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새끼 갑자기 연락이 안 돼.”
길을 걷다 친하지 않은 남자와 마주쳤다. 아니, 남자가 나를 멋대로 발견했다.
못 본 척도 못 하게 굳이 손까지 들면서 “야 반갑다.” 하고 아는 체를 해왔다. 그래, 인사정도야 할 수도 있지. 생각하며 그대로 지나치려는데 남자가 내 쪽으로 몸을 틀더니 작은 키로 무리해서 어깨동무를 해왔다. 그리고는 어떠한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나를 길 한 쪽으로 무작정 끌고갔다. 타인의 눈에는 짐짓 정다워 보일만한 속도로, 일단은 끌려갔다. 남자는 공기 중에 술과 음식이 뒤섞인 역한 냄새가 나고, 도처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뭔지 모를 찐득한 것들이 길바닥 곳곳에 엉겨붙은 이 동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웬 나무정자 같은 곳에 다다르고 나서야 발을 멈췄다.
남자가 더러울 게 분명한 마루 위를 거들떠도 보지않고 털썩 주저앉았다. 무신경한 행동에 절로 인상이 구겨졌으나 남자는 내 표정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무신경하고 자유로운 몸짓으로 셔츠 앞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를 빼물었다.
의아했다. 얼굴만 아는 이 남자가 나를 상대로 할 말이 있어보였다. 심지어 짧지 않은 내용으로 추측되는.
추측은 금세 확실해졌다.
남자가 담배를 입에 물자마자 다짜고짜 ‘그 새끼’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까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원우랑 졸라 친한데 어떻게 된 게 원우도 걔랑 연락이 안 된대. 존나 씹새아니냐.”
씹새로 호칭이 변경된 그 새끼는 추정컨대 얼마전부터 잠수를 탄 모양이었다.
남자는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연기를 한숨처럼 내뱉으며 손날로 눈을 비볐다. 나는 한쪽 어깨에 메고 있던 것을 추어올리며 잠자코 얘기를 들었다.
“우리 녹음하잖아. 너 아냐? 모르나? 아무튼 우리 녹음 앞두고 있거든. 아 이제 좀 먹고 살 길 열리나 싶었더니 씨입새끼 진짜. 어휴 이 바닥 존나 좁은데 오늘만 살고 뒤질거야 뭐야 존나 이해가 안 돼.”
“그래서요.”
어쩌라는 거예요?는 생략했다.
이 사람은 친구가 없나? 면식은 있으나 친분은 없는 이 남자의 얘기를 왜 집에 가다 말고 듣고 있어야 하는건지. 시간이 아까웠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남자는 다소 공격적인 내 말투가 마음에 든다는 듯, “우리 민규 각이 딱 나오네.” 하고 중얼대며 말을 이었다.
“너 지금 뭐 없지? 우리 밴드 들어와라.”
<우리 밴드 들어와라>
쌍욕 먹고 이 자리를 벗어날 생각으로 남자의 말을 싹둑 잘라냈건만 본론이 삐에로상자 속 삐에로처럼 불쑥 튀어나왔다. 사유는 방금전까지 귀 아프게 들었던대로 기존 멤버의 잠적.
잠적한 이유는 불명이나 씹새끼가 베이스라는 것은 묻지 않아도 알겠다.
왜냐하면 내가 베이스를 치니까.
실제로 지금 뭐 없긴 했다.
내가 속했던 밴드는 정확히 한 달 전 해체했다. 돈이 안 되는 음악을 본업으로 삼기를 포기하고 각자 살 길을 찾아 떠나기로 합의했다. 나는 단기적으로 일대일 레슨 몇 개 뛰면서 장기적인 인생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오늘도 레슨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남자가 멈추지 않고 계속 말했다.
당장 코앞에 닥친 공연은 급하게 땜빵해 줄 세션을 구했는데 앞으로가 문제다, 가능성 있는 밴드를 발굴해서 피지컬 앨범을 내주고 활로를 넓혀주는, 인디계에서 꽤 유명한 레코드회사와 계약을 앞두고 있다, 곡도 다 만들었고 데모녹음만 하면 되는 걸 스케줄 조정은 불사하고 최악의 경우 작업을 중단해야하는 상황이다, 멤버 한 명 비는 걸로 놓치고 싶지 않고 놓쳐서도 안 되는 기회가 어쩌고 저쩌고.
보컬짬이 확실히 있기는 한 모양이다. 숨도 안 쉬고, 발음 한 번 안 씹고, 술술 잘도 말했다.
바다에 빠져도 입만 동동 떠오를 게 분명한 이 남자는 밴드 ‘산 자들’의 프런트맨이었다. 근데 이름이 뭐였더라 이…회 뭐였는데. 아 이회문. 이회문이었다.
이회문의 유명세는 대단하고 또한 별 볼일 없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몰랐다. 그런 그가 나에게 밴드 합류를 제의한 것이다.
왜 나였을까.
내가 누군 줄 알고.
‘산 자들’은 꽤 괜찮은 음악을 했다. 적당히 건들거리고, 적당히 우울하고, 적당히 유쾌한. 왠지 뭔가 있어보이는 그런 음악을 했다. ‘산 자들’을 아는 사람들은 그들을 흔히 ‘와꾸들’이라 불렀다. 있어보이는 데에는 구성원들의 잘생긴 얼굴도 한 몫했기 때문이었다. 얼굴빨로 괜히 더 심오해보이는 측면도 있었다.
내 얼굴이 그 정도는 된다는 걸 길바닥 위에서 갑자기 인정받는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으나 돌처럼 날아온 제안을 두 팔 벌려 받아들이기는 주저되었다.
아직 준비가 좀 더 필요한데.
“우리 애들 존나 쿨해. 사생활 좆도 신경 안 써. 일만 잘하면 돼.”
이회문은 호쾌한 말투와 목소리로 기어코 내 입천장을 뚫어 낚아올리겠단 기세로 미끼를 던져댔다.
“근데 너 원우랑 알지 않냐? 모르나? 아무튼 원우라고 우리팀 기타있어. 개잘해. 말이 없어서 재미는 좀 없지만. 근데 넌 드럼이 더 중요하지? 우리 정훈이가 또 별명이 머신이야. 존나 칼박에다가 박자를 그렇게 잘 쪼갤 수가 없어. 합주할 때 매트로놈 켜 본 적이 없다. 참고로 정훈이도 좀 재미는 없어.”
이회문은 목석처럼 가만히 있던 내가 고개를 몇 번 끄덕인 걸 긍정적인 신호라고 해석한 듯 했다.
“우리 애들 다 존나 잘 해서 연습시간도 졸라 쌈빡하니깐 생각있으면 연락해? 형 연락처 알지 민규야? 이거 진짜 잡기 힘든 기회인 것도 알지? 진짜 그새끼 왜 나갔나 모르겠다.”
“고민 좀 해볼게요.”
말꼬리에 바로 따라붙은 즉답에 이회문의 얼굴 위로 허탈하고 어이없단 표정이 떠올랐다. 그럴 만도 하겠지. 가진 것도 없는 어린 놈이 거드름 피우는걸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곧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원래의 여유로운 표정을 되찾았다.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까지 지었다.
“뭐 결정은 니가 하는 거긴 한데 형은 우리 민규랑 합 좀 맞춰보고 싶고 그러네? 너 말하는 꼬라지 보니까 우리 애들이랑 존나 잘 맞을 거 같아서 그래. 성공해서 다 같이 잘 살면 좋잖아 안 그래? 아무튼 연락줘. 간다.”
비율이 95:5 정도였던 대화를 마치고 이회문이 드디어 멀어져갔다. 마침내 혼자가 되었으나 귓속에 그의 목소리가 여전히 이명처럼 맴돌고 있는 듯 했다. 말 많은 사람은 딱 질색이다. 소리를 털어내듯 머리를 몇 번 좌우로 흔들어 털고나서야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탐나는 조건인 것은 맞았다.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앨범 발매가 보장되어 있고(심지어 좋은 회사), 앨범이 발매되면 제대로 된 공연도 하게 될 거고, 그러면 많든 적든 수입도 자연히 따라올 터였다.
그리고 또 무엇보다.
-
약속한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하는 게 습관이었다.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자 예상대로 합주실은 텅 비어있었다. 어두컴컴한 반지하의 불을 켜고 퀴퀴한 냄새를 빼기 위해 환풍기를 틀었다. 불켜진 합주실을 의미없이 휘 돌아본 후 안쪽에 있는 베이스 앰프 앞으로 갔다. 케이스에서 베이스와 클립튜너를 꺼내고 낮은 스툴을 끌어와 앉아 튜닝을 했다. 디잉. 디잉. 디잉. 디잉. 튜닝을 끝내고 스탠드에 베이스를 세워뒀을 때, 밖에서 삑삑삑삑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시간 5분전.
방음처리가 된 두터운 문이 열리고 밴드의 멤버가 들어왔다. 팔다리가 길고 마른 남자. 어두운 톤의 슬림핏 진과 진회색의 얇은 폴라티. 옷깃이 가죽으로 된 까만색 코듀로이 트러커 재킷 차림이었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마른 남자는 이쪽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응답하는 것도 모자라 대뜸 말도 깠다. 일단은 잠자코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는 모습을 지켜봤다.
보라색 가죽 스트랩.
발목까지 올라오는 보라색 스니커즈.
어쩜 정말 하나도.
어
뭐야.
“입술 왜 그래요?”
“응. 어떤 쥐새끼한테 물렸어. 쫓아내려고 하니까 바로 달려들어서 물더라고. 진짜 아프더라.”
대답은 해주는데 대답만 해준다. 실수로라도 시선을 두지 않겠다는 듯 철저히 외면한 채였다.
남자가 재킷 안에 받쳐입은 폴라티는 척 보기에도 신축성이 있는 소재였다. 촘촘히 주름져 조금도 흘러내리는 부분 없이 남자의 목둘레를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 원단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 목의 선을 따라 훑어내리듯이 보았다.
“...입술만 물렸어요?”
그제서야 내가 있는 쪽을 돌아본다.
노골적으로 목을 훑던 나도 시선을 올려 눈을 맞추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표정없는 얼굴로 폴라티의 목 부분을 보란듯이 주욱 잡아내리며 말했다.
“넌 정말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어두운 색감때문에 더욱 확연히 대비되는 허여멀건한 살갗은 어떤 자국도 없이 깨끗했다.
“눈깔 재수없는 거 그대로야.”
삑삑삑삑. 또다시 밖에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 팀은 약속시간을 칼같이 지키네.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마는 나를 보며 마른 남자가 픽 웃더니 옷자락을 놓았다. 옷감은 금세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남자의 얇은 목에 착 감겼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스틱 케이스를 한 쪽 어깨에 멘 사람이 들어왔다.
“회문이형 한 10분 늦는대.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민규씨 맞죠? 권정훈입니다. 원우 넌 인사 했어?”
“어. 했어.”
안녕. 하고 인사만 했지 이름은 말해주지 않았는데.
반쪽자리 인사를 해놓고도 뻔뻔한 작태를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저 형 이름 모르는데요.”
그러자 권정훈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꽤 눈치는 빠른 인간인건지 근데 이름을 모르는데 형인건 어떻게 알아? 하고 물었지만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른 남자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전원우. 스물다섯살.”
이름,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지.
너무 잘 알아서 탈인데.
나만 질리도록 많이 부른 이름이라 전원우의 목소리를 타고 발음되는 걸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김민규. 스물네살입니다.”
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동갑인 줄 알 것 같은데. 진짜 원우가 형이었네. 눈치 빠른 줄 알았던 권정훈의 눈치 없는 말소리는 이번에도 공중에서 흩어졌다.
전원우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앉아서 기타연습을 했다. 멜로디를 잡아가듯 한 음 한 음 짚어가며 피킹을 하다가 이내 코드를 잡고 스트로크를 하기 시작했다.
전원우는 스트로크를 참 잘했다. 가벼운 움직임으로 정확하게 1현부터 6현까지를 긁는 그 태가 예뻤다. 속도에 맞춰 흔들리는 그 손목이 정말 야했다. 나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이어폰을 끼고 전원우의 손목을 따라 베이스를 둥. 당. 쳤다. 귀로 듣지 않고 눈에 보이는 음에 맞추어 손을 놀렸다.
이회문은 약속시간에서 25분이 지나고나서야 나타났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경쾌하게 웃었다.
“이야 기깔난다! 존나 늬들 얼굴만 뜯어먹고 살아도 되겠어.”
전원우는 그런 이회문을 삼백안으로 보일만치 눈알만 올려뜨고 쳐다보았다.
“우리 원우는 뭐가 또 맘에 안들어? 츄르 줄까?”
이회문은 즐거운 낯으로 앉아있는 전원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빙글거렸다. 전원우가 성가시다는 듯 머리를 빼내자 하하하. 소리가 나도록 웃는다. 정시에 끝내줄테니까 표정 풀자 원우야. 하고는 합주실의 문을 닫았다.
연습은 꽤 조용히 진행되었다. 세 명은 조용했다. 오로지 이회문만이 조용한 가운데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는 얘기를 지치지도 않고 계속 했다. 수다가 재주인 사람다웠다. 거의 방언이 터졌다 싶을 정도로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그런데 만연체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실없는 소리에, 전원우가 이따금씩 웃었다. 말을 얹지는 않고 웃길 때만 웃었다. 저걸 다 듣고 있다는 거 아냐. 말 많은 사람을 싫어하는 나는 이회문이 쉬지 않고 더 떠들어주기를 바랐다. 전원우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서.
가끔 “형 이런 건 어때?” 하고 꽤 깜찍한 어조로 묻기도 했다. 저건 전원우만 모르는 나쁜 습관이었다. 나는 절대 누리지 못 하는 것. 형들 앞에만 서면 저렇게 묘한 말투로 변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입술만 씹었다.
합주는 순조로웠다. 데모녹음에 들어가기 전 합을 맞추고 전체적으로 진행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들만 고쳐나갔다. 이전 연주자가 만들어놓은 베이스라인의 전체적인 틀은 따르되 세세한 건 다 내 스타일로 바꿨다. 이회문은 합주실을 떠나기 전 일종의 단서와도 같은 감상평을 남겼다.
“듣던대로 잘 하네 민규. 훨씬 나은데? 잘 나갔다 씹새끼.”
이회문은 칭찬과 혼잣말을 동시에 뱉은 뒤 바람처럼 사라졌다. 기다려줄 것처럼 굴던 권정훈은 막내인 제가 뒷정리 다 하고 가겠다고 하자마자 미안한 척 순순히 떠났다.
남은건 전원우와 나. 드디어 둘 뿐이었다.
전원우는 미적거리며 페달보드를 정리한 뒤 세월아 네월아 케이블을 감고 있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인내심이 바닥나 전원우를 더이상 가만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형한테 차여서 나갔죠?”
“응? 내가 뭘 차?”
“전원우 전통같은 거잖아요 같은 팀 베이스랑 사귀는 거.”
성질을 건드려야만 이쪽을 봐준다.
“언제적 얘기를 해.”
전원우가 피곤하다는 듯 비웃었다.
“그리고 쌍방 합의야.”
물론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쌍방 합의면 잠적할 리가 없다. 그 새끼는 자존심에 쌍방 합의인것처럼 포장하고 자위하며 전원우에게 차였을 게 분명했다. 헤어지는 순간 제가 받은 상처만큼 너도 아프라며 입술 한 번 콱 물고 비련의 남주에 빙의해서 그래 네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져줄게. 하면서 잠적했겠지. 정말 혹시나 저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희망을 품고.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리며 신파극 찍고 있을 그 새끼가 우스웠다. 동시에 쪽팔리게도. 공감됐다.
“너 밴드 하고 싶어서 온거야 아니면 구질구질하게 굴고 싶어서 온 거야?”
그러나 나는 그 새끼와 다르다.
“둘 다 하고 싶어서 왔는데요.”
“욕심도 많네.”
장비정리를 마친 전원우가 앰프에 기대서서 나를 본다.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이 팔짱을 끼고 베이스앰프 앞에 앉아있는 나를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민규야 나 너 없어도 잘 사람 많아. 디엠 맨날 와.”
전원우는 나를 잘 안다.
내가 전원우를 잘 아는 것처럼.
아니 어쩌면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알지도.
“형도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네요.”
“응. 사람 갑자기 변하면 죽어.”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 거.”
“내 얼굴이 이렇게 생겨먹었는데 그럼 어떡할까 민규야. 응?”
전원우는 나를 길들인 사람이다.
나를 자극하고 눈 돌아가게 만드는데에는 도가 텄다.
“그게 내 탓이야? 발정하는 새끼들이 문제라는 생각은 안 들어?”
아마 다시 태어나도 전원우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응? 너도 그러려고 온 거잖아.”
나는 번번히 지고 만다. 치를 떨면서도 결국에는 굴복하고 만다.
“나 없으니까 살만해요?”
“민규야. 아 씨발 민규야아.”
전원우는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눈을 꾹 감았다. 이윽고 큼지막한 덩어리라도 삼켜내듯 목울대가 크게 한 번 위아래로 일렁였다. 길게 숨을 내뱉은 뒤 눈을 뜬다.
“누가 들으면 내가 버린 줄 알겠다.”
전원우는 경멸하는건지 아파하는건지 모를 얼굴로 나를 보며 조롱했다.
“네가 버렸는데 내가 한 명이랑 자든 두 명이랑 동시에 자든 이제 네 알 바 아니지.”
안달을 내고 불안해하고 마음을 졸이고.
아쉬워하는 건 항상 내 쪽이었다.
여유작작한 전원우는 빠르지도 않은 움직임으로 나를 항상 들었다 놨다, 온탕에 넣었다가 냉탕에 쳐넣었다가, 적셨다가 말렸다가, 줬다가 빼앗았다가, 상을 주다가 체벌을 내리다가 했다.
나는 전원우의 인형이었다.
주무르는대로 늘어지고 구겨지고 짜부라지는 만득이 인형.
동시에 전원우의 개였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누우라면 눕는 충직한 멍멍이.
집착이 도를 넘어 전원우의 모든 감정과 욕구를 독차지하고자 했던 것도 나였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화내는 것도, 지랄하는 것도 다 내 앞에서만 했으면 했다. 전원우가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나이길 바랐다.
그런데
그 모든 창구인 내가 사라지면 전원우는 어떻게 될까?
집에 돌아가는 전원우에게 친절히 문을 열어주며 뒤통수에 대고 말했을 때, 뒤돌아보던 표정이 요즘도 가끔 꿈에 나온다. 군림하던 전원우가 처음으로 낭떠러지 밑으로 밀려떨어진 날.
나는 담백하게 고하고 매몰차게 문을 닫았다.
고요하리만치 잠잠했던 문 밖 상황은 전원우가 아무렇지 않아서가 아니라 문을 두드리고 이름을 외칠 힘과 정신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헤어지자.’ 고작 네음절에 전원우는 문자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그 모습을 보는 게 솔직히 좀 기뻤다. 덜 사랑한 쪽이 더 힘들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고양이를 제외한 모든 생명체에게 강퍅하게 구는 전원우가 나 때문에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자고, 술을 마시고, 집 앞에 찾아오고, 전화하며 매달리는 게 뿌듯했다.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존재가치를 확인받았다. 전원우 앞에서 빌빌대며 고갈되어갔던 자존감이 새살처럼 차올랐다. 아낌없이 주는 민규였는데 이 정도는 누려도 되지 않나. 어차피 전원우 나 없이 잘 못 사는데. 나 없이 죽도록 힘들어하는 모습을 긍휼히 여기며 즐기다가 적당한 때를 봐서 많이 힘들었지. 하며 말라빠진 그 몸을 감싸안아주고 토닥여줄 계획이었다.
언제가 좋을지 고민하며 홍대를 걸을 때였다. 2차선 도로 너머에는 여느곳들과 비슷한 합주실이 있었다. 전원우가 하는 밴드가 어디서 연습한댔더라. 속 편한 생각을 하며 걷는데 건너편의 합주실 건물과 건물 사이 으슥한 골목 안에 맞붙어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좋을 때구나. 나도 전원우 다시 받아줄 때 저렇게 할까.
그리고 우뚝,
발이 멈췄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아는 얼굴이었다.
양볼이 감싸인 채로, 누군가와 키스하는,
전원우. 붙잡고 키스하는 새끼가 뭐하는 새끼인지는 자세히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가죽인지 싸구려 레자인지 모를 거무죽죽한 소프트 케이스의 목이 특히 길었기 때문이다. 베이스 치는 새끼야? 기타는 어디다 갖다 버리고 왔는지 전원우는 맨 몸이었다. 초가을이었는데 외투도 입지 않은 채였다. 잘 가라고 배웅할 겸 담배 피우러 나왔거나 할 말 있다고 불러내서 올라왔거나. 전원우가 저 새끼 목에 팔까지 두르는 거 보니까 추워서 저러나? 씨발 알고 싶지도 않다.
전원우의 볼을 감싸고 있던 손이 내려와 어깨를 쥐고 더 내려가 허리를 감쌌을 때 더이상 못 봐주겠어서 어디를 가려 했는지도 잊은 채 그대로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전신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몸에는 뚜껑이 없어 열이 식지 않고 계속 안에서 맴돌았다. 허리까지 올라올만큼 쌓인 길가의 쓰레기봉지더미를 발로차 넘어뜨렸다. 성마른 움직임으로 가로수의 죄 없는 몸통을 주먹으로 후렸다. 속에서 치받는 열 때문에 주먹이 얼얼하게 화끈거리는 것도 몰랐다.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전화 한 번만 받아달라며. 목소리 한 번만 들려달라며.
나 없어서 힘들어 죽을 거 같다고 했잖아.
돌아와달라며. 기다린다며.
전원우 네가 그랬잖아.
이별의 기쁨에 도취되어 눈이 멀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비어있는 전원우의 옆자리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성별을 불문했고 그들이 나를 기다려줄 리가 없었다. 그게 누구든 어느 타이밍에든 거리낄 것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전원우는 혼자였으니까. 전원우를 홀로 놔둔 사람이 나였으니까.
누구랑 만났는지까지는 모르더라도 어쨌든 헤어져서 식음을 전폐하고 휘청거리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내가 다 감싸주고 지켜줄 수 있다는 병신같은 자신감에 허덕이는 새끼들이 차고 넘친다는 것을.
컨디션 난조의 전원우가 얼마나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동하게 하는 모습을 하는지를.
힘 빠진 미소 한 번에 냅다 입술부터 갈기고 봤을 게 분명한 상황전개였다. 뻔하다. 뻔하고 뻔해서 존나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예상가능한 전개였다.
그 후로 내 전화는 더이상 울리지 않았다.
한밤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도 더는 나지 않았다.
반전은 없었다. 나는 여느 이야기 속의 남겨진 존재들처럼 덩그러니 남아 후회했다.
“네가 더는 못 하겠다며 민규야.”
“나 형보다 빨리 오려고 10분전에 오던 게 이제 습관된 거 알아요?”
“주인 기다리는 개처럼 살기 싫다며.”
스무살 때 전원우를 처음 만났다. 오디션을 보고 들어간 밴드에 전원우가 있었다.
좋아하는 걸 숨기지를 못 했다. 졸졸졸 쫓아다니며 귀찮게 굴었다. 꼬리 어디다 숨겼냐고 불손하게 엉덩이를 더듬는 전원우에게 그대로 돌진해 입술을 갖다박았다.
전원우는 나를 길들였다.
연애는 헤어지는 맛도 있어야된다고 곧 죽어도 잠은 제 집 가서 자던 전원우. 데리러 가는 것도 싫다. 같이 가는 것도 싫다는 연인에게 그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보다 조금 빨리 합주실에 와서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네가 5분 전에 온다면 나는 10분 전에 와서 널 기다릴거야.
참 대단한 어린왕자 나셨었다.
눈물겹도록 순수한 내 마음도 몰라주고 전원우는 여기는 가망이 없다며 밴드까지 탈퇴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산 자들’에 들어갔다. 나는 오도 가도 못 했다. 전원우가 오도 가도 못 하게 했다. 여기서 기다려. 나는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집 안에서 문만 쳐다보면서 전원우를 기다렸었다.
“그래서 나 없으니까 살만하냐구요.”
“아니.”
나무정자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이회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뭉쳐지고 단단해진다.
‘근데 너 진짜 원우 몰라? 원우가 너한테 연락해보랬거든. 너 존나 잘한다고. 박자 존나 잘 타고 힘도 좋아서 핑거링 죽인다고 하던데. 드라이브 걸 필요 없다고. 와 근데 이렇게 마주치냐.’
중의적 의미를 담은 전원우식 조크.
표적성이 확실한 문장.
정확하게 나를 향해 던진 먹이.
“형 저 융통성 없는 거 알죠. 하라는대로 군말없이 잘 따르잖아요.”
베이스 앰프와 기타 앰프가 떨어져있는 만큼의 거리. 금을 그어놓은 것도 아닌데 침범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던 각자의 영역. 나는 멈춰있던 두 다리를 움직여 전원우에게 다가갔다.
“형은 같은팀 베이스랑 사귀는 사람이고.”
성큼 다가서서 아까부터 내내 잡고 싶었던 전원우의 손목을 잡았다.
옷이 얇아서 두께에 별 차이도 없을텐데 굳이 소매를 치워내고 맨 손목을 잡았다.
아 이 익숙한 그립감. 전원우의 손목은 잡는 맛이 있었다. 직접 잡아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그 느낌이 있다. 가끔은 손가락을 얽는 것보다 손목을 잡는 게 더 만족스러웠다.
전원우의 손목을 잡으면 마치 모든 걸 점령한 느낌이 들었다. 손으로 먹고 사는 전원우가 꼼짝없이 내 손 안에 붙잡혀있다는 그 정복감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그러니까 나랑 다시 사귀자고 전원우.”
전원우는 정확하게 나를 겨냥하여 먹이를 던졌다.
그러니 나는 그걸 먹어치우면 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회문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그대로 완전히 끝났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애초에 전원우의 머릿속에 내가 거절할거란 가정은 없었을 것이다. 전원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니까. 아무리 물고 빨아도 질린 적이 없었다.
만약 전원우가 정말로 다 잊었다고 해도 내가 다시 찾아올 것이었다. 면밀히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서 반드시 되찾아올 생각이었다. 몇 번이고.
우리가 다시 만나면 형이랑 나랑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내가 잘해줄게. 재롱도 부리고, 애교도 부리고, 핥아도 주고, 꼬리도 흔들어 줄게. 웃겨도 주고, 울려도 줄게. 안아주고, 안겨줄게. 그러니까 나한테 와 줘. 형이 가진 거 전부 다, 나한테 줘. 내가 형 옆에서 잠들게 해 줘.
잡은 손목을 힘주어 당겨 전원우를 코앞까지 끌고왔다. 싫으면 거부할 것이고 정말 싫으면 입술을 물든 침을 뱉든 욕을 하든 뭐든 할 것이다.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지금 나는 전원우에게 키스하고 싶었다.
전원우는 손목에 힘 한 번 주지 않고 그대로 끌려왔으며 입술이 닿는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감지 않았다.
전원우의 입술에 난 상처를 소독하듯이 핥고 입술 여기저기에 촉촉촉 입을 맞춰대는 나를 보며 전원우가 하고싶은 말을 했다. 상소리가 섞인 말소리에는 만족감을 품은 웃음이 섞여있었다.
“진짜 어디서 이런 개같은 새끼가 굴러들어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