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형 좋아해.”
“....”
“내가. 가족과도 같은 형이, 연애대상으로 보여.”
“..김민규.”
“근데 나, 진짜..진짜 좋아해. 형.”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다. 굳이 눈을 마주쳐서 형의 감정을 읽지 않아도 내 눈 앞엔 이미 선했다. 분명 안타깝다는 듯,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겠지. 목이 메어온다. 말을, 제대로 말을 이어서 해야하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 그냥 내가, 그리고 형이 지금 느낄 감정들이 너무도 가여워서.
“....”
“미안해.”
고개를 들어 형의 얼굴이 볼까 하다가 용기가 나지 않아 관두었다. 젠장. 바닥을 바라보며 하는 고백이라니, 세상 제일 멋없다. 정적이 일자 그렇게 무서웠다. 결국 조금씩 뒷걸음질을 친다. 대답을 듣기에는 뱉어 놓은 말과 달리 겁이 나서 귀에 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난 또 도망이다. 멋대로 미안하다는 말을 던지 듯 말하고 그대로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뒤에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시발, 쪽팔리게 눈물은 나고 지랄이야. 분명 여름이라 습한 공기가 얼굴에 다가와 눈물을 훔친다. 그래도 마르지 않는 눈물에 손을 들어 눈가를 거칠게 닦아낸다. 하 진짜 전원우. 형. 나 형 좋아해. 정말 좋아해 어쩌지 못 할 정도로. 어째서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게 된 상대에게 사과를 해야하는 건지. 내 신세가 너무 처량해 서글펐다. 존중받지 못 할 감정이라 불쌍하고 또 가여웠다.
그러니까, 언제부터 내가 형을 좋아하기 시작했냐면 꽤나 오래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형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나, 자각하지 못 하고 좋아한 세월이 꽤 있으니까. 어쩌면 서로 처음 눈을 보고 인사했던 유치원시절부터 시작되었을 지도 모른다.
-
“김민규, 방학이라고 누워만 있기야?”
“방학의 유일한 장점이자 학생의 특원입니다.”
“응? 호적에서 친히 파이고 싶다고?”
“..언젠가는 진짜 친 엄마 찾으러 간다! 내가!”
민규의 앙탈에 가까운 투정에 어머니가 즐거운 듯 웃었다. 너 그 말 어릴때부터 하더니 아직도 하네. 한결같은 우리 아들. 현관으로 가려던 걸음을 옮겨 소파에 널부러져 있는 민규의 엉덩이를 토닥인다. 아! 진짜 엄마. 나 이제 애 아니에요. 애같은 말만 하면서 뭘? 하하 웃으며 고운 손으로 가방을 들고는 현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외출해요? 나야 그럼 좋지. 혼자 집에 있는거 최고야. 민규가 혼자 푸흐흐 웃으며 소파에 더욱 몸을 기댔다. 잘생긴 아들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머니가 부산스럽게 움직이시며 신발장을 열어 아끼시는 구두를 꺼냈다.
“오늘 무슨 약속있어요?”
“아빠랑 원우네랑 데이트.”
“아 그 날인가 보네.”
한 달에 한 번, 어른들끼리의 모임이 있었다. 주기적으로 단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약속. 다들 진짜 친해. 그래도 보기엔 좋아서 헤헤 속없이 웃다가 오랜만에 원우의 이름이 귀에 들려오자 민규의 가슴이 조금 찌릿했다. 찌릿? 순간 당황해 눈을 깜빡였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가? 와 진짜 전원우. 고삼되더니 되게 바빠졌어. 민규가 절로 인상을 쓰며 원우의 이름을 곱씹었다. 원우형, 전원우 형. 그러니까 내 소꼽친구. 뭔가 기분이 좀 이상해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고 스르륵 문질렀다. 이상하네. 왜 가슴이 찌릿하지. 배고픈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배로 손을 옮겨 문지르는데 어머니가 콧노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친 엄마 찾으러 갈 필요가 없네, 딱 나랑 똑같애. 민규는 푸핫 웃으며 어머니에게 말을 건다. 그렇게 신나요?
“응, 완전 좋아.”
“진짜 사이들 좋아. 그러니까 내가 원우형이랑 친한 거겠지?”
“얘는? 너희 덕에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거지. 너희가 워낙 각별했어? 요새야 원우가 수험생이라 좀 덜한거지.”
말 나온김에, 원우는 방학이라도 공부해야하니까 좀 덜 귀찮게 하고 그래. 너도 곧이다? 고삼 얼마 안 남았어, 인마. 전혀 신경쓰지 않는 톤으로 훈계를 해오는 어머니에 민규는 괜히 뿔이 났다. 삐죽 내민 입술을 그대로 두고 민규가 소파에서 일어나 성큼 성큼 현관으로 다가갔다.
“음, 왜?”
“전원우, 요새 나랑 놀아주지도 않거든?”
“어머 그래?”
민규가 손을 들어 아까부터 신경쓰였던 어머니의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붙은 실오라기를 때어냈다. 입을 삐쭉 내민 채 툴툴 거리며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기분이 좋으신지 소녀같이 웃는 어머니의 미소에 민규의 입꼬리가 결국 풀어진다. 진짜 내가 못 살아.
“엄마 슬퍼서 우리아들 장가는 어떻게 보내지?”
“에이 아직 멀었어요.”
“아무튼 고마워, 원우랑 저녁 같이 먹구. 혼자 있을테니까.”
“아까는 귀찮게 하지 말라더니?”
어머, 내가 그랬니? 기억이 안 나네~ 다녀올게! 시계를 확인하던 어머니가 조금은 급하게 밖으로 나가신다. 에이 진짜 뭐야. 어머니가 나가고 나니 거실은 고요했다. 티비도 안 틀어 놓고 있었으니 당연한가. 민규는 그대로 가만히 현관 앞에 서있다, 방금 전 어머니가 한 말을 곱씹었다. 저녁을 같이 먹으라고? 스멀스멀 왜인지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간지러웠다. 민규가 콧노래를 부르며 빠르게 화장실로 향해서 샤워를 하고 머리도 말리지 않고 옆집으로 향했다. 알고 지난 세월동안 이사를 안 다닌 것도 아닌데 늘 이렇게 항상 옆집이었다, 나와 형은. 슬리퍼를 질질 끌어 도착한 현관문이 조금 낯설었다. 후. 이거 다 전원우 때문이야. 수시로 대학간다고 하나뿐인 예쁜 동생을 방치하고. 민규는 자꾸만 올라가는 텐션이 부끄러워 괜히 툴툴 거린다.
익숙한 번호를 오랜만에 누르고 민규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역시나 집 안은 조용했다. 2층에 있겠지? 놀래켜 볼까? 오랜만에 원우의 얼굴을 볼 생각에 들떴다가 갑자기 괘씸한 기분이 들어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계단을 올랐다. 삐걱-, 흡. 민규의 무게에 나무가 소리를 지렀다. 민규는 깜짝 놀라 한동안 바보마냥 멈춰섰다가 다시 살금살금 올라가 원우의 방 문 앞에 섰다. 방 문앞인데도 형 냄새가 나데. 뭐, 나쁜거 말고 그냥 익숙하고 편안해지는 그런 고유의 체취같은 거? 킁킁거리던 코를 멈추고 민규가 잠시 뜸을 들였다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하지만 문고리가 다 돌아가기도 전에 원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민규, 초딩짓 하지말고 그냥 들어와.”
“아, 뭐야. 알고 있었어?”
“너는 늘 네 덩치를 몰라. 발걸음 소리가 안 났을거라는 생각은 버렸어야지.”
“...그래도 나 오니까 좋지?”
반갑기는 하네. 강아지. 쳐다도 보지 않고 책만 응시하며 말하던 원우가 의자를 돌려 민규를 바라봤다. 뭐야! 또 살 빠졌어? 수척해 보이는 원우의 얼굴에 민규는 울컥해 원우의 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원우가 익숙한 듯 손을 뻗어 민규의 결 좋은 머리를 쓰다듬는다.
“예비 고삼아, 원래 고삼되면 살아 찌거나 빠지거나 하는거야. 너는 찌겠지만.”
“...그래도 볼이 너무 들어갔어.”
보기 싫을 정도야? 그건 아니지만..원우가 속해서 민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샐샐 웃는다. 이거, 이거 잠도 제대로 못 잤구만. 나사 세,네 개는 빠진 상태로 무슨 공부를 한다고. 좀 심히 안 좋아보이는 원우의 얼굴을 보니 민규능 있는 대로 속이 상했다. 그래서 짜증은 내고 싶은데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원루의 손길이 오랜만이고 또 기분이 좋아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거봐! 손도 말랐어! 더 말랐어!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해 원우의 나머지 한쪽 손을 보니 뼈밖에 안 남아있는 앙상한 손이 보였다. 민규가 속상함에 손을 뻗어 원우의 손을 만지작 거렸다. 고삼싫어. 고삼 뻑킹.
“밥이나 먹자, 그렇게 걱정되면 강아지가 밥 해주면 되겠다.”
“나 18살이거든? 맨날 강아지래.”
“네가 등치만 컸지. 내 눈에는 아직 애기거든?”
“내가 너 보다 훨씬 크고 막. 어? 굵거든?”
하극상은 용납 못 해. 원우가 힘없이 웃으며 민규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세워 콩, 아프지 않게 내려쳤다. 짜증나, 웃는 것도 힘이 없어. 민규의 얼굴색이 어두워지자 원우가 민규의 볼을 양 손으로 감싸왔다. 진짜 맨날 애 취급이고! 나보다 작은 주제에. 또 툴툴거렸지만 역시나 민규는 또 가만히 있었다. 버릇이 되어버린 이 애 취급은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음, 좋은 쪽에 가깝다고 해야하나?
“강아지, 걱정할 시간에 밥 좀 줘. 형 배고프다.”
“..뭐 먹고 싶은 데.”
“그냥 다.”
알겠어어. 아쉽지만 원우의 손을 머리에서 떼어내고 민규가 밍기적 일어났다. 빤히 바라보는 원우의 눈 빛이 느껴진다. 아 뭐지, 괜히 부끄러. 민규가 자신의 귓 볼을 만지작 대며 원우의 방을 나섰다. 아 맞아, 형. 오늘은 한 그릇 다 먹어야해. 알았지? 얼굴만 내민 채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짓는 민규의 당부의 말에 원우가 귀여운 듯 웃는다. 알겠어. 어서 해줘. 민규가 원우의 대답에 만족스러운지 쿵쾅거리며 급하게 1층으로 내려간다. 기분좋은 민규의 발소리를 들으며 원우는 다시 표정을 굳히고 참고서에 시선을 둔다. 강아지랑 오랜만에 놀아주려면 어서 끝내야지.
-
“나 졸려.”
“잠도 잘 못 잤지. 요새?”
“우응. 그렇지 뭐.”
“..진짜 고삼 싫어. 그래도 형 오늘 밥 많이 먹었으니까 내가 상으로 팔베개 해 줄게.”
둘이서 신나게 민규가 한 오야꼬동을 먹고 후식도 야무지게 챙겨 먹은 후였다. 머리도 식힐 겸 간만에 게임 한 판을 하자는 원우의 말에 민규는 선심쓰듯 같이 위를 잡고 열심히 게임도 했다. 몇 판 안 했는데 원우가 침대 위로 널부러지며 식곤증에게 마구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잘 먹고 적당한 운동에 옆에 편한 사람까지 있으니 원우는 있는 힘껏 나른함에 빠져버렸다. 항상 민규에게 강아지 강아지 거리지만 원우도 못지 않게 강아지 같은 면이 있었다. 생김새는 땃 사막여우지만 다정하고 애교도 많은 게 딱 강아지.
“어쭈. 강아지 주제에 형한테 팔베개?”
“그게 무슨 상관이야. 옆으로 가봐. 오랜만에 같이 눕게.”
민규는 엎어져 저린 원우의 엉덩이를 팡팡 토닥였다. 누가 누구보고 강아지래. 진짜 전원우. 엉덩이를 두드리는 촉감이 예전같지 않다. 살이 빠지더니 엉덩이게도 살이 빠졌나보다. 민규은 속상함보가는 약간의 괘씸함이 올라와서 좀 더 힘을 주어 때렸다. 악! 소리와 함께 민규가 침대 안 쪽으로 들어간다. 그래도 밥 좀 먹고 쉬었다고 얼굴이 좀 나아졌다. 뿌듯한 마음에 원우의 머리를 당겨다 자신의 팔 위에 올려 놨다. 기분좋은 무게감이 왼팔에 느껴져 자꾸만 민규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괜히 민망함에 일부러 더 툴툴거린다.
“형은 살이 빠져도 머리는 무겁다.”
“아 뭐야. 그럼 저리가던가.”
“엉덩이는 살이 빠졌어.”
“변태같은 강아지.”
원우가 앞을 보고 누웠다가 민규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원우가 움직일 때마다 민규와 같은 샴푸 향이 난다. 이게 다 엄마들이 공동구매로 생필품을 대량구매하기 때문이라 그게 또 웃겨 와하하 웃었다. 민규가 웃으며 몸을 들썩이자 원우가 미간을 구기며 눈을 찡그렸다. 웃지말아봐 머리 울려. 응, 그랭.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정말 졸렸는지 원우는 색색-, 고른 숨을 쉬며 잠이 들었다. 슬쩍 원우의 얼굴을 보다가 폰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역시 강아지는 전원우다. 각별이라, 갑자기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민규와 원우가 각별하기에 어른들까지도 각별하다는 그 말. 우리가 그렇게 각별한가? 친하긴 진짜 친하지. 몇 년을 같이 있었는데 그럼. 민규는 은연중에 원우에 대한 자부심이 심어져 있었다. 원우가 다정한 성격을 부리는 건 오직 가족들과 민규 뿐이었고 나머지에겐 그닥 다정한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심한 쪽에 가깝지. 진짜 친구 어떻게 사귀고 다녔나 싶을 정도로 학교에서의 원우는 싸늘했다. 늘 무표정에 아무에게 관심이 없다는 태도라, 민규는 원우의 부모님 대신 체육복을 전해주러 원우의 반을 찾아갔던 초등학교6학년때가 떠올랐다.
‘저기...’
‘누구 찾으러 왔어?’
‘전원우 형..’
‘...아. 전원우.. 잠시만 기다려 볼래?’
교복을 입고 있는 낯선이들이 가득한 학교에 입성한 초딩의 마음은 한없이 작아져 있는 상태였다. 한 살차이에 민규는 원래 어릴 때부터 등치도 키도 컸지만, 온통 주변에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낯선이들 사이에서 민규는 결국 굳어 버렸다. 있는 겁 없는 겁 다 먹은 상태의 민규가 덜덜 떨며 교실문을 잡고 있자 한 학생이 말을 건냈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머뭇거리며 원우의 이름을 띄엄띄엄 내 뱉자 학생이 잠시 당황한 듯 하다 뒤를 돌아 원우에게 갔다. 그 때 처음 봤다. 자신과 있지 않을 때의 원우의 모습을.
‘저기..원우야.’
‘왜.’
‘밖에 어떤 애가 널 찾는데..’
‘누군데.’
학생이 말을 걸었지만 쳐다도보지 않고 원우가 대꾸했다. 놀랐다. 늘 민규의 눈을 바라보며 말해주던 원우였다. 그런 사람이 저런 모습을 하고 있다니. 절로 딸국질이 나왔다.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을 멈춘 원우가 그제서야 학생을 힐끗 쳐다보다 교실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민규야!'
민규와 눈이 마주치자 금세 환해진 표정의 원우가 펜을 놓고 다가왔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학생이 당황한 듯 해 보였지만 원우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여기는 어떻게 왔어? 체육복? 엄마가 시켰구나. 그래도 그렇지 너를 보내면 어쩌자는거야. 쉴 새없이 굳어있는 민규를 달래는 원우의 다정한 음성에 교실안의 학생들은 조금 당황한 듯 했다. 민규는 원우 너머로 보이는 낯선 학생들의 시선에 더욱 굳어 아무말도 못 했다. 민규의 낌새를 눈치 챈 원우가 뒤를 한 번 쳐다 보더니 민규의 손을 잡고 끌었다.
'민규야, 형 따라올래?'
'..웅.'
원우가 손을 잡아오자 어쩐지 안심이 된 민규가 그제야 시선을 원우에게만 고정한 채 걸음을 따랐다. 겨우 한 살 차이이고, 키가 작은 것도 아닌 민규였지만 교복을 입은 자와 아닌 자의 갭때문인지 원우가 매우 의지되었다. 원우보다 조금 뒤에서 걸음 원우의 교복입은 모습을 보며 민규는 그 때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도 형이랑 같이 교복입고싶다. 원우의 입학 전, 새 교복을 입고 자신의 앞에서 빙그르 돌아보였던 그 때에는 그저 멋져 보이기만 했는데 이제는 같아지고 싶었다. 손에 원우의 온기가 느껴지자 풀어진 긴장에 민규는 조금 창피해졌다.
‘많이 놀랬지, 학교는?’
‘오늘 수요일..’
‘얼굴이 너무 빨간데..어쩌지.’
풀려버린 긴장감, 낯설었던 원우의 모습, 자신에게만 다정한 음성과 태도,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잡혀있는 손에 민규는 조금 어지러웠다. 그때마저도 민규가 원우보다 조금 컸었는데, 고작 한 살차이에 느껴지는 어른 같은 원우의 모습에 민규는 꿀먹은 벙어리 마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결국 원우가 걱정 끝에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조퇴를 했다. 어차피 6,7교시만 남아있던 상태였고, 잔뜩 굳어버린 민규를 혼자 보낼수는 없었으니. 담임선생님도 민규의 등치를 보고 갸웃거리시다가 표정을 보고 허락하셨다.
‘형.’
‘응?’
‘..아니야.’
집에 가는 길, 아까와 같이 원우보다 조금 뒤에 서서 걷던 민규는 학교에서의 원우를 떠올렸다. 물어보고 싶은게 떠올랐지만 그만 두었다. 그리고 묘하게 올라오는 뿌듯함에 기분좋게 웃었다. 형의 웃는 얼굴은 우리 한정이야. 내 한정이야. 다정함은 결국 내 한정이야. 빙글 빙글 웃음이 나왔다. 한적한 거리에 둘이 걷는 게 좋았다.
원우의 친구관계나 학교생활은 그 때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친구가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닥 곁을 두지 않는 원우라서 민규는 그게 걱정되면서도 또 좋았다. 뭐, 본인이 남들을 왕따시키겠다는데 뭘 어쩌리. 어쨌든 원우의 무표정과 웃는 얼굴의 갭은 민규만이 아는 것이라 그 날의 뿌듯함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민규는 괜히 눈동자를 굴리다가 폰을 스탠드 옆에 두고 아예 원우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진짜 많이 힘든가 보다. 우리형.”
가까이에서 보니 훨씬 상해보이는 얼굴이 보인다. 절로 볼에 뿌우하고 바람이 들어간다. 일주일에 8번을 보던 원우와 이주에 한 번밖에 제대로 보지 못 한다는 점이 맘에 안 든다. 너무 당연해서, 그냥 고개만 돌려도 있던 사람이라 무뎌질만도 한데 늘 그랬다. 늘 순간 순간들이 소중하다. 얼마나 대단한 우정에 얼마나 대단한 유대감이란 말인가. 뭔가 애틋한 마음이 들어 기분이 이상했다. 민규는 손을 뻗어 원우의 뺨을 어루어 만진다. 손끝에 닿아오는 원우의 까슬한 피부가 느껴진다. 손이 따뜻해서 기분이 좋은지 원우가 무의식 적으로 민규의 땀에 얼굴을 더욱 기댄다. 애기같은 원우의 모션에 민규의 얼굴의 화륵, 달아 오른다. 귀엽고 난리..
“우응...”
원우가 몸을 뒤척이다 웅얼거린다. 저절로 죽이게 되는 숨소리에 민규 스스로도 놀랐다. 붉어진 얼굴은 까무잡잡한 피부덕분에 잔뜩 열이 오른 모습과 비슷했다. 자신도 모르게 원우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계속해서 사이를 좁히다, 원우의 코와 자신의 코가 부딪히고 나서야 멈췄다.
이상했다. 진짜 이상해.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런건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자 형이라 그런건지. 나 미쳤나봐. 형하고 키스하고 싶어.
머릿속에서 키스라는 단어가 결정되 듯 스쳐가자 민규는 그대로 경기를 일으키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덕분에 잠에서 깨버린 원우가 머리가 땅한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눈을 떴다.
“갈라고?”
“어? 어..어.”
“..야 너 얼굴 왜 이렇게 빨개. 열 나?”
나 지금 형 때문에 불이나.
“아,아니야 좀 더운가봐.”
“..에어컨 틀어서 추운데?”
“나,나는! 원래 형보다 더위 많이 타잖아!”
“이리와 앉아봐 다시. 얼굴 열 좀 식혀줄게.”
“아니야. 나,어..나 학원 숙제하러 집 가볼게. 형, 다음에 봐!”
“민규야! 야!”
원우가 눈을 뜨고 난 직후부터 얼굴에 열이 몰리더니 더욱 심해졌다. 게다가 열을 식혀주겠다는 말에 더욱 원우의 눈을 볼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형이랑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걸 알아도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 줄거야? 민규는 차마 하지 못 할 말을 삼키며 이 감정과 생각에 대해 궁금해졌다. 우선은 이 밀페된 공간에 둘이 침대에 있는 건 좀 무리였다. 집에 가야겠다고 강력하게 머리가 말하고 있었다. 결국 원우에게 통보하듯 집에 간다고 말만 하고 대답도 안 듣고 그대로 방을 뛰쳐나와 버렸다.
급하게 집으로 들어와 아무도 없는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아서 열심히 생각했다. 이건 대체 무슨 생각인지. 착각일까 아니면 자각일까. 몇 분 동안 생각해 낸 결론은 굉장히 담백하고 또 간단했다.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좋아하는 거네.”
“내가 형을 좋아하고 있었네.”
자각이었다.
어쩐지 보고싶고 닿고싶고 떨리더라. 나는 그냥 기분이 좋아서, 매일 봐도 늘 반가워서 그런 줄 알았는데. 저 다정함에 대한 우월함도, 안도감도 다 여기서 비롯된 거였다. 생각해보면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은 은연중에 전에도 했던 것도 같다. 민규는 바람빠진 풍선처럼 너털 웃음을 지었다. 양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다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나 이제 전원우 어떻게 보지?”
-
자각까지의 기간은 길었지만, 인정하는 시간은 굉장히 짧았다. 얼굴을 어떻게 볼까 하고 걱정했덩 것과는 다르게 매우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게다가 원우는 고삼이었고, 여름방학은 고삼에게 수험생활의 터닝포인트와도 같은 시기라 둘은 얼굴 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민규는 전화를 했다. 짧게, 하루 1-2분 내지로. 민규의 욕심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원우는 또 받아주었다. 자신에게 약한 원우를 이용하고 싶진 않았지만, 목소리라도 못 들으면 정말 미칠것 같아서 민규도 자신을 어쩔 수 없었다. 갑자기 밀려 들어 온 좋아하는 감정에 대한 자각에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같은 고등학교가 아닌게 원망스러웠지만 시간은 꾸준히 흘렀고, 원우의 수능날이 끝났다. 아슬 아슬하게 최저를 맞춘 원우와 가족들 모두 다 함께 외식을 하고 둘이서 그네를 타며 민규는 많이 울었다. 원우는 너가 이제 고삼이라 서러워서 그래? 왜 울어 강아지. 라며 놀림반 달램반으로 민규를 토닥였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자신이 이제 고삼이 되어 이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 해 원우를 보지 못 하는 게 슬펐고, 얼굴을 자주 안 보면 무뎌지지 않을 까 했던 생각이 빗나가서 안타까웠다. 원우는 다정하다. 그리고 자신을 아낀다. 분명 이번에도 민규 자신이 원우에게 얼굴을 못 보는 대신 전화를 걸면 받아 줄게 뻔해서 미안했다. 작은 틈으로 쏟아져 나오던 감정이 커져버린 틈새에 감당 못 할 만큼 흘러 넘쳤다. 엉엉 울던 민규가 원우를 잡아 당겨 그대로 품에 안고 더욱 서럽게 울었다. 형, 나 어떡해. 형이 너무 좋은데 할 수 있는게 없어, 아무도 안 도와줘. 상황도 환경도.
원우는 당화한 듯 잠시 몸을 굳히다가 이내 민규의 등을 토닥였다. 울지마, 강아지. 언제 클거야. 덩치만 컸지. 그 다정함에 민규가 더 서러워 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달랬다. 한 동안 계속 그렇게 민규는 원우를 품에 안고 계속 감정을 쏟아 내듯 울음을 멈추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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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의 대학 생활, 민규의 수험생활이 시작되었다. 다행하게도 민규가 원하는 과가 원우의 학교에 있었다. 그렇게 진학할 학교는 쉽게 정해졌고 민규는 달리기 시작했다. 초,중학교는 같이 나왔지만 고등학교가 달라서 많이 서러웠던 기억이 많아 같이 다니고 싶었다. 원우는 술자리가 많았다. 딱히 친목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 그냥 술 자체를 좋아하는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4월의 밤, 민규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집에 가는 길에 잔뜩 취한 원우를 간신히 부축하며 욕을 내 뱉는 지훈과 마주쳤다.
“이 새끼, 술자리가서 술만 쳐마셔. 친목도모가 없어. 근데 술자리는 안 빠진다? 얘 원래 이러냐?”
원우가 민규에 대해 지나가듯 보여주고 얘기한 적이 있었는지 지훈이 엄청난 친화력을 뽐내며 한탄을 해왔다. 같은 과 동기지만, 원우가 워낙 친구에게 관심도 없고 무심해서 그 성격을 버티고 친구가 된 건 자신 밖에 없다며 지훈이 말해왔다. 얘랑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지가 싫다는데 뭐. 지훈의 말에 민규는 또 다시 안도감을 느꼈다. 그걸 들키기 싫어 민규는 괜히 인상을 한 번 썼다가 폈다.
“이제 너가 좀 토스해서 가져가라. 아 그리고 저 새끼 깨면, 내 키가 더 줄어 들면 전원우 탓이라고 꼭 알려주고.”
짜증나게 둘 다 존나 키크고 난리. 지훈은 장난스레 툴툴대며 원우를 민규에게 던지듯 전해주고 가버렸다. 민규는 갑작스런 마주침에 놀라기도 하고, 원우의 취한 모습은 처음이라 뭔가 생소함에 원우를 엉거주춤하게 안은 채로 서 있었다.
‘“어? 민규야아?”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 이 술쟁이.”
“와아 되게 오랜만이잖아.”
원우가 민규의 가슴팍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베시시 웃었다. 술을 먹어 붉은 두 뺨, 술기운에 늘어지는 말꼬리, 그리고 그냥 전원우 자체가 너무 예쁘고 오랜만이라 민규는 면역이 안되있는 상태에 공격을 받은 듯, 굉장히 당황해 버렸다. 그래서 삐쭉, 말이 퉁명스럽게 나가버렸지만 술에 취한 원우는 신경도 안 쓰는 듯 했다. 민규는 원우를 좀 더 편하게 해주시 위해 고쳐 안았다. 흐엑,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원우가 민규에게 몸을 기댔다. 민규야아, 민규야아. 형 안 보고싶었어? 안 보고 싶었을리가, 내가 지금 누구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하고있는데. 자꾸만 심통이 났다. 어린애 같이 굴긴 싫은데 속도 모르고 마음껏 귀엽고 있는 원우가 아주 조금 미웠다.
“요새는 전화도 안 하고, 김민규 완전 변했어어.”
“나 고삼이거든?”
“넌 나 고삼일 때 전화 했잖아.”
“그런 형도 나한테 전화하면 되잖아.”
“와! 그러네? 내가 하면 되는 거였어. 우리 강아지 똑똑해애.”
뭔가 큰 깨우침을 받은 마냥 원우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워낙에 저음이라 살짝 올라간 목소리가 귀여웠다. 키도 자신보단 아니지만 큰 편인데, 전혀 무겁가는 생각이 안 들었다. 술 먹을 때 안주는 안 먹어? 왜 고삼때보다 더 마른 거 같지? 아니야아, 먹어도 안 찌는 거야. 그거 어디가서 말 하면 다들 형 재수없어 한다? 재수는 너가 없어야지, 나랑 같이 학교 다녀야지. 아 진짜! 너무해! 결국 발끈한 민규가 떼를 쓰듯 버럭하자 원우가 와하하 웃으며 민규의 품에서 빠져나와 즐거운 듯 배까지 잡아가며 웃기 시작했다. 주먹을 꽉쥐고 그 모습을 보고만 있는데, 원우가 휘청이는 몸을 다잡더니 민규에게 다가와 두 손으로 민규의 볼을 감싸며 헤실거렸다.
“아, 이제야 좀 내가 아는 김민규다.”
“뭐래. 늘 똑같구만.”
“아니지, 너 좀 내외했어 그동안. 형 섭섭하다?”
“섭섭할 것도 많다.”
나 원래 강아지 한정으로 섭섭이잖아. 볼에 느껴지는 원우의 손은 시원했다. 아직 밤은 쌀쌀한 날씨였지 민규말대로 뭐, 민규는 열이 많으니까. 민규는 원우의 말에 대꾸할 수가 없었다. 안 했기보단 못 했다. 뭐라거 말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빠르게 대답을 찾으며 눈을 굴렸다. 우선 지금 볼에 닿은 이 시원하고 설레이는 원우의 손을 놓치기 싫어서.
“무슨 생각해, 강아지.”
“형 생각해.”
“이제와서 해주는 척이지? 형이 말이야. 상황이 바뀌어 보니까 작년에 너 심정을 너무 너무 잘 알겠는거야.”
“....어떤데?”
그냥 허전하고..보고싶고 그래. 전화할까 하다가 방해될 까봐 못 하고. 나는 작년에 형한테 했잖아. 그건 내가 좋았으니까 되는데, 너는 아닐 수도 있잖아. 맙소사. 민규는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한숨을 쉬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 형. 그래도 기분은 좋아서 채 가려지지 못 한 입술이 계속해서 웃어버린다. 툴툴대고 칭얼거리는 전원우라니, 술이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은데? 민규가 눈을 가린 손을 거두고 그대로 자신의 두 볼에 올려져있는 원우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쳐 잡았다. 민규의 행동에 눈이 커진 원우가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계속 웃었다.
“형 손 너무 차다. 들어가자. 응?”
“말 돌리기야? 치사하게.”
원우가 답지 않게 또 다시 뾰루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와 진짜...술 최고다. 민규는 알코올에 감사하며 잡은 손을 내려 고쳐 잡았다. 자꾸만 올라가는 광대가 신경쓰였지만 맘대로 되진 않았다. 될리가 없지.
“전화해줘.”
“진짜?”
“응. 나 형이 전화해주면 정말 더 공부 잘 될 것 같아.”
“오..그럼 더 더욱 해줘야지. 사실 나도 그랬거든. 우리 강아지랑 한 통화는 형한테는 작은 사치였지.”
“형은 정말 말을...”
예쁘게 말 하는 건 어디서 따로 배우나? 원래도 원우는 말을 예쁘게 하는 편이다. 물론 짓궂게 놀려올 때도 있었지만, 오늘은 유독 뭐랄까. 사랑스러운 느낌? 어쩐지 연인과 하는 대화같은 느낌이 들어 민규는 손 끝이 저릴 정도로 떨렸다. 맘 같아서는 그냥 저 담벼락에 밀어 부치고 입술부터 탐하고 싶었다. 그러지 못 하는 건, 그렇게 한다고 해도 원우가 받아 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바보같은 이 사람은, 당황스럽고 놀라도 우선은 받아줄 게 뻔했다. 그래서 그럴 수가 없었다. 동정은 싫으니까. 이게 문제다.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탄다. 쉽게 행복해지고 쉽게 불행해졌다. 극도로 사랑스러운 사람을 눈앞에두고 극도로 불안할 만큼 맘이 저렸다.
“민규야.”
“아, 응. 들어가자 형. 나도 슬슬 춥다.”
민규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자 원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문제는 그거였다. 지금 둘 다 자각이 없다. 민규는 자신의 감정은 자각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의 자각은 없었다. 각별해, 특별해. 그 단어들이 어울리는 관계로 정의지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둘 사이에는.
“너 무슨일 있어?”
“아니, 없어. 없어.”
술이 슬슬 깨가는 지 원우의 목소리 톤이 다시 낮아졌다. 또 다정스레 물어오는 원우에 민규는 지금 살짝 눈물이 날 뻔 했다. 아무것도 안 해줘도 좋아해. 아니. 아무것도 안 해줘도, 잘 해줘도 너무 힘들다. 이 감정이. 순식간에 곤두박칠 치는 마음때문에 다정한 음성이 애틋하다가도 민규를 후버팠다. 민규가 원우의 눈을 피하며 몸을 돌리려고 하자 원우가 민규를 잡아 돌렸다.
“너 왜 그래?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 보여.”
“공부때문에 힘들어서 그래, 형. 나 고삼이잖아.”
“....그런거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아니라는 데, 왜 자꾸 그래!”
“....왜 자꾸 거리를 두려고 해? 형이 술 기운 빌려서 섭섭하다고 까지 했는 데.”
됐다. 들어가자 그럼. 원우가 다 포기했다는 듯 한 음성으로 민규를 잡았던 손을 놓았다. 울컥,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원우를 잡고 벽쪽으로 밀어 그대로 입을 맞췄다. 잡힌 손목과 등이 아픈지 인상을 쓰던 원우가 민규의 입술에 한 차례 더 놀라 눈이 커진다. 민규는 수도 없이 상상만 했던 원우의 입술을 탐하며 원우의 등을 달래 듯 토닥였다. 민규의 토닥임에 굳었던 원우의 몸이 부드럽게 풀리며 민규에게 기대왔다. 처음엔 민규를 받아들이기 급급했던 원우가 입을 좀 더 벌리며 민규의 혀와 맞닿았다. 생소하고 뭔가 벅차오르는 느낌이 드는 입 맞춤에 둘 다 정신없이 입을 맞췄다. 그렇게 한참을 하다가 사람들 소리가 들리자 둘은 약속한 듯 떨어졌다.
“.......하..”
“.......”
사람들의 소리가 사라지고 둘 사이의 어색함은 다가왔다. 거친 숨을 고르다 괜찮아진 듯 원우가 민규를 바라봤다. 하지만 민규는 원우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무서워서. 하지만 설명은 해야했다.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것은 알려주고 싶다.
“나 형 좋아해.”
“....”
“내가. 가족과도 같은 형이, 연애대상으로 보여.”
“..김민규.”
“근데 나, 진짜..진짜 좋아해. 형.”
“.......”
“....미안해.”
민규가 뒤도 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오는 게 싫었지만 닦아봐도 소용이 없었다. 뒤에서 돌아오는 소리가 없는 것에 절망감을 느끼며 계속 그렇게 목적지 없이 뛰어가는 데 갑자기 등에 뭔가의 타격감이 느껴졌다. 뭐지? 꽤나 아픈 감각에 걸음을 멈추고 확인해 보니 운동화였다. 운동화를 집어들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날아 온 방향쪽을 보니 숨이 찬 지 무릎에 손을 올리고 숨을 고르는 원우가 보였다. 오른쪽 발은 맨발인 상태였다. 벙 찐 표정으로 민규가 그대로 목석마냥 굳어버렸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아무생각이 들지 않았다.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원우가 숨을 다 골랐는 지 상체를 일으키고 민규에게 소리를 질렀다.
“미친놈아! 그러고 가면 어떡해!”
“형....”
“너는 나한테 사과해야해!”
“....”
“내가, 내가 더 먼저 좋아했어. 너가 언제부터 나를 좋아했던 간에! 내가 더 좋아하고 내가 더 먼저 좋아했다고!”
“.......”
“자각도 늦게 해놓고, 도망치기나 하고! 비겁한 새끼야!”
누가 뒷 목을 세게 내려친 것 처럼 머리가 멍했다. 지금 대체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거지? 민규가 바보처럼 원우의 신발을 들고 멍하니 서있는데 원우가 답답한 듯 절뚝거리며 다가와 민규의 목덜미를 잡고 그대로 당겨 다시 입을 맞췄다.
아. 더는 설명따위 필요가 없었다. 패기있게 잡아 당긴 원우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먼저 입술을 두드리는 원우의 혀 또한 수줍은 듯 서툴렀다. 민규가 그제야 원우의 신발을 옆으로 던져놓고 원우의 허리를 잡아 당겨 안으며 더 깊게 입을 맞췄다. 자각이 늦었어서 미안해. 미안해. 좋아해. 사랑해. 맞닿은 입술 사이로 쉴새없이 속삭이며 다시 입술을 겹쳤다. 아까와의 키스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좋았다.
결국엔 그렇게 둘.
+
“사귀는 건 안돼.”
“아 왜!”
“안돼.”
“아아아아, 그런게 어딨어!”
“여기.”
“...형 진짜 밉다.”
“조금만 참아. 우리 씨씨해야지.”
“...전원우 진짜 여우야.”
“응,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