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 종의 진리
2021. 2. 13. 18:30

 

 민규야.

 

 니가 알아야 할 건 내가 널 사랑했다는 거야.

 

 

 

 

 

 

제 1장 종의 조우

 

 

경찰청 마약지능수사과 오 경위는 한 가지 수를 생각해 냈다. 강남 인근 유흥주점에서 수거해 온 마약이 배수구로 흘러내려가는 것을 보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셈이라 여긴 것이다. 오 경위의 눈에 그것은 생돈이 고성 한번 지르지 못하고 미끄러져 똥통에 빠지는 것이라 여긴 것이다.

 

오 경위의 인생을 간략히 얘기해야 했다. 오 경위. 개띠 오 경위는 칠십일 년 생으로 본래 정의감에 들끓어야 하는 경찰과는 사뭇 거리감 있는 인물이었다. 보아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른 척. 그것이 오 경위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다. 노모가 죽고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연금마저 끊어지자 당장 입이 마른 오 경위는 펜대를 들었다. 그리고 플랜카드를 걸었다. 오병선 경찰공무원 시험 합격. 경찰공무원 준비는 역시 대수학원. 오 경위의 지도 강사였던 성 강사는 오 경위에게 이리 말했다.

 

 

 너 이번 생에 쓸 운 다 쓴 거야, 인마.

 뭐 그런 재수 없는 소릴 하고 그러세요.

 

 

오 경위는 실실거리며 대거리했다. 그의 말마따나 오 경위 인생에 주어진 운이란 것이 다했느냐 묻는다면, 오 경위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애초 개짓거리 해 볼 생각은 없었다. 오 경위는 두 수 앞을 내다보는 재주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오 경위는 위기 없이 기회를 창출해 묘수로 한 방에 성공을 거뒀다.

 

우리의 김민규와 전원우는 오 경위의 한 수 앞에서 마주한다. 그가 겨누지 못한 두 수를 넘겨보며 말이다.

 

 

 오 경위 씨발 새끼.

 입에 걸레를 물고 살아라.

 걸레인 것보단 입이 걸레인 게 낫지 않나.

 

 

넌 걸레면서 입도 걸레 아니냐. 전원우는 그리 대거리하려다 거뒀다. 김민규랑 부딪혀 봤자 잃는 쪽은 저였다. 오 경위의 뻔뻔스러운 비즈니스가 개막하며 그는 전원우를 우선해 섭외했다. 이태원 골방에서 나 죽네 하고 널브러져 있던 전원우 모가지에 약을 쑤시고 일으켰다. 너 형이랑 일 하나 하자. 장기로. 당시 전원우는 오 경위가 제 오장육부를 털어먹겠다는 이야긴지, 남 오장육부를 털어먹자는 이야긴지 몰랐다. 원래 뽕쟁이는 뽕을 해야 정신이 곧아요. 그건 다 비약이고 씹소리였다. 전원우는 이제 약 쪽으론 볼일도 안 봤다.

 

당시 딴에는 발정난 열여섯마냥 바락바락하던 전원우의 심지를 세워 놓은 것은 단순 오 경위의 압력 때문은 아니었다. 널 보고도 잡지 않겠다는, 지팡이로써 내걸은 비양심 따위로는 전원우를 묶어둘 순 없다는 것이기도 했다. 오 경위는 전원우를 제게 감기 위해 큰 수를 뒀다. 원우 너 엄마 보고 싶지. 그 한마디에 전원우는 고분고분히 오 경위의 그림자 뒤에 섰다. 미지수의 가능성이었으나 전원우 입장에선 잃을 것 없는 조건이었다.

 

전원우가 죽고 못 산다는 자세로 애지중지했던 뽕과 거리를 두게 된 것은 순전히 김민규 때문이었다. 원래 마약 하는 새끼들이 제일 험해. 그 새끼들은 약 빨아야 해서 안 잡히려고 대가리가 빡빡 돌거든. 그 새끼 김민규는 오 경위에게 어금니 하나가 날아간 상태로 작업장에 붙잡혀 들어왔다.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몸을 자빠뜨린 김민규를 내려다보며 전원우는 오 경위에게 이리 말했다.

 

 

 그 장기?

 뭔 장기.

 .......

 .......

 

 

롱 텀, 미친 새끼야. 나 씨발 국가에서 녹봉 받고 살어. 누구 인생 조지려고 드네. 그제야 전원우는 멍청하게 두 입술을 벌린 채 이해했다. 김민규는 작업장 바닥에서 삼 일 반나절을 누워 있다 일어났다. 전원우는 삼 일째 되던 날, 김민규가 그냥 죽어 버린 게 아닐까 싶어 어정쩡한 자세로 엎어진 김민규를 뒤집어 입을 벌렸다. 혀는 안 씹었네. 다행이다. 전원우는 본능적으로 그리 생각했다.

 

김민규는 방금 일어난 사람답지 않게 제 집처럼 냉장고 문을 열어 보질 않나, 실내화는 없냐고 물었다. 바늘로 쑤시듯 호흡기로 치미고 올라오는 약 냄새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아, 전원우도 덩달아 저답지 않게 냉장고에서 익은 김치 락앤락을 건넸다.

 

 

 실내화는 없고 반찬은 김치 하나야.

 그렇구나. 몇 살?

 스물여섯.

 난 스물다섯. 밥 같이 먹을래요?

 말 놔.

 엉. 내가 제대한 지 얼마 안 돼 갖고 그건 안 되겠네요.

 

 

전원우는 김민규의 풍성한 머리채를 지그시 겨눠보다 시선을 거뒀다. 도박은 네 사지를 자르면 멈출 수 있다던데, 약은 몸 사지를 조각내도 끊을 수 없댔다. 김민규의 양팔 접합부는 피멍이 더듬이 나듯 촘촘히 머물러 있었다. 그걸 가릴 생각이 없는지 꼬박꼬박 검은 반팔 티셔츠를 입었다. 골 때렸다. 약쟁이는 약 못 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약 못 하는 곳은 지구촌 어디에도 없어서 몽땅 숨어 버리면 끝이랬다. 그런데 김민규는 오 경위에게 잡혀온 개치곤 이를 세우지 않았다. 눌러살 생각인지 다이소에서 칫솔이며 수저 세트며 사 들고 들어오는 꼬락서니가 영락없는 밥버러지였다.

 

웃긴 건 전원우는 응용할 생각 없던 쉰 김치를 가져다 김민규는 김밥천국을 설립했다는 점이다. 김치볶음, 김치볶음밥, 두부김치, 김치피자, 김치그라탕, 김치떡볶이 같은 걸 거들떠도 안 보던 테팔 프라이팬으로 턱턱 만들었다. 곰팡이가 살고 있을 법한 나무 주걱을 한 시간 동안 싱크대에서 개 소리를 내 가며 닦았다. 전원우는 매일 같이 다시 봤던 김민규를 습관처럼 다시 봤다. 민규야. 왜요.

 

 

 너 좀 웃긴 거 아냐.

 뭐가요.

 약쟁이 새끼가 부엌에서 제일 오래 있질 않나. 요리를 턱턱 해내질 않나. 음식물 쓰레기 같은 거 가져다가 음식 만들어 놓질 않나.

 다시 봤다?

 말 놓네.

 그럼 뭐 다시 봤다요 해 줘요?

 다시 봤어요. 이거 맛있다.

 

 

김민규는 매일 같았던 전원우를 다시 봤다. 뭘 해 줘도 깨작깨작 밥알 골라 놓고 턱짓만 서른 번을 했다. 뭐야. 이런 말도 할 줄 알아? 그러고 처음으로 대면한 채 픽 하니 웃었다. 뭐 좋아서 웃느냔 전원우의 질문에 김민규는 그냥이라고 응답했다.

 

본래 현장은 전원우만 나섰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민규를 대동하기에 이르렀다. 화장실에 사다리 세워 놓고 올라타 있는 게 전부인 작업에 김민규를 부득불 끼울 필요는 없었으나 괜스레 전원우는 그러고 싶어졌다. 오 경위에게 전원우가 직접 고개를 든 상황은 몇 안 됐다.

 

 

 그 뽕쟁이 새끼를 데리고 오겠다고.

 걔 혼자 두면 뭔 일 치를지 몰라요.

 지금 뭐 씨발 지금까진 무슨 일 있었나. 보고 받은 일 없었던 것 같은데.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

 왜 매달려.

 

 

그냥. 그 새끼 쎄해서요. 전원우는 김민규에게 그냥을 배웠다. 애먼 뒤통수를 갉작이는 전원우를 눈에 담던 오 경위는 뒤이어 그러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그 새끼 풀어 놔서 사고 치면 니가 다 덤탱이 쓸 줄 알어. 전원우는 오 경위를 따라 고개를 흔들었다. 제 손으로 풀어 놓지 않은 개 목줄을 쥐게 된 셈이었다.

 

전원우는 김민규를 개쯤으로 생각했다. 나가자면 나가고, 집에 있자면 있었다. 김민규는 집에서 개짓거리 안 했다. 종종 가다 없어 보이는 감기 기운으로 말꼬리를 잡아 감기약 일주일 분을 타 오는 꼬락서니는 종종 보였으나, 전원우는 저 나름대로 노력이 가상하다 느껴져 입을 가로로 다물었다. 김민규는 감기약으로 혈중 농도를 맞춰 놓으면 안 그래도 비상하던 머리 회전이 광속으로 돌아갔다. 평소면 반쯤 가려져 있을 동공이 콤파스로 그은 것마냥 선해질 땐, 김민규는 항시 같은 말을 했다.

 

 

 형. 우리 그냥 오 경위 없애고 이거 먹을까?

 그럼 약 조달은 어디서 받게. 그리고 야.

 나 원래 오 경위 말고 따로 연락되는 유통 형 있어.

 야.

 왜요.

 습관적으로 말 놓지 마. 빠져 가지고 개새끼가.

 

 

그리고 오 경위 넘긴다, 뭐다 하는 씹소리도 하지 말고. 너 씨발 그 인간이랑 잘못 꼬이면 좆 되는 거야. 몰라서 하는 소리냐? 지금 오 경위 눈깔을 봐. 그 인간 성공하려고 미쳐 돌아서 못할 짓 없어. 근데 뭘 없애고 제껴. 목숨 두 개냐?

 

전원우는 팽팽한 김민규의 동공을 볼 때마다 어쩌면 오 경위를 정말 죽여 버릴지 몰라 겁을 먹었다. 천하의 버러지 새끼라도 할 짓이 있지. 어떻게 사람을 죽여. 마음을 잡았다. 그리고 한켠의 기대를 씹었다. 딱히 오 경위 무릎 아래를 벗어날 이유는 없었으나, 벗어나지 않을 이유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김민규의 형이란 사람의 아래에서 이 짓거리 하는 것도 영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이 치몄다.

 

오 경위는 자주 보면 한 달에 네 번 얼굴을 비췄다. 초반 김민규를 잡아온 직후에는 기강을 잡겠다는 명목으로 매일 같이 출석했으나 그것도 한때였다. 김민규의 물밑 작업이 통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것마저도 뜸해진 게 지금이었다.

 

김민규는 감기 환자마냥 피골이 상접한 낯으로 몸을 못 가누던 것도 삼 개월 정도 지나니 약빨이 몸에서 빠져나가는지 덜했다. 공급책으로 덜미를 잡혔던 전원우는 갱생이 뭔지 김민규를 비춰 볼 수 있었다. 그건 전원우조차도 예상치 못한 수익이었다. 김민규가 제 자리를 이탈해서 전원우에게 들러붙어도 전원우는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전원우가 살 냄새를 좋아했느냐 묻는다면 명확한 아니오였다.

 

 

 형은 왜 내가 이래도 가만히 있어요?

 불쌍하니까.

 내가 불쌍해요?

 응. 개 같아.

 

 

이게 개같다는 거야, 개 같다는 거야. 난 이래서 한국어가 싫어. 명확하질 않잖아요. 볼일 없다는 듯 떨어져 나가다가도 다시금 붙어오는 김민규에게 전원우는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김민규는 전원우에게 사육당하길 자처한 개처럼 굴었으나, 실상은 전원우가 김민규에게 사육당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김민규가 오 경위를 죽이는 게 어떠냐고 열다섯 번째 물었던 밤은 김민규가 감기약을 털어 넣지 않은 유일한 날이자, 그가 오 경위에 관해 물은 마지막 날이었다. 전원우는 콧잔등을 타고 내려온 안경 거치대를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며 작업장 하수구 앞에 한참 서 있다 몸을 틀었다. 김민규는 할 것도 없는 주제에 전원우 한참 뒤에 몸을 쭈그러뜨리고 앉아 있었다. 보통은 어렸을 적 조부모 집에서 키우던 개를 떠올렸을 텐데. 조부모 생사도 알 수 없는 전원우는 그 부분이 조금 안타까웠다. 너랑 함께면 어쩌면 나는.

 

 

 정말 그럴까.

 정말로요?

 정말 그럴까.

 정말?

 정말.

 

 

일 잘 되면...... 오 경위 주머니로 들어가던 돈, 그거 다 우리 거 되는 거니까. 그러면 난 일단 돈 모아서 해외로 뜰래. 오백만 원만 있어도 필리핀에선 왕족처럼 살 수 있다잖아. 작업이야 필리핀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고. 오 경위 그 새끼 찔리는 거 많아서 인터폴에 수사 요청도 못 넣을 거야. 그럼 이제 노 나는 거지. 그쪽 조직이랑 마찰 있을진 몰라도 어느 정도 숙이고 들어가서 밑 닦아 주다가.......

 

아쉽다. 뭐가 아쉬워.

 

 

 형 미래엔 내가 없네요?

 

 

내 미래엔 형이 있는데. 전원우는 징그러운 소리 말라며 찌그러져 앉은 김민규의 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조명이라고 해 봤자 천장에 박힌 원형 전구 세 개가 전부인 작업장에서도 얼핏 달아오른 전원우의 낯이 얄궂게 선명했다.

 

 

 

 

제 2장 종의 구분

 

 

 원우야.

 네.

 내가 널 왜 좋아할 것 같니.

 

 

본디 오 경위는 두뇌가 명석하다 할 순 없었으나 특유의 운 깔린 팔자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위인이었다. 마약지능수사과에 전출 났다고 해서 모든 공직자가 마약 거래에 손 대는 건 단연코 아니니 말이다. 뒤틀린 심성과 비뚤어진 행동거지가 낳은 폐단이자, 그 자신에겐 구원이었다. 가랑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오 경위는 과거를 묻을 양지 바른 자리를 지나치지 않았다. 그건 천성이었다. 동물적 육감과 서슬퍼런 본능 말이다.

 

 

 너는 단순해. 동물보다는 식물 같지. 물 줘야 하는 날에 물 주고, 적당히 햇빛 먹게 해 주면 별 탈 없이 자라는 식물. 가끔 말 몇 마디 나누는 걸로 유대는 족한.

 

 

그런데 민규 그 새끼는 아니거든. 걔는 동물이야. 신경 써 줘야 하는 부분이 많지.어디 안 보이면 찾아야 하고 밥도 골라서 줘야 하고. 잘하면 잘했다고 보상해 줘야 해, 못하면 못했다고 벌줘야 해....... 어떨 때 보면 꼭 인간 같아서 감정적인 유대도 줘야 해. 비즈니스는 사람 대 사람으로 행하는 거다 보니까 사람 내음 없으면 고객이 쉽게 끊겨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김민규를 넣고 진행하게 된 거야. 그런데 말이다. 민규 그 새끼가 말이야. 그 개같은 짐승 새끼가 아무래도 요즈음 수상하단 말이지.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없니?

 무슨 말인지 잘.

 김민규 그 새끼가 오 경위 죽여 버리자느니, 오 경위 없애고 둘이서 잘해 보자느니. 그런 싸구려 대가리 굴려서 나올 법한 이야기한 적 없냐고 물어보는 거야.

 

 

응. 역시 원우 너는 식물이지....... 거짓말을 못 해. 넌 김민규 때문에 엄마를 포기하는 호로 새끼가 된 셈인데. 그러더니 오 경위는 전원우 앞에 우뚝 섰다. 전원우가 버젓이 열쇠를 쥐고 있던 판도라의 상자를 오 경위는 열어젖힌 셈이었다. 원우야. 전원우에게는 고민할 찰나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넌 다른 거 할 것 없이 대답 하나만 하면 돼. 그것이 신의 마지막 자비인지, 지독한 형벌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내 추측에 확신을 불면 된다. 전원우가 김민규의 뜻에 동의하고 매일 밤 곱씹었을 질문이었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물을게.

 

 

 김민규 그 새끼가 나 치자고 했니?

 

 

네. 전원우는 땅으로 빨려들어가는 양 고개를 숙였다. 알 수 없는 떨림이 몸을 지배해 오 경위의 떠나는 걸음소리가 귓전을 울려대도 뒤따라가 일을 칠 수 없었다. 불가항력이 몸을 이끄는 듯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었다. 원인을 찾기 위해 흙더미를 손으로 샅샅이 훑었다. 전원우는 어렴풋한 엄마의 눈동자보다 아침까지만 해도 마주했던 김민규의 얼굴선이 떠올랐다. 중력보다 거스를 수 없는 힘이었다. 슬픔보다 메마르고 절망보다 어두웠다.

 

엄마에 대한, 그리고 김민규에 대한. 전원우가 보지 못한, 그리고 오 경위가 보지 못한 한 수 앞. 그건 죄책감이었다.

 

김민규가 어떻게 죽었는지 전원우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정말 김민규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평소와 같았다. 오 경위의 연락이 오면 전원우는 페트 통 여럿을 들고 처리장 하수구에서 내려오는 희석수를 받았다. 혼자도 무리 없던 짓거리가 어렵다 느껴진 것은 아니었다. 무료했다. 오 경위가 어떻게 배반자를 처단하는지 목도한 적은 한 번이었다. 그는 죽은 몸을 여러 토막 내고 개에게 먹이로 줬다. 캉캉거리는 개의 이빨 사이로 진득하게 눌러붙는 핏물이 사람 것이라 상기할 때면 자다가도 구역질이 일었다. 개에게 먹이가 됐을까. 김민규를 여전히 짐승 정도로 보는 오 경위라면 가능성 없다 치부하긴 일렀다.

 

김민규의 무덤이라도 있다면 매일 같이 그곳을 찾아 참회했을 거라고, 전원우는 단언했다. 그조차도 듣는 이 없어 뒷방 늙은이의 독백처럼 흩어졌다. 전원우는 김민규가 죽은 이후에 김민규 생각을 더 하게 됐다. 김민규가 말했던 미래가 어떤 것인지, 그곳에서 전원우 저 자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묻지 못했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든, 아마 우리는 우리로 남아 살 때까지 살지 않았을 터냐고. 지금은 흐릿해진 엄마를 찾는 것보다 눈앞의 김민규를 잡았어야 했을까. 전원우는 자문했고 자답하지 못했다. 어떤 답을 내려도 죄책감을 덜 수 없었다.

 

그제야 전원우는 인정했다. 김민규를 사랑했다고. 그땐 아니었지만, 지금은 맞았다.

 

 

 

제 3장 종의 멸망

 

 

그 이후로 전원우는 오 경위에게서 연락 받는 일이 없었다. 일거리만 던져 주면 마지못해 다녀올 뿐이었다. 더 이상 김민규와 전원우의 작업장 또한 없었다. 오 경위는 어디서 채 영글지 못한 것들을 수시로 데려와 갈아치웠다. 전원우만의 작업장도, 둘만의 작업장도 아니었다. 그곳에서 전원우는 꼴사나운 고참 대접을 받았다. 몇 년 일했냐는 말에 이 년이라고 답했고, 오 경위 밑에서 그리 오래 닦아 주며 지냈냐는 어불성설의 존경만이 존재했다.

 

전원우가 김민규를 팔아 잡고자 했던 혈족은 점차 투명해졌다. 아무것도 없다는 말과 동일했다. 오 경위는 어쩌면 전원우 모를 찾을 노력조차 안 했을 터였다. 그런 사람이 실존하는가. 그 질문에 전원우는 잠정적으로 부정의 답을 남겼다. 전원우 모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 보아야 했다. 연고도, 역사도 없는 그를 찾기 위해 전원우가 팔아넘긴 김민규라는 가치가 매사 전원우의 가슴을 좀먹었다. 전원우는 꽤 무른 구석이 있어 눈치 못 챘던 썩은 구렁이의 낡은 동아줄이었다. 제 손으로 택했으니 무슨 부귀를 주장하겠느냐고, 전원우는 단념했다.

 

저 자신을 끝으로 멸종했을 종을 찾아나서겠다고 사활을 건 게 병신 짓으로 매듭 지어질 줄은 몰랐다. 궤변이라 욕해도 전원우는 나름 필사적이었다. 그리 필사적이라 김민규를 팔아 버린 것이라고 자위하지 않으면 안 됐다. 쓰레기 더미라도 뒤져 보는 것을 짐승 짓으로 치부한다면 전원우는 서운했다. 뒤질 수 있는 쓰레기통이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한동안은 그리 합리화했다.

 

오 경위는 전원우에게 매정한 사망신고서를 넘겼다. 김민규가 사라진 지 정확히 열 달이 되던 날이었다. 김경민. 그것이 전원우 모의 이름이라 말했다. 그 순간까지도 김경민이 제 엄마가 맞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빳빳히 추켜들었다. 이제는 무로 돌아가 버린 이름 석 자를 되찾기 위해 벌인 게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다른 짐 없던 전원우가 부엌 찬장에서 테팔 프라이팬을 꺼내들고 작업장을 나선 건 그 다음의 일이었다. 궁상 맞게 뭐 그딴 걸 챙겨 가냐는 막내의 타박에도 전원우는 다른 말 없이 신 뒤축을 씹어 신었다. 잘 살아라. 분수에 안 맞는 덕담이었다. 형이나 잘하세요. 농조 섞인 한마디에도 웃을 여유는 없었다. 전원우는 더 이상 오 경위 지휘 하에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주머니를 불려 주기 위해 자처한 희생이 생각보다 큰 해를 입혔다. 평생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의 무게가 생각 이상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래. 엄마도 찾았겠다....... 이제 너 형한테 볼일 없잖아.

 떠나야죠. 우리 거래 끝이니까.

 그래. 그래야지.

 

 

전원우는 알았다. 더 이상 전원우가 필요하지 않은 거였다. 전원우만큼 하는 것들은 널렸고, 입이 많아졌으나 지출의 총액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으니 큰 고래를 수족관에서 빼 버리겠다는 심보였다. 오 경위의 행보를 지휘라 한다면 지휘라고 할 수 있으나, 보통 지휘는 추앙을 필수로 행해지지 않았다. 두 가치는 사뭇 같은 듯 매우 달랐다.

 

오 경위 씨발 새끼 그냥 없앨까요.

 

 

 아, 맞다. 원우야.

 네.

 

 

그냥 그 씨발 새끼 없애고, 형이랑 나랑 둘만 잘 먹고 잘 살아 볼까요.

 

 

 넌 민규처럼 병신 짓 하지 마라. 약쟁이 새끼들은 갱생이란 게 없어.

 

 형이 다 보고 있으니까.

 

 

형 미래엔 내가 없네요.

 

 

 형은 다 보고, 다 알 수 있으니까. 허튼 짓 벌이지 말라고.

 

 

내 미래엔 형이 있는데.

 

 

 알아요.

 그래. 어디 가서 칼 맞지 말고 살아라.

 

 

사실 내 미래에도 민규 니가 있었다고, 말해 줄걸.

 

 

오 경위에게 평생 운을 다 썼다고 한 성 강사의 말마따나 오 경위의 개짓거리는 꼬리를 밟혔다. 경위 오정준의 보직 해제와....... 전원우가 직접 칼 들고 설치지 않았음에도 그는 몰락했다. 놀라울 것도 아니었다. 철밥통 신분에 벌이기엔 스케일이 컸다. 어찌 경찰 조직 내에서 몰랐을 수 있겠냐는 반사적인 음모론이 등장했다. 전원우는 뉴스 댓글을 느긋하게 훑으며, 그곳에 몸 담았던 저조차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하나 몰랐던 책임을 통감해 청장이 사퇴 연설을 여는 등의 보여 주기식 쇼가 이어졌다.

 

잔가지를 쳐내는 것보다 뿌리를 뽑는 것이 우선 가치라고 생각하는 조직의 사고에 따라 전원우는 추적망에서 조금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그래 봤자 오 경위에 비해 며칠 번 것뿐이었으나, 한국을 떠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전원우는 스포츠백에 작업장에서 챙겨 나온 프라이팬과 옷가지를 쑤셔 박았다. 퍽 이질감 드는 공간감에 웃겨, 전원우는 간만에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영 쓰임새 없던 근육이 말려 올라가는 것만큼 어색한 것이 없어 금방 웃음은 사그라들었다.

 

설사 징역을 산다 해도 오 경위는 죄를 다하지 않고 나올 게 뻔했다. 고발자가 누구인지 색출할 것이고 일순위로 전원우를 올려 놓을 것 또한 안 봐도 그려졌다. 부득불 마지막까지 김민규를 입에 올리고 전원우의 죄책감을 들쑤셔 벌집을 만든 오 경위는 그럴 만한 인간상이었다.

 

컨테이너에 몸을 비집고 들어간 전원우는 겹친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나의 엄마, 나의 혈족. 그러니까 나의 종에 대한 비탄이 섞여 흉한 꼴이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고고한 김민규를 향한 기억이 불쑥 고개를 꺼내 들었다. 전원우는 아직까지도 생각했다. 제가 살릴 수 있었던 김민규를 여전히 핥았다.

 

 

 

 

 

 What the fuck are you talking about?

 이 개새끼들은 한국인만 보면 더 영어 쓰고 지랄이야.......

 What?

 Nothing.

 

 

필리핀은 실로 전원우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름다운 무법지대는 아니었다. 필리핀으로 건너온 지 삼 년을 훌쩍 넘긴 와중이었으나, 전원우가 그렸던 미래만큼이나 탄탄대로가 보장된 곳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노후 준비 하긴 글러먹은 것 같죠. 어깨 너머로 배운 어리숙한 영어 문장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게 한 가지 득이었다. 전원우는 더 이상 약을 만지지 않았다. 해변 가판대에서 음료수를 팔고 서퍼들에게 핫도그를 제공하며 변변찮은 일거리를 이어갔다. 약쟁이 새끼들은 갱생이란 게 없어. 오 경위의 무식한 비수가 전원우에겐 새 눈을 뜨게 한 셈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 경위에게서 출발한 추적망은 필리핀의 전원우에게까지 도달하지 않았다. 폭풍 전 바다가 고요한 법이랬으나 지속된 평화는 전원우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안정을 안겼다. 전원우는 김민규에게 말했던 미래를 착실히 밟고 있었다. 경로는 다를지언정 전원우에겐 필리핀으로 향하는 것만이 제 살 길처럼 느껴졌고 무식하게 따르는 것을 법도로 삼았다.

 

전원우는 여전히 김민규 생각을 했다. 여전하다는 표현 아니곤 전원우의 지독한 죄책감을 달리 말할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사랑했던 너를 내가 묻어 버려서. 다소 삼류 멜로 장르의 클리셰라 할지 몰랐다. 현실에 착안시켜 봤을 때 그건 어떤 분위기도, 무드도, 장르적 감동도 주지 못했다. 처참했다. 하여 어쩔 땐 김민규 같은 사람을 봤다. 찢어질 듯 큰 눈, 까무잡잡한 피부, 싸구려인 척하는 체향. 얼핏 스쳐 지나가는 김민규의 성질들을 목격하며 단념했다.

 

세상에는 김민규 같은 사람은 있을지언정 김민규는 없다고. 김민규는 내가 죽고 죽여서 개 먹이고 던져졌다고. 더 이상 자위할 거리도 남지 않았다고. 그것이 나의 진리이자 내 종의 진리라고, 전원우는 정의했다.

 

 

 저 아저씨 성질 존나 고약하네. 씹새끼가 주는 대로 처먹지.

 

 여기 피냐 콜라타 하나요.

 

 

안녕, 형. 이래도 형 미래엔 내가 없어?

 

그리고 진리는 시시때때로 뒤집힌다. 지동설처럼 말이다. 그땐 아니었으나, 지금은 맞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지금 전원우 앞에 선 김민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