 주문 한다는 게 익숙해졌다.
그 사람이 계속 카페라떼만 마시길래 문득 궁금해져서
나도 카페라떼를 마셔보긴 했는데
밍밍한 우유크림이 비려서 반도 안 마신 체 싱크대에 냅다 버렸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카페라떼라는 별명을 붙여줬었다.
/
" 또 거기 카페? 야 이 정도면 거기 카페 알바도 이상하게 생각하겠다. "
" 아 순영아 딱 한 번만 가자 진짜. 이번이 마지막! "
" 마지막 같은 소리 하네, 너 저번 주에 마지막이라고 해놓고선,
저번 주에만 나 끌고 카페 5번 데리고 갔던 전원우는 누구지? "
" 이번에 같이 가면 피씨방 4시간 내준다 "
" 딴말하기 없기다? "
딸랑.
" 어서 오세요 "
카페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있는 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일주일에 4번이상 오는 카페임에도 불구하고 들어올때마다
처음 카페에 들어선 그 순간 처럼 항상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다.
카운터로 걸어가는 걸음걸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 주문하시겠어요? "
" 아, 잠시만요. 원우야 너 뭐 마실레? "
이렇게 물어봐도 항상 나는 카페라떼만 마시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영이는 항상 카페에 데려오면 나에게 물어보곤 한다.
그때면 나는 카운터 위쪽에 위치해 있는 메뉴판을 보는척하며
카운터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을 몰래 쳐다보곤 했다.
많이 와서 이미 아는 메뉴와 가격들인데, 마치 처음 온 사람처럼.
"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
" 어, 나도..! "
"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5,000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
카드로 결제를 하고 카드를 받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 어, 그런데 오늘은 카페라떼 안 드시네요? "
" 아.. 네 뭐... "
" 항상 카페라떼만 드시길래 그것만 드시는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
" 네..ㅎㅎ"
카드를 돌려받고선 커피가 나올 때까지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앞에 앉아 있는 순영이가 내가 그렇게 수줍어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소름돋고
적응이 안 된다며 괜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시켰다며 찡찡대는 걸 뒤로한 채
나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 언제쯤 알바생이랑 이야기를 길게 나눠 볼 수 있을까 '
여기 카페에서 알바하는 사람을 좋아 한 지는 벌써 3달째이다.
좋아하게 된 계기는 딱히 특별하지는 않았다.
뒤에서 종소리가 들렸다는 둥, 딱 보자마자 이 사람이다
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도 가깝고 집이랑도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였고,
카페 내부의 인테리어도 내 취향적이었고, 나만의 좋은 공간이 생긴 거 같아서
자주 찾는 곳이라 그런지 정이 들었던 것도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 사람에게 종이에 물감이 스며들듯이
천천히, 스며들었던 거 같았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알바생이랑 나이, 이름까지 알고 서로 친해져
같은 캠퍼스를 누리면서 데이트를 하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분명.
정작 지금은 말도 길게 붙여 보지도 못하고
허구한 날 순영이에게 조건을 걸고 끌고 와서 카페라떼만 마셔대기만 할 뿐.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에 그런지
오늘은 말 길게 붙여봐야지. 오늘은 꼭. 하면서 다짐했던 게 벌써 23번째이다.
창밖으로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계속 생각에 잠기려고 하는 찰나,
"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
그 사람이 직접 커피를 들고 우리가 있는 곳 까지 들고 와주었다.
멍때리고 있어서 정신을 팔았던 차라 깜짝 놀라서
턱을 괴고 있던 손이 미끄러져 책상에 턱을 박을 뻔했다.
" 어, 쿠키는 안 시켰는데요? "
커피가 나오자마자 아메리카노 잔을 들기도 전에 쿠키에 시선이 갔는지
순영이가 같이 나온 쿠키를 들어 올렸다.
" 아, 그거 아메리카노랑 같이 드시면 맛있어서 같이 내왔어요 서비스!"
"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
그 알바생이 가고 난 후, 아메리카노를 마셔서 씁쓸한 입안에 단것을
채워 넣기 위해 쿠키를 집어 드는 순간, 포장지인 줄 알았던 노란색
정사각형의 종이가 팔랑 팔랑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 엥 그거 포스트잇이었네? 포장지인 줄 알았는데 "
" 그러게 "
혹시 뭘 적어뒀는데 착각하고 잘못 준거 아니야? 하는 순영이에
종이를 들어 올리면서 설마 그러겠어 싶은 마음으로 종이를 보니
' 쿠키 맛있게 드세요 (하트)
그리고 010-1123-4006 제 번호에요 연락 기다릴게요 '
포스트잇에는 쿠키 맛있게 잘 먹으라는 말과
알바생의 번호가 적혀있었다.
벙찐 얼굴로 포스트잇만 손에 쥐고 쳐다보고 있으니
순영이가 무슨 일인데 하면서 손에 있는 포스트잇을 뺏어갔다.
포스트잇에 적혀있는 내용을 읽고서는,
" 야 이거 완전 그린라이트 아니냐? "
" 어. .? 어... "
" 이야 전원우 완전 성공했네? 잘해봐라~ "
정말 연락해도 되는 거야?
/
‘안녕하세요 쿠키 잘 먹었어요.'
어떻게 먼저 보내야 할지 고민하고 고민하다 보낸 문자다.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지 내가 보낸 메시지 옆에 있던 1이 금방 사라졌다.
' 아, 안녕하세요!! '
그 사람이랑 마주하고 있지도 않은데 마치 술을 빠르게 마신 것처럼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손에 땀이 나는 것 같았다.
' 맞다, 실례지만 이름이 어떻게 돼요?
얼굴 자주 보는데 이름이라도 알면 좋을 거 같아서요~ '
' 원우요. 전원우 '
' 헉 엄청 예쁜 이름이네요! 원우 씨로 저장해 둬도 돼요? '
' 네 '
' 저는 민규에요 김민규!! '
민규의 쾌활하고 긍정적인 성격 덕에
그날 카페에서 했던 걱정이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생각할 만큼
나와 민규는 급속도로 친해져서
이름도 알게 되었고, 나이도 알게 되었지만 존댓말이 편해 천천히 놓기로 했다.
민규는 나보다 한 살 어렸고, 학과는 다른 학과였지만 같은 학교였다.
그리고 이젠 카페에서 마주보면 간단한 안부는 물론, 장난까지 치는 사이가 되었고,
밥도 같이 먹은 적도 있고 저번 주에는 새로 개봉한 영화도 보러 갔었다.
" 어, 원우형 왔어요? 오늘도 카페라떼? "
" 응 오늘은 샷 추가해줘 "
" 3,200원! 아, 오늘 사람이 좀 많아서 조금 늦을 거 같은데 "
" 괜찮아 나 시간 많아 "
" 조금만 기다려줘요 저쪽 테이블 빙수 후딱 만들어 주고 가져다 줄게요! "
결제를 하고선 늘 하던 데로 민규는 커피를 내려 라떼를 만들고
나는 카드를 건네받고 민규가 있는 곳과 가장 가까운 자리이자
민규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잘보이는 곳에 앉았다.
조금 늦는다고 해서 10분 이상 걸릴 거 같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귀찮아서 안 읽었던 카톡들과 문자들을 확인했다.
" 짠! 카페라떼 나왔습니다~ "
" 생각보다 일찍왔네 "
물기가 묻은 손을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민규도 내 앞자리에 앉아
쟁반에 같이 들고 온 자기 음료를 마시면서 이야기했다.
" 형 전부터 궁금했는데 카페라떼는 무슨 맛에 먹는 거예요? "
" 음, 우유맛? 몽글몽글하니 맛있잖아 "
" 엑 진짜요? 난 그거 비리던데, 그나저나 몽글몽글이라는 표현 되게 귀엽다.
뭔가 형이랑 어울리는 표현 같아요.. "
카페라떼를 무슨 맛에 먹냐는 민규의 질문에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해준 건데 이렇게 갑자기 훅 들어온 기습적인 말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얼굴이 빨개진 걸 민규가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 아, 그게.. 형..어... "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민규도 홧김에 내 뱉었던 말인지 아무말 안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내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 .. 그냥 솔직하게 말할게요 "
" 저 형 좋아해요. "
/
좋아한다고 말해버렸다.
홧김에 내뱉었던 귀엽다고 한 말에 원우형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회피했던 순간 볼과 커피잔을 잡고 있는 손가락 마디 끝이 붉어져 있었다.
형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고백했다 차이면 얼굴 안 볼 각오로 용기를 내서 다시 한번 내 마음을 말했다.
" 민규야 "
" 네? "
" 대답 안들을 거야? "
" 나도 민규 좋아해. like 로써가 아니고 love 뜻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