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a heavenly way to die
What a time to be live
Because forever is in your eyes
But forever ain’t half the time”
W. 𝐒𝐔𝐍𝐅𝐋𝐎𝐖𝐄𝐑
김민규는 전원우를 16살 때, 뮤턴트 영재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사실 일방적 구면인 사이이다) 회색빛의 머리를 갖고 있는 염력과 텔레파시를 사용하는 사람. 그 사람은 능력을 사용할 때 항상 눈과 머리가 회색으로 바뀌었는데, 그게 퍽 마음에 들었는지 김민규는 겁도 없이 전원우의 머릿속에 들어가려고 시도했다가 가차 없이 막혔었다. 그래도 김민규는 좋았다. 전원우가 목소리를 발 들려주지 않아도, 수업 시간에 졸아도, 자신의 능력을 살인에 사용하는 데도 김민규는 그저 전원우가 좋았다. 전원우는 그런 김민규에게 ‘무섭지 않냐’라고 물어보았는데, 김민규 이렇게 대답했다.
“천사 같아”
신의 은총을 받는 아이는 장 안의 화재였다. 그가 영재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그러니까 아직 자기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을 때, 염력을 이용하여 사람을 거의 반 죽여 놓은 적이 있었다. ‘신의 은총이자 화살촉’, 진부한 별명이 따라붙었다. 그는, 전원우는 세상으로 나가기엔 너무 어렸으며 그렇다고 자신의 능력이 저지른 일을 덮어 놓기엔 날개가 너무 컸다. 그날 그는 가족을 잃었다. 그의 가족은 한치의 미련도 동정도 없이 그를 뮤턴트 영재학교에 데려왔다. 울지 않았다. 10살에 그는 이미 자신에게 이러한 능력-이라 쓰고 은총이라 읽는-을 준 신을 저버리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능력은 부모의 유전자가 변이된 것이 아닌 그저 신의 은총이라고. 스스로 인간으로부터 등을 돌려 신의 화살촉이 되기를 자처했다. 그리고 뮤턴트와 인간 사이에서 일어난 제1차 인계 대전 때, 전쟁에 참여한 인간의 97%를 혼자 죽였다. 그가 13살 때였다. 라디오를 통해 전원우의 이야기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으며, 티비로는그가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던 장면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여 틀어줬다. 김민규는 그때 처음으로 전원우의 모습을 처음 접하였다.
“아, 머리색 예쁘다.”
처음 본 순간부터 김민규는 전원우의 머리가 그렇게도 좋았다. 반짝이는 회색빛 머리에 햇빛이 산란하면 그것은 김민규의 눈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되었다.
전원우는 그렇게 희고 차가우면서, 온 세상의 차가움은 자기가 다 가졌을 거 같으면서 한여름에 태어났다고 했다. 해가 제일 긴 날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그런 무더운 여름날. 혼자 남겨진 이 세상에, 아직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전원우는 그렇게 인생이 마치 처음이 아닌 양, 덤덤하게, 무심하게 그렇게 매일을 살아왔다. 보랏빛이 감도는 회색 눈을 바라볼 때면 김민규는 왠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전원우의 능력 때문이겠지 라며 어영부영 넘겼다.
살면서 한 번쯤은 접해본 그런 어린아이의 꿈. 뮤턴트가 되고 싶어요! 라는 아주 깜찍한 꿈. 전원우는 티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보고 감동받아 인터뷰하는 네다섯 살 즈음의 아기를 보고 김빠지듯 픽- 웃었다. 그 순간에는 열아홉의 김민규도 있었다. 김민규는 뮤턴트였고, 등급도 아주 높았다. 그렇지만 전원우를 이길 순 없었다. 왜 이길 수 없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일단 수긍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여느 때와 같이 김민규와 전원우는 훈련을 받고, 수업을 같이 들으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뜸 전원우가 김민규에게 물었다.
“너는 여기 왜 왔어?”
김민규는 대답을 조금 망설였다. 사실, 형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전원우는 김민규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았다. 김민규 또한 전원우의 생각을 읽지 않았다.
“그냥… 가족들이 보냈어.”
“연락은 하니?”
“아니”
“그래, 그럼 됐어.”
짤막한 대화 뒤로 다시 침묵이 둘 사이에 흘렀다. 전원우는 잠시 멈춰 서서 하늘에 걸린 달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민규야”하고 불렀다. 김민규가 뒤를 돌아봤다. 전원우는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통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눈으로 그를 지그시 쳐다봤다. 김민규는 알 수 없는 기에 눌려 또다시 그저 멍하니 전원우를 바라봤다. 가위에 눌린 듯, 그 순간만큼은 움직일 수 없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전원우가 자신을 부른 것이 처음인 것 같았다. 나긋나긋하고 다정하지만 적당히 차가운 목소리로 “민규야” 이 세 글자를 말하는데, 왜 자신의 몸은 움직이지 않고 심장만 요동치는지 김민규는 몰랐다. 무심한 시간들 속에 홀로 다 잊었는지 그간 경험했던 것 중 처음이고 새로운 것이었는지 그는 알 길이 없었다.
“왜”
“아니야…날이 춥다.”
춥다기엔 이제 막 가을이 시작했다. 도통 알 수 없는 전원우의 표정은, 머릿속은 번번이 김민규에게 충동적인 행동을 안겨주었다. 예를 들어, 온종일 전원우만 생각한다거나, 전원우의 머릿속에 들어가려 하거나, 전원우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 것 등등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김민규는 충동적인 행동을 했다.
춥다는 전원우에게 윗옷을 벗어주며 귓가에 속삭였다.
“힘들면, 나한테 말해. 난 다 해줄게. 뭐든지”
한참이나 뒤에야 전원우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응”
김민규의 심장이 요동치는 나긋나긋하고, 다정하지만 적당히 차가운 목소리로.
*
모의 전투 훈련이 있었던 날이었다. 전원우는 일찌감치 훈련 중이었고 김민규는 오후 늦게야 비적비적 걸어나와 몸을 풀고 있었다. 멀리서 로봇들이 떼를 지어 전원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로봇들의 수를 세더니 이내 순식간에 로봇들을 찌그러트렸다. 로봇들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도 그의 머리색은 김민규가 사랑하는 회색 머리에 회색빛 눈동자였다. 그의 능력에 모두가 감탄하는 것도 잠시, 전원우는 순식간에 김민규와 학교의 모든 학생의 시야에서 자취를 감췄다.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훈련실의 스피커를 타고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지금 모의 전투 훈련실의 학생들은 신속히 훈련실 밖으로 나와주시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우왕좌왕하는 학생들 사이로 김민규는 전원우를 찾아 헤맸다.
“원우형!”
“전원우!!”
아무리 목이 터지라고 외쳐봐도,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플 때까지 전원우의 텔레파시를 찾아도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이란 사람은 자기와 수색팀이 전원우를 찾을 테니, 학생인 김민규는 기숙사에 얌전히 대피하라고 말했다. 김민규는 말을 듣지 않았다. 장비를 챙겼다. 다른 텔레파시 능력자가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투구와 소음기가 장착 된 권총 몇 자루를 챙기고 김민규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최면을 걸고 나왔다.
전원우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알 수 없는 중무장한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손발이 묶인 채였다. 밖이 빠르게 지나가고 공간이 덜컹거렸다. 기차 안이었음을 그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래서 인간들이 난 싫다는 거야”
주변의 공기를 훑어보았을 때 그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이 기차는 지금 정부에게 향하고 있다는 거와, 자신이 정부의 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군인들은 그를 보고 숙덕거렸다. 신의 화살촉이라고, 13살 때 인계대전의 인간 97%를 혼자 죽인 괴물. 전원우는 피식 웃었다. 그래, 너희들이 그렇게 혐오하는 괴물이 눈앞에 있으니까 어때? 그의 머리가, 눈동자가 서서히 회색으로 물들여지고 있었다. 정부라고 한들 전원우의 능력을 제어할 순 없었다. 절대 못 하지. 13살 때 무수히 많은 군인을 죽인 괴물을 어떻게 한낱 인간 따위가 제어할 수 있을 까. 그를 묶고 있던 사슬은 모래처럼 힘없이 바스러졌다. 군인들은 우왕좌왕했다. 하나같이 모두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도 못 한 채 무전기에다가 뭐라고 웅얼거리기 바빴다. 그 사이에 전원우의 머리와 눈동자는 모두 회색빛으로 물들여진 채였고, 그는 유유히 이리저리 꺾으며 몸을 풀고 있었다.
“안녕”
나긋나긋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서는 뒷짐을 지고 그저 오도카니 서 있었다. 군인들은 아무런 방어도 없이 서 있는 전원우에게 다가갈 새도 없이 픽픽 쓰러지며 죽었다.
“그러니까, 왜 인간 따위가 나대”
전원우는 그 뒤로 기차 안에서 자취를 감췄다.
김민규가 아무리 텔레파시를 열심히 써 봐도 전원우를 찾을 순 없었다. 3일 내내 김민규는 학교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와서 그를 찾아봤지만, 그 어디에도 전원우는 없었다. 그는 학교로 돌아와서 미친 듯이, 피난이라도 가는 마냥 급하게 있는 짐들을 다 싸기 시작했다.
“민규 어디 가니?”
“자퇴할래요”
“민규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김민규!”
막상 학교를 나와보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작 6년을 있었지만, 부모와는 이미 연을 끊었고, 뮤턴트라는 출신 성분은 이미 사회에서 버림받은 지 오래였다. 아, 뉴스에서 반정부군에 대한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김민규는 텔레파시를 통해 반정부군을 찾아 헤맸다.
‘누구세요’
‘반정부군 맞아요?’
‘… 가세요’
‘저기 저 그런 게 아니고!’
‘그럼 뭐요? 돈 받고 정보 캐려고 오신 거면 돌아가세요’
‘들어가고… 싶습니다’
‘뭐라고요?’
‘들어가고 싶다고요. 보아하니 텔레파시 뮤턴트도 한 명이던데, 한 명 더 오면 좋잖아요?’
‘… 여기로 오세요’
김민규는 반정부군의 기지로 가는 내내, 이제껏 있었던 일은 모두 잊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비록 그게 전원우일지라도.
*
“찬아 거기 아니지”
“그렇지 그렇게”
전원우 옆에서 훈련을 받던 열아홉의 김민규는 훈련을 지도하는 스물하나의 김민규가 되어있었다. 김민규는 아주 가끔 전원우 생각을 한다. 그가 처음으로 가슴이 쿵쿵 뛰어본 그 얼굴과 목소리를 잊을 수 없어서, 전원우를 처음 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서. 가끔 꿈에서 만나거나 몰래 신의 화살촉이라는 별명이 따라붙게 된 빛이 바랜 인계 대전 때의 뉴스를 돌려보곤 한다. 김민규는 부정한다. 나는 전원우가 그냥 그리운 거야. 그 회색 머리와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어서, 생각나는 거라고. 안타깝게도 그는 그런 감정이 처음이기에 아무도, 어떤 상황도 그에게 정답이 되어주진 못했다.
“형, 우리 이번에 어디 나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 좀 큰 케이스라 상위급 애들 데리고 나갈 거야. 눈에 띄어선 안 돼. 그러니까 네가 필요한 거고. 몰래 백업하는 거라”
“아, 언제 나가요?”
“내일모레”
“애들 준비해두자”
“네”
김민규는 반정부군에서 훈련을 가르치는 트레이너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반정부군을 가려주거나, 상대를 마인드 컨트롤하는 아주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었다. 덕분에 항상 김민규는 수트를 입고 있었고, 흑백의 수트와 대비되는 김민규의 금빛 머리는 그를 한 층 더 성숙하게 만들어줬다. 특히, 텔레파시를 사용할 때의 빨간 머리는 누구 하나 쉬이 부정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김민규는 아주 가끔 자신의 빨간 머리를 볼 때마다 전원우의 회색 머리를 상상하곤 한다.
‘원우 형의 회색 머리는… 여전하겠지’
“얘들아, 가자”
“네”
“잘 들어. 이번에는 절대 우리가 눈에 띄면 안 돼. 심지어 아군의 눈에 띄어서도 안 된다.”
“그럼 모두 출동”
각각의 능력에서 최상위권으로 이루어진 반정부군의 최정예 부대가 김민규의 쉴드를 받으며 조용히 전진해나갔다. 그리고 나간 적진에는, 회색 머리의 전원우가 오도카니 서 있었다.
김민규는 전원우를 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눈동자는 자연스레 전원우를 향한다.
왜 형이, 네가 거기 서 있는 거야. 위험한데. 구해줘야 하나? 과연 텔레파시가 통할까? 지금 우리의 임무는 뭐지?
6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전원우의 머리와 눈동자는 김민규가 또렷이 기억하는 13살, 인계 대전 때의 찬란한 그 색이었다.
김민규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의 실타래가 꼬인다.
텔레파시 능력자들만 알 정도로 공기의 흐름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1차 인계 대전 때 참전 했던 텔레파시 능력자들은 이 공기의 흐름이 아주 익숙하다고 했다. 신의 화살촉이 바꿔놓은 차디찬 공기라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등골이 오소소 솟았다. 김민규는 문득 이 공기에서 노스텔지아 그 무엇을 느꼈다. 곧이어 이어지는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한 기억들은 김민규를 자꾸만 방해했다. 익숙한 차가움. 차갑지만 어디선가는 적당히 다정한 그 공기가 그를 스쳐 지나갔다. 전원우가 있는 기억들도 공기와 함께 김민규를 스쳐 지나갔다.
“아…”
김민규가 힘없이 탁 주저앉았다. 덕분에 쉴드도 꺼져버렸다.
[김민규, 김민규 뭐 하는 거야!]
무전을 타고 리더의 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민규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노스텔지아 그 무엇은 김민규의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자꾸만 전원우의 나긋나긋하고 다정하지만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맴돌았다. 왜, 왜, 네가 거기 있어서. 죽을 수도 있는데, 왜 거기 있는 거야. 김민규가 속으로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 울부짖음은 전원우에게 보내지지 않고 투명한 거울을 지나 다시 반사되어 돌아왔다. 그는 절망했다. 멀리서 보이는 전원우의 몸의 상처가 김민규를 더 절망시키게 만들었다. 순간 반대쪽에서 날아온 총알이 그대로 전원우에게 꽂혔다.
“아!”
김민규가 외마디 탄성을 질렀다.
전원우의 옷이 검정색인 것이 무색하게 새빨간 피는 울컥울컥 배어 나왔다. 이질적이었다. 평생 그에겐 피가 없을 거라 생각했고, 피 같은 건 흘려보지도 않았을 것 같았는데, 그런 사람한테서 피가 고장 난 호스처럼 나왔다. 저 멀리서 김민규의 이성이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의 화살촉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그저 피가 줄줄 새는 몸을 이끌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백업하러 간 반정부군도 움직이지 못했다. 언젠가 김민규가 알 수 없는 기에 눌려 움직이지 못했던 것처럼.
순간, 김민규는 전원우의 머릿속에 도달했다.
‘민규야’
‘정신 차리고 일어서서’
‘도망가’
‘내 주위에 있지 마’
‘너무 위험해’
.
씨발! 몇 년을 기다려서 들은 소리가, 생각이 ‘도망가’였다. ‘도와줘’도 아니고 ‘구해줘’도 아니었다. 그렇게 미지의 전원우는 멍청하게 김민규만을 생각했다. 김민규의 새빨간 머리가 점점 더 짙어져 전원우의 피 같은 색이 됐다.
“김민규!!”
“정신 차려!”
김민규가 피를 토했다. 머리색과 같은 짙은 액체가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의식이 점점 희미해졌다. 이성은 점이 되어 사라져갔다. 그때 그를 봤을 때, 미소 지었던 것 같기도 했다. 아, 전원우는 어쩌면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나 보다.
주변에 있는,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모두의 귀에서 피가 흘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직 김민규와 전원우만이 피가 흐르지 않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져갔다. 김민규의 눈은 새빨갰고, 동공은 풀려있었다. 전원우가 김민규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동공이 조금씩 수축됐다.
“민규야”
노스텔지아 그 무엇을 느끼게 했던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민규는 놀란 마음에 뒷걸음칠 쳤다.
“민규야”
목소리가 계속해서 자신을 찾았다.
“뭐 해. 나랑 같이 가자”
아, 아 꿈이 아니구나. 살아 있구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김민규를 계속 달랜다. 그의 동공이 완전히 정상 범위를 되찾았다. 이제 다 끝난 줄 만 알았다. 그 순간 전원우가 김민규 앞에서 쓰러졌다.
“전원우!”
김민규가 후에 알게 된 사실은, 전원우가 각성하는 김민규에게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 진정시켰다는 것이다. 바보 같은 전원우. 자신의 상처가 더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저 김민규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는 사실 하나로 그는 엄청난, 말도 안 되는 고통을 견디고 김민규에게 다가갔다.
정말 끝인 줄 알았다.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전원우는 숨만 색색 내쉬며 겨우 생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모습 또한 이질적이었다. 어디서나 이름 높이 평가받던 신의 화살촉은 온데간데없고 새하얗고 마른, 삑 삑 소음을 내는 장치들이 여기저기 달린 전원우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전원우가 눈을 뜨지 못한 날이 닷새가 되던 날, 전원우는 또다시 사라졌다. 가지런히 개인 환자복만이 김민규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오는 티비엔 마치 6년 전의 전원우를 보는 듯한, 시체 더미 사이에서 혼자 빛나는 회색 머리의 전원우가 카메라를 건조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곧이어 전파를 타고 김민규에게만 들려오는 소리.
‘나를 떠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
‘나를 잊고’
‘부디’
김민규의 머리가 다시 검붉은색으로 물들여지고 있었다. 저기 어디지.
뉴스에서는 실시간이라며 신의 화살촉의 귀한 따위의 헤드라인과 함께 그가 인간을 몰살하는 장면을 틀어주고 있었다.
김민규가 실제로 본 전쟁터는 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몸이 찢어지고 터진 시체들이 즐비했다. 저 멀리 햇빛에 반짝거리는 전원우의 머리가 보였다. 김민규에게 중무장한 군인들이 몰려들었다. 순간이었다. 중무장한 군인들이 귀를 부여잡으며 쓰러지더니 이내 귀에서 피가 고장 난 호스에서 터진 물 마냥 흘렀다. 각성 시에 김민규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겨울날 여린 잎이 꼬꾸라지듯, 군인들도 꼬꾸라졌다. 정신을 잃은 군인들과 시체들이 그의 발에 챘다. 그렇지만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에 전원우가 서 있으니까. 또 탈진해버리면 안 돼.
한참을 발에 채는 시체들을 치우고 나서야 김민규는 전원우에게 닿을 수 있었다. 전원우는 여전히 시체 더미에서 빛나고 있었다. 김민규가 차게 식는 전원우의 손을 잡았다. 울고 있었던 것 같다.
김민규가 전원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사막에서 피어난
신께 바치는
이 세상 단 한 송이의
하얀 장미꽃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낮을 보내는 당신에게
이 꽃을 따다 바치리.
당신은 그저 꽃을 받고
내 손을 잡아주소서.
전원우가 울었다.
김민규가 웃었다.
Fin.
What a Heavenly way to D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