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 An empty bench.
2021. 2. 12. 14:40

 

 

 

 

 

 

*사망 소재가 사용되었습니다.

 

 

***

 

_죽음을 보는

 

 

"죽음을 본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어떤 사람이든지 저 말을 듣는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며 질문한 사람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할 것 같은 저 일이 누군가는 가능하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나라면? 주변 사람들이 듣는다면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니냐는 걱정 어린 소리를 들을 말이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그랬다. 나는, 사람들의 죽음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의 수명을.

 

길거리를 걷다가도, 장을 보다가도 문득 내 시선 안에 들어온 사람이 불투명하게 변하고는 했고, 이어서 그의 남은 수명이 변한 몸 안에 물처럼 채워지고는 했다. 평범한 21세기에 이게 무슨 헛소리야,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나도 이런 나 자신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지, 내 눈앞에 있는 모든 사람의 수명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수명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은 이들, 사고를 당해 숨결이 점점 멎어가는 이들이나, 금방 눈을 감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아픈 이들의 수명만 눈에 보였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가정에 평범한 아이로 태어나, 운동을 좋아해 늘 옆구리에는 농구공을 하나씩 끼고 다녔으며, 또래보다 키가 조금 많이 크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특이점도 없었고, 그 탓에 친구들에게는 ‘키다리’라고 불렸던 것이 다인, 그것이 내 학창 시절의 전부였다. 쌈박질 꽤 했을 것 같은 덩치에도 누군가와 주먹다짐을 한 번 해본 적도 없고, 성적이나 교우관계 등 그 나이대에 나를 나타낼 수 있는 모든 것이 그저 평범했다. 학원물 드라마를 찍는다면 옆 친구와 공을 가지고 장난이나 치고 있는 엑스트라로 주인공의 뒷배경을 장식할 것 같은 그런 아이. 그게 나였고, 그게 다였다. 나름 조용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너무 조용한 게 산 것이 문제였나. 누가 이딴 쓰레기 같은 능력을 준 건지 알 수 없으니 내가 원망할 수 있는 것은 하늘뿐이었다.

 

처음으로 본 죽음은 애석하게도 부모님의 것이었다. 그것도 아빠의 것. 예고도 없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죽음에 나는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도 알 턱이 없었고, 결국 아빠가 내 곁을 떠날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후회스러운 눈물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때로 돌아간다고 한들 내가 직접 아버지를 살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때처럼 그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을 텐데. 사랑하는 가족을 그렇게 허무하게 잃은 후에야 나는 내 능력을 끔찍한 고통과 함께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때가 내 나이, 열아홉이었다.

 

 

***

 

_첫 만남

 

 

“엄마, 병실 몇 호라고 했죠?”

“아니…, 굳이 오지 말라니까.”

“병원 다 도착했어요, 병실만 알려주세요.”

“아이고, 진짜…. 659호야. 추운데 조심해서 올라와, 우리 아들.”

 

오랜만에 온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찔러오는 듯한 알코올 냄새가 나를 반겼다. 정말 금방이라도 구급차에 실려 갈 것 같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지 않는 이상은 병원에 오는 것을 내키지 않는 나라서, 올 때마다 병원은 나에게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병원에는 삶과 죽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니까. 병원은, 지금 내가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마지막 숨을 내뱉고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고는 했다. 미리미리 건강 챙겨야지, 이러다가 쓰러지면 큰일 난다. 여유가 부족해 지키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병원에 올 때마다 나는 다짐했다.

 

건물 안,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복도에는 긴 벤치가 여러 개 놓여있었는데, 내가 그 짧은 거리를 걸을 동안 본 것만 해도 다섯 개는 족히 넘어 보였고, 그 위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꽤 보였다. 본인을 찾아온 사람들과 하하 호호 떠들며 복도를 울리는 무리의 모습, 검사실에 들어간 환자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다리를 떨고 있는 보호자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 엘리베이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벤치에는 이어폰을 낀 채 허공만을 주시하고 있는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하얀 피부와 어울리는 하얀 병원복을 입은 그는, 병원에 꽤 오랜 기간 있었던 것인지 손목에 감겨있는 환자 확인용 팔찌는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고, 접어 올린 소매 틈새로 보이는 얇은 팔에는 여러 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남아있었다. 많이 아픈 사람이네. 그것이 그의 첫인상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먼지가 들어간 것처럼 따끔거려오는 눈에 생각할 틈도 없이 손이 먼저 올라갔다. 아, 그러고 보니 매번 누군가의 수명을 원치 않게 볼 때마다 이런 반응이 있고는 했는데. 왜 안 좋은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건지. 주위가 빨갛게 변할 정도로 비빈 후에야 눈을 제대로 뜬 내가 처음으로 본 것은, 이미 반투명하게 변해버린 그 남자의 모습이었다. 이어서 오묘한 색의 물 같은 것이 그의 무릎까지 차오르다 이내 멈춰버렸다. 곧 죽으려나.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되는 기분은, 그렇게 썩 좋지는 않았다. 고개를 돌려버리면, 시야에서 그 사람을 없애버린다면 더는 신경 쓰이지 않을 텐데. 그걸 알면서도 쓸데없이 넓은 내 오지랖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까지 그 사람에게서 고개를 돌릴 줄 몰랐다.

 

 

***

 

 

아유, 귀찮게 뭐하러 여길 왔어…. 병실 문 앞에 달린 이름표에 엄마 이름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내가 들어온 소리를 들은 것인지 안쪽 구석 침대에서 이불이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억센 천으로 만들어져 있는 병원복과 이불이 쓸리는 소리가 꽤 급한 움직임을 하는 것 같아 그쪽으로 향했다. 앞에서 이름표를 찾아볼 때 4인실임에도 엄마 외에는 누구의 이름도 걸려있지 않았으니 저 소리의 근원지는 엄마임이 확실했다. 조심스레 커튼을 열었다. 나를 마중하러 나오려던 참이었는지 급하게 고무 슬리퍼를 신은 채 한 걸음을 내딛으려다 멈춰버린 엄마의 표정이 나를 발견하곤 이내 머쓱하게 변했다.

 

“에이, 엄마가 다쳤다는데 자식인 내가 안 오면 되나.”

“그렇게 크게 다친 것도 아니구먼, 너도 힘들 텐데.”

“의사는 뭐래?”

"허리랑 무릎이 조금 다쳤다더라."

“어쩌다가?”

“집 앞에 바닥 언 거 못 보고 가다가 그냥 홀랑 넘어졌지, 뭘…. 그냥 몇 주만 입원하면 된대, 걱정하지 말아."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는 엄마의 행동에도 개의치 않아 하며 침대 아래에 있는 간이침대를 꺼내었다. 엄마 퇴원할 때까지는 나 여기서 지낼래. 무덤덤한 말투로, ‘지내도 돼?’ 같은 질문도 아니고, ‘지내는 게 어떨까?’ 같은 제안도 아닌, 통보였다.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웬일이냐는 듯 표정을 지으시다, 생각해보니 내 의견은 좀 아니었던 것인지 이내 아까보다 더욱 크게 손을 흔들며 반대했다.

 

“애는 무슨, 아픈 사람 돌보는 게 쉬운 줄 아니? 너 일도 해야 하고 하는데,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해 떨어지기 전에 집에 얼른 들어가, 어서.“

“아니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엄마 그렇게 크게 다친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 여기 좋은 선생님들도 많은데.”

 

왜 이렇게 고집을 피운 걸까, 그건 나답지 않은데. 난생처음으로 엄마에게 내 의견을 강요한 것이 다른 것도 아니고 엄마가 병원에 있는 동안 엄마를 도와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니. 하지만 완곡히 반대한 채 인상까지 찡그려가며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하는 엄마의 단호한 모습에 이번에는 괜스레 내가 더 머쓱해졌다. 그럼 나 여기 매일 올 거야. 입술을 삐쭉 내밀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엄마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알아서 하라 말했다.

 

엄마가 저녁을 드시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병실을 나섰다. 조금 더 있으려고 했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곧 해가 떨어질 것처럼 변해버린 하늘을 본 엄마가 이제는 정말 집으로 가라며 등 떠미는 바람에 결국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말았다. 1층에 도착한 후, 들려오는 음성과 동시에 열리는 문. 그 밖으로 한 걸음 내딛자마자 나는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아까 처음 병원에 왔을 때 내 머릿속을 잠깐 헤집어 놓은 그 남자가 아까 그 벤치 위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밥은 안 먹은 건가? 아니 밥 먹고 다시 내려온 것일 수도 있지. 저렇게 앉아있기만 하면 허리 안 아픈가? 아픈 사람 같던데, 가족들은 안 오는 건가? 아, …또 또 쓸데없는 오지랖. 다리는 멈춰서고 시선은 그에게 고정된 지 오래였지만, 고개를 내저으며 애써 그를 신경 쓴 기색을 티 내지 않으려 했다. 물론, 다시 멈추었던 몸을 움직였음에도 내 시선은 그에게로만 쏠려 있었지만.

 

 

***

 

_그에게

 

 

그 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를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 허리 보호대와 깁스를 한 채 걸음도 느린 엄마를 부축하는 것이 일상이 될 때쯤에는 이 생활을 반복한 지도 일주일하고 삼 일이 지났을 때였다. 그리고 첫날 병원에 갔을 때 봤던 그 남자는, 정말 나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그 자리 그대로 앉아있었다. 어떨 때에는 가끔 눈이 마주치기도 했으니, 아마 그 남자도 병원에 매일 출석 도장을 찍는 나를 신경 쓰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던 어느 날 그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병원에서 급하게 움직이던 도중 그 남자와 부딪히는 바람에 처음으로 나눈 한 마디가 사과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급하게 걷고 있었다 보니, 누구와 부딪힌 지도 잘 몰랐었는데 물건을 건네주며 마주친 얼굴이 꽤 익숙해서 나도 모르게 놀랐었다. 그는 내가 머쓱하게 들고 있는 자신의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이내 괜찮다는 말을 남기곤 자리를 떠버렸다. … 뭘 기대한 거야. 하긴 막상 그 사람을 붙잡고 할 말은 없었다. 단지, 신경 쓰였던 것이 다였으니까.

 

알 수 없는 실망감도 잠시, 그날 이후로 우리 둘은 이상하게 동선이 자주 겹치고는 했다. 어떨 때는 병동 복도에서 슬리퍼를 신은 채 터덜터덜 걸어오는 그와 눈이 마주치는 일도 있었고, 식판을 내놓으러 가는 길에도, 병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그리고 한 번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를 마주친 그가 먼저 아는 채 하며 인사를 건네었고, 그 일을 계기로 서로의 이름과 나이를 알게 되었다. 전원우,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사람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나를 많이 궁금해한다는 것 정도. 얼굴이 워낙 차갑게 생긴 사람이라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을 것 같았는데 가끔 병원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을 일이 생기면 대화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내가 아닌 원우 형이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로 병원에 이렇게 자주 오는지, 좋아하는 것은 뭔지, 처음 봤을 때 왜 자신을 그렇게 빤히 쳐다본 것인지, 좋아하는 사람은 있는지 등, 마치 오랜만에 만난 동네 동생에게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묻는 것 같았다. 처음에만 해도 갑자기 관심을 보이는 형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적도 있었고, 질문의 내용이 관심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들 같아서 조금은 오묘했지만 그렇게 크게 불편했던 것은 아니었으니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다.

 

형은 나와 대화할 때가 아니라면 조용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대화할 때면 내가 먼저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환자로 이 병원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마가 나를 먼저 필요로 할 때면 그 옆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형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 그대로 있거나, 아니면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벤치에서 노래를 듣고 있곤 했다. 그런 형에게 내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병실에 있는 것이 안전하지 않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형은 고개를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돌아올 거잖아, 난 없어져도 그 벤치에 오면 계속 있을 텐데, 뭘."

"그렇죠, 형은 뭐 늘 거기에 있으니까."

 

늘 안경을 쓰고 있던 형은,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을 두드렸다. 간간이 대화를 나눌 때도, 내가 오지 못하면 먼저 병실에 찾아와줄 때도, 벤치에 앉아있다가 나를 보면 환하게 웃어주며 나를 반겨줄 때도, 수수하게 웃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반한 것 같았다. 그 형을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기까지, 삼 주도 채 걸리지 않았다.

 

 

***

 

_위기는 늘 예고없이

 

 

병원에 온 지 삼 주가 지나가고 있을 때, 병원에서 이제 곧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회복력이 좋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는 엄마도 나도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병원에서 집을 오가는 생활도 지치고 있었고, 평소보다 자주 보이는 사람들의 수명에 쓸데없는 오지랖만 넓어져서 종일 머리가 복잡할 때도 자주 있었으니 집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많이 기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갑자기 원우 형의 모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퇴원하면, 이제 원우 형은 더 못 보는 건가? 내가 병원에 찾아오는 건 안 될까? 그래, 내가 오면 되잖아! 방문객으로 찾아오면 형을 계속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방금의 고민은 잠시 스쳐 갔던 스트레스로 날려버렸다. 그때 원우 형이 병실 앞에 온 듯 문을 살며시 열었다. 삼 주가 지나도록 아무도 오지 않는 병실에 조금은 큰 목소리로 원우 형을 반겼다. 침대에 누워계시는 어머니를 뒤로한 채 원우 형과 여느 날처럼 병동 복도 끝에 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

 

만났을 때부터 평소보다 좋아 보이는 내 기분에 의아해하던 원우 형이 물었다. 엄마가 이제 퇴원할 정도로 몸 좋아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곧 퇴원할 것 같아요. 입가에 지은 미소를 숨기지 못한 채 형에게 기쁜 듯 말하니 형의 얼굴이 어딘가가 울적해진 느낌이었다. 엥, 왜 그래요? 혹시 기분이 안 좋은 건가. 형은 아직 퇴원 못 하는데 내가 괜히 아픈 구석을 찌른 건가 싶은 마음에 조심스레 물었다. 너 퇴원하면, 우리 이제 못 봐? 안경을 쓴 형이 나를 시무룩한 표정으로 올려다봤다. 그럴 리가요, 내가 형 매일 찾아올래요. 아직 허락해준 적도 없는데, 나도 모르게 굳은 의지를 표현했다.

 

"장난친 거야, 너 일도 해야 하는데 언제 나 찾아오고 해."

"오라면 올 수 있어요! 나 진짜로!"

"어이구, 내가 그렇게 좋냐? 맨날 찾아오게?"

"……."

 

형은 아프지 않게 내 이마를 한 대 쥐어박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괜스레 아무것도 모르는 형이 미워지기도 했지만, 입술을 삐죽 내미는 것이 전부였지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인지 형은 입을 가린 채 킥킥 웃어대고 있었다. 가끔 이렇게 긴장을 풀고 있을 때면,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오는 형의 손길이 다시 내 심장이 뛰도록 만들었다. 그저 장난스러운 말 한 마디일 텐데도, 내 마음은 롤러코스터에 탄 것처럼 쉽게 오르내렸다. 들키지 않으려는 이성을 무시한 채 귀까지 열이 오르고는 했다. 형은 알고 말한 것이 아닐 테지만 혼자 내 마음을 들킨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머쓱하게 웃어보았다. 형은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 나는 퇴원 언제 하지? 웃느라 가빠온 숨을 몰아쉬던 형이 이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약간의 한숨도 섞여 있는 듯했다. 형과 이야기를 하면서 한 번도 형에게 어디가 아픈지, 언제 퇴원하는지에 관해서 물어본 적은 없는데, 왜냐하면 말해준 적은 없지만 나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굳이 내가 먼저 말하기다는 것보다는 형이 먼저 말을 꺼내주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입원 오래 했어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에둘러 물었다. 형이 먼저 입을 열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으음, 오래 했다면 오래 했지. 근데…"

"근데?"

"이제는, 뭐 다 필요 없어."

 

딱히 내가 기대했던 직설적인 문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형이 애써 숨기려고 했던 쓸쓸한 감정은, 애써 지어 보인 미소 안에 보이고 말았다. 평소와는 다른 머쓱한 웃음과 걱정스러운 내 눈빛을 불편해하는 모습. 더는 캐묻지 않았지만 질문하지 않은 것까지 전부 들어버린 기분이었다. 고백은 개뿔, 오래도록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감사할 것 같은 상황이었다. 괜스레 마음이 복잡해진다.

 

 

***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야 했고. 하지만 하늘이 무심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방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는지, 새벽에 엄마가 급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내 이성을 완전히 놔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레 복부에 큰 고통을 호소했다며 내가 집에서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는 엄마는 이미 수술실로 들어간 뒤였다. 수술실 앞, 히터가 멈추지 않아 이마에 흐르는 땀은 멈출 줄 몰랐다. 더는 마르지 않고 오히려 긴장으로 인해 손바닥까지 땀으로 범벅이 되어버렸다. 초조함에 다리는 계속해서 떨려왔고, 손톱은 입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깊게 깨문 아랫입술에서는 어느새 피가 나고 있었고, 꽉 쥐었던 손은 벌벌 떨릴 지경이 돼서야 힘이 풀렸다. 또다시 가족을 잃을 것 같은 기분에, 갑자기 아빠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창밖에서는 해가 제 머리를 조금씩 내밀고 있었다. 아직도 수술 중이라는 것을 알리듯 엄마가 들어간 수술실 문 위에는 초록색의 빛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주머니에 꽂아두었던 핸드폰을 꺼내어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시간은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수술이 언제 시작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아마 시간이 그렇게 많이는 지나지 않았을 테지만, 숨이 막혀오는 조용함과 긴장감이 1분을 1년같이 느끼게 했다. 언제 나와요…. 축축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잔뜩 떨려오는 목소리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핸드폰을 들어 전화번호부를 살피다가 '원우 형'이라고 저장되어있는 번호를 눌렀다. 지금쯤이면 자고 있으려나. 평소라면 민폐일 거라며 다시 핸드폰을 집어넣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원우 형, 자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메시지 속의 나는 한없이 침착해 보였다. 마치 술을 마신 채 여기저기 연락해보는 전 애인 같아 조금 멈칫했지만 이미 메시지는 전송된 후였다. 한참이나 돌아오지 않는 답장에 화면을 끄려던 찰나에, 진동 소리가 조용했던 병원 안을 울렸다. 나 안 자. 평소에 말하는 것과는 다른 무뚝뚝한 텍스트. 약간은 속상할 뻔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지금 올 수 있어요? 나 2층인데.

-2층? 네가 거기 왜 있어?

 

2층은 수술실만 있는 층이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오래 생활한 형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2층에 있다는 내 말에 형은 놀란 듯 답했다. 기다려, 내가 갈게. 이 시간에 여기를 어떻게 온다는 건지. 무뚝뚝한 글씨체로 온 형의 답장에서도 당혹감과 다급함은 눈에 훤히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와 함께 급하게 달려온 듯한 원우 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혀엉…. 절대 울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는데 형을 보자마자 가슴 속에부터 무언가 쌓아왔던 감정들이 한 번에 터진 것 같았다. 긴장도, 두려움도, 혼란함도, 불안함도 형을 보자마자 이 모든 것을 의지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와주세요… 저, 저 어떡해요…?"

 

 

***

 

 

나를 만나러 온 형은 내가 자신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린 모습을 보고 당황을 숨기지 못한 채 무슨 일이냐 묻는 말만 반복했다. 나도 모르게 형을 보자마자 양팔을 벌려 형을 내 품 안에 안았다. 그 상태로 형에게 고개를 묻어버리고는 병원복의 어깨 부분이 전부 내 눈물로 축축해질 때까지 고개를 떼지 못했다. 당황하며 팔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몰라하던 형은 이내 내가 진정할 수 있도록 천천히 내 등을 쓸어내렸다. 저 어떡하죠…? 그러니까, 무슨 일이냐니까. 아직 잠기가 가득한 목소리. 아마 내가 문자를 보낸 소리에 일어난 것 같았다. 아직 울음을 그치지 못해 잔뜩 훌쩍이는 나를 의자로 데려가 앉힌 형은 바로 그 옆에 제 몸을 기대어 앉았다.

 

"엄마가, 수술하신다고… 새벽에 너무 놀라서 급하게 병원 달려왔는데…."

"어머니 많이 아프시대?"

"잘, 모르겠어요…. 그때 너무 정신이 복잡했어가지고 기억이 잘 안 나요."

"괜찮아, 놀라면 그럴 수 있어."

 

형은 떨려오는 내 손을 잡은 채 괜찮을 거라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 그때, 또 한쪽 눈이 간신히 멈췄던 눈물이 다시 비집고 나올 만큼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아, 굳이 지금이어야 할까? 아니겠지. 아니어야만 해. 몇 번을 되뇌고 중얼거렸지만 결국 한번 시작한 변화는 멈출 생각을 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불투명하게 변해버린 형의 몸. 얼굴도 흐릿한 사람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고, 손을 만져본 것은 또 처음이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내려 형의 다리를 쳐다보니 저번까지만 해도 무릎까지 올라와 있던 그 오묘한 색의 물이 어느새 발목 아래까지 얕아지고 말았다.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정말 내일 당장 눈을 감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형 앞에서 죽음에 대한 것을 함부로 언급할 수 없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 굳게 닫혀 있던 수술실 문이 열렸다. 곧이어 나오는 의사 선생님에게 달려간 나는 상태가 마취만 풀리면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리자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고, 차가운 바닥에 한 번 주저앉고 나서야 온전한 이성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러자, 아까 형에게 안겨 눈물을 흘린 것부터 엄마의 수술이 끝날 때까지 내 떨리는 손을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준 형의 손까지, 잃었던 기억이 돌아오는 것처럼 한 번에 밀려들어 왔다.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이 꿈은 아니었는지 아직도 오른손에는 땀이 식지 않아 따듯했다. 그리고, 이어서 떨어져 있던 손을 다시 맞잡은 형의 행동에, 심장은 터질 듯 두근거렸다.

 

 

***

 

_친구보다 사랑할게, 연인만큼은 사랑하지 말자.

 

 

"어머니는, 이제 괜찮아지셨어?"

 

며칠 후, 엄마는 수술한 몸으로 퇴원을 하는 것은 무리였는지 병원에서는 조금 더 입원하는 것을 권유했고 엄마는 병원에서 조금 더 쉬는 쪽을 택하셨다. 그리고 여전히 나도 엄마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이제는 형도 만나기 위해 늘 병원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형을 처음 만났던 벤치에서, 이제는 형과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이 너무나도 평화로워서, 형이 금방 떠날 사람이라는 것을 또 잊어버리곤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마주할 때마다 전보다 조금씩 더 줄어있는 수명을 두 눈으로 마주할 때마다 또 내 기분은 한없이 바닥을 향해갔다. 형을 잊어야 한다며 자신을 다독여도 어느샌가 또 형을 떠올리고 있었고,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어색하게 허공을 떠돌던 손이 이제는 늘 맞잡고 있다는 것에 또 심장은 두근거렸다.

 

"이제 곧 퇴원하겠네?"

"으음, 그렇죠. 그렇게 큰 수술은 아니었으니까, 의사 선생님이 금방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근데 그렇게 울었어? 막 얼굴은 눈물범벅이 다 돼서는 완전…"

"아, 혀엉!"

 

민망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 날 일을 꺼내려는 형의 입을 손으로 급하게 막자, 형은 내 반응이 재밌는 것인지 킥킥대며 웃었다. 금세 돌아온 침묵에 갑자기 밀려온 어색함이 맴돌았다. 요즈음, 형과 이야기하다가도 이런 식으로 침묵이 찾아오는 일이 잦았다. 서로가 불편한 것은 분명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 감정을 무어라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우리가 참 웃겼다.

 

"좋다."

"뭐가."

 

미친, 속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나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형의 모습에 놀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내 몸은 뒤로 빠진 채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 그냥! 날씨 좋잖아요! 그런 내 모습을 보고선 이내 웃음을 터뜨리는 형의 모습에 설마 내가 형을 좋아하는 것을 눈치챈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발끈하여 아니라고 변명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바깥 날씨를 어떻게 봐, 바보야. 형의 말이 맞았다. 우리가 앉는 벤치는 건물 깊숙이 있어서, 문은 커녕 햇빛이 들어올 수 있는 작은 창문조차 없었다. 바보 같은 대답을 큰소리로 외치는 모습에, 민망해져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도 좋아."

"네?"

"좋다고."

"그러니까, 뭐가…"

"너."

 

네에!? 뜬금없는 말이 형의 입에서 나왔다. 지진이 난 듯 흔들리는 내 눈을 지긋이 바라보는 형의 표정은 정말 한없이 태연해 보였다. 마치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오히려 놀라 뒤로 넘어간 나를 왜 그러냐는 식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너, 나 좋아하잖아.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형은 당연한 말투로 말했다. 살며시 겹쳐있던 손을 빼려고 하는 순간, 오히려 손깍지를 껴오는 형의 행동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형을 좋아하는 것도 사실, 형이 나를 좋아하는 것도 이제는 사실. 그렇다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해피 엔딩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 그럼, 우리 막 사귀고 그러는 거예요?"

"아니."

"그럼 왜 말했어요?"

"그냥, 너 혼자 끙끙대고 있는 거 보기 안쓰러워서."

"형 저 좋아하는 거 맞죠…?"

"나 티 많이 냈다고 생각했는데, 안 났어?"

"하나도요…."

"나 너한테만 이렇게 잘 대해줘. 너한테만 관심 있고. 안 그러면 내가 너한테 먼저 말을 왜 걸겠어."

 

근데 우리 왜 안 사귀어요? 깍지를 끼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물었다. 저번과 같은 쓸쓸한 웃음을 지어 보인 형이 대답했다. 글쎄, 그냥. 형은 고개를 숙인 채 마주 잡은 손을 바라보았다. 그럼 우리 뭐예요? 친구? 내가 너랑 동갑이냐. 언제 슬픈 표정을 지었냔 듯이 킬킬대던 형이 말했다.

 

"친구보다는 사랑해줄게, 애인보다는 덜 사랑하고."

"그게 뭐예요, 완전 이상해."

"썸탄다고 생각해. 그냥… 무슨 일 벌어져도 덜 슬프게."

 

 

***

 

_뒤늦은 위험경보

 

 

원우 형이, 죽었다.

 

죽었다는 것에서 놀란 것은 아니었지만 설마 오늘일까 했던 안일했던 어제의 마음과 너무나도 손쉽게 떠나버린 것에 대한 허무함이 밀려왔다. 밤에는 집에 가야 했기 때문에 형과 저녁에는 만날 수 없었는데 홀로 있던, 그 시간을 버티기 힘들었던 것일까, 형은 그 하룻밤을 채 견디지 못하고 나를 떠났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벤치가 텅 비어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 여겼지만, 형의 병실에 있겠거니 하고 넘긴 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형이 이상해서 내가 먼저 병실로 찾아갔을 때, 텅 비어있는 병실과 없어져 버린 형의 이름표에 형의 죽음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설마 아닐 거라며 애써 드는 생각을 무시했다.

 

복도를 지나가던 간호사에게 물었다. 혹시 말없이 병실을 옮긴 것은 아닐까, 하며 원우 형의 행방에 관해 물었다. '설마'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집어삼키기 직전에, 그 단어는 '확신'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난처해지는 간호사의 표정과 잇따라 들려오는 안타깝다는 단어. 이런저런 경황도 없이 간호사에게 알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다시 형이 지냈던 병실로 향했다. 그제야 텅 비어버린 병실에 공허함이 밀려왔다. 무언가가 가슴을 관통하고 지나간 느낌과 동시에 울려오는 머리에 바닥에 주저앉을 뻔한 것을 간신히 벽을 잡고 일어섰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서 결국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1층으로 내려가자마자 형이 늘 앉아있던 벤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떠날 것을 알면서도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해본 적 없었다. 언젠가는 돌아올 거잖아, 난 없어져도 그 벤치에 오면 계속 있을 텐데, 뭘. 형이 나에게 했던 말이 귀에 맴돈다. 거짓말, 이제는 형이 없는데. 알고 지낸 것은 얼마 되지도 않으면서 순식간에 마음을 품어버린 것도 웃겼고, 그런 와중에도 그 마음을 혼란스러워만 했던 내가 어리석었고, 이제 와서 뒤늦게 후회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형과 늘 앉아있던 벤치에 몸을 기대었다. 고개를 바닥으로 내린 채, 멍하니 있으니 결국 매달려 있단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중한 사람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이번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온기 남지 않은, 텅 비어버린 벤치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