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엔] 마지막 나팔꽃
2021. 2. 9. 00:20

마지막 나팔 꽃

 

시선의 끝

 

미래앤

 

 

 

 

형이 죽었다.

 

 

 

내 사랑, 내 가족, 내 친구, 내 모든 것이던 내 사랑이 죽었다.

 

민규는 죽으려했다. 지켜주지 못한 저가 실망스럽고 너무 경멸스러워서. 병명은 위암이었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는 흔한 병인데 이미 진단 받았을 때는 말기였다. 가자마자 시한부가 되었다고 한다. 딱 3개월. 그 이상으로 살지, 아니면 더 일찍 죽게 될 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원우는 참 정직하고 바른 사람이었다. 힘들어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누구던 아무런 대가를 원하지않고 도와줬다. 오래 연애 했으면 고맙다는 인사가 당연해질 수도 있는 법인데 원우는 항상 민규가 조그마한 선물 또는 음식 아니면 그냥 사랑한다는 말 조차도 고맙고 미안하게 생각했다. 민규는 항상 원우의 그런 점이 좋았음에도 저에게 미안해하는 형을 보면 그냥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표현을 금지하고 싶어했다.

 

원우는 사랑에 익숙치않았고, 민규는 익숙했다. 그를 보며 사랑을 배웠고 그를 사랑했다. 시한부 선고 받고도 원우는 민규 생각을 했다. 아 민규가 슬퍼할텐데. 어쩌지. 그래서 민규한테 끝까지 말 안했다. 민규가 슬퍼할테니까. 민규 슬퍼 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조금 이기적이여도 남은 3개월 민규와 보내고 죽고 싶었다. 여행도 가고, 사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다. 걱정도 했다. 이러다가 민규가 정말, 정말 제어 하기 힘들 정도로 좋아지기라도 한다면. 살고 싶어질 것 같았다.

 

 

 

원우는 민규에게 하루에 한번. 아니면 시도때도 없이 사랑한다 말했다. 이런거에 익숙치 않았던 민규는 그저 당황스럽기만 했다. 김치찌개 끓이고 있는데 대뜸 식탁에 앉아서 사랑해. 여행 비행기 표 끊고 있는데 옆에 책상에서 사랑해. 심지어는 휴지 가져다주러 화장실 앞에 섰는데 사랑해.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항상 저도 바로 사랑한다고 했다. 원우가 항상 슬퍼보이는 표정으로 말해서 왜 그러느냐고 이유를 물을 수도 없었다.

 

 

 

또한 원우는 난생처음 인스타그램을 깔았다. 같이 자는데 하도 옆에서 잘 만지지도 못하는 핸드폰으로 쪼물딱 거리길래 민규가 뭐냐 물어봤지만 원우는 말 하지않았다. 비밀이야. 사진을 시도때도 없이 찍었다. 이건 민규가 해준 김치찌개. 이건 민규랑 간 바다. 이건 민규랑 보는 티브이 프로그램. 이건 민규. 팔로우도 0, 팔로워도 0인 비공개 계정에서 참 많이도 써댔다. 그리고 더 아파지기 전에 양도 계정을 민규로 설정했다. 내 모든 것, 다 빼앗겨도 절대 빼앗기고 싶지않은 것.

 

 

 

원우는 빼앗기고 항상 부족한 것에 익숙해져있었다. 가족도, 친구도, 재산도. 그래서 욕심도 없었다. 누굴 가지고 싶고 저걸 입고 싶고 이런거. 원우는 민규와 같이 있을 때마다 느끼곤 했다. 아. 내가 욕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원우가 보는 민규는 저렇게까지 헌신적인가 할 정도로 저를 사랑해줬다. 내가 뭐라고. 다섯 글자만 말해도 평생 들어도 될 잔소리는 다 들었다. 내가 좋은 이유부터 자신이 왜 저를 좋아하는지. 내가 얼마나 가치있는 사람인지. 날 사랑한다는게 결점이 될 정도로 완벽한 사람이였다. 날 먹여살릴만큼 날 사랑하고 재력이 있고 잘생겼고 자기 표현에 솔직하고. 항상 지치지않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게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인데. 그렇기 때문에 민규에게 나라는 결점이 생겼기 때문에 항상 고마워했다. 항상 미안했다. 민규가 저가 하는 미안하다는 말에 왜 짜증이 나는지. 원우는 몰랐다.

 

 

 

원우와 민규는 끝까지 서로 떨어져 있을 틈이 없었다. 민규는 원우를 너무 사랑해서, 원우는 민규와 더 붙어있지 않으면 후회할까봐. 밤이 되면 꽁꽁 싸매고 집 앞 거리를 돌았고 주말이 되면 장 보러 간다는 핑계로 차로 드라이브 했다. 민규와 저녁에 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재밌었고 아침에 눈도 못 뜬채로 일어나서 사랑한다고 해주는 목소리가 좋았다. 이렇게까지 행복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서로를 사랑했다.

 

 

 

둘이 열심히 계획했던 난생 처음 해외 여행은 못갔다. 생각보다 이른 원우의 가짜 출장 때문에. 갑자기 출장을 간댔다. 아니 뭔 출장을 가을 이시기에 가? 그냥 빼면 안돼? 민규가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는지는 저도 잘 알았다. 얼른 돌아올게. 미안해 민규야. 전자는 하얀 거짓말이었고 후자는 새빨간 진심이었다. 가짜 출장 기간동안 정말 아팠다. 몸이 말라가고 정신이 흐릿해졌다. 그마저도 민규는 또렷했다. 원우는 그때 진정 살고 싶다고 느꼈다.

 

민규가 흐릿해질 무렵, 민규는 의사의 부름에 한걸음 달려왔고 난 그때쯤 민규의 눈물 젖은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들을 것 같았다. 미안해. 미안해. 사랑해. 이 세 마디 하고 떠났다. 원우는.

 

 

 

왜 미안해 형이, 왜 날 사랑해. 왜 말 안해줬어. 형 난 형이 원하는대로 다 해줄 수 있는데. 형 난 형을 사랑해서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어. 그런데 형이 왜 미안해. 형은, 형은 내 모든거야. 형만 가지고 모든 걸 버리라해도 난 버릴 수 있어. 형이 죽으라하면 죽을게. 형 나는 내 인생에서 형을 만난게 제일 잘한거야. 형이 내 시간이고 사랑이고 인생이고 그래. 난 아직 형, 형한테 모든게 있는데. 형은 아냐? 어떻게 이래. 묻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울음에 묻혀 아무 소리도 나지않았다.

 

 

 

 

 

민규는 그 자리에서 울다 지쳐 쓰러졌다. 그리고 한참동안 입원했다. 하도 죽는다고 발악을 해서.

 

 

 

 

 

 

 

 

 

-

 

 

 

 

 

 

 

 

 

 

 

원우 형에게.

 

 

 

안녕. 형 나 기억하려나. 나 민규야.

 

연말에는 거의 편지를 안 써서, 미숙해. 이해해줘.

 

나 드디어 퇴원해서 집 왔어.

 

벌써 형이 간 지도 일 년이 다 되어가네.

 

형은 나 입원한 거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지?

 

형. 형은 잘 지내?

 

난 잘 지내진 못해. 거짓말은 안할게.

 

형이 없는데 어떻게 내가 잘 지내.

 

형은 꼭 잘 지내길!

 

형 있잖아 난 형이 내 마지막 사랑이야.

 

보고있어도 보고 싶고 목소리가 닳고 형이 내 모든 걸 알 때까지 대화 하고 싶었어. 형 진짜 보고 싶다. 형도 나 보고 싶지?

 

원우 형 크리스마스 이브 얼마 안남았어.

 

나랑 형이랑 크리스마스 때 처음 만났나?

 

봉사활동 때 처음 만난 거 보면 우린 진짜 운명이야.

 

안 그래?

 

그때는 내가 형 무서워했는데.

 

첫인상이 무서웠어. 올블랙에 모자 팍 눌러쓰고 ㅋㅋ

 

지금 돌아보면 왜 무서워했는지 모르겠어.

 

완전 귀여운데 우리 원우.

 

형 진짜 진짜 멋있었는데.

 

게임도 잘하고 말 하는 것도 너무 멋있고.

 

내가 힘들 때는 항상 별 거 아닌 척 신경쓰고 있는거,

 

항상 식당 예약해둔 거.

 

솔직히 동네방네 자랑하려다 말았어.

 

나 아까 형이 예전에 편지 써준 거 봤다?

 

마지막에 사랑한다고 진짜 조그맣게 쓴 거 보고 너무 귀여워서 형 당장 안아주고 싶었어.

 

아. 어쩜 사람이 이렇게 완벽하지 싶더라. 미치겠다.

 

나 너무 보는 눈 있는 듯. 형도 마찬가지야.

 

봄이 되면 형이랑 자전거 타고 나가서 막 벚꽃놀이도 하고 막 피크닉 도시락 싸가서 점심도 먹고 싶었는데.

 

아 도시락은 당연히 내가!

 

김밥 유부초밥 베이컨말이? 형 먹고 싶다는 거 다 해줄게 배워서.

 

또 여름엔 바닷가로 휴가가서 튜브도 빌려서 피부가 새까매질 때까지 놀고.

 

밤 되면 회는 위험하니까 고기도 먹고.

 

삼겹살? 돼지 갈비? 꽃등심? 말만 해.

 

소 한 마리도 잡아줄테니.

 

그리고 부산 밤바다가 그렇게 좋대.

 

소원 비는 곳도 있대. 형은 뭐라 썼을까.

 

사랑?ㅎㅎ 아마도 나도 그렇게 썼을거야.

 

부산 밤바다는 불꽃놀이가 딱인데. 아쉽다.

 

가을엔 둘 다 멋있게 차려입고 사진도 찍고 단풍 피는 거 알지?

 

딱 분위기 완전 민규. 멋있다는 뜻.

 

아. 상상만 해도 좋다.

 

굳이 밖에 뭐 하러 안나가도 형이랑 있으면 다 좋은 거 알잖아. 형도 그렇듯이! (아마도? 맞지?)

 

붕어빵에 계절, 겨울!

 

형 기억 나? 형 붕어빵 먹고 싶다길래 내가 밖에서 오천원치 사왔잖아.

 

그렇게 많지도 않았는데 뭘 그리 많이 사왔냐며

 

당황해하는 전원우 표정. 아직도 기억 난다. 결국 내가 두 개 제외 나머지 다 먹었지만.ㅡㅡ

 

형 근데 나 이제 겨울 별로 안 좋아해. 겨울만 오면 형 생각나서 미치겠어. 나도 좀 제대로 살아야하는데

 

자꾸 우리 먹던 붕어빵, 걷던 거리, 눈 내리던 날씨.

 

그냥 전원우 생각나서 뭘 하지못하겠어.

 

자꾸 눈물만 나고.

 

나 좀 울리지마 전원우.

 

아직도 텅 빈 집안 적응 못하겠어. 형이 쓰던 샴푸도 남겼고 그 샴푸만 한 이백개 산 것 같아.

 

뭐라고 잔소리 하지마. 집 안에 전원우 향기 없는 거 익숙하지도 않고 익숙해지기도 싫으니까.

 

형 인스타그램 양도 계정? 그거 나로 해놨더라.

 

난 인스타 있는지도 몰랐는데 알람 오길래.

 

게시물 백 개 정도 있나. 아직 반도 안 봤어.

 

아껴보려고.

 

어제 하나 봄 여전히 사랑한다고 남겨놨더라.

 

천 개 남겼어도 난 다 볼 건데, 좀 많이 남겨놓지.

 

그래도 언제 찍었는지 남겨놓은 동영상은 기특하더라.

 

나는 형이랑 서로 닳을 때까지 마주보고

 

목이 쉴 때까지 대화하고 인생에서 느낄 행복은 다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

 

형이 아프다하면 죽 사오고, 비오면 한 쪽 어깨가 다 젖더라도 형이랑 우산 한 번 나눠써보고 싶었는데.

 

그 많은 비가 올 때동안 우린 항상 같이 있어서 그럴 틈이 없었네.

 

이럴 줄 알았으면 형을 더 일찍 사랑할걸.

 

더 일찍 사랑해서 평생 할 사랑 다 하고 보내줄걸.

 

난 아직 줄 사랑 많아.

 

형한테 받아야할 사랑도 아직 많이 부족해.

 

진짜 보고 싶다. 형 때문에 내 모든게 바뀌었는데.

 

형이 나한테 사랑이고 가족이고 친구고 시간이고 청춘인데 그렇게 책임감 없이 가면 어떡해. 진짜 못됐어.

 

말이라도 하지. 이제와서 원망은 안할게.

 

원망하기엔 아직 내가 너무 사랑한다ㅡㅡ

 

아직도 형 목소리가 귀에서 맴돌아.

 

그 목소리 내가 어떻게 잊어. 형도 인정했잖아 형 목소리 좋은 거. 약간 재수 없었지만 인정.

 

아 맞다. 나는 지금 배우 준비 하고 있어.

 

저번에 나한테 배우 한번 해보라고 했잖아 형이ㅋㅋㅋ

 

감독이 적성에 맞는 것 같대.

 

배우상이라고 한 거 진짠가봐. 다들 나 잘생겼대.

 

아직 유명한 감독은 아닌데 사람 성격이 참 좋아.

 

금방 흥 할 거 같아.

 

영화 나오면 꼭 보여줄게 어떻게든.

 

아 형은 좋겠다. 이렇게 잘난 놈이 형 남친이라.ㅎㅎ

 

형. 난 아직도 못 잊어. 아마 평생 못 잊을 거야.

 

잊으라고 하지도 마. 이건 내가 알아서 할 거야. 형도 알아서 갔잖아.

 

형을 어떻게 잊어. 형 항상 사랑할거야.

 

새로운 애인 안 만들거야. 평생 전원우랑 살 거야.

 

그러니까 그런 무책임한 말 하지마.

 

 

 

 

 

 

 

형.

 

난 아직도 형이랑 같이 있던 시간 속에 살아.

 

형. 내 시간의 바깥은 어때?

 

 

 

 

 

 

 

형이 가장 사랑하는 민규가.

 

 

 

 

 

 

 

end.

 

 

 

나팔꽃. 허무하고 덧 없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