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파가니니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대가로 경이로운 연주 실력을 얻었다고 했다. 바이올린에 악마가 숨어있다는 소문은 파다했고, 사람들은 궁금해 하면서도 그를 무서워했다. 연주를 하면서 그는 점점 병들어 갔다. 그는 끝내 악마가 들렸다는 바이올린을 껴안고 이 곳 저 곳을 떠돌다 14살의 아들이 홀로 바라보는 앞에서 생을 마감했다.
파가니니의 연주는 누군가에겐 경이로운 음악이었지만, 사제에겐 그저 악마가 들린 음악이었을 뿐이었다. 같은 음악을 연주하여도 누군가는 벌을 받을 것이라며 두려움에 떨었고, 누군가는 감탄을 하다 그의 음악에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곤 했다. 파가니니가 연주한 것은 하나의 바이올린일 뿐이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그의 재능은 존경으로도, 불행으로도 작용했다. 같은 음악을 듣고도 이토록 다른 감상을 품었으므로 그 누가 옳다고 할 수도 없었고, 파가니니는 여전히 바이올린만을 켤 뿐이었다. 상상을 멈추는 순간, 시작된다는 그 황홀한 연주를 그 누가 가늠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놀라운 재능은 또다시 반복된다. 사람들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민규를 보면서 파가니니의 환생이 아니냐 이야기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마다 민규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그 정도로 미친 놈 같아? 그런 의미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민규는 더 이상의 평가라면 그 무엇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지독한 재능에서는 악취가 났다.
원한 적도 없었고, 단 한 번 필요로 한 적도 없었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민규를 시기했다. 그럴 때마다 민규는 입 밖으로 한마디도 내지 않았지만 차라리 가져가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파가니니의 환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민규는 그가 가진 건 재능 이였을지라도 민규에겐 그것이 불행이라고 확신했다.
일곱 살, 웬만한 전공자들만큼의 바이올린 실력을 갖추었을 때부터, 민규는 자신이 켜는 바이올린의 소리에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여겼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재능이, 바이올린이 싫었을 뿐이었다.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싶어 울면 민규는 매서운 발길질을 당했다. 그래서 어린 민규는 울먹거리면서도 악취가 나는 바이올린을 다시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잘 차려입고 콩쿨에 나타난 자그마한 아이가 연주를 시작한 순간, 모두가 술렁거렸고, 그의 부모님은 활짝 웃었다. 민규만은,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바이올린 영재, 김민규’라는 타이틀이 달렸다. 민규의 어머니는 천재 피아니스트였고, 아버지는 유명한 지휘자였다. 자신의 삶보다 보여지는 명성이 중요했던 두 사람은 천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자식을 원했고, 민규는 그에 걸맞는 아들이었다. 재능은 엄청났고, 그의 가정환경은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했다. 누군가는 민규가 될 놈이라고 했다. 처음 그 말과 마주했던 날, 민규는 여전히 표정도 없이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바닥에 내리쳤다.
“김민규, 너 연습 안 하니?”
“…하고 있어요.”
“부모님 이름에 먹칠 하지 마렴. 알아서 잘 좀 하면 어디 덧나니?”
“좋은 재능을 주면 뭐 해, 쓸 줄 모르는 자식새끼를. 한심한 놈.”
평온해야 하는 식사시간에 이어지는 부모님의 폭언은 민규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바이올린을 처음으로 부쉈던 날, 평소보다 더 심한 폭언과 폭력에 한참을 시달린 후에야 다리를 절뚝거리며 바이올린 레슨을 갈 수 있었다. 그래도, 민규는 걸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바이올린을 연주해야 한다는 이유로 하반신에만 가해진 매질이었다. 민규는 바이올린을 혐오했다. 민규가 자의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날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세어 봐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머릿속에는 항상 음표들이 떠다녔다. 어떻게든 쏟아내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고 울려 잠에 들 수 없어 자기 전까지 아무렇게나 음표를 휘갈겨 그리고 나서야 잠드는 하루가 반복됐다. 그려놓은 악보는 민규가 잠들어 있는 사이 민규의 부모님이 가져갔다. 그리고 더 좋은 곡을 뽑아내라며 민규를 닦달했다. 민규가 그려놓은 악보들은, 그 음악들은 단 한 번도 세상에 보여줄 수 없었다. 아무렇게나 구겨진 종이가 마치 제 신세 같다고 민규는 늘 생각했다.
그래서 지긋지긋했다. 바이올린이, 음악이, 주어진 재능이. 이것도 재능이랍시고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는 스스로가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떠나고 싶었다.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아주 멀리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짐을 쌌다. 이정도면 오래 버텼잖아. 민규는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오래 전 어디선가 보았던 오로라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오로라가 보고 싶으니까, 그거 보러 가는 거야. 그 말만을 중얼거렸다. 짐을 싸면서도 눈에 켕기는 바이올린을 애써 무시하던 민규가 방에서 나서기 직전, 바이올린을 집어 들었다. 망할 놈의 습관이 끝까지 스스로를 잡아먹으려 들었다.
*
핸드폰을 껐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친구도 없었고, 가족은 있었지만 가족이라고 칭하고 싶지도 않았다. 민규는 멍이든 허벅지를 습관처럼 만지작거렸다. 멍이 들고 다쳐도 약 하나 발라주는 사람이 없어 민규는 밤새 아픈 다리를 쓰다듬다 잠들곤 했다. 나중엔 맞지 않아도 허벅지를 만지작거리는 게 습관이 됐다.
결핍을 껴안고 자라난 민규는 종종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가서 콱 죽어버려도 나쁘지 않겠는데. 제 왼쪽에 놓인 바이올린을 애써 모른 척 했다. 처음으로 민규는 몸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바이올린을 수화물로 부쳐 버렸다. 눈앞에 보이지 않아야 할 것 같았다. 놓고 오면 됐을 것을, 바보같이. 그러면서도 끝까지 버리지는 못했다.
장시간의 비행 중에는 죽은 듯이 잠을 잤다. 해외 공연을 가도 예민한 탓에 비행기에서 잠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민규는 인생에서 이례 없던 평화를 느끼고 있었다. 기내식이 나오면 밥을 먹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새로운 땅이 보였다.
“어우, 추워….”
무덥기만 한 한국과 정반대의 날씨였다. 가져온 옷을 아무렇게나 대충 껴입은 민규가 공항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행기 티켓과 돈만 들고 왔다. 다르게 말하면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소리였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한숨을 내쉬면 누군가 옆자리에 앉았다. 민규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말간 얼굴이 민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인이에요?”
“…누구세요?”
“음, 저는 한국인인데. 혹시 아니신가?”
“한국인 맞아요.”
“아, 그래보였어요. 여행 오셨어요?”
여행, 이게 여행인가. 민규는 대답을 고르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물거리는 민규의 모습에 남자가 웃어보였다. 제 이름은 전원우예요.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우가 웃는 모습을 민규는 빤히 바라보았다. 원우가 얼굴을 긁적거렸다.
“저 뭐 묻었나요?”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
“아뇨, 죄송하실 건 아니구….”
“…….”
“음, 이것도 인연인데, 묵을 곳 까지 제가 차로 태워다 드릴게요.”
“아…….”
“어디로 가세요?”
민규가 머쓱하게 웃었다. 어색한 그 웃음에 원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갈 곳이 없다고 그냥 말씀하셨으면 진작 같이 왔을 텐데.”
“민폐…잖아요.”
민규는 민폐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면서도 제가 우스웠다. 한평생 제가 민폐라고 지칭 할 만큼 행동한 적이 있었던가. 사실 민폐 짓을 스스로 할 정도로 자주적인 인생도 아니었다. 타인과 일상적인 대화를 한 게 너무나도 오랜만이라 민규는 대답을 하기 전에 말을 고르고 골랐다.
“여행 온 건데, 우리 집으로 가면 너무 멀려나?”
“아, 여행…, 아니에요.”
“그럼 이민?”
“아뇨, 도망쳤어요.”
“그래요?”
민규의 말에도 원우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럼 원하는 만큼 쉬다 가요.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운전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런 원우를 쳐다보던 민규도 창밖을 바라보았다. 민규의 시선도 원우를 떠나 창밖으로 옮겨졌다. 흰 눈이 길가에 가득 쌓여있었다. 차로 꽤 오래 달린 것 같았다. 차에서 내리자 깔끔한 집 한 채가 나왔다. 혼자 살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곤 차에서 내린 원우가 민규의 짐을 트렁크에서 꺼내며 바삐 움직였다. 민규는 원우를 따라 움직였다.
“여기가 화장실. 집 소개는 끝. 궁금한 거 있어요?”
“…숙박비는….”
“숙박비는 무슨, 그냥 일이나 좀 도와줘요.”
“아…….”
고맙다는 말을 해본지가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아 입을 우물거리던 민규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숙여보였다. 원우는 다 안다는 듯 씨익 웃어보였다. 배고프죠. 조금만 기다려 봐요. 낯선 다정함에 민규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대가 없는 원우의 친절이 어색했다. 민규는, 원우의 친절에 적응하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게 싫지는 않았다. 원우에게 조금 더 다가가고 싶었다.
민규가 원우의 집에 머문 지 일주일이 흘렀다. 민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원우는 재촉하지 않았다. 사람과의 접촉에 어색한 민규에게 가끔 손을 잡거나, 뒤에서 껴안아오거나, 어깨동무를 했다. 그럴 때마다 민규는 뻣뻣하게 굳었지만, 원우는 다 안다는 듯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저 민규에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원우는 게으르면서도 부지런했다. 딱히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일찍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일어나 민규와 함께 밥을 먹고 나선 차를 마셨다. 그리고 나면 오전이 끝났다. 오후엔 집안 청소를 하거나, 가끔은 장을 보곤 했다.
할 일이 없는 민규가 따라가면 이것저것 민규에게 먹고 싶은 걸 물어가며 저녁 메뉴를 정하곤 했다. 오늘은 티타임. 나른하게 늘어져 앉아있는 원우의 건너편에서 민규가 차를 마셨다. 일주일동안 바이올린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럴 거면 대체 왜 챙겨온 건지. 스스로를 알 수가 없었다. 침대 옆에 놓여있을 바이올린이 괜히 신경 쓰였다.
“…민규씨!”
“아,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말도 못 듣고.”
“아…, 죄송,”
“죄송하다고 하지 말랬죠.”
“그것도 죄송한데….”
“민규씨. 여기까지 와서 보고 싶은 거 없어요?”
원우의 질문에 민규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원우는 제게 꽤나 다정했다. 뭐든지 서툴고 느렸던 자신의 행동에도 군말 없이 기다려주고, 들어 주었다. 민규는 원우가 제게 내려온 천사 같다고 생각했다. 이젠 원우를 따라 진심으로 조금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민규의 인생에서 아주 큰 변화였다.
“저, 오로라 보고 싶어요.”
“…진심이에요?”
“네, …여기선 오로라가 안보이나요?”
“어…, 그건 아닌데요. 민규씨.”
“네?”
“도망 온다고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원우가 푸스스 웃었다. 민규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런 민규를 보며 원우가 크게 웃었다. 민규씨, 여름에는 오로라 못 봐요.
“여기는 지금 해가 안지잖아요. 여름엔 원래 그래요. 백야.”
“…아.”
“지금은 백야라 오로라를 보기는 아무래도 힘들죠.”
“…언제쯤 볼 수 있는데요?”
“이 백야가 걷히면요?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올 때 쯤?”
원우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민규는 말간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정한 원우가 웃어서, 오로라는 못 봐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원우가 다 마신 찻잔을 치우자 민규가 자리에서 따라 일어났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성큼성큼 움직이는 민규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원우가 달력을 한번 흘끗 바라보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원우의 눈 위로 우울이 잠시 드리웠으나 민규는 그 미묘한 차이를 보지 못했다.
*
신이 주신 재능이라던 음악을 하지 않으면 곧 죽을 것 같이 살던 때가 있었다. 싫고 좋은 것과 상관없이 그냥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이 아파서 습관처럼 음악을 했다. 그 생활이 반복되니, 이렇게 살 거라면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간헐적으로 민규의 속을 치고 들어왔다. 그리고 민규는 도망쳤다. 죽음으로부터.
민규가 이곳으로 도망 온 지 2주가 지났다. 원우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민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 일주일은 정말 괜찮았다. 악보에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잠을 잘 수 있었고, 바이올린을 켜지 않아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딱 일주일동안만 그랬다.
정확히 2주째에 들어서자 머릿속에 맴도는 온갖 음표와 들리는 멜로디에 민규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에 들어도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공연장에서 아무 연주도 하지 못하는 제가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민규는 다시 악보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리다 잠에 들면, 마치 꿈이라도 꾼 듯 다음 날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먼저 일어난 원우가 치웠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민규는 원우가 정말로 천사라고 생각했다. 원하지도 않았던 지옥 같은 재능에서 나를 꺼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구원, 천사. 전원우.
둘 다 구태여 묻지 않았고, 말하지 않았다. 그건 민규 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원우는 달력을 꼼꼼히 체크했고, 또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이 밥을 먹고, 나란히 식탁을 치웠다. 싱크대로 향하는 민규의 발걸음이 익숙했다. 민규씨. 원우의 말에 민규가 고개를 돌렸다. 원우는 웃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원우는 늘, 웃고 있었다.
“산책 갈래요?”
간결한 원우의 말에 민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정리하던 것도 내버려 둔 채 밖으로 나섰다. 저녁시간이었지만 여전히 밝았다. 이곳에선 시계가 없다면 시간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민규는, 하루가 정말 길다고 생각했다.
“민규씨.”
“네?”
“이제 곧 여름이 끝나요.”
“그래요?”
“네. 그러면 민규씨는 오로라를 곧 볼 수 있을 거예요.”
“…오로라도 같이 봐 줄 거예요?”
“하하…,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건 좀 힘들 것 같아요. 미안해요.”
원우의 말에 민규가 서운한 티를 감추지 못했다. 그런 민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원우가 민규의 손을 잡았다. 늘 서늘한 원우의 손보다 민규의 손은 조금 더 뜨거웠다. 민규가 원우를 바라보았다.
“내 얘기를 들어줄래요?”
“네?”
“아무한테도 한 적 없는 얘긴데….”
민규씨한텐 괜히 좀 말하고 싶어서. 여전히 원우는 웃었다. 민규는 처음으로, 원우가 웃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원우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서워 민규는 원우의 손을 꼭 붙잡았다.
*
저주래요, 저주. 21세기에 무슨 저주냐, 싶은데 사람 목숨이 걸렸다고 하니까 또 생각보다…, 믿어지더라구요. 담담하게 말하는 원우의 눈이 처연했다. 민규는 마른 침을 삼켰다.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았다.
“달이 뜨는 밤이 오면 죽어요.”
“그게…, 무슨…….”
“정확히는 달 말고, 밤이겠죠.”
“원우씨, 그게,”
“어둠 속에 갇히면 저는 죽어요. 그래서 이 백야 속에서만 온전한 밤을 살아갈 수 있는 거죠.”
“…해결할 수는 없는 거 에요?”
“글쎄요, 방법을 모르겠어요. 사실 이미 나았는데 제가 밤에 나가지 않아서 여전히 이렇게 지내는 걸 수도 있어요. …. 잘 모르겠어요. 죽는 게 무섭긴 한가 봐요.”
“…….”
“민규씨가 어떤 걸로부터 도망쳤는지 잘 모르지만,”
“원우, 씨,”
“저도 도망쳤거든요. 밤으로부터.”
저도 민규씨랑 오로라가 보고 싶었는데, 미안해요.
원우가 민규를 올려다보았다. 원우의 올라간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민규는 원우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주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건 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악마가 준 재능을 가진 사람, 그리고 밤을 온전히 느낄 수 없는 사람. 둘 다 쉬이 이해가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민규는 실없는 웃어 버리고 말았다. 한참을 웃던 민규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 원우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 여름이 끝나면 원우씨는….”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요. 다른 곳으로 가겠죠. 밤을 견뎌내면서요.”
민규는 원우가 불쌍하다고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도 접었다. 스스로 밤을 이겨내는 사람과, 온전히 제게 주어진 것 하나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 세상 사람들이 누굴 더 불쌍하게 여길지는 민규 스스로가 더욱 잘 알았다. 그래서 쓸데 없는 동정을 지워 냈다.
“내가 떠나면…, 민규씨는 어떡할래요?”
“…모르겠어요.”
“재촉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이젠, 시간이 진짜 별로 없어서…. 정말 미안해요.”
민규는 원우의 말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더 이상 민규도 이곳에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민규의 부모님도 민규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었다. 집에서 봐줄 수 있는 기간, 민규의 자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잘 알았다. 다만, 그런 제 상황들과는 상관없이 그저,
“이 곳을 떠나도,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어요?”
“…당신이 내가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면요.”
원우는 예의 말간 미소를 지었다. 원우의 그 웃음이 이제 민규에겐 더없이 아프게 다가왔다. 잡았던 손을 놓자 원우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민규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 원우의 얼굴을 감쌌다. 둘의 시선이 맞닿았고, 두 눈이 감겼다. 입술이 닿았다.
흔히들 첫 키스를 하면 종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민규의 첫 키스는, 바이올린 소리가 이리저리 엉켜, 하나의 연주가 되었다. 민규는 원우가 자신을 구하러 온 천사였는지, 자신을 구렁에 밀어 넣었던 악마였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악마는 제 스스로가 아니었을까, 민규는 생각했다. 첫 키스는, 달지 않았다. 지독하게 쓰기만 한 키스임에도 불구하고, 민규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사랑이었다.
*
무언가에 쫓기는 것 마냥 민규와 원우는 틈만 나면 몸을 섞었다. 끝없이 사랑을 고백했다. 더 이상 원우는 의미 없는 웃음을 짓지 않았고, 민규는 우울에 빠지지 않았다. 나아진 것 하나 없는 상황에서도 모든 걸 잊은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헤어짐과 사랑 앞에서, 둘은 나름대로 절박했다.
며칠 뒤 원우는 먼저 집을 떠났다. 먼저 가서 미안해요. 꼭 다시 봤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원우는 그 말을 하면서 다시 웃었다. 원우는 울지 않았다. 민규는 원우가 참 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원우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악보를 민규에게 전해주었다. 혹시 필요할까봐 모아놨다는 말도 빠지지 않았다. 민규는 제가 밤새 그려 놓았던 악보를 한참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바이올린을 꺼냈다. 민규는 원우와의 첫 키스를 악보에 쏟아 내렸다. 그 뒤로는 자기 전에도 괴롭지 않았고, 악몽도 꾸지 않았다. 민규는 원우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그래서 민규는 결심했다. 내가 당신의 구원이 되기로. 전원우가 김민규의 천사였던 것처럼, 악마의 재능을 가지고도 당신을 구원할 수 있는지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당신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내가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닿을 수 있도록, 내가 만들어 줄게.
민규는 그 날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핸드폰을 키자 역시나 많은 연락은 와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더 이상 절망스럽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야 하등 가치 없는 대상에 불과했다. 제게는, 어차피 돌아올 원우가 있었다. 밤을 물리치고 제게로 올 천사가, 있었다.
민규는 연주회를 준비했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김민규. 그 이름이 싫어 단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던 곡이 있었다. 이번만큼은, 이 곡을 연주해야만 했다. 부모님은 달라진 민규의 태도를 만족스러워 했다. 민규는 굳이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제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이 곡을 마지막으로 하게 해주세요.”
“이건……, 김민규.”
“이거 안하면, 저,”
“…….”
“자를 거예요, 제 손목.”
경악한 부모님의 표정 앞에서 민규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사랑에 미쳤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저는 아직 갖지 못한 게 많았고,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민규에게 주어진 재능은 더 이상 쓸모없지 않았다. 끝끝내 자신이 원하는 세트리스트를 얻어낸 민규는 밥도 굶어가며 하루 종일 연습에만 매진할 뿐이었다. 그 모습은 정말로, 악마에게 영혼을 판 사람 같았다.
*
원우는 저무는 해에 커튼을 쳤다. 불안감에 손톱을 물었다. 여전히 밤은 무섭다. 잠들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 됐다. 하루 종일 밝은 곳에서 마음 편히 지냈던 시간이 있어 더 그랬다. 원우는 민규가 그리웠다. 민규에게서 간간히 연락이 왔음에도 원우는 답장하지 않았다. 아직 온전히 이 밤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였다. 답장이 없자 민규의 연락은 점점 뜸해졌다.
한국으로 돌아온 원우는 시간을 죽이려 티비를 봤다. 그럼 민규가 나왔다. 제 앞에서 작게나마 웃던 민규는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소름이 돋는 연주를 하는 민규가 나왔다. 원우는 그런 민규가 조금, 아팠다. 낮에는 승철이 원우를 찾아왔다. 원우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찾아봤어?”
“어, 무슨 고전 동화 모음집에 있더라.”
“…방법은?”
승철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원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원우를 본 승철이 크게 웃었다. 못 찾았다고 안했는데? 뭐라고? 찾았지. 어? 찾았다고. 뭔데?
“키스.”
“…어?”
“영원한 사랑의 키스.”
“…….”
“무조건 영원한 사랑. 되게 추상적이지?”
알아봐 달라고 한 거 알아왔으니까 난 간다. 바빠. 승철이 문을 열고 나가고, 원우는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 민규와의 키스가, 영원한 사랑의 키스였을까. 민규를 사랑했지만, 그 역시도 나를 그만큼 사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원우는 민규에게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핸드폰이 울렸다.
[9월 2일 저녁 여덟시 연주회 시작이야. 이름대면 들어올 수 있게 해놓을게. 꼭 왔으면 좋겠어]
저녁에 제가 나오면 안 되는 걸 민규가 모르지 않았다. 원우는 민규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불안감에 심장이 세게 뛰었다. 또한 한편으론 설렜다. 만약, 민규가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면? 나의 밤에 가득 찬 죽음을 걷어낼 수 있다면? 민규의 연주회를 가려면, 원우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민규의 연주회 날이 다가왔다. 옷은 차려입었지만 원우는 여전히 나가지 못했다. 죽음이 드리운 어둠이 너무 무서웠다. 원우는 이제 가식으로도 웃을 수 없었다. 여덟시가 되었고, 민규의 연주회는 차질 없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티비에서 보았던 민규의 바이올린 소리가 귀에 울리는 것만 같았다. 연주회는 총 두 시간, 원우가 나가기를 주저하는 사이 연주회의 반이 끝났다. 핸드폰이 짧게 한번 울렸다. 민규였다. 문자를 읽은 원우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당신이 없다면, 오늘 나도 죽어]
*
연주회가 끝을 달리고 있었다. 원우는 밤을 온전히 마주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물 때문에 얼굴이 엉망이었다. 원우는 그 긴 밤을 이겨내며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었’다. 저주가 끝난 지금, 원우는 민규를 만나야만 했다. 입구에서 저를 제지했다. 벅차오르는 숨에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제가, 그니까, 제가요, 그, 김민규씨를, 봐야하는데.
“혹시 전원우씨 맞으신가요?”
“네, 네! 제가 전원우 맞아요!”
급하게 뛰어와 두서없는 말을 이리저리 전달하자 무언가 무전을 받은 듯이 앞을 가로막고 있던 사람이 이름을 묻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원우는 앉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입구에 선 채로 입을 틀어막았다. 넓은 무대 위에 민규는 단단하게 서 있었다. 마지막 곡을 연주할 차례였다.
Paganini Caprice No.24.
김민규가 그동안 단 한번도 연주하지 않았던 곡.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라 파가니니의 곡. 원우는 혹여나 제 소리가 새어나올까 세게 입을 틀어막았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완벽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연주였다. 보는 사람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는지, 공연장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연주가 끝났다. 민규가 거친 숨을 몰아쉬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가볍게 인사한 민규가 들어갔다. 장내에 불이 들어왔고 하나 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원우는, 단 한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다 빠져나가고 원우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민규의 연주를 본 순간 원우는 인정해야 했다. 원우는, 민규에게 구원받았다. 밤으로부터 도망쳐 갈 곳은 백야가 아니라 김민규라는 것을, 원우는 민규의 연주를 보며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다리가 풀려 일어나지 못하는 원우가 온 몸을 들썩거리고 울고 있을 때,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면, 여전히 무대 위에 서 있는 민규가 보였다. 울고 있는 원우와 눈이 마주친 민규가 한번 웃어보였다. 민규는, 다시 바이올린을 들었다.
Paganini's Angel.
세상에 처음 나온 민규의 자작곡이었다. 파가니니의 천사. 악마에 홀린 바이올리니스트의 천사. 원우와의 첫 키스를 담은 곡. 민규의 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우는 민규의 연주를 들으며, 그에게 당장이라도 달려가 키스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원우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민규와 마주했다. 연주를 끝낸 민규는 바이올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둘의 시선이 맞닿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끝내 악마와 천사는 서로를 구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