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웃는 남자
2021. 2. 12. 14:44

 

 

 

 

 

* 전쟁과 죽음에 관한 묘사 다수

 

 

 

 

 

  1

  정원사의 일이란 따분한 것이다.

  분별없이 불거진 나뭇가지를 다듬는다. 자라난 잔디를 깎는다. 살충제를 살포한다. 정원을 말끔히 정리한다. 빈 토지엔 꽃씨를 심고 기다란 호스를 통해 물을 끼얹는다. 해질 무렵이면 동물의 오물을 한 구석에 쌓아둔다. 삭혀진 분변은 수목들의 피와 살이 되어 자라날 것이었다.

 

  태양은 매일 떠오르고 나무는 매일 자라났다. 

  그 발육한 이파리들을 다듬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마치 어제처럼.

  모든 게 성장하지 않은 것처럼.

  나는 매일 다듬는다.

 

  매일 소생하는 태양 같이 세상엔 따분한 사람이 둘 있다.

  연일 수목을 정돈하는 나와, 또 내 곁에 자리한 그 애 하나.

 

  형의 일과는 매우 단순하였다. 

  아침, 푹신한 침대 위 눈을 뜬다. 빗금처럼 스며든 해를 본다. 유연한 소재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가정교사를 맞이한다. 칸트니 데카르트니 하는 이들의 꼬부랑 언어를 공부한다. 요리사가 내온 아스파라거스 따위를 먹는다. 정원의 사과나무로 뛰어와 나를 만난다. 흰 셔츠를 입은 팔 사이엔 두꺼운 책 한 권이 껴있다. 나는 나무 위서 가지를 다듬고 형은 나무 아래 응달에 앉는다. 그곳에서 가져온 책을 읽는다. 이따금은 나를 바라보며. 

 

  몇 달 전만 해도 함께 가지를 치겠다며 설쳤었다. 폐가 좋지 않아 학교도 가지 못하는 주제에 뭘 하겠다구.

 

  “한 번만 해볼게, 어? 혹시 알아? 내가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

 

  정원사 일 따위에 재능은 무슨. 

  나는 미심쩍은 얼굴을 하면서도 커다란 가위를 건네었다. 그것을 받아들며 형은 환히 웃었다. 그 녹슨 가위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그리고 그 날 형은 돌연 잔디 위로 쓰러졌다. 숨을 헐떡이며. 손끝을 떨며. 

  해를 너무 많이 쬔 탓이었다. 너무 많이 움직인 탓이었다. 곁에 서 말리지 않은 나의 탓이었다. 모처럼 들뜬 형을 보며 마냥 기껍던 나의 탓이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는 형을 들쳐 업고 저택 안으로 뛰어들었다. 형은 저명한 집 태생의 외동아들이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집안이 뒤집어졌다. 사건이 일단락된 뒤 나는 주인아주머니께 종아리를 맞았다. 누워있던 형이 달려 나와 내 앞을 막아섰을 때서야 회초리질은 멈추었다. 

 

  나는 정원 구석의 오두막에 집을 얻어 살았다. 그 날 밤 형은 소리죽여 오두막을 방문하였다. 엎드려 누워 자는 체 하는 내 곁에 앉았다. 종아리는 회초리 모양으로 난도질당했을 것이었다. 형은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찬 손끝이 내려앉았다. 벌겋게 부어오른 살갗을 쓸어내렸다. 타고나길 쇠약한 형. 그래서 외출도 하지 못하는 형. 때문에 뭐든 서툰 형. 형은 미안하단 말도 하지 못해 상흔을 쓰다듬기만 하였다.

 

  형의 손은 항상 차가웠다. 살갗에 닿는 형의 손끝도 차갑기만 했다. 

  그런데 이상도하지. 

  부어오른 상처보다 형의 손끝 닿은 자리, 그곳이 더 뜨거운 것이……. 

 

  다음날 오후, 여느 때처럼 사과나무 아래 섰다. 쭈뼛대며 다가오는 형체가 보였다. 형이었다. 오른 뺨 위론 생채기가 있었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던 마른 등을 떠올렸다. 엷은 뺨이 터지는 타격 소리. 놀란 아주머니의 비명과 나동그라진 회초리도. 

  타고나길 쇠약한 형. 제 몸 하나도 간수하기 힘든 형. 그럼에도 나를 보호하려 하는. 

  이제껏 내겐 그런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어서. 세상에 홀로 남은 내게는. 

 

  “왔어.” 

 

  그러나 나는 언제나 무신경하게 말한다. 

 

 

 

 

 

  2

  사랑은 어디에서 와 태동하는 걸까.

  나는 엄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였다.

 

  엄마는 형네 저택의 가정부였다. 엄마에겐 형제가 아주 많았다. 가난한 집 팔 형제 중 어중간한 넷째로 태어난 엄마에겐 자연스레 집안의 관심이나 지원이 주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엄마는 어릴 적부터 숱한 일을 해야 했다. 삯바느질, 화장품 판매원, 방직공장의 원단 검토, 조업장의 그물을 관리하는 일……. 그런 일련의 노동에 대해 그녀는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곤 꼭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어. 하고.

  그런 노동의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엄마의 손 곳곳엔 굳은살과 주름이 자리하였다. 민규야. 나를 부르며 소녀 같이 웃던 엄마의 얼굴. 그리고 그 입매 위로 자리하던 손을 기억한다. 육십 노인의 손으로 소녀 같기만 하던 엄마를. 

  고단한 삶에도 무구하던 엄마.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하자면 아마도 그녀의 마음 한 편에 사랑이 자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사랑이란 것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였다. 

  사람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사랑은 가지치기와 다름없었다. 마치 어제처럼. 모든 게 성장하지 않은 것처럼. 발육한 이파리들을 다듬는 일과 같았다. 

  엄마는 사랑으로 인해 아빠를 만난 그 시절에 갇혀있었으니까. 

 

  내가 열다섯이 되던 이듬해 봄,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방직공장의 관리자였던 아빠. 꼭 성공해서 돌아올게. 그런 말로 떠나버린 아빠. 돌아오지 않을 그를 기다리며. 폐렴이었다. 

  나는 엄마가 일하던 저택의 정원사가 되었다. 천애고아가 된 내게 자애를 베푼 주인 부부 덕이었다. 

 

 

 

 

 

  3

  형과의 첫 만남은 기묘하였다.

 

  엄마의 장례 직후였다. 그녀는 마을 공동묘지에 묻혔다. 시퍼런 낯과 빼빼 마른 몸으로. 소녀 같던 그 웃음은 영영 잃어버린 채로.

  그럼에도 엄마는 평안했을 것이다. 비로소 안녕을 되찾았을 것이다. 길고 긴 기다림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이었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은 어찌해야 하는 걸까?

  나는 그 어떤 것도 알 수가 없어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리하여 오두막 옆 작은 무덤을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엄마 몫의 자그마한 묘지를. 그러한 생사의 기로, 그 찰나에서 그 애를 만났다.

 

  “무덤이구나.”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묘의 표면을 고르게 도닥이던 중이었다. 흙투성이 손을 털며 고개를 들었다. 초봄이었다. 수목의 이파리가 흔들리고. 햇볕이 스며들고. 시야로 흰 얼굴 하나가 보였다. 

  나뭇가지를 주워든 그 애는 십자가를 그려 세웠다. 그것을 묘소 앞에 내려놓았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말없이 묵념하였다. 

 

  주인 부부의 외동아들. 나보다 한 살 많은 형. 얼굴이 하얀. 눈매가 서늘한. 이름은 원우. 폐가 약해 학교조차 가지 못하는. 그 애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다음 날이었다. 내가 정원사로 일하게 된 날이었다. 주인부부의 소개 자리였다. 민규, 아마 너도 알 거야. 또 일하려면 알아야 할 거고. 내게 아들이 하나 있는 거 말야. 윤기 어린 입술이 끊임없이 움직였다. 형에 대한 정보가 산발적으로 흩어졌다. 수축하고, 팽창하고, 파동을 일으키며. 그 파편 가운데 형이 있었다. 희게 웃고 있는 형이. 

 

  막 일을 배우기 시작한 나의 생활은 평이하였다. 저택의 마루를 닦는다. 먼지 쌓인 화분 따위를 정리한다. 밤새 자라난 잔디를 깎는다. 단조로운 내 하루 곁엔 언제나 형이 있었다. 그는 내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았다. 가만히. 남몰래. 들키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 이상하리만치 내게 호감을 보이는 듯 하면서도 그만큼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것을 모르는 체, 일을 이어갔다. 그런 간지런 교류에는 익숙지가 않아서. 주인부부의 외아들. 흰 피부. 그를 감싸고 있는 유연한 소재의 옷. 그 부드러운 세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형은 내 곁에 다가와 소리 없이 앉았다. 말없이 앉아있자면 형이 입을 떼었다. 주로 칸트니 데카르트니 하는 이들의 꼬부랑 언어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였다. 다갈색 나무 벽면. 점묘로 이루어진 웅장한 그림. 커다란 창문. 그 너머의 수목. 펄럭이는 흰 커튼. 새어드는 빛……. 의미 없이 세어보다 생각하였다. 내가 알아들을 줄 아는 건가. 중학교도 못나온 내가. 그러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매끄러운 입술의 움직임이 점진적으로 느려졌다. 왜? 그가 내게 물었다. 검은 동자엔 빛이 한 가득 담겨있었다.

 

  “나한테 그런 소릴 하는 건 좀, 재수 없지 않나 해서.”

 

  나는 다정하였으나 상냥한 이는 못되었다. 입 발린 소리엔 재능이 없었으며 종종 직설적이었다. 얼빠진 눈을 하던 형은, 끝내 아하하, 웃을 뿐이었다.

 

  형이 그런 말밖에 할 수 없던 이유를 나는 얼마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게 형의 세계였으니까.

  형에겐 또래 친구가 없다고 하였다. 타고나길 쇠약하기 때문에. 폐가 아프기 때문에. 그리하여 학교를 가지 못했기 때문에. 집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주위엔 주인 부부와 가정교사가 전부이기 때문에. 

  사람이 없는. 온기가 없는. 종이 위 글자가 전부인. 사물에 대한 정의만이 있는.

  형의 세계는 그러하였다. 

 

 

 

 

 

  4

  나는 점차 그 세계에 동화되어 갔다. 그리하여 그의 세계로 진입한 네 번째 사람이 되었다. 그것은 형이 주인부부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그가 내게 상냥하기 때문에, 내게도 또래는 그밖에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택의 정원 모퉁이엔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휴무일이 되면 우리는 종종 그곳으로 향했다. 제멋대로 자란 갈대 속 맑은 못이 드러났다. 형은 바위에 걸터앉아 발을 담갔다. 이따금은 물장구를 치며. 군청의 물결이 희고 옅은 피부를 비추었다.

  나는 물속을 헤엄하였다. 몸을 바로 눕혀 유영하기를 주로 하였다. 찰랑이는 물소리. 작열하는 태양. 눈을 감아도 빛이 있었다. 어둠 속 빛의 파동이 이어지고 훼손되길 반복하였다. 나는 문득 그제 깨뜨린 도자기를 떠올렸다. 선반을 닦다 떨어뜨린 것이었다. 투박한 손으론 물건을 파손하는 일이 잦았다. 형은 그것을 모르는 체, 제가 한 일인 양 덮어두었다. 

  나를 보호해주는 것은 언제나 형이었다.

 

  아하하.

 

  낮은 웃음소리로 상념은 중단된다. 형이 내 주변에 돌 하나를 던진 것이다. 첨벙, 청청한 소리와 함께 내 얼굴론 물보라가 끼얹어졌다.

  사이가 진척된 뒤 형은 부쩍 장난을 쳤다. 발끝 밟기, 머리칼 헝클이기, 옷자락 구기기……. 대부분이 실없는 것들이었다. 

 

  “재밌냐, 그런 게.”

  “그래, 재밌다.”

  “하여튼 유치해.”

  “그런 게 재미지, 뭐.”

 

  형이 히, 입 벌려 웃었다. 

  형은 종종 제 지식의 일부를 내게 이야기해주곤 하였다. 어떤 신화의 유래. 과학의 발전. 수목의 이름과 의미. 그 중엔 색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형의 말에 따르면 흑색은 빛을 흡수하고 백색은 빛을 반사한다고 하였다.

  그렇담 어째서 형의 흰 얼굴은 저토록 모든 빛을 흡수하고 있는 걸까. 

  햇빛을 온전히 받드는 두 뺨. 그 얼굴은 어딘가 얄밉다.

 

  어디 한 번 당해봐라.

 

  나는 되먹지 못한 생각을 하고 만다.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눈을 감았다. 숨을 참았다. 공기방울이 수면 위로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민규야. 김민규? 물의 파동과 함께 형의 음성 흘렀다. 당황해마지 않는. 형은 바지를 걷어붙였을 것이다. 못 속으로 걸어 들어올 것이다. 그 흰 발로 연못 속 자갈과 젖은 흙을 밟을 것이다. 수면을 마구잡이로 헤집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이름을 부르는 음성, 그 기척이 가까워졌을 때, 나는 기습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첨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우리는 넘어졌다. 못의 수면은 아주 얕았다. 앉아봤자 가슴께에 그쳤다. 들어와 본 적이 없어 형은 몰랐을 것이다.

  우리는 쫄딱 젖은 채 서로를 마주보았다. 머리칼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젖은 옷. 반짝이는 눈동자. 스며드는 햇빛. 얄궂은 기류. 이상한 한 때.

 

  “어, 비행기다.”

 

  형의 음성으로 정적은 깨졌다. 우리는 함께 고개를 들었다. 

  푸른 하늘과 풍성한 구름, 그리고 호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았다.

  전투기였다. 

 

 

 

 

 

  5

  우리는 사과나무 아래서 만나 그곳에서 헤어졌다.

  아쉬운 얼굴을 한 형이 손을 흔든다. 웃으며 인사한다.

  매일.

 

  내일 또 보자.

 

  나는 대답 않는다.

 

 

 

 

 

  6

  밤이면 오두막에 홀로 누워 형이 준 라디오를 들었다. 

 

  ㅡ정부가 이번 12차 회담에서 K국으로의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이번 파병은 현 정세를 감안한 것으로 보이며,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해 파견지역을 한시적으로…….

 

  사각형의 녹슨 기계는 많은 것들을 떠들어댔다. 개중에 주로 듣게 되는 것은 전쟁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것을 의미 없이 넘기며 형을 생각하였다.

 

  우리가 딱 한 번 함께 밤하늘을 본 적이 있었다. 여름이었다. 밤하늘은 군청과 칠흑이 섞여 오묘한 색을 이루었다. 그 창공을 무수한 별빛을 수놓았다.

  우리는 풀 위로 나란히 누웠다. 더운 바람이 불었다. 강아지풀이 뺨을 간질였다. 귀뚜라미가 울었다. 창공의 암막은 너무도 거대하였다. 그 아래 나란히 누인 우리. 우주 속 작은 파편이 된 우리는 혜성이 뿜는 빛을 오롯이 받아내었다. 

  형은 아는 것이 많았다. 그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지식을 내게 이리저리 늘어놓곤 했는데, 처음엔 심드렁하게 듣던 나도 어느새 빠져들고 마는 것이었다. 이번 주제는 별자리인 모양이었다. 형이 밤하늘을 향해 손을 들었다. 입을 떼었다. 안타레스, 데네브, 알비레오, 알타이르……. 그의 입술, 손끝으로 수많은 별들이 오고갔다. 나는 말없이 형의 손끝이 그려가는 별자리를 보았다. 그리하여 그 손길이 이윽고 멈춘 곳은 직녀성 베타였다. 

 

  “저게 하늘에서 네 번째로 밝은 별이래. 직녀성 베타.”

  “그냥 눈으로 봐선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는 거지, 뭐. 아무튼 저 베타가 속해있는 별자리가 거문고자리라는 거야. 저기에도 설화가 있어.”

  “그게 뭔데?”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로 그녀를 찾아 나섰다고 해. 그리고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 앞에서 거문고로 아름다운 연주를 해 아내를 돌려받을 수 있었지. 단, 땅 위에 이를 때까지 뒤돌아보지 말라는 조건으로. 하지만 그걸 지키지 못해 아내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말아. 오르페우스는 실의에 빠져 죽음에 이르게 되고. 그런데 주인 잃은 거문고에서는 계속해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는 거야…….”

  “슬프다.”

  “그치.”

 

  나는 오르페우스와 엄마에 대해 생각하였다. 아내를 위해 지옥에 가길 자처했던 오르페우스와, 오지 않을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엄마. 사랑이 전부인 양 하는 이들을.

  그리고 고개 돌려 형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별이 되어 다행이야. 사람들이 영원히 그 음악을 기억하게 됐잖아.”

 

  형은 네 번째로 밝게 빛나는 별, 베타를 눈에 담았다. 반짝이는 그의 까만 동자는 밤하늘 같다. 그곳에 어리는 것은 별빛일까, 사랑일까, 눈물일까.

 

  “형도 그런 노래를 연주할 수 있어? 영원히 기억될 그런 노래.”

  “그럼! 난 더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노랠 부를 수 있지.”

 

  형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리곤 눈을 감고 노래하기 시작하였다. 

 

  옛날에 즐거이 지내던 이

  나 언제나 그리워라

  그리운 옛날의 그 얘기를

  다시 들려주셔요

  둘이서 거닐던 그 오솔길

  정다웠던 그 옛날에

  오늘도 눈앞에 떠오르네

  다정한 이의 얼굴 

 

 

 

 

 

  7 

  변화는 급작스레 찾아온다. 

  예고도 없이. 

  습격처럼.

 

  어제와 같이 자라난 수목을 다듬던 중이었다. 저택에서 나온 가정부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하여 한낮, 나는 저택의 내실로 불려갔다. 그곳엔 많은 것들이 있었다. 너른 창문으로 흐르는 하늘. 고풍스런 분위기의 벽장. 매끄러운 형태의 탁자. 청색으로 빛나는 도자기 화분과 난초.

  주인 부부는 방 한 가운데에 의자를 두고 앉아있었다. 대기는 둔탁하였다. 그 어느 날 들었던 장송곡처럼 엄숙한 분위기였다. 나는 정면을 응시하였다. 주인 부부의 훤칠한 얼굴, 명주실로 짜인 그들의 옷가지 같은 것들이 차례로 눈에 띄었다. 새까만 동자를 한 그들이 입을 열었다. 징병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엊그제 들은 라디오 내용을 떠올렸다.

 

  ㅡ정부가 이번 12차 회담에서 K국으로의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이번 파병은 현 정세를 감안한 것으로 보이며,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해 파견지역을 한시적으로…….</i>

 

  “모든 가정에서 파병자를 선발하라는 정부의 명령이야.”

 

  형의 말에 따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라고 한다. 높은 신분일수록 솔선수범하는 도덕의식과 공공 정신을 보여야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고매한 지위엔 그에 걸맞은 희생이 필요하단 것이다.

 

  “근데 너도 알다시피 원우는…… 몸이 좀 약하잖니.”

 

  형의 아버지는 저명한 정치가였다. 누구보다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할 사회적 지위를 가졌다. 그러니 이번 징병을 피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민규야.”

 

  타고나길 쇠약한 형. 제 몸 하나도 간수하기 힘든 형. 그럼에도 나를 보호하려 하는 형.

 

  “민규야…….”

 

  언제나 나를 지켜주려 하던…….

 

 

 

 

 

  8

  나는 여느 때 같이 시간을 보냈다.

  분별없이 불거진 나뭇가지를 다듬는다. 자라난 잔디를 깎는다. 살충제를 살포한다. 정원을 말끔히 정리한다. 빈 토지엔 꽃씨를 심고 기다란 호스를 통해 물을 끼얹는다. 해질 무렵이면 동물의 오물을 한 구석에 쌓아둔다. 삭혀진 분변은 수목들의 피와 살이 되어 자라날 것이었다. 

 

  태양은 매일 떠오르고 나무는 매일 자라났다. 

  그 발육한 이파리들을 다듬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마치 어제처럼.

  모든 게 성장하지 않은 것처럼.

  그러나 저택의 수목은 더 이상 잘려나가지 않을 것이다.

  마음껏 자랄 수 있을 것이다. 

 

  형의 일과에도 변함은 없었다.

  아침, 푹신한 침대 위 눈을 뜬다. 빗금처럼 스며든 해를 본다. 유연한 소재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가정교사를 맞이한다. 데미안이니 햄릿이니 하는 꼬부랑 언어를 공부한다. 요리사가 내온 아스파라거스 따위를 먹는다. 정원의 사과나무로 뛰어와 나를 만난다. 흰 셔츠를 입은 팔 사이엔 두꺼운 책 한 권이 껴있다. 나는 나무 위서 가지를 다듬고 형은 나무 아래 응달에 앉는다. 그곳에서 가져온 책을 읽는다. 이따금은 나를 바라보며. 

 

  일을 끝마쳤을 때는 해가 질 무렵이었다.

  노을을 등진 채 우리는 사과나무 아래 섰다.

 

  “내일 또 보자.”

 

  형이 여느 때처럼 인사하였다.

 

  “그래.”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다.

  형은 환히 웃었다.

 

 

 

 

 

  9

  나는 연못서 형과 함께 보던 전투기를 타고 떠났다. 

  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도처에 살기와 절망이 산재하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휘둘렀다. 총탄을 발사하였다. 죽고 죽였다. 죽지 않기 위해선 죽여야 하였다.

  군복을 입은 이들은 무척이나 다양하였다. 생명 수당을 위해 지원하였다는 서른둘 장년. 열여덟의 소년병. 어쩔 도리 없이 징병되어 온 청년. 우리를 통솔하는 이는 파란 동자의 외국인이었다. 그가 은빛 봉지 여러 개를 건네었다. 비스킷이었다. 알 수 없는 꼬부랑 언어를 들으며 우리는 그것을 나눠먹었다.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요. 고국에 어머니가 있어요. 저만을 기다리실 거예요. 나는 처와 아이가 있어. 아인 이제 두 살밖에 안 되었다고…….

  모두가 살아 돌아갈 그 날만을 열망하였다.

 

  기습이다!

 

  비명과 함께 포탄이 터졌다. 살점이 찢기는 소리가 들렸다. 옆자리의 병사가 고꾸라졌다. 조금 전까지 어머니 이야기를 하던. 반짝이는 두 눈으로. 언제나 죽음은 이리도 쉽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눈두덩을 비볐다. 손등 위로 핏물이 묻어나왔다. 얼굴에 튀었던 핏방울이었다. 옆자리 청년의 것이었다. 

  총알이 비처럼 쏟아졌다. 폭탄이 터졌다. 화염이 일었다. 쓰러지는 사람들. 폭죽처럼 터지는 피. 죽음. 살육. 피. 비명. 지옥. 

  새빨간 화염 속에서 병사들이 몸부림쳤다. 부모의 이름, 또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나는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없어 핏물만 삼켰다.

 

  전투가 휩쓸고 간 자리엔 시신들이 즐비하였다. 영혼이 빠져나간 육체는 살덩이에 불과하였다. 나는 그 중 하나를 뒤집었다. 핏발이 선 흰자위가 당시의 고통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두 눈을 감겨주었다. 묵념하였다. 그 언젠가의 형처럼. 엄마의 죽음을 추모해주던 형처럼. 그리고 그 품에서 유품으로 남을 단도를 꺼내었다. 날카로운 칼의 단면이 희게 빛났다. 그것을 한참이나 응시하였다. 비추어지는 것이 나의 얼굴인지, 형의 얼굴인지. 알 수가 없어서.

 

  형은 어디에도 없고, 또 어디에나 존재하였다.

  죽을 고비마다 문득 떠오르는 것은 형의 얼굴이었다. 전쟁이, 살육과 비명이 너무도 고통스러울 때, 그리하여 이대로 영영 잠들어도 괜찮을 것 같을 때, 나는 불가항력처럼 형을 생각하였다.

  형은 나를 기다릴까. 

  사과나무 아래 서 오두막을 바라볼 형.

  형을 떠올리면 나는 슬펐다. 또 기뻤다. 

 

 

 

 

 

  10

  밤이면 종종 보초를 섰다. 기습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릴없이 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장의 밤은 매캐하였다. 채 가시지 못한 연기와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별빛 없는 밤하늘은 암흑일 뿐이었다. 여기선 별이 보이지 않네. 나는 거문고자리를 찾으려 애썼으나 매번 허사로 돌아갔다. 대신 그 날의 노랫말을 읊조렸다.

 

  옛날에 즐거이 지내던 이

  나 언제나 그리워라

  그리운 옛날의 그 얘기를

  다시 들려주셔요

  둘이서 거닐던 그 오솔길

  정다웠던 그 옛날에

  오늘도 눈앞에 떠오르네

  다정한 이의 얼굴 

 

  나는 더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노랠 부를 수 있지. 형의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형이 불러준 그 노래를 잊을 수 없었다. 또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영원히.

  정다웠던 그 옛날에. 오늘도 눈앞에 떠오르네. 다정한 이의 얼굴. 그것을 흥얼거리고 있자면 그 날의 밤하늘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우리가 함께 보았던 무수한 별빛들. 그것을 가리키던 형의 손끝. 그 밤의 풀벌레소리와 형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내게 그의 세계를 술회하던 형. 그것을 듣던 나는 즐거웠나? 즐거웠던 것 같다. 형의 낮은 음성으로 듣는 그 모든 것들을 좋아했던 같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 

  나는 그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기도한다.

  매일. 

  형의 하루가 평안하기를.

  그 밤이 안락하기를. 

 

 

 

 

 

  11

  결전의 날이었다. 적진으로 침투하려는 것이다. 긴장된 낯으로 우리는 방어벽 뒤에 섰다. 진영으론 무수한 총탄이 날아왔다. 죽으러 가는 길이나 마찬가지예요. 우리 모두 죽을 거라고요! 병사 중 하나가 두려움에 떨며 울부짖었다. 적군의 섹터를 점령해야 해. 안 그럼 정말로 모두 죽는다. 부대장은 엄중한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돌격!

 

  고함과 함께 병사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또다시

  또다시 피가 터졌다. 총알이 비처럼 쏟아졌다. 찢어지는 비명. 쓰러지는 사람들. 죽음. 피. 살육. 비명. 피. 지옥.

 

  일순 시야가 붉어졌다. 총탄이 누군가의 몸을 관통한 것이다. 누군가의 살을 찢어발긴 것이다. 고꾸라진 그가 울부짖었다. 엊그제 말을 나누었던 열여덟 소년병이었다. 

 

  너무 아파요, 너무 아파. 형, 살려줘요, 제발…….

 

  죽어가는 눈이었다. 눈물과 공포가 낙하하였다. 까맣게 빛을 담던 동자가 점차 불투명해져갔다. 나는 그 눈동자 속 처절함을 보았다. 그 옛날 누군가의 것과 꼭 닮아있는. 그것은 엄마 눈이었다. 죽는 그 날까지 아빠를 기다리던 엄마의 눈이었다. 

  나는 엄마의 사랑에 신물이 났었다. 그 맹목적인 사랑이 지긋지긋하였다. 사랑이란 것은 참으로 바보 같은 것이라고. 사람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엄마는 그 사랑으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이 아닐까. 

 

  병사들이 차례로 쓰러져갔다. 굉음으로 귓가가 울렸다. 일순 가슴께가 불에 덴 듯 뜨거웠다. 이윽고 고꾸라졌다. 흙 위로 누인 나는 숨을 헐떡였다. 터뜨렸다. 두 눈을 더디 깜빡였다. 타오르는 나무와 매캐한 하늘, 그 언젠가 그려 세운 십자가를 보았다.

  나를 살게 하고 엄마를 살게 했던 것. 그것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눈을 감는다. 떠오르는 것이 많았다. 자라나는 수목. 젖은 흙과 자갈. 웃음소리. 스며드는 햇빛. 참방이는 흰 발. 읊조리는 노랫말과 창공을 수놓은 천체. 뺨을 간질이던 강아지풀. 가벼이 부는 바람. 사과나무. 그 아래서 웃던 그 날의……. 

 

  기억의 파편은 점진적으로 멀어져간다. 

  아득해지는 의식 속, 선명한 것은 단 하나.

  그제야 나는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었나 보다. 사랑이었나 보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