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시작된 불길은 금세 온 집안을 집어삼켰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민규는 베란다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덜덜 떨었다. 안쪽에서 가구 같은 것이 와르르 무너졌다. 민규가 귀를 막고 눈을 꼭 감았다. 모아 세운 무릎 위에 얼굴을 묻고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뜨거워. 오지 마. 무서워. 안 들려. 안 보여. 저리 가. 오지 마. 오지 마.
집을 헤집던 소방관이 민규를 발견하고 안아 들었다. 민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바둥바둥 몸부림을 하는 탓에 소방관이 데리고 나가는 데 애를 먹었다. 코와 입을 막아주었음에도 매캐한 연기가 여린 호흡기에 달라붙었다. 민규는 켁켁거리며 연신 기침을 하다 이내 정신을 잃었다.
소방관은 바깥에 있던 부모님 곁에 민규를 두었다. 비교적 멀쩡한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 쪽에는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축 늘어진 민규를 품에 안은 어머니가 오열했다. 그는 소방관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딸이 못 나왔어요. 딸이 안에 있어요."
"어머님, 진정하세요. 금방 데리고 나올 거예요."
아파트 창으로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가 하늘 위로 뭉게뭉게 솟았다. 커다란 소방차 주변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렸다. 넘실거리는 시뻘건 불길은 잦아들 기미가 없었다. 어머니는 민규를 꼭 안고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민규야, 민규야. 민규야. 제발. 제발.
민규의 어린 여동생은 끝내 구출되지 못했다. 아버지의 다리 한쪽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다.
어머니는 민규를 외딴 시골의 친정 집으로 보냈다.
소용돌이: 화마
“스님, 저 왔어요.”
풍경 소리 사이로 민규의 활기찬 목소리가 퍼졌다. 작은 법당의 문 위에 걸린 나무문패에 ‘법화사’ 라는 굵고 힘찬 글씨가 써 있었다. 앞마당의 작은 화단을 보고 있던 주지(住持)가 허리를 폈다.
“일찍 왔구나.”
“네, 과제 후딱 내고 왔어요.”
민규가 해맑게 웃었다. 이제 진짜 종강했다고 신나서 재잘재잘했다. 주지는 허허 웃고 밀짚모자를 고쳐 썼다. 그가 걸음을 옮기자 민규는 익숙하게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법당 옆에 마련된 처소로 들어갔다.
“날이 덥지.”
“그러게요. 아직 6월 말인데 벌써 덥네요.”
민규는 땀을 훔치고 익히 아는 자리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주지는 창을 활짝 열고 그 맞은편에 앉았다.
“학교에선 별 일 없었고?”
“아휴, 그럼요.”
의례적으로 묻는 질문에 민규가 팔을 들어 흔들었다. 그 손목에는 팔찌 형태의 염주가 감겨 있었다.
“염주도 잘 끼고 다녔고, 불 근처엔 얼씬도 안 했어요. 흡연구역도 피해 다니고 담배 피는 친구들이랑 거리 두고.”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
주지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민규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그만큼 주의했다고요.’ 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새 방도라는 게 뭐예요?”
민규가 눈을 반짝였다. 잔뜩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주지는 공연히 열린 창 너머로 시선을 두었다. 일단 민규를 부르긴 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민규는 불과 함께 태어났다. 그 말인즉, 끝내 불로 돌아갈 생이라는 것이다. 불로 죽을 삶을 타고난 민규의 주위에 늘 화마가 맴돌았다. 민규의 옆에 피어난 작은 불씨는 십중팔구 큰 화재로 번졌다. 그 불길은 언제나 민규를 향했다.
법화사 주지는 민규의 외할머니를 잘 알고 있었다. 십구 년 전 어느 날 그 집 손주가 태어난다는 것을 들었을 때 얼마나 걱정을 했던가. 날이 좋지 않았다. 장소도 좋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미처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세상에 나온 민규는 악재 속에서 우렁찬 울음을 토해냈다.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손녀를 잃었던 화재 이후 민규가 이곳으로 떠밀려 온 것은 주지의 입김이 컸다.
주지는 수첩을 뜯어낸 작은 종이를 건넸다. 민규가 그것을 받아 펼쳤다. 낯선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게 뭐예요?”
민규가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질문했다. 주지는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 갓 성인이 된 아이를 홀로 보내도 될는지 안심이 되지 않았다.
“내 오랜 친구가 있는 곳이야.”
“스님 친구 분이요?”
“그래. 이쪽 분야엔 나보다 더 전문가지. 그 친구가 도움을 줄 거야.”
아아. 민규는 종이 끝을 만지작거리며 주억거렸다. 주지가 잠시 공백을 두고 말을 이었다.
“물귀신에 붙잡힌 애가 하나 있다더라.”
“예?”
“불을 다스리는 데엔 물만한 게 없지.”
주지는 민규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민규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설명을 기다렸지만 덧붙는 말이 없었다.
“봉선화가 예쁘게 피었는데, 손톱 물들이는 건 어떠니.”
주지가 분위기를 환기하며 산뜻하게 물었다. 민규는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나중에 와서 할게요.”
“왜, 온 김에 하지.”
“바로 집에 가서 내려갈 준비 하려고요.”
민규의 말에 주지는 입술을 일자로 다물었다. 얼굴에 미약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민규는 부러 해사하게 말했다.
“빨리 가서 빨리 고치고 오면 좋잖아요.”
히히 웃는 얼굴에 차마 나쁜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주지는 못 말린다는 듯 천천히 도리질을 했다. 그렇게 가볍게 마음먹을 사안이 아니라며 잔소리가 이어졌다. 불은 어떻고 물은 어떻고 기운의 조화는 어떻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것이라 민규는 그저 기계적으로 예예 대답했다.
집에 돌아와서 주소를 검색해본 민규는 약간 막막해졌다. 주지스님의 친구가 있다는 곳은 남쪽 끝의 크지 않은 섬이었다. 육지에서 바로 가는 배가 없어 큰 섬을 하나 거치고 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예상 시간을 계산해보니 아침에 출발해도 저녁 다 돼서 도착했다. 가볍게 마음먹을 사안이 아니라더니 진짜 각 잡고 결심해야 했다.
민규는 부지런히 짐을 싸다 말고 생각에 잠겼다. 스님이 또 뭐라고 주의하셨던 것 같은데. 친구 분 댁에 그 물귀신이랑 같이 가라고 했던가. 귀신이 아니라 귀신에 사로잡힌? 빙의한 사람이라는 거였나? 아, 제대로 귀담아 들을걸. 귀신은 무서운데. 민규가 가방 지퍼를 지익 닫았다. 일단 가보면 알겠지.
*
해가 쨍쨍하고 날이 푹푹 쪘다. 민규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구겨 앉아 윗옷을 펄럭였다. 작은 섬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배 위였다. 드나드는 시간이 하루에 딱 세 번뿐이었다. 놓치면 안 돼서 부랴부랴 뛰었다가 땀으로 샤워했다. 고속도로의 작은 사고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 탓이었다. 민규는 뒤집힌 승용차를 창밖으로 보고 몸을 사렸더랬다. 괜히 관심 뒀다가 터질라.
“감사합니다.”
민규가 꾸벅 인사하고 선착장에 내렸다. 어째 섬에 다다를수록 공기가 끈적해진다 싶었는데 착각이 아니었다. 민규는 손을 쫙 펼쳐 허공을 휘저었다. 습기가 가득해 손바닥에도 물방울이 맺히는 느낌이었다. 원래 섬은 다 이런가. 민규는 손부채질을 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섬은 민규의 동네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거리엔 사람이 없어 한적하고 수평선이 보이는 경관이 아름다웠다. 다른 게 있다면 눅눅한 바닷바람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착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덥고 습한 대한민국 여름이 여기에 다 고여 있는 것 같았다.
민규는 선착장 근처의 슈퍼 마트에 들렸다. 이온음료 한 병과 아이스크림 하나를 계산하고 마트 앞 평상에 걸터앉았다. 진짜 덥다. 민규가 아이스크림 비닐을 벗기며 한숨을 쉬었다.
“젊은 사람이 여기엔 왜 왔어?”
마트 아주머니가 슬며시 민규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민규는 사람 좋게 웃으며 가볍게 묵례했다. 그 사이 민규를 태우고 배를 몰았던 선장이 마트 바깥의 냉동고 앞을 어슬렁거렸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고 곧장 평상으로 다가왔다.
“그래. 나도 궁금했는데.”
선장은 아무렇지 않게 껍질을 까서 한입 베어 물었다. 어라, 계산 안 하시고. 민규가 아주머니에게 눈짓을 했지만 무시당했다. 두 쌍의 눈동자가 민규에게 고정되었다. 민규는 잠시 말을 골랐다.
“찾아 뵐 사람이 있어서요.”
“누구?”
“이 동네에 젊은이가 찾을 만한 사람이 누가 있나.”
민규는 멋쩍게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베었다. 입안에 얼음조각을 굴리면서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를 꺼냈다. 아주머니와 선장은 열심히 추측하는 중이었다.
“또래는 다 나가고 없는데.”
“아니지. 원우 있잖아.”
“아, 그렇네. 그럼 원우 친구인가?”
“이렇게 잘생긴 친구 있으면 우리가 모를 리 없지.”
“총각, 원우 찾아왔어?”
민규가 어정쩡하게 수첩 쪼가리를 들고 멈추었다. 주소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아주머니의 질문이 한발 빨랐다.
“원…… 누구요?”
“저기 파란 지붕 손자. 거기 만나러 온 거 아닌가?”
“아, 저, 그게 여기인가요?”
민규가 조심스레 종이를 내밀었다. 선장과 아주머니의 시선이 민규의 손바닥 위로 향했다. 아주머니가 주소를 한 자 한 자 짚어 보더니 갸우뚱했다.
“여긴 건넛마을이네.”
“그래. 원우한테 이런 친구 있으면 모를 수가 없다니까. 내가 여기 젊은이들 다 꿰고 있는데.”
민규는 다 먹은 막대를 이 끝으로 물고 선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어쩐지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민규가 주소를 되짚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동네에 젊은 사람이 없어요?”
“그럼, 여긴 다 커서 나갔지. 건넛마을엔 애들이 좀 남아 있긴 한데.”
“그러니 원우 그 놈이 참 불쌍해. 뭍에 나가지를 못해서 여즉 여기에 남아있으니까.”
“왜요?”
선장이 가볍게 혀를 찼다. 마지막 아이스크림 조각을 한입에 넣은 뒤 막대를 살살 흔들었다.
“걔가, 배를 못 타.”
“아…… 멀미가 심한가 봐요.”
“그건 아니고, 걔가 어릴 적에 탄 배가 뒤집힌 적이 있거든. 충격이 컸는지 그 이후로 배를 못 타더라고.”
선장은 막대를 빈 비닐에 쏙 집어넣고 평상 옆 쓰레기통에 던졌다. 조준이 엇나가 쓰레기는 바닥에 떨어졌다. 선장이 에이씨, 하면서 주섬주섬 주워다가 쓰레기통에 넣었다.
“안타깝지. 작년인가. 대학 면접 가야 된다면서 큰맘 먹고 배에 올랐는데 그 날도 물에 빠졌어. 아유, 이상하게 원우만 태우면 배 몰기가 그렇게 힘들어.”
“결국 학교도 못가고 지 할아버지 일이나 도와주고 있잖아.”
“그것도 애한테 영 안 맞는 일이지. 섬에 사는 놈이 물이랑 안 친해서는, 에휴.”
민규는 문득 주지스님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물귀신에 붙잡힌 애가 하나 있다더라. 민규가 거듬거듬 제 주변을 치우고 일어섰다.
“혹시 그 파란 지붕 집이 어디예요?”
“거기 들리게? 그럼 건넛마을 가기엔 늦어. 지금 가도 빠듯하겠구먼.”
“괜찮아요. 어차피 내일 찾아가려던 참이라.”
민규가 떠날 준비를 하자 아주머니도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일어났다. 선장은 마트 안으로 쏙 들어갔다. 아주머니가 길게 뻗은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길 쭉 따라가면서 오른쪽 살펴봐. 지붕이 새파래서 멀리서도 잘 보여.”
“감사합니다.”
민규는 꾸벅 인사하고 서둘러 발걸음했다. 파란 지붕 집에 들렀다가 하룻밤 묵을 곳을 찾으려면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여름이라 해가 길다는 것이었다.
민규는 두리번거리며 길을 따라 걸었다. 이 동네의 담장은 제 구실을 못할 만큼 낮았다. 자그마한 마을이라 서로 다 알고 살아서 그런가. 대문도 열려 있는 집이 이따금 보였다. 그 안쪽 마당에 묶여 있는 개와 눈도 여러 번 마주쳤다. 민규는 이온음료 뚜껑을 돌려 열었다. 벌컥벌컥 한 번에 반 쯤을 비워내고 크으, 탄성했다. 입술을 대충 훔치며 시선을 들었는데 오른편 저 멀리 새파란 것이 보였다. 저기다! 민규는 걸음을 빨리했다.
역시나 파란 지붕 집의 담장도 낮았다. 허리에 겨우 올라올 거면 담은 왜 쌓아 두는 거지. 그냥 영역 구분? 민규가 담장 안쪽을 기웃거렸다. 이 집은 마당개도 없었다.
“계세요?”
우렁차게 일단 소리를 뱉고 봤다. 민규는 목을 빼고 두리번거렸다. 잠시 후 큰 미닫이 문이 드르륵 열렸다. 그 안에서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마루를 가로질러 나와 슬리퍼를 신었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몰라 민규가 음, 으음, 하며 갈팡질팡했다. 그 사이 할머니는 대문을 열고 상체를 내밀었다.
“원우 보러 왔어요?”
“아아, 네. 아니, 보러 온 건 아니고. 그냥 들린 김에…….”
“들어와요.”
할머니는 이런 저런 손짓을 하는 민규에게 선뜻 집으로 안내했다. 실례합니다아. 민규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숙여 낮은 대문을 통과했다.
“육지서 왔지요? 법…… 법 무슨 절이었는데.”
“엇, 법화사요. 알고 계시네요.”
“우리 아들 내외가 원우 살리겠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서.”
민규는 아리송한 말에 굳이 되묻지 않고 할머니를 따라 들어갔다. 안쪽 큰 방에 민규를 앉힌 할머니가 에구구 앓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앉았다.
“나는 스님이 올 줄 알았는데 젊은 친구가 왔네.”
“하하, 그러셨어요?”
주지스님이 어떤 말을 했는지 머릿속에 박아 놓지 않은 게 후회됐다. 민규는 한 귀로 흘렸던 말을 천천히 되새겼다. 그래 봤자 떠오르는 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김민규는 타고난 성격과 다져진 사회기술로 할머니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아 정보를 얻어냈다. 갖은 고초를 겪으며 살아왔는데 이정도는 시련 축에도 끼지 못했다.
민규는 원우가 할아버지의 일을 도우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더불어 어업이 원우에게 안 맞는 이유도 들었다. 물에서 나는 것을 못 먹고 수영도 할 줄 모른단다. 아예 물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말이다. 어린 시절 물에 빠진 경험 때문이라며 할머니는 그 사건을 세세하게 전했다. 이어서 원우의 생애를 전해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 것까지 말해도 되나 싶은 내용도 더러 있었다. 덕분에 민규는 원우의 이면에 무언가 더 있음을 알아챘다.
“할머니. 저 왔어요.”
해가 서쪽으로 한창 기울었을 즈음 원우가 돌아왔다. 할머니는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민규가 따라 일어나 마당으로 향했다. 원우는 마당 한쪽에 자리한 작은 창고에 짐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배 정리하고 들어오신대요.”
“그려. 배고프지?”
원우가 그물을 그러모아 정리한 뒤 몸을 틀었다. 할머니 뒤의 낯선 인영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뒤에는 누구예요?”
민규가 쭈뼛쭈뼛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원우는 민규를 대충 훑고 물었다.
“뭍에서 왔어요?”
질문의 내용은 민규를 향한 것인데 눈길은 할머니에게 꽂혀 있다. 민규는 입술을 벙긋거리며 대답을 하려다 말았다. 할머니는 원우의 곁에 다가가 집 쪽으로 떠밀었다. 원우는 순순히 밀리면서 툴툴댔다.
“엄마 아버지가 보냈대요? 할머니, 이제 받아주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유, 그래도 늬 엄마 아빠가 널 위해서 고생하는데.”
민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마루에 얌전히 서 있었다. 마당에서 작은 실랑이를 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고 눈알만 굴렸다.
“스님도 아닌데.”
원우가 신발을 벗으며 민규를 위아래로 훑었다. 민규는 저도 모르게 공손히 두 손을 모았다.
“절에서 온 거 맞아요?”
“네, 네. 저기 법화사라고…….”
원우는 민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턱을 넘어 들어갔다. 민규가 쩝 입맛을 다시고 마루를 올라오는 할머니를 도왔다.
“아이구, 지 부모 속도 모르고.”
할머니는 쯧쯧 혀를 차고 미닫이 문을 활짝 열었다. 민규가 쪼르르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원우는 제 방에 들어가고 없었다.
민규는 이만 묵을 곳을 찾으러 가겠다 고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저녁 먹고 여기서 자고 가라고 민규를 붙잡았다. 여태 원우 때문에 온 사람들 다 그렇게 했다고 말이다. 민규는 떨떠름하게 들었던 가방을 다시 내려놓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은 원우 때문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민규는 싹싹하게 저녁 준비를 도왔다. 할머니가 손님은 쉬고 있으라 말렸으나 민규의 솜씨를 보고 그만두었다. 그 모습에 기가 막힌 것은 원우였다. 부엌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기에 슬쩍 들렸더니 오늘 처음 본 남자가 할머니와 살갑게 요리하고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왔어도 저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이번엔 포교하러 온 사이비인 것 같았다. 내일 바로 쫓아내야지. 원우는 발소리를 죽이고 제 방으로 돌아갔다.
“형, 저녁 먹어요.”
민규가 똑똑 문을 두드리고 빼꼼 얼굴을 들이밀었다. 책상 앞에 앉아있던 원우는 미미하게 눈썹을 찡그렸다.
“제가 형이에요?”
민규는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고 ‘얼른 와용~’ 하면서 멀어졌다. 원우는 안경을 고쳐 쓰고 갸웃했다. 놀리는 거야 뭐야. 저보다 어리다면 기껏해야 스무 살, 혹은 미성년자라는 말이다. 어린 놈이 포교하러 혼자 이런 델 와? 저 사이비 종교는 참 독특하다.
원우는 저녁상 앞에서 또 기막혔다.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할아버지와도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민규가 신기했다. 할머니 찌개 너무 맛있어요. 할아버지, 이건 제가 했는데 맛있죠? 간간이 말을 먼저 건네면서 눈가에는 웃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원우는 익숙하지 않은 겸상에 깨작깨작 밥알을 긁어 먹었다. 민규가 옆에서 팍팍 먹으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으며 맞장구쳤다. 원우는 괜히 숟가락으로 밥을 푹푹 찔렀다. 이 집 손자는 나인데, 왜 이 놈이 더 손자 같은 건지.
식사를 마칠 즈음엔 하늘에 어둠이 깔렸다. 원우가 부지런히 상을 치웠다. 민규는 이번에도 역시 부엌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원우는 민규에게 한 톨의 관심조차 주지 않고 개수대 앞에 자리잡았다. 고무장갑을 끼는 원우의 옆으로 민규가 은근슬쩍 다가와 섰다. 옆 얼굴에 시선이 따갑게 달라붙었으나 철저히 무시했다. 원우는 일부러 입술을 꾹 다물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민규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여기 되게 신기해요.”
들뜬 어린 아이 같은 목소리였다. 예상치 못한 첫마디였다. 원우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뭐가요.”
“편안해요. 불을 다스리는 데 물만한 게 없다더니.”
원우는 곁눈으로 민규를 한 번 흘겨보고 다시 설거지에 집중했다. 민규는 벽에 기대서서 원우를 구경했다. 동그란 안경알 안으로 속눈썹이 느리게 팔랑였다. 자그마한 움직임도 없이 담담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형한테 물귀신 붙은 거 맞죠?”
달그락 그릇을 닦는 손이 멈칫했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지만 그 찰나의 움직임이 곧 수긍이었다. 민규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내일 저랑 같이 갈 데가 있어요.”
원우는 반응하지 않고 그릇만 닦았다. 민규가 설명을 덧붙이려던 그때, 부엌으로 할머니가 들어왔다.
“민규 과일 먹을래?”
다정한 말투에 원우가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민규는 자두를 바구니에 담아 마당으로 향하는 할머니를 쫓아 나갔다. 할머니, 저 주세요. 제가 할게요. 멀어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원우가 휴우 한숨을 쉬었다.
원우는 설거지를 마치고 대화소리가 가득한 큰 방으로 들어갔다. 민규가 원우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엉덩이를 움직여 자리를 내었다. 원우가 조심스럽게 그 공간에 구겨 앉았다. 낮은 상 위에 자두가 한 소쿠리 가득했다. 그 옆에 잔뜩 구겨진 종이가 올려져 있었다. 원우는 자두 한 알을 집으며 종이에 쓰인 글자를 읽었다. 이건 건넛마을 쪽 주소인데. 원우가 질문하기도 전에 할머니가 곧장 본론을 꺼냈다.
“원우 내일 김천댁한테 다녀와라.”
“김천댁 할머니요?”
원우가 한입 베어 문 자두를 들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김천댁은 건넛마을에 학교를 다닐 때 원우에게 종종 도움을 주던 할머니였다. 이것 저것 챙겨주며 원우를 참 예뻐했다.
“저희 주지스님 친구 분이세요.”
“어쩐지 예사롭지 않더라니. 멀리 갈 필요 없이 여기서 찾으면 됐는데, 김천댁은 왜 우리한테 아무 말도 없었지?”
민규는 자두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열매의 반절이 입속으로 사라졌다. 원우는 볼록 솟은 민규의 볼을 쳐다봤다. 할머니가 자두 씨를 따로 모은 그릇을 원우의 앞에 가까이 밀었다. 원우가 남은 자두 알을 물고 나서 씨를 내려놨다.
생각해보면 김천댁 할머니가 하는 조언의 대부분은 물 근처에 가지 말라는 경고였다. 내일은 물 기운이 강하다, 수귀가 뛰놀기 좋은 날씨다. 가끔 섬뜩한 말을 하면서 원우가 물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했다.
“처음에 민규가 서영옥이 누구냐길래 그런 사람 이 섬에 없다 했잖아. 주소를 보니까 김천댁 집인 거야. 우리야 하도 김천댁 김천댁 부르니까 그이가 서 씨인 것만 겨우 기억나서.”
할머니가 주절주절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원우는 아무 생각 없이 입에 든 자두를 씹었다. 김천댁 할머니를 알고 있다면 일단 사이비는 아닌 건가. 원우가 슬쩍 민규를 흘겨봤다. 민규는 잔잔히 웃음을 띠고 있었다.
“일찍이 알았으면 우리 원우 학교 간다 할 때 날짜나 받을걸. 내가 아직도 그 때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
할머니가 원우의 손을 잡고 쓰다듬었다. 원우가 슬며시 미소 짓고 주름진 손을 마주잡았다. 괜찮아요. 평온하게 흘러나온 목소리가 서글프게 들리는 건 착각이었을까. 민규는 겹쳐진 두 쌍의 손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
이불 속으로 몸을 누이려던 때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원우는 꾸물꾸물 상체를 일으켰다.
“형. 잠깐 들어가도 돼요?”
이미 한참 전에 자러 들어갔다던 민규였다. 원우가 작게 ‘네’ 대답하자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얇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민규가 조용히 들어온 뒤 살살 문을 닫았다.
“잠자리가 불편해요?”
민규에게는 부엌 앞 작은 방을 내어주었다. 가끔 오는 손님들은 다 그곳에서 잠을 잤다. 침대를 쓰던 사람들은 바닥에 요를 깔고 자는 게 불편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규는 고개를 젓고 원우의 근처 바닥에 앉았다. 원우가 괜스레 이불을 부스럭 정리했다. 민규가 우물쭈물 뜸을 들였다. 팔에 감긴 구슬을 의미 없이 만지작거리다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결심한 듯 단단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저, 형 때문에 온 거 아니에요.”
“네?”
“저 때문에 왔어요. 제 살길 찾으러.”
민규는 가볍게 제 가슴팍을 두드렸다. 원우가 슬그머니 미간을 모았다. 민규가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타고난 불 기운이 강하댔나. 불과 함께 태어나서 불 속에서 죽을 생이래요. 그래서 자꾸 제 주변에 큰 불이 생기더라고요. 사고가 끊이질 않았어요.”
“아아.”
“도움을 구하러 왔어요. 제가 다니는 절의 주지스님 친구 분이 여기에 사시는데, 이쪽 분야에 전문가시래요.”
원우는 알맞은 반응이 무엇인지 몰라 희미하게 끄덕이기만 했다. 어색한 공기가 흘러 까닭 없이 이불 끝을 긁기도 했다. 민규는 손목에 감긴 단주를 잘그락 문질렀다.
“제가 조심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불이 아니더라고요. 이런 걸로 기운을 억눌러야 그나마 정상적인 삶을 살아요. 전 잘 모르지만 이게 무슨 부적 담은 구슬 엮은 거래요. 웃기죠.”
“아니, 웃길 것까지는…….”
“형은 이런 거 안 믿잖아요.”
꽤나 단호한 말투라 원우는 입술 끝을 겹쳐 물었다. 믿지 않는다고. 그래, 믿지 않지. 그 전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제시한 방법을 죄다 소용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민규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저도 처음에 그랬어요. 주변에 일어나는 화재가 나 때문이라는데 누가 믿겠어요. 무슨 귀신 때문이라고, 그 사고가 다 내 탓이라고 하니까 당연히 믿기 싫죠.”
웃으면서 할 얘기가 아닌 것 같은데 민규는 잘도 웃었다. 도리어 착잡해지는 건 원우였다.
“그래도 나름대로 믿고 따르면서 열심히 살았어요. 그러니까 여기까지 와서 형도 만났고.”
민규가 무릎을 모아 안고 제 머리칼을 헝클였다. 얼굴을 푹 숙이고 무릎에 입술을 묻어 말소리가 뭉개졌다.
“할머니께서 너무 저한테 희망을 거셔서, 아무래도 말해야겠다 싶었어요.”
형 고치러 온 게 아니라 나 고치러 온 거라고, 할머니께는 곧이곧대로 말할 수가 없어서……. 민규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원우를 쳐다봤다. 눈썹이 팔 자로 축 늘어져 불쌍해 보였다. 원우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민규가 입술을 쫑긋 모으고 말했다.
“내일 같이 건넛마을 가서, 형에 대해서도 알아봐요. 원래 형 도와주시던 분이라면서요. 방법이 있으면 올해엔 대학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원우의 입꼬리는 여전히 올라가 있었지만 눈은 텅 빈 것처럼 건조했다. ‘대학’이란 단어가 비수처럼 날아 들었다. 순전히 뭍에 나가지 못해 포기한 대학이었다. 현역 때 물에 빠지고도 미련이 남아 재수했으나 작년엔 배에 오르지도 못했다. 할머니는 그게 몹시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매번 부모님이 보낸 사람들에게 제 생애를 구구절절 읊었다. 초면인 사람이 제 생애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건 기분이 나빴다. 민규의 언급도 썩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원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같이 가요.”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속는 셈 치고 한 번 더 가볼 생각이었다. 원우의 대답이 떨어지자 민규가 해사하게 웃고 일어섰다. 그럼 내일 보자고, 푹 자라고 즐겁게 인사를 했다. 뭐가 저렇게 좋은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따라서 웃음이 났다.
“아, 원우 형.”
방문을 닫기 직전에 민규가 멈칫하고 원우를 불렀다. 원우가 눈썹을 들어 민규를 바라봤다.
“저한테 말 편히 하세요.”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민규는 방방 손을 흔들고 문을 닫았다. 원우는 부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응. 그래. 입속말로 대답을 했다.
*
민규는 일찍 일어나 할머니의 아침상까지 도왔다. 원우는 제 집처럼 편안하게 부엌을 드나드는 민규가 신기했다. 밖에서도 어른들께 예쁨 많이 받겠네. 숫기 없는 원우가 내심 부러워하는 성격이었다.
민규는 원우와 눈이 마주치면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시야에 보일 때마다 좋다고 달려드는 똥개 같았다. 원우가 낯가리며 데면데면하게 굴어도 민규는 쉼없이 말을 걸었다. 형, 건넛마을엔 어떻게 가요? 걸어가요? 아아, 버스 타야 돼요? 마루에 나란히 앉아 신발을 신을 때까지 신이 나서 조잘조잘했다.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나가 건넛마을에 가는 버스를 탔다.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있는 마을 버스였다. 버스는 낡은 엔진소리를 내며 달렸다. 민규가 창 쪽에 앉아 잔뜩 몸을 구겼다. 원우가 자리를 넓히며 편히 앉으라 말했지만 쪼그라든 민규의 상체는 쉽게 펴지지 않았다.
“엔진 소리 불안하지 않아요?”
“응. 원래 이런데.”
엔진이 터질 것 같아 조마조마한 민규의 마음을 원우가 알 리 없었다. 작은 접촉사고에서 큰 불꽃이 피어나는 걸 본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민규가 편치 않은 속을 달래며 차창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해안선을 따라 길게 뻗은 도로 위에서는 수평선이 잘 보였다. 늘 보던 청청한 지평선과 또 다른 푸름이었다.
버스를 타고 30분을 넘게 이동했다. 원우는 종점에서 멀지 않은 정류장에서 내렸다. 민규가 긴장했던 근육을 쫙쫙 늘리며 가볍게 스트레칭했다. 건넛마을은 선착장이 있는 원우의 동네보다 조금 더 건물도 많고 북적북적했다.
김천댁 서 씨는 원우의 모교가 보이는 언덕 위에 살았다. 민규가 비탈길에 서서 낮은 건물들 뒤로 펼쳐진 바다를 한눈에 담았다. 덥고 습한 것 빼면 참 좋다. 시야가 탁 트인 만큼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
서 씨는 두 사람이 올 줄 알았다는 듯 이미 마당에 나와 있었다. 그가 입은 개량 한복은 성기게 짜여 시원해 보였다. 몸에 붙지 않고 벙벙한 차림이 왜소한 체구를 가렸다. 서 씨가 환히 웃으며 원우를 맞았다. 원우는 총총거리며 마당을 가로질러 가 서 씨를 가볍게 포옹했다. 원우와 서 씨가 재회의 기쁨을 나눌 동안 민규는 대문 앞에서 기다렸다. 서 씨는 원우의 볼을 매만지며 그새 또 살이 내렸다고 걱정했다. 원우의 어깨 너머로 민규를 발견한 서 씨가 물었다.
“너는 이름이 뭐니.”
“김민규입니다.”
민규가 꾸벅 인사하며 주춤주춤 거리를 좁혔다. 몸집은 작지만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민규는 살짝 겁먹고 등을 둥글게 말았다. 서 씨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민규의 전신을 훑었다.
“화마 잡겠다고 수귀를 찾는 놈이 어디 있어.”
“예?”
“들어와라.”
서 씨가 등을 돌려 집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민규는 우두커니 끔벅이기만 했다. 원우가 민규의 팔뚝을 툭 치고 집 쪽에 고갯짓했다. 민규는 정신을 챙기고 후다닥 신을 벗었다.
내부는 일반 가정집과 다를 바 없었다. 은연중에 사찰이나 점집을 생각했던 민규는 제 선입견에 대해 반성했다. 서 씨는 삐질삐질 땀을 흘리는 민규를 향해 선풍기를 틀었다. 민규가 멋쩍게 웃으며 묵례했다. 손등으로 땀을 훔치는 민규와 달리 원우는 보송보송했다.
서 씨는 서두를 꺼내지 않고 민규와 원우를 관찰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원우는 이러한 서 씨의 눈길이 처음이라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괜스레 손가락 마디를 문지르며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너는 여기 오니 편하지?”
서 씨가 싱겁게 웃으며 민규에게 물었다. 민규는 예, 대답하면서 끄덕였다. 어제 원우에게 넌지시 말했던 것처럼 이 섬에 잠깐 있는 내내 편안했다. 습윤한 공기가 폐부에 들어와 항상 바짝 열이 오른 속을 달랬다. 불쾌지수가 굉장히 높을 것 같은 끈적임에 지친 몸과 별개로 활기가 생겼다.
“원우는 특별히 다른 점은 없고?”
“네, 저는 뭐…….”
원우는 콧등을 긁으며 말을 흐렸다. 서 씨는 길게 숨을 몰아 내쉬고 민규를 바라봤다. 민규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바른 자세를 했다.
“사람의 기는 음양과 오행의 조화가 가장 중요한데, 너희 둘은 태어날 때부터 글렀어.”
민규는 익히 알고 있고, 원우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서 씨가 두 사람의 머리 위를 휘휘 손으로 저었다.
“만 하루 가까이 있었다고 기운이 이렇게 바뀐 걸 보면 상성이 나쁘진 않은 듯한데.”
“상성이요?”
“그래.”
“원우 형이랑 저요?”
민규가 눈을 크게 뜨고 원우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켰다. 스님이 원우 형과 같이 가라는 말이 이런 의미였나. 이제껏 주술이나 간단한 무구로 화기火氣를 억눌렀던 민규는 당연히 새 방도에 사람을 떠올리지 못했다. 원우는 생뚱맞은 내용에 미미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타고난 기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어. 계속 조화롭게 만들어주는 게 최선이야. 그게 네 손목에 감아 놓은 것보다 훨씬 안정적일 게다.”
서 씨가 민규의 단주를 가리켜 턱짓했다. 민규와 원우의 시선이 동시에 까만 구슬 팔찌로 향했다. 서 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원우의 말간 얼굴을 바라보았다.
“원우야. 아직도 섬에서 나가고 싶니.”
어딘가 씁쓸한 목소리였다. 원우는 몇 년 전부터 줄곧 보았던 따스한 눈동자를 마주하고 천천히 주억거렸다. 서 씨가 못마땅하게 민규를 쳐다봤다. 난데없는 힐난의 눈빛에 민규가 슬금슬금 눈을 깔았다. 서 씨는 한동안 말없이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둘이 삼 년쯤 붙어 있으면 알맞게 변할 텐데.”
“삼 년이요?”
“네가 여기 들어와 살면 딱 좋겠구먼.”
민규의 눈썹 끝이 아래로 추락했다. 민규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이번 방학 두 달이 전부였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다시 육지로 가야했다. 이것 저것 계산하는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휴학을 하고 삼 년을 들어와 사는게 맞는가. 겨우 한 학기 다녔는데. 그렇게 산다 치더라도 미룬 군대는 어쩌고? 그렇게 몇 년 더 밀려난 졸업은 또 어떻고? 취직은? 내 미래는? 민규의 턱에 호두 같은 주름이 깊게 팼다.
“삼 년이 되기 전에 저는 못 나가는 거예요?”
원우의 차분한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민규가 홱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 내가 들어와 살 게 아니라, 형을 데리고 나가면 되는 거잖아. 민규는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며 서 씨를 바라봤다.
“글쎄. 네가 나갈 수 있을까.”
“왜요? 안 돼요?”
민규가 애처롭게 두 손을 모았다. 서 씨는 단호히 머리를 좌우로 저었다.
“원우는 달라. 여기는 사방이 물인데 얘가 빠져나갈 구멍이 있겠니.”
그 말에 누구보다 낙담한 것은 원우였다.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원우를 보고 서 씨가 입술을 감쳐물었다. 민규는 바닥에 손을 짚어 몸을 바투 끌어 앉았다.
“제가 두 달은 여기에 있을 수 있어요. 그 안에 어떻게 안 될까요?”
“두 달?”
민규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서 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민규는 이때다 싶어 서 씨를 부추겼다. 원우 형이 섬에서 나가고 싶다잖아요. 형이 대학 가려고 했던 거 할머니도 아시죠. 올해엔 저도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요. 원우는 저 대신 말을 늘어놓는 민규를 말리지 않았다. 제 얘기를 떠드는 데도 가만히 있었다. 그저 일말의 희망을 안고 서 씨의 대답을 기다렸다.
“좋은 날 고르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겠는데…….”
서 씨는 그리 탐탁하지 않은 투로 말했다. 민규는 눈을 반짝이며 서 씨의 입술을 주시했다.
“불안정하게 섞인 기운이 튀면 눈속임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뭔가 방법이 있죠?”
민규는 우물우물 시원스럽게 말을 내뱉지 않는 서 씨를 종용했다. 서 씨가 짧고 굵은 한숨을 내보냈다.
“방법이야 있지.”
“뭔데요?”
원우마저 기대에 찬 눈으로 물으면 대답을 미룰 수 없어졌다. 서 씨는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말을 흘렸다.
“육체합일.”
쏟아진 네 글자에 민규와 원우의 표정이 똑같이 벙쪘다.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긴 틀렸으니 서 씨는 내키지 않지만 덧붙였다.
“기운 섞이는 데엔 신체 접촉이 제일 빨라.”
“…….”
“일단 둘이 계속 붙어 있어 봐.”
*
원우는 민규를 묘하게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버선발로 맞이한 할머니에게 더듬더듬 소식을 전한 뒤로 그랬다. 얼렁뚱땅 민규랑 붙어 있으면 될 것 같다는 말을 본인이 했으면서 멀찍이 떨어질 생각만 하니 민규는 괜히 속상했다.
원우의 조부모는 흔쾌히 민규에게 방을 내주었다. 민규는 한 달만 신세 지겠다고, 잘 부탁드린다고 정식으로 인사했다. 방 값을 받지 않으려 하기에 대신 각종 허드렛일을 맡기로 했다.
민규는 금방 동네의 귀염둥이가 되었다. 특유의 붙임성으로 주민들과 안면을 트고 마을 일을 도맡기 시작했다. 젊은 인력은 오랜만이라 동네 어르신들이 민규를 알차게 써먹은 탓이었다. 원우가 다 맞춰주지 않아도 된다고, 쉬엄쉬엄 하라 일렀지만 민규는 매일같이 마을을 쏘다녔다. 어차피 섬 안에 있으면 할 일도 없는데 지루하지 않아 좋다면서.
짧게 머물 예정이었던 터라 옷가지가 모자랐다. 이장이 덩치 큰 아들이 입었던 옷이라며 몇 벌 내어주었다. 민규는 후줄근한 차림을 하고 본격적으로 동네 곳곳에 출몰했다. 손이 야무져서 난생 처음인 어업도 곧잘 했다. 아예 여기 들어올 생각은 없냐며 어르신들이 심심찮게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다.
그래도 민규의 전문 분야는 농업이었다. 드넓은 밭이 펼쳐진 동네에서 자라 할머니의 농사일을 도운 세월을 무시할 수 없었다. 파란 지붕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크지 않은 밭이 있다는 것을 듣자 마자 먼저 손을 내밀고 다녔다. 해산물을 먹지 못하는 원우 또한 반 마지기도 안 되는 조그마한 밭을 가꾸었다. 민규는 원우가 엉성하게 돌보는 작물을 손수 바로잡았다. 여태 울퉁불퉁한 흙을 알맞게 고르고, 줄기를 세울 막대도 다시 단단하게 고정하고, 작물 상태를 수시로 점검했다. 섬 사람들은 농사에 일가견이 없으니 전부 민규에게 와서 배웠다.
슬금슬금 거리를 두는 원우는 밭에 갈 때는 민규와 거리낌 없이 붙어 다녔다. 이를 깨달은 민규가 원우에게 약속을 요구했다. 형, 밭에 갈 땐 꼭 나랑 같이 가요. 대뜸 내밀어진 새끼 손가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원우는 조심스레 새끼를 걸었다.
하루가 모자라게 바쁜 나날이 계속됐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아침, 하늘이 깜깜해서 민규는 늦잠을 자고 말았다. 시간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이불을 정리했다. 바깥에서 쏴아아 빗소리가 요란한데 세상 모르고 푹 잤다. 민규가 마루에 나와 낑낑 기지개를 켰다. 빗줄기가 제법 굵었다. 눅눅하고 습한 날씨보다 차라리 시원하게 비 내리는 게 훨씬 나았다.
“민규 일어났니.”
“네에.”
큰 방 쪽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규가 대답하며 쪼르르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아침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가셨어요?”
“응. 그물 쳐 놓은 거 확인한다고.”
“원우 형은요?”
“밭에 간다고 지 할애비랑 같이 나갔지.”
비가 많이 와서 농작물 한번 살피러 가겠다고 했단다. 밭에 갈 땐 나 데리고 가라니까. 민규는 작게 투덜대며 다시 방에서 나왔다. 붕붕 뜬 머리를 대충 누르고 슬리퍼를 찾아 신었다. 민규는 두리번거리다가 마루 끝에 눕혀져 있는 커다란 무지개 우산을 들어 펼쳤다.
“할머니, 저도 잠깐 나갔다 올게요.”
우렁차게 소리치자 아침 먹고 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민규는 ‘금방 와서 먹을게요~’ 하며 대문을 나섰다. 원우와 함께 돌아와서 아침을 먹을 생각이었다.
슬리퍼를 직직 끌고 밭으로 향했다. 그런데 멀리서도 보여야 할 인영이 보이지 않았다. 한바탕 내리는 빗줄기에 시야가 막힌 것이 아니었다. 조막 만한 밭에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민규는 줄기에 덧대어 세운 막대가 떨어지거나 기울어진 것을 발견했다. 농작물 살피러 간단 사람이 저걸 그대로 뒀다고? 민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집으로 걸음했다. 밭 들리기 전에 할아버지 도와드리러 갔나 싶었다.
파란 지붕 집을 지나쳐 바다 쪽으로 가는 와중에 뒤에서 철퍽철퍽 뜀박질 소리가 들렸다. 민규가 담장 쪽으로 몸을 붙여 뒤돌았다. 원우의 할머니가 휘청휘청 우산을 쓰고 뛰어오고 있었다.
“할머니.”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냐고 불렀는데, 할머니는 혼이 쏙 빠져 듣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뒤에 옆집 아주머니가 뒤따라오는 중이었다.
“할머니, 어디 가세요.”
민규가 할머니의 곁에 바짝 붙어 물었다. 그제야 할머니는 시선을 들어 민규를 쳐다봤다.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내며 민규의 팔을 붙잡았다.
“원우가, 원우가…….”
“네? 원우 형이 왜요?”
“바다에 빠졌대, 우리 원우.”
할머니는 넋이 나간 듯 보였다. 헐레벌떡 달려온 아주머니가 할머니를 부축했다. 민규는 잠시 얼어 있었다. 원우 형이 바다에 빠졌다고. 천천히 민규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깨가, 허리가 차례대로 방향을 틀고, 단단한 발바닥이 땅을 박찼다. 민규는 무작정 바다 쪽으로 달렸다. 무리하게 전속력을 내느라 예열되지 않은 허벅지가 찌르르 아팠다.
선착장 주변에 동네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민규가 사람들이 애타게 내다보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선착장에서 조금 먼 거리에 작은 어선 한 대가 보였다. 그 옆에 허우적대고 있는 원우가 있었다.
사람들 틈에서 원우의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는 어쩔 줄 모르고 손자의 이름만 부르고 있었다. 민규가 할아버지를 붙들고 질문했다. 할아버지는 황망하게 도리질했다.
“무슨 일이에요? 형이 왜 빠졌어요?”
“몰라. 원우가 왜, 왜…….”
“할아버지랑 같이 나갔다면서요.”
“아녀. 원우는 밭에 갔어. 나는 저쪽 어장에 먼저 들렸는데, 갑자기 원우가…….”
민규는 폭우 탓에 컴컴해진 바다를 바라봤다. 분명 원우는 배를 타지 못한다고 했다. 그게 물귀신 때문이든 트라우마 때문이든 애초에 배를 타고 저만큼 바다에 나갈 사람이 아니었다. 뒤늦게 도착한 할머니가 허우적대는 원우를 발견하고 주르륵 무너져 내렸다. 주저앉은 몸을 받친 옆집 아주머니가 할머니를 달랬다. 민규가 반쯤 넋이 나간 할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할아버지, 원우 형 구하러 가요. 빨리요!”
“아니야. 못 가. 이 날씨에 배 못 띄워.”
“그럼 저 배는 뭔데요?”
“몰라. 몰라, 이런 날씨에 배를 어떻게 띄워.”
할아버지는 멍하니 거칠게 넘실거리는 파도를 바라봤다. 민규가 잇새로 짜증을 내보내며 두리번거렸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미친듯이 빗줄기가 퍼부었다. 바닷바람은 평소보다 배는 거셌다. 언뜻 봐도 파도의 높이부터 달랐다.
“이러다 원우 형 죽어요!”
민규가 답답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원우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그때 쭉 뻗은 선착장 길 끝에 배 한 대가 큰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민규가 이 섬에 들어왔을 때 타고 왔던 그 배였다. 꼼꼼하게 우비를 입은 선장이 크게 민규를 부르며 손짓했다. 민규는 단숨에 달려가 배에 올라탔다.
바다에 이는 물결이 사나웠다. 작은 배는 파도를 따라 출렁였다. 무지개 우산은 정수리만 젖지 않게 가릴 뿐 몸에 튀는 빗발과 물살을 막지 못했다. 민규는 미련 없이 우산을 접었다. 빗방울이 아프게 얼굴을 때렸다.
“더는 못 다가가.”
선장은 원우의 얼굴이 분간될 정도의 거리에서 배를 세웠다. 선체는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해서 흔들렸다. 원우는 풍파에 집어삼켜지고 있었다.
“원우야!”
선장이 구명 튜브를 원우 쪽으로 휙 던졌다. 원우의 머리가 잠겼다가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수영을 할 줄 몰라 몸을 가누지 못했다. 손길이 닿지 않은 주황색 튜브가 수면 위에 둥둥 떠다녔다. 선장이 열심히 원우를 부르는 동안, 민규는 슬리퍼를 벗어 던졌다. 재고 따질 시간이 없었다. 민규가 이를 악물고 지체없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선장이 미처 말리기도 전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불이 감기는 체질 탓에 물을 가까이하기는 했지만, 이런 악천후 속의 바다수영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민규는 겁먹지 않고 오로지 원우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 하에 팔다리를 움직였다. 죽죽 떨어지는 빗발이 시야를 방해했다. 파도는 민규까지 잡아먹으려고 했다. 민규는 튜브를 한 팔에 끼고 맹렬히 헤엄쳤다.
“형!”
마침내 원우에게 닿았다. 민규가 원우의 팔을 붙들고 당겼다. 푹 젖은 피부가 미끌거려 놓치지 않게 꽉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원우가 갑자기 수면 아래로 쑥 내려갔다. 민규는 쥐고 있던 원우의 팔을 놓치고 말았다. 힘이 빠져 가라앉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아래서 끌어당긴 것처럼 몸이 침수했다. 간절한 손끝이 수면 위로 나타났다 이내 잠겼다. 민규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잠수했다. 뒤에서 어어, 선장이 놀란 소리가 들렸다.
바닷속은 온통 캄캄했다. 눈을 뜨나 마나 보이는 게 없었다. 민규는 어렴풋하게 허우적거리는 흰 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원우가 민규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물 속에서의 움직임은 공기 중보다 둔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원우는 손끝을 세워 민규의 아래팔을 긁었다. 손가락이 팔에 감기지 못하고 금방 미끄러졌다. 민규가 가까스로 멀어지는 원우의 손을 붙잡았다. 힘주어 당겼지만 마주 닿은 손바닥은 금방 멀어졌다. 아래로 가라앉는 힘이 괴이할 정도로 강했다.
민규는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어 푸하, 숨을 쉬었다. 얼굴로 퍼붓는 빗줄기 때문에 물속에서 호흡하는 것 같았다. 민규가 한 팔에 낀 튜브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이내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팔을 빼냈다. 민규는 다시 한번 블랙홀 같은 바닷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원우는 팔을 뻗어 다가오는 민규를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민규가 원우의 양 손목을 단단히 감아 쥐었다. 양 어깨에 온 힘을 실어 원우를 당겼다. 아래로 당기는 힘과 비등하여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원우가 괴로운 듯 몸부림쳤다. 최후의 발버둥이었다. 서서히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민규는 점점 숨이 차기 시작했다. 안 돼, 지금 놓치면 안 돼. 없는 힘 있는 힘 다 끌어 모아 원우를 당겼다.
그때 수면 바깥에서 빛 한 점이 투과했다. 어두컴컴한 물속이 일순간 환해졌다. 민규는 정신을 잃은 원우의 아래로 시퍼런 덩어리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물속에서 으아악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미역처럼 사방으로 뻗은 검은 실 가닥, 흉측하게 불어터진 피부, 잇따라 번득이는 흰자위. 원우를 얽어맨 물귀신이었다. 민규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원우를 확 당겼다. 원우가 힘없이 민규 쪽으로 움직였다. 민규는 원우를 품 안에 단단히 끼고 빛이 반짝이는 수면으로 올랐다.
민규가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입에 들어온 짠물을 연거푸 뱉어 내면서 원우를 물에 뜨게 만들었다. 민규가 튜브에 팔을 감자 선장이 연결된 줄을 당겼다. 눈을 감은 채 기댄 원우의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민규는 귓가에 대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형, 원우 형. 일어나, 형. 정신 차려. 원우의 안색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선장과 민규가 힘겹게 원우를 배 위로 올렸다. 민규는 쫄딱 젖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원우의 곁으로 기어갔다. 선장이 다급하게 키를 잡았다. 부아앙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유턴한 선체가 기울어졌다. 민규는 원우의 위로 엎어져 그가 밀려나지 않게 껴안았다. 맞닿은 가슴팍이 잔잔했다. 원우가 숨을 쉬지 않았다.
민규가 덜덜 떨면서 상체를 들어올렸다. 그칠 기미가 없는 빗줄기를 가리기 위해 무지개 우산을 폈다. 대충 원우의 얼굴만 가리고 재빨리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흉부를 압박하는 팔이 거침없었다. 민규는 원우의 코를 막고 다른 손으로 턱을 들었다. 입술을 조금 벌리고 제 입을 완전히 밀착시켜 숨을 불어넣었다. 후우, 후우, 들어가는 숨결을 따라 가슴팍이 부풀어 올랐다. 원우의 호흡이 돌아올 때까지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민규는 어금니를 앙다물고 심장마사지를 했다. 민규의 머리칼, 코끝, 턱 끝에 맺힌 물방울이 원우 위로 뚝뚝 떨어졌다.
선착장에 다다를 즈음에 드디어 원우가 쿨럭거렸다. 민규가 얼른 원우의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입가를 타고 얇은 물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민규는 안도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부두에 닿은 배가 슬슬 멈추었다. 민규가 서둘러 원우를 들쳐 업었다. 시동을 끄고 바깥으로 나온 선장이 민규의 위로 우산을 씌웠다.
“원우야!”
할아버지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할머니는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고 겨우 서는 중이었다. 민규가 급박하게 소리쳤다.
“어디로 옮겨요?”
“슈퍼! 일단 슈퍼로 가!”
선장이 민규를 이끌고 달렸다. 선착장에 모여 있던 주민들이 그들을 따라왔다. 민규는 슈퍼 앞 평상 위에 원우를 눕혔다. 원우는 시퍼렇게 질려 미동도 없었다. 할머니가 창백한 손자를 보고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선장은 슈퍼 아주머니에게 수건과 마른 옷을 가져오라 일렀다. 민규가 선장을 도와 원우의 옷을 벗겼다. 수건으로 원우를 꼼꼼히 닦고 마트에 걸어 둔 여분의 자켓을 둘렀다. 슈퍼 아주머니가 두툼한 담요와 휴대용 난로를 들고 나왔다. 담요를 건네받은 민규가 원우를 빈틈없이 감쌌다.
“애 몸이 왜 이렇게 차?”
“빨리 난로 켜 봐.”
아주머니는 평상 위에 난로를 올려 두고 전원을 켰다. 난로가 지글지글 빨갛게 타올랐다. 민규는 순간 속에서 후끈 치밀어 오르는 열기를 느꼈다. 허억, 숨을 들이켠 민규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비틀댔다. 불. 본능이 위험 신호를 감지했다. 민규는 붉게 달아오른 난로를 발견하고 뒷걸음질쳤다. 뜨거운 가슴을 쥐어 뜯는데 축축하게 젖은 옷이 피부를 파고들 듯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민규는 혈관을 타고 곳곳으로 퍼지는 열기를 느끼며 쓰러졌다. 놀란 선장이 무어라 소리쳤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민규는 헐떡이며 몸을 웅크렸다. 소음이 아득하게 멀어지면서 쉬익 쉬익 이상한 숨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어디 있어? 어디 있어? 여기 있어? 여기 있어? 민규가 숨을 참고 귀를 막았다. 두 눈도 꽉 감았다. 둥글게 말린 몸 위를 적시는 빗줄기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민규는 바들바들 떨면서 바닥을 짚었다. 일어나 몸을 피하려고 했다. 여기 있어? 여기 있어? 여기 있어! 여기 있어! 여기 있어! 하지만 근육이 제 힘을 온전히 쓰지 못했다. 민규의 팔이 맥없이 늘어졌다. 몸이 온통 젖어 무거웠다. 반면에 안쪽은 바싹 마른 느낌이었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민규가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제 매끈한 손목이었다. 항상 감고 있던 염주가 온데간데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