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2021. 2. 13. 18:28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소행성 충돌까지 72시간, 72시간이 남았습니다. 충돌은 정부의 예측보다 빠를 수 있으며 소멸 확률은 0.3%, 0.3%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국가는 최후까지 국민안전을 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국민여러분께서는 부디 정부의 지침을 따라 행동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소행성 충돌까지 72시간, 72시간이 남았습니다. 충돌은 정부의 예측보다 빠를 수 있으며 소멸 확률은 0.3%, 0.3%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국가는 최후까지 국민안전을 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부디 정부의 지침을 따라 행동해주실 것을...

 

거리를 쩌렁쩌렁 울리는 청와대 대변인 아무개 목소리 끝으로 카페가 소란스러워졌다. 갑자기 뭔 개소리야 상황극이야? 영화 찍는 거 아니야? 지구 망한다고? 대박 찐으로 망하는거면 나 지금 허니브레드 시킬라니까 말리지마라. 안일한 대화들이 테이블 사이를 드문드문 떠돌았다. 존나 애매하네 뭔 삼일이나 남았어 망할라면 걍 지금 망하지. 어수선한 와중에 옆자리 앉은 사람 혼잣말이 귀에 들어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푹 터졌다. 옛날옛적에 미국이 만든 지구종말영화 제목이 원래는 <내일 모레>인데 한국인들은 성질머리가 급해 내일 모레라면 별로 안심각한줄 알기때문에 한국에서만 제목을 <내일>로 바꿔 개봉했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웃는 소리가 들렸는지 옆자리 사람이 이쪽을 힐끔거렸다. 잽싸게 고개숙인 민규가 앞에있던 커피를 쭉 빨았다. 아이고 민망해. 민규가 눈 잠깐 굴리는 사이 지구 멸망은 식은 떡밥 되고 카페 안은 다시 무신경해졌다. 옆자리 사람은 멈춰놨던 유튜브를 다시 틀었고 허니브레드 시킨다던 사람은 일어나지 않았다. 카운터에 간지용으로 디피된 마샬 스피커 대신 천장구석 매달린 먼지낀 스피커에서 카페 브금 탑백이 돈다. 이프더월드워즈엔딩유드컴오버라잇. 크. 명곡 나오네. 의자 등받이 깊숙히 몸 기대고 핸드폰을 들었다. 별일이 다 있네. 뭔 대단한 영화를 찍길래 사전 협조도 없이 이 난리를 쳤대 사람 놀라게. 이따 애들 만나면 얘기해줘야징.

 

그 순간 재난 문자 알림이 공기를 찢어발겼다. 와 씨발 깜짝이야 존나 재난 영화 도입부인줄. 눈 동그랗게 뜨고 주변 둘러보는데 재난 문자 알림 끝나기 무섭게 어디서 들리는지 모를 싸이렌이 폭격처럼 거리를 들쑤셨다. 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 소행성 충돌까지 72시간, 72시간이 남았습니다. 충돌은 정부의 예측보다 빠를 수 있으며. 마침 카페 들어오던 사람이 멈칫하더니 뒤돌아 뛰어나갔다. 야... 이거 진짠가봐... 누군가 울먹이기 시작했고 핸드폰에 알림이 쏟아졌다. 오는 전화 다 넘기고 네이버 들어가 뉴스 기사부터 확인하는데 손가락 끝이 벌벌 떨렸다. 와... 씨발...

 

" 진짜네... "

 

핸드폰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민규야 어디야. 전화 왜 안받니. 민규야 방송 들었니. 민규야 보면 전화해. 일단 집에 와. 일단 엄마 집에 와. 실시간 속보. 최근 나사가 고의적으로 유출한 기사라며 나돌던 소행성 충돌 찌라시가 실제로 밝혀졌다 어쩌고 저쩌고. 현실감 좆도 없는 뉴스 기사 켜둔 화면 상단바에 엄마 아빠 문자가 번갈아 떴다. 이프더월드이즈엔딩유드컴오버라잇. 순식간에 이시국 된 가삿말이 귀에 박힌다. 위우드이븐햅투세이굿바이. 민규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전화 문자 알림 전부 쌩까고 카톡을 켰다. 친구목록 스크롤 쭉쭉 내리다 끝 가까워질때 멈췄다. 프로필도 상태메시지도 없는 파란색 기본 프로필 누르는 손가락은 오래된 습관처럼 망설임이 없었다. 김민규 핸드폰에 저장 된 이름은 전원우지만 아마도 이제는 전원우가 아닐 열한자리 번호를 눈으로 읽는다. 실수로 번호를 누르지 않도록 주변만 손가락 끝으로 둥그렇게 문지르다가. 계속계속 문지르기만 하다가. 결국 홀드버튼을 눌렀다. 늘 그랬듯이. 까매진 화면 속 저와 눈이 마주친다. 그래도 세상이 끝난다면 나한테 올거지. 그치. 반복되는 애원이 애달팠다.

 

전원우 보고있어? 지구 망한대 이번엔 찐이래. 근데 아직 삼일이나 남았대 72시간이면 존나 길다 그치 십분정도는 걍 버려도 티 안날듯 그니까 나한테 버려도 괜찮을듯. 근데 너무 길어서 인간들이 방법 찾을지도 모르겠다 소행성인가 뭔가 그거 부딪히기 전에 막 드론같은거 보내서 뿌개가지고 살 수도 있구...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캡틴 마블보니까 막 주먹으로도 뿌개던데 너는 원래 나보다 이런거 잘 아니까 벌써 이런거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72시간이면 그래도 존나 긴데 아니 뭐 꼭 뭘 하자 그런거는 아니야 알지? 이렇게 호들갑 떨었는데 지구 안망할수도 있는거고 나도 뭐 그렇게 엄청 뭐 그런것도 아니고 나도 집에 가봐야 되거든? 근데 그래도 전화 한통 정도는 실수인척 할 수도 있지않나싶어가지구. 나한테 전화해서 순영아 괜찮냐 하면 나 바로 순영이형인척 할 수 있는데 진짜로 어우 원우야 너 괜찮냐 할 수 있거든? 아니 솔직히 내가 형한테 그정도는 되지 않냐? 다른 것도 아니고 씨바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우리 이제 다 뒤진다는데 그니까 내말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소행성 충돌까지 72시간, 72시간이 남았습니다. 충돌은 정부의 예측보다 빠를 수 있으며 충돌 전 소멸 확률은 0.3%, 0.3%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국가는 최후까지 국민안전을 위할것을 약속드립니다. 국민여러분께서는 부디 정부의 지침을 따라...

 

차들은 달리고 사람들은 뛰었다. 음악 끊긴 카페 창 밖의 아수라장이 무성영화 한장면처럼 보인다. 약속했던 친구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소란스러운 바깥을 내다보던 민규가 느릿느릿 일어나 남은 커피를 버리고 카페를 나섰다.

 

 

그니까 내말은...

보고싶어

형.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나갈 때랑 똑같은 집이 이상하게 좀 달라보였다. 냉장고에서 물 한병 꺼내마시고 쇼파에 앉았다 누웠다 다시 앉았다 반복하다가 티비를 켰다. 화면을 넘겨도 넘겨도 뉴스속보만 나왔다. 걍 끄려다가 창문 밖에서 또 국민 여러분 어쩌고 방송하길래 노잼 예능 재방하는 케이블 채널 켜놓고 소리를 키웠다. 아 맞다 씨발 나 다이슨 청소기 이번달에 할부 끝났는데. 아 근데 이제 칠십시간만 더 있으면 다 뒤질 예정이라는데 청소기 나부랭이 아까워하고 있어도 되나? 안될건 뭐야 씨바 걍 죽는것도 아니고 대우주의 뜻으로 개죽음 당하게 생겼는데 이제와서 집을 아까워 할거야 차를 아까워 할거야. 어우 아까워 존나 아까워 치킨이나 한마리 더 조질걸. 치킨 생각하니까 치킨 땡긴다. 점심 먹은거 아직 소화가 덜 돼서 치킨은 에바고 맥윙이나 한사바리 땡길까싶어 맥딜리버리 앱 켰더니 배달예상시간에 구십분이 떴다. 와 나 이 재빠른 새끼들. 강제로 시한부 판정받고나니 실감이 난다. 죽음을 앞둔 인간이란 결국 못 이룬 꿈보다는 못 먹은 밥이 더 간절한 종자다. 냉장고에 못먹고 죽으면 아까울거 뭐있지? 음. 좀 있음 여름이니까 몸 만든다고 주문한 허브맛 카레맛 마라맛 닭가슴살 구십팩 아몬드브리즈 한박스 프로틴 반통. 미친놈 존나 성실하게 살았네 씨발... 울면 안돼 김민규 뚝 그쳐야돼 울면 근손실 오니깐... 네 여보세용. 지금 배달 되나요? 아 감사합니당 여기 핫뿌링클 반반이랑요 뿌링치즈볼 하나 그냥치즈볼 하나 뿌링뿌링 소스 추가해주시구 콜라 큰걸루 갖다주세용. 네네 카드결제 할게용.

 

치킨 시켜놓고 뭐하지 고민하다가 할부 끝난 청소기나 함 돌렸다. 위잉. 쇼파 먼지 쏙쏙 빨아먹는 기특한 내새끼. 형 죽어도 너는 살아남아야된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풀충 해주고 갈게. 인간종의 멸망이 안드로이드의 역습도 아니고 중금속 먼지덩어리가 만들어낸 변종 바이러스도 아니고 소행성 충돌이라는게 문득 우스웠다. 개연성 존나 없어 진짜. 집에 가긴 가야 하는데... 칠십두시간이나 있으면 이십사시간정도는 나한테만 써도 되지 않나 싶기도하고. 엄마한테 곧 가겠다고 연락해놓고 무음 돌려놨더니 그새 뭐가 많이도 왔다. 부재중 전화 몇개 확인하고 999+ 뜬 카톡을 봤다. ***소행성충돌시생존방법***, 지구멸망 구라래요 연예인 스캔들 덮으려고 누가 퍼트린거래요 괴담유포그만, 야 일단 어케 될지 모르니까 마트 쓸어와, 실시간 코스트코 트레이더스 대기줄 상황, 이것은.모두.간악한.정부의.농간.!이다.!/!빨갱이들이.소행성을.날린것이다. 투표를.잘못한.업보가.이렇게.돌아온다.!탄1핵.시위.일정, #지구야_아프지마_인간이_미안해 #pray_for_earth... 대한민국 인프라 오진다 이 와중에도 와이파이 빵빵한거 보소. 그 때 현관 벨이 울렸다. 대학 졸업하고 연락끊긴 동기가 보낸 MBTI 유형별 지구멸망 대처방법 읽던 민규가 고개를 돌렸다. 헐! 치킨왔나부다.

 

" 네~ 나가용~ "

 

 

 

4년 전

날씨 오진다. 아무래도 세상이 전원우 결혼식 축하해주려고 생겨났나봐. 쨍쨍한 햇빛 받아 유난히 초록인 잔디밭과 새하얀 버진로드가 존나 찹쌀떡콩떡이었다. 구식 베스트 정장 차려입고 공손하고 젠틀한 태도로 정원 가로지르는 나이 든 서버와 서버가 내미는 웰컴 와인까지 도통 흠잡을데가 없어서 김민규 입술만 삐쭉 나왔다. 씨지도 안맥였는데 이 조명 온도 습도 삼박자가 딱딱 맞을 수가 있어? 뭔 청춘영화 마지막 컷도 아니구 어웅 재수없어. 부정한 생각 하다가 고개 휘휘 저어 털었다. 안돼 하지마. 쫓겨나면 안돼. 끝까지 보고 갈거야. 중간에 끌려나가면 내 얼굴 보자마자 경찰부를라던 부승관 간신히 말린 보람이 없어진다. 김민규는 오늘 이 결혼에 이의 있으신 분께서는 지금 손을 들어주십시오 씬에서 손을 들어 한 때는 니가 정말 사랑했던 그 남자 역할을 끼워넣기 위해 온게 아니었다. 보내는이 전원우에 받는이 김민규로 도착한 청첩장 처음 봤을 때는 뭐. 식장 앞에서 제가 실종 된 남친 찾으러 온 게이새낀데 혹시 제 남친 보신적 있냐고 전원우 민증 사진 박은 전단지 뿌려볼까 고민하긴 했지만은. 레드프린팅 장바구니에 뽀뽀 박는 사진 걸어 만든 전단지 피디에프 파일 넣어놓기도 했지만은. 하여튼 아니다. 형 니 혹시 불지를거면 나한테는 미리 얘기해라 진짜로 이거 정장 첫개시야 연기 먹으면 냄새 절대 안빠지는거 알지. 어디서 김민규 전담마크 하라고 지령이라도 받았는지 결혼식 하는 내내 옆자리 앉아 쫑알거리던 부승관은 신랑 입장 멘트와 함께 입 다물고 김민규 손등만 토닥였다. 나 괜찮아 안울어. 안울거야. 전원우한테 나 보여주려고 왔는데 잘생기게 있어야지. 그래야지. 스프레이 빡빡하게 먹여 가차없이 드러낸 김민규 이마가 웨딩드레스보단 못해도 버진로드 비벼볼만큼은 반짝반짝 했다.

 

" 이로써 두 사람이 정식으로 부부가 됐음을 선포합니다. "

 

시작부터 끝까지 구식을 숭배하는 집안다웠다. 전원우가 신부한테 손내미는 타이밍만 기다리고 있던 현악단이 어디서 들어본적있는 클래식을 연주하는것으로 예식은 최종장을 알렸다. 어우 졸려. 적당히 친밀해 보이도록 템포 맞추던 신부와 원우의 표정에서 안도로 포장한 피로를 읽었다. 갈비탕 받아먹는 하객들 사이에 섞여 밥먹다가 인사오는 전원우를 똑바로 봤다. 연기 존나 못하는 사람이니 피해가든가 모른척 할 줄 알았는데 표정 하나 변하는게 없었다. 꼭 저렇게 예상 못한데서 사람 뒷통수를 치는 사람이다. 아냐 원우 형 안그래. 십년 넘는 시간 좆빠지게 한 캐해석 순식간에 동인해석 만들고 지만 혼자 여유롭고. 건배사 외치는 승철이 형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지구가 멸망이라도 한다면 몰라 저 형 건배사 듣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거다. 김민규와 전원우가. 그리고 여기 모두가. 함께 있는 날은 다시는 오지 않을거다. 우리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함부로라도 서로에게 서로의 소식을 전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며 쌓아온 추억이라도 보존하기위해 전전긍긍하는 일뿐이다. 너나할거없이 서러웠지만 아무도 울지는 않았다. 단지 침묵했다.

 

결혼식이 끝났다. 열일곱부터 스물아홉까지 김민규와 전원우의 지리멸렬 열애사도 따라 끝났다. 전원우가 사준 석고 방향제 달린 구형 스포티지 시동 거는데 그제야 좀 눈물이 났다. 어차피 끝난거 잘살라는 거짓말이라도 해서 말 한번 붙여볼걸. 악수 하는 척 손 잡아볼걸. 구질구질한 후회가 줄을 이었다.

 

 

69시간 전

그래서 현관 문 열고 처음 한 생각은 지구가 진짜 망하나보다였다. 아님 벌써 망했든가. 말이 안나와서 쳐다만 보는데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있던게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고개 드니 더 확실했다. 전원우다. 눈 코 입 목 어깨 팔 다리 몸통 전부 다. 끔찍하게 보고싶고 만지고싶고 냄새맡고 싶었던 그대로인. 실재하는 전원우. 아... 씨발. 그게 도대체 몇년인데 얼굴보자마자 다 까먹어졌다. 원우가 입도 열기전에 먼저 끌어안고 닿는데다 이빨 박아넣지 않기위해 민규는 이를 악물어야했다.

 

" 민규야. "

" ... 어. "

" ... "

" 왜... 왔냐. "

" 그냥... "

" 소행성 뭐. 어쩌구. 그래서? "

" 뭐... "

" 근데 왜 나한테 와 와이프랑 있어야지. "

" 와이프 애인 만나러 갔어. "

" 와이프는 애인만나러 가고 너는 나 만나러 왔다고. "

" 응. "

 

내가 너한테 뭔데. 더는 못참고 물었다. 현관 밖에 세워놓고 지랄 떨고 싶은 맘은 없었는데 속이 끓었다. 뭐가 아니라 그냥... 그냥 한번... 보기만 하려고 했어. 도로 고개 숙이느라 쏟아진 머리카락을 쥐어채고싶었다. 보면 어쩔건데 니가. 이대로 같이 있을거야? 너 그럴수있어? 좀 있으면 우리 다 죽는대. 너 니네 엄마아빠한테 안가도 돼? 좋은 아들 착한 아들 니네 집안 다 너만 믿고 있을텐데 맨 손으로라도 방공호 하나 파야 되는거 아니야? 왜 나한테 오는데. 그냥 한번 보기만 하려고 했다고? 보면. 내가 너 또 보내줄것 같아? 넌 내가 그렇게 병신호구새끼로밖에 안보여? 하고싶은 말이 존나 너무 많아서 아무 말도 못했다. 명치에서부터 열이 솟아 대가리까지 띵했다. 내가 가려고 했어. 하던대로 내가. 내가 가서. 그냥 한번 보기만 하려고 했는데. 니가 오면 어떡해. 니가 오면 내가.

 

" ... 나 여기 없으면 어쩌려고 왔냐. "

" 찾으려고... 했는데. "

" 말은 잘하지. "

" 근데 있을 것 같았어. "

" 문 안열어줬으면 어쩌려고. "

 

쾅. 반만 열린 문틈에 서있던 전원우가 한발 뒤로 빼더니 눈 앞에서 문을 쾅 닫았다. 이건 또 씨발 뭐하자는 액션인가싶어 팔짱끼고 닫힌 문 쳐다만 보는데 도어락 버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삑삑삑삑. 지 생일 네자리 꾹꾹 눌러 잠금 해제한 전원우가 다시 문열고 들어와 현관에 섰다. 열어보려고 했어. 니가 안열어주면, 내가 열어보려고. 기가 찼다.

 

" 형 나 사랑하냐? "

" ... "

" 이제와서? "

" ... 안돼? "

" ... 너는 진짜... "

 

개새끼야 형.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소행성 충돌까지 54시간, 54시간이 남았습니다. 충돌은 정부의 예측보다 빠를 수 있으며 소멸 확률은 0.3%, 0.3%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국가는 최후까지 국민안전을 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국민여러분께서는 부디 정부의 지침을 따라 행동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소행성 충돌까지 54시간, 54시간이 남았습니다. 충돌은 정부의 예측보다 빠를 수 있으며...

 

 

한국인 하여튼 존나 부지런해. 처음 방송 때리고 잠잠하던 얼마동안 한시간 간격으로 녹음 따놨는지 시간마다 길거리가 쩌렁쩌렁했다. 하루도 이틀도 아니고 삼일이나 남았는데 잠은 자야될거아냐 인간적으로 인력낭비 지린다 진짜로. 뒤척이던 민규가 인상 잔뜩 찡그리고 눈을 떴다. 엄마야 깜짝이야. 눈 떴더니 전원우가 보였다. 눈 떴는데 전원우가 있다. 지구 멸망한다는 방송보다 새벽 빛에 기대 전원우랑 눈 맞추고 있는게 더 실감났다. 지구가 종말하는구나. 세상이 끝나는구나. 그렇구나.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전원우가 문득 물었다. 너는 왜 나한테 안왔어? 내 눈가 문지르는 손가락이 차가워서 당겨와 입술로 물었다. 뜨거워. 웃길래 따라 웃었다. 너는 좀 뜨거워져도 돼. 손가락 마디마디 입술로 문지르는데 왜 안왔냐구. 또 묻길래 쳐다봤다. 부푼 눈매에 묻은게 졸음이 아니고 울음인게 보여서 속이 상했다.

 

" 무서워서. "

" 뭐가. "

" 너 붙잡고 매달렸는데 지구 멸망 안할까봐. "

" 쪽팔려서? "

" 아니. 지구 멸망 안하면 계속 살아야하는데 내가 그 뒤로 형 안보고 살 자신이 없어서. "

" ... "

" 그만 좀 울어라. "

 

으휴으휴. 달래는 손에 기댄 뺨이 금새 축축해졌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전원우 웃는게 좋았지만 우는것도 좋았다. 어떻게든 살아남는것보다 반드시 죽는게 더 희망적이었다. 남은 54시간 사이에 어떤 좋은 일도 일어나지 않아 이대로 죽는다면 더 바랄게 없을텐데. 전원우와 내가 한 침대에 겹쳐 누운채로 우주의 일부분이 된다면. 운좋게 원형 그대로 남아 우주를 떠돌다 어느 발전한 문명의 외계인이 우리를 데려간다면. 대충 폼페이의 연인들 비슷한걸로 박제시켜줄지도 모른다. 종말 앞에 서로 꼭 껴안은 애틋한 연인으로만 남겨주겠지. 낳아놓고 키워줬더니 호모놀음에 미쳐돌아 좀있으면 뒤진다는데 부모형제 얼굴한번 안쳐다본 호로자식 같은 소리는 지구와 함께 종말할것이다. 영영 잊혀질것이다. 그만하면 해피엔딩이지. 우리한테는 영영 없는줄만 알았던. 해피엔딩이다.

 

 

48시간 전

근데 형.

응.

진짜 혹시라도 진짜 절대 그럴 일 없겠지만 만에... 아니 백만에 천만에 하나라도 지구 멸망 안하면.

... 응.

그러면...

...

내가 데려다줄게. 집에.

...

안매달릴게. 집 앞에서 키스하자고 덤비지도 않고 데려다만 줄게. 계속 만나달라고 떼쓰지도 않을게. 그냥 딱 데려다만 줄테니까. 내가 데려다줄테니까.

응...

그러니까....

...

혼자 몰래 사라지지마. 알겠지. 약속.

... 약속.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