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좀 들어?”
나른한 몸을 뒤척이다가 눈을 뜨니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걱정스러운 듯이 바라보는 시선이 저를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욱씬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 했지만 역부족이라서, 가만히 누워서 젖은 머리칼을 이마에서 떼어주며 볼에 입 맞추는 그를 눈동자만 또륵또륵 굴려가며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다 쉬어서 까끌거리는 목소리가 조금 낯설다.
“…어떻, 어떻게 된 거예요?”
[민원] 이제는 좀 성장했을까
- 월간민원 2020-06호의 <어리고 어려서>와 이어집니다.
- 오메가버스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어났어? 나 방금 막 회의 마치고 나왔어.’
일어나면 연락하라는 문자를 받고 답장을 했는데, 화장실에서 나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 사이에 전화가 걸려왔다. 보이지도 않을 텐데 고개를 끄덕이던 원우는 통화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방금 막 일어났다고 대답을 했다.
작게 웃는 목소리가 괜히 막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잠시 바르르 떨다가 텀블러에 물을 가득 담고 발포 비타민과 영양제를 같이 섞었다. 그대로 들고 거실로 와서 흔들의자에 몸을 싣고는 음료를 조금씩 홀짝거리니 뭘 먹냐는 물음이 들려왔다.
하여간 귀는 정말 밝은 사람이다.
“그냥 간단히, 영양제랑 비타민…?”
‘밥을 먹어야지, 물배만 채우면-’
“이제 막 일어나서 배가 안 고파요.”
결혼 생활을 할 때에도 제일 많이 마찰을 가진 부분은 식성이었다. 원우는 배고픔을 잘 모르는 편이었고, 민규는 늘 허기진 상태로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먹는 걸로 또 참견을 하기에 단호하게 말을 끊으니 할 말을 잃었는지 민규는 머뭇거리다가 작게 한숨을 쉬면서 전화에 대고 앓는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지금 애가 타는 쪽은 민규인 모양이다.
‘보고 싶어.’
“보면 되죠, 나 이제 한국에 있는데.”
‘입국 날짜 왜 속였어?’
“제가 언제 속였어요? 말을 안 한 거지.”
‘잘 거라고 했잖아.’
“잤잖아요. …비행기에서요.”
원우는 불과 24시간 전까지만 해도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쇼 뒷풀이 파티에 참여하고 있었고, 그 모습들이 연예기사며 SNS며 잔뜩 도배를 하고 있었다. 신나게 놀고 있는 사진에 질투가 나니 얼른 입국하라는 민규의 문자가 오기도 했었다.
다만 원우는 애초에 귀국하려고 티켓을 끊어놨었고, 호텔에서 밀린 잠을 자려다가 리셉션에 참가해달라는 디자이너 측의 간곡한 부탁에 연회장에 들러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잠시 머물다가 공항으로 바로 출발해 비행기를 탔다는 사실을 민규가 몰랐을 뿐이다.
비행기에 타기 전 민규에게 이제 자려고 한다는 메시지만 남기고 전원을 껐었다. 한국에 들어올 때에도 권 실장에게 미리 예고한 휴가니까 제게 업무 때문에 연락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니 민규가 이제 막 출근했을 시간이었다. 사실 어느 정도 계산되었던 일정이니 그저 방금 입국했고 집에서 밀린 잠을 자겠다고 메시지를 남긴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민규가 조금 서운할 만도 하기는 했다.
‘확 지금 갈까?’
“연애가 월급주고 밥 먹여주지는 않아요.”
‘내가 대표인데?’
“자꾸 그러면 저 다시 출국해요?”
협박 아닌 협박에 민규가 꼬리를 내렸다. 아직 오후 4시. 보통 7시 즈음 퇴근하는 사람이니까, 회사에서 열심히 밟아서 원우의 집으로 와도 8시에 육박할 것이다. 오랜만에 서프라이즈도 해주러 가볼까. 기지개를 켜면서 하품을 한 원우는 텀블러의 음료를 다 비웠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민규는 많이 피곤하냐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여간, 걱정도 많고 정도 많은 사람.
“좀 자고 비행기 타려다가 리셉션에 가느라 못 잤어요.”
‘그러게 뭐 하러 그렇게 급히 들어왔어?’
“출국할 때부터 정한 건데요, 당신한테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조곤조곤 말대답을 다 하니 민규가 한숨을 쉬다가 보고 싶다며 다시 칭얼거렸다. 귀엽다. 이 연하남이 이렇게 귀여운 사람인 것을 그 때는 왜 몰랐을까 싶어서 원우가 작게 웃었다.
보고 싶다. 이제는 제게 사랑만 주는 이 멋진 남자가 보고 싶다.
“오늘 할 일 많아요?”
‘어… 그다지? 지금 갈까?’
“안 돼요, 근무 시간에는 일 하세요.”
3년의 결혼 생활, 이혼 후 4년 만의 재회.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관계가 시작된 것도 아직 1년이 안 되었다. 연애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원우가 민규의 스케줄에 무조건 맞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무명 모델이었던 그 시절에는 민규가 부르면 언제든지 나갈 수가 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원우의 스케줄에 맞춰서 만나야 할 정도로 입장이 많이 바뀌었다. 해외 행사도 로케도 많아서 한 번 나가면 한 달을 통으로 외국에서 보내기도 했고 낮이고 밤이고 스케줄이 잡히면 아무리 민규가 만나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
게다가 다시 집을 합치고 싶다는 민규의 의견에 무턱대고 동거부터 하면 예전과 다를 것이 뭐 있겠냐며 연애부터 하려면 진짜 제대로 연애부터 하자며 원우가 반박했다. 더 애 닳고 간절한 사람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민규는 원우의 의견에 따랐다.
심지어 아직 원우가 사는 집에 발도 못 들인 상태였다.
‘나 퇴근할 때까지 뭐 할 거야?’
“일단 좀 씻고… 나 어제 리셉션 이후로 씻지도 않고 그냥 잤어요.”
‘진짜 피곤했나보다. 더 잘래?’
“됐어요, 진짜 자면 삐질 거면서 빈말 하지 말아요.”
‘…정말 많이 피곤하면 좀 자야지.’
“안 돼요, 일이 있어서 이따가 나가야 해요.”
‘그 회사 돈 없대? 원우 네가 벌어들이는 돈이 얼마인데…’
“민규 씨.”
원우의 말에 민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전에도 원우에게 일이 너무 많으면 제가 벌겠다거나 회사를 인수해서 스케줄을 느슨하게 만들겠다거나 하는 말을 했다가 한바탕 싸웠더니 바쁜 원우가 해외로 나가면서 로밍도 안 하고 3주나 연락이 끊어서 애간장을 태운 적이 있었으니 말을 조심해야 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이전과는 다르게 원우가 절대적 우위에 있었다.
샤워를 마친 원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5시가 조금 넘었다. 적당히 옷을 골라서 입고 예정대로 이동하면 충분했다. 옷장을 열어 한참을 고민하다가 검은 스키니 진을 꺼냈고, 하얀 민소매 위에 얇은 재질의 하늘색 셔츠를 입었다. 마른 몸이 그대로 드러나는 핏을 보던 원우는 체인도 하나 꺼내서 바지에 걸었다.
오랜만에 샵이 아닌 집에서 직접 머리를 만지려니 어색하긴 한데, 봐줄만한 정도로 모양을 내고 꾸미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피식 웃고는 은테의 안경도 꺼냈다.
모델 전원우가 아닌 그냥 전원우의 모습이 오랜만이라 낯설다.
운전을 할까 싶었지만 아직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 혹시라도 졸음운전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택시를 타고 향한 곳은 백화점이었다. 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유명 디자이너의 신상이 바로 어제 출시되었기에 예약한 물건을 찾기 위함이었다.
직원의 안내로 물건을 수령한 원우는 마음에 쏙 드는 실물을 보고 작게 웃었다. 생각보다 잘 빠진 바디가 괜찮은 것 같아서 웃다가 6시가 훌쩍 넘었음을 깨닫고 곧 걸음을 재촉했다.
그래도 민규가 퇴근하기 전에 도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외출은 언제 끝나? 데리러 갈까? 7시에 딱 퇴근해서 대기할게.]
택시에 오르고 보니 문자가 와있었다. 뭔가 강아지가 주인을 기다리듯 꼬리가 붕붕 흔들리는 느낌이 드는 메시지를 보니 괜히 또 웃음을 감출 수 없어서 원우는 입가를 씩 올리며 답장을 보냈다.
[내가 언제 끝날 줄 알고?]
[언제든, 내가 다 맞춰야지. 그래서 약속 장소가 어디라고?]
[알려주면 지금 당장 올 거잖아.]
[당연하지, 엄청 보고 싶은데.]
간질간질. 민규는 능청스러운 말을 제법 자주 하는 편이었다. 3년의 결혼 생활에서도 못 들었던 멘트들을 1년도 안 되는 세월 안에 다 들으니 때로는 억울했다. 이렇게 정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싶어서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런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지 민규는 제가 그동안 못했던 표현까지 다 해가며 원우에게 애정을 쏟고 있었다. 그러니 원우는 망설이면서도 완고하게 밀어내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 깊게 사랑하고 있었다.
[아무리 대표라도 일은 해야지.]
[아무리 대표라도 연애는 해야지.]
[나는 돈 잘 버는 남편이 좋은데?]
[대충 해도 돈 많이 벌어. 걱정하지 마.]
원우는 피식 웃다가 창밖을 슬쩍 살폈다. 코너만 돌면 민규의 회사인데 신호에 걸린 모양인지 택시가 멈춰있었다. 짧은 거리니까 걸을까 싶어 계산을 하고 내리니 아직은 더운 기운이 남아 후끈한 기운이 몸에 딱 붙는 기분을 느꼈다. 금요일의 퇴근시간대라 북적이며 걷는 사람들은 옆에서 톱스타가 지나가건 말건 신경 쓰지도 않았고 원우는 편하게 걸음을 재촉했다.
걸음을 재촉해 민규의 회사 건물로 들어가니 건물 내부는 시원했다. 에어컨이 빵빵해 오히려 으슬으슬한 느낌이라 부르르 떨다가 로비에 있는 카페에 앉아 달달한 과일 음료를 주문했다. 아직 30분이 남았으니 민규를 기다리면서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아마, 여기까지 온 것을 알면 깜짝 놀라겠지.
[뭐야, 왜 답이 없어… 바빠?]
[카페에 앉아서 놀고 있어.]
[뭐하고 노는데?]
[김민규 생각.]
이번엔 답장 대신에 전화가 온다. 받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통화 버튼을 누르니 정말 많이 참고 있는지 씩씩거리는 콧소리에 원우가 피식 웃어버렸다.
‘뭐야, 왜 웃어?’
“민규 씨가 귀여워서요.”
‘다 큰 남자한테 무슨…’
“아무리 커도 나보다 어리잖아요.”
‘…말은 언제 편하게 할 건데?’
“지금도 편한데요? 경어라도 써줄까?”
‘됐네요. 그래서 언제 끝나는데?’
“아마 밤새 안 끝날 일정인데…”
‘뭐?!’
“민규 씨, 귀 아파요.”
미안.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에 지적했더니 금방 꼬리를 내리고 사과하는 말이 돌아온다. 남은 시간이라도 업무에 집중하라고 딱 잘라서 전화를 끊으니 금방 또 문자가 울린다.
[진짜 나 안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정말?]
[정말이니까 얼른 일 해.]
귀여워. 혼자 작게 중얼거린 원우는 빨대를 물고 음료를 들이켰다. 입 안 가득 음료가 채워지니 괜히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남은 시간을 기다렸다. 시간이 안 가는 기분도 들었지만 1주를 꼬박 참았는데 20분을 못 기다릴까.
얼른 보고 싶다.
[1분 남았다. 빨리 보고 싶어.]
애가 타서 금방 또 문자가 오기에 원우는 피식 웃다가 제가 마시던 음료의 잔을 얼굴에 대고 셀카를 찍었다. 계속 못 본다고 억울해서 칭얼거리는 0호 팬에게 팬서비스라도 해주는 심정이었다. 나쁘지 않게 나와서 사진을 보냈는데 이번에는 답장도 전화도 오지 않는다.
혹시 못 보고 주차장으로 내려간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는데…
“전원우…!”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급하게 뛰어왔는지 허리를 푹 숙이고 헥헥거리는 민규가 눈에 들어왔다. 힘들어서 인상 쓴 모습도 잘생기고 멋있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아마 저도 만만치 않게 콩깍지가 씌인 모양이다 싶어서 원우가 씩 웃었다.
“왔어?”
“너 진짜… 왜…”
“진정하고, 좀 마실래요?”
원우는 제가 마시던 음료를 권했다. 잔을 받아들어 벌컥벌컥 마시다가 얼음 몇 알을 입에 머금은 민규가 맞은편에 앉으며 얼음을 아작아작 씹으며 불만스러운 눈빛을 내보였다.
“일정 있다는 거 뻥이지?”
“일정 있어요, 남자친구랑 데이트.”
“…누구랑?”
“김민규라고, 전 남편인데.”
원우의 말에 민규가 눈을 깜빡거리다가 동그랗게 뜬다. 그제야 상황이 파악된 모양인지 입을 떡 벌리기에 원우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슬쩍 웃었다.
하여간, 귀여운 사람인 건 확실하다.
“진짜 나랑 데이트하려고 온 거야?”
“그냥 갈까요?”
“아니!”
그럼 같이 나가요. 원우가 피식 웃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먼저 일어났다. 빈 컵과 트레이를 정리하고 카페 출구로 향하니 민규가 졸졸 따라오는 모양새가 귀엽긴 한데, 이러려고 온 건 아니니까.
손을 내밀었더니 민규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잡아도 돼…?”
“아, 혹시 연애하는 거 밝히기 좀 그래요?”
“아니! 돼! 완전 돼!”
여태 연애 고수인 것처럼 굴다가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인다. 허둥지둥 손을 잡는 모습을 빤히 보던 원우가 먼저 깍지를 걸었다.
“너… 괜찮아?”
“벌써 30대 중반인 오메가가 연애하는 게 어때서요?”
혹시 연애만 하고 끝낼 생각이었어요? 농담을 하면서 피식 웃던 원우가 민규를 바짝 끌어당겨 쪽 소리가 날 정도로 제대로 입술을 부딪쳤다가 금방 떼었다.
“질리게 연애하다가 결혼하자면서요. 뭐 어때?”
스캔들 또 뜰 거면 뜨라지, 어차피 결혼도 할 사이인데. 적극적인 원우의 모습에 얼떨떨한지 멍하게 있던 민규가 손을 꽉 잡는 힘이 느껴졌다. 페로몬이 살짝 풀리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 긴장이 되었지만 원우는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얼른 차로 가요, 나 데이트 코스 다 짜왔는데.”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오르니 원우가 주소를 부르려던 입을 민규가 막았다. 뒷목을 꽉 붙잡고 입술을 부딪치고 혀를 얽는 그의 행동을 원우도 거절하지 않았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허리로 점점 내려오던 손이 바지 안으로 들어갈 즈음에야 원우가 민규를 살짝 밀어내면서 미소를 지었다.
“너무 급하잖아요.”
“응, 엄청 급해.”
“나 배고파요, 30시간 넘게 공복인데.”
배가 고프다는 말에 민규가 입맛을 다시다가 가볍게 입술을 부딪치는 정도로 스킨십을 끝냈다. 평소에 원우가 배고프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으니 적어도 배가 고플 때에는 반드시 뭐라도 좀 먹이려 무던히도 노력하는 민규였기 때문이다.
주소를 부르니 내비게이션을 입력한 민규가 차를 몰았다. 그리고 차가 멈춘 곳은 서울을 조금 벗어난 바닷가 근처의 제법 분위기도 괜찮고 프라이빗한 호텔이었는데, 원우는 벨보이에게 발렛을 맡기고 호텔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먹고 싶었던 것이 있다며 민규를 끌고 건물을 빙 돌아 골목 안쪽으로 들어간 그의 걸음이 멈춘 곳은 단란한 분위기의 고깃집이었다.
“…삼겹살?”
“싫어해요?”
“아니, 좋지. 근데 뭐 호텔까지 와서…”
“호텔은 당신이랑 주말까지 쉬려고 온 거고.”
혹시 주말에 출근해? 원우의 물음에 민규가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네요, 예약을 월요일까지 잡았거든요.”
“나도 월요일까지 쉴까?”
“밀린 애정 다 받고 월요일은 혼자 쉴 생각인데?”
식당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니 직원이 서빙을 하고 고기를 구워준다. 적당히 배를 채우면서 가볍게 소주도 마시고, 오랜만에 함께 하는 식사라서 웃음만 가득하고 좋은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배가 부르니 조금 걷자는 원우의 말에 10분 남짓 호텔 주변을 산책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서 더는 못 참겠다는 민규의 말에 두 사람은 체크인을 하고 예약한 룸으로 올라갔다.
방이 넓지는 않지만 침대는 넓은 방이었다.
“호캉스 보내려면 좀 더 좋은 방을 예약하지 그랬어.”
“글쎄요… 아마 그럴 정신은 없을 지도 모르겠는데.”
조금 달뜬 목소리가 들려 민규가 돌아보니 원우가 볼이 살짝 상기되어서 웃고 있었다. 그리고 페로몬도 조금 진하게 풍겼다.
“원우야, 너…”
“나 내일모레 생일이에요, 민규 씨.”
“어? 어, 알지. 내가 뭐 하고 싶냐고 물어봤었잖아.”
“그리고 지금 사이클도 오는 것 같은데…”
요즘 몸이 안 좋아서 이즈음이 아닐까 싶었는데, 빙고네요. 원우가 나른한 표정을 지으면서 민규에게 몸을 기댔다. 극열성의 몸이라 자주 오지 않는 사이클만큼은 꼭 연인과 보낼 생각이었다며 어깨에 팔을 감아오는 모습에 잠시 멍하게 있던 민규가 원우를 꼭 안고 볼에 입을 맞추며 작게 속삭였다.
“생일 미리 축하해, 사랑해.”
“으응, 나도 사랑해요.”
그 해 여름,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고 시원하게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