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푸른 섬광
2021. 2. 9. 00:08

 

아무 말 없이 침대 헤드에 기대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원우를 침대에 누운 채로 바라보던 민규가 입을 열었다. 형.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힐끔거리며 민규를 바라본 원우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리며 민규에게 대답했다. 왜. 원우의 목소리에 민규는 원우를 바라보던 시선을 옮겨 천장을 올려다봤다. 내일 당장 죽는다면, 형은 뭐하고 싶어요? 민규의 말에 원우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용히 책장을 넘긴 원우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좋아하는 책이나 읽어야지. 그 무덤덤하고 무뚝뚝한 대답이 참 원우 다워서 민규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곧 방은 조용해졌고, 민규는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입술을 혀로 축이더니 책을 붙잡고 있는 원우의 손목을 감싸 쥐었다.

 

 

“왜.”

“나한테도 물어봐 줘요. 뭐 하고 싶은지.”

“... 넌 내일 당장 죽으면 뭐하고 싶은데.”

 

 

형 옆에서 형만 보고 있으려고요. 원우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고, 민규는 미소를 지었다. 이내 둘의 입술이 맞닿았지만 그날의 입맞춤이 왜 그렇게 씁쓸하고 아팠는지, 민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푸른 섬광

 

 

 

 

 

 

 

 

 

“형, 밥 잘 챙겨 먹고요.”

“내가 애도 아니고. 얼른 나가기나 해.”

 

 

대충 민규에게 손을 휘적거린 원우가 옆에 늘어놓은 종이들을 뒤적거렸다. 그런 원우를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민규가 원우의 볼에 짧게 입을 맞추고서 집을 빠져나갔다. 그런 일이 익숙한 일이라는 듯 안경을 고쳐 쓴 원우가 우유에 흠뻑 젖은 시리얼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축축하게 젖어 눅눅해진 시리얼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민규와 원우는, 오래된 사이였다. 너무 오래되어 닳고 닳아버린, 그런 둥근 관계. 닳았다고 해서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아 서로를 불필요하게 찌를 일이 없는, 그런 관계라는 뜻이었다. 첫 만남은 당연하게도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조용히 있고 싶어 도서부원이 되었다가 도서 부장의 자리까지 물려받은 2학년 전원우와 귀찮은 게 싫어 다른 동아리들의 부름으로부터 도망치듯 도서부를 선택한 1학년 김민규는 모두가 입을 모아 얘기하는 관계였다. 물과 기름과 같은 관계라고, 절대로 섞일 수 없다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원우도 공감했고, 민규는 부정했다. 세상만사가 심드렁해 보였던 처음의 민규와는 달리 매번 옆에 달라붙어 이것저것을 물어보는 민규가 원우에게는 없어졌으면 하는 귀찮은 존재였기에 원우는 공감했던 것이고, 동아리니 뭐니 귀찮아서 겨우 도망치듯 들어온 조용한 도서부에서 만난 원우가 민규에게는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기에 민규는 부정했던 것이었다. 귀찮음의 기색이 짙었던 원우에게 굴하지 않고 계속 옆자리를 지켰던 민규였지만, 민규는 아이러니하게도 끝내 제 사랑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졸업 축하해요.”

 

 

학교 앞에서 파는, 가격만 비싼 허름한 꽃다발을 내밀며 민규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무표정하게 그 꽃다발을 내려다보던 원우는 찬 바람에 얼굴이 시려오자 목도리를 조금 더 끌어올리며 민규의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고마워. 무미건조한 작별 인사였다. 민규에게는 용기가 없었고, 원우에게는 말이 없었다. 졸업식 날 떠나는 원우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민규는 홀로 학교에 남았다. 그 이후로는 다른 여학생들을 만나기도 하며 새로운 감정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노력은 무의미했고, 허무하게 비어버린 가슴은 무슨 짓을 해도 채워지지 않았다. 민규는, 원우를 떠올리는 밤이면 수도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런 민규가 다시 원우를 만나게 된 건, 민규의 졸업식 날이었다. 누가 봐도 정성과 돈이 가득 들어갔을 것만 같은 꽃다발을 들고, 언제나 끼고 있었던 둥근 안경을 쓰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원우가 교문에서 민규를 기다리고 있었다.

 

 

“졸업 축하해.”

 

 

자기는 성인인데 내가 미성년자라 사귀기 좀 그랬다고 했었나. 일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무덤덤한 고백의 기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민규가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파티션 너머로 말을 거는 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민규 씨, 퇴근하면 저랑 밥 한 끼 할래요? 평소 치근덕거리는 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지 어색하게 웃어 보인 민규가 당연하다는 듯 왼손을 들어 보였다. 갑작스러운 민규의 움직임에 당황한건지 민규의 손을 눈으로 좇던 여자가 민규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있는 반지를 보고서 멈칫했다.

 

 

“죄송해요, 애인이 집에서 기다려서.”

 

 

민규의 대답에 무안한 듯 애써 웃으며 파티션 너머로 사라진 여자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여자는 그저 뒤통수만 보여줄 뿐 대답은 없었다. 조금 특이한 일이 있긴 있었지만, 여느 때와 같은 나날이었다. 여전히 퇴근 시간대의 지하철은 복잡했고, 이따금씩 넥타이가 목을 조여왔지만 민규는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원우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우르르 쏟아지는 사람들 속에서 밀리듯 빠져나온 민규는 점점 사라지는 인영들을 속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두 눈을 감은 채로 온몸으로 피곤을 느끼다가도 문을 열고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소파에 앉아있는 원우를 양 팔 가득 꽉 끌어안았다.

 

 

“수고했어.”

 

 

덤덤하게 말을 하는 원우의 볼에 입을 맞춘 민규가 넥타이를 풀어내며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청량한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고 캔에 담겨있는 그대로 맥주를 마시며 거실로 돌아온 민규가 하늘에 커다랗게 위치한 둥근 달의 모양을 보며 작게 감탄했다. 오늘 달 진짜 크네. 민규의 감탄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던 원우가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달은 저기. 저거는 달 아니야. 원우의 말에 놀리지 말라며 피식 웃은 민규가 고개를 돌려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하늘에 커다랗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둥근 원과, 그 옆자리에 위치한… 그믐달. 민규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꼭 그 둥근 원에 영혼이 빼앗긴 사람처럼, 멍하니.

 

 

새벽이 되면 조용해졌어야만 했을 TV가 시끌벅적했다. 간간이 바깥에서는 괴로움에 가득 찬 울음과 비명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민규와 원우의 집은 숨소리마저도 겨우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놀라운 속도로 다가오는 이름 없는 소행성이라 그랬다. 비켜가길 바랐지만 소행성은 그대로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소멸되기를 바랐지만 소행성의 크기는 지구보다 더 컸기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행성이 지구에 부딪히는 날은 내일 자정으로 예상되며….’

 

 

아나운서의 말에 민규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봤다. 그러고 보니 아까보다 크기가 더 커진 것만 같았다. 기분 탓일까. 실감이 나지 않는 듯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뜬 민규가 옆에서 들려오는 한숨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무덤덤하다 못해 평화로움으로 가득 차있었던 원우의 얼굴에 그림자가 져있었다. 형, 왜 그래요. 조심스럽게 원우의 눈앞을 가린 머리카락을 치워낸 민규는 어둠으로 가득 찬 원우의 두 눈을 마주했다. 민규야. 네? 우리 그냥… 다 모른 척하고 잠이나 잘까. 평소처럼 무덤덤한 척하려고 했지만 이내 하얀 볼에 눈물을 떨어트린 원우가 민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제발. 울음기가 섞인 원우의 목소리에 민규가 원우의 손을 꽉 붙잡았다.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원우의 울음소리를 집어삼켰다.

 

 

아침이 되고 해가 떠올랐지만 여전히 둥근 소행성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크기를 키우고 있었다. 꿈이길 바랐는데. 침대에서 몸을 느릿하게 일으킨 민규가 세상모르고 잠들어있는 원우를 내려다보며 원우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울었으니, 지쳐있을 만도 했다. 거실로 나가 창문을 열고 난간에 몸을 기댄 민규가 몸을 기울여 바깥을 내다봤다. 시끄럽고 분주해야 했을 도시가 잠잠했다. 하늘의 4분의 1은 집어삼킨 소행성을 올려다보던 민규가 섬뜩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피로 물든 아스팔트, 기괴하게 꺾인 몸, 잔뜩 흐트러져있는 머리카락을 보던 민규가 헛숨을 들이켰다. 맞은편 집에는 누군가가 목을 매달고 있었고, 누군가는 정체 모를 약을 한 움큼 쥐어 입안에 털어 넣고 있었다. 구역질나는 장면들이었다. 죽음을 앞둔 세상이, 서서히 미쳐가는 듯싶었다.

 

 

“… 민규야.”

 

 

언제 깨어난 건지 잔뜩 잠긴 목소리로 민규를 부르며 방을 나온 원우가 난간에 기대 있는 민규를 바라봤다. 민규는 다시금 몸을 일으키며 창문을 닫았고, 원우가 바깥을 보지 못하도록 원우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밥이나 먹을까요? 원우는 민규의 웃음 속에서 어색함을 느꼈지만 이내 민규의 말에 순응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원우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민규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기 때문이라, 원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평소처럼 시리얼에 우유를 부은 원우가 우유에 흠뻑 젖은 시리얼을 꾸역꾸역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입안이 까끌까끌 거리고 목 안이 부어오른 것만 같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척 계속 턱을 움직였다. 민규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용한 식탁에서 울리는 소리라고는 둘의 숨소리와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 그뿐이었다. 창밖에서는 또 끔찍한 비명이 들려오고, 또 누군가가 추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규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쥐고 있던 숟가락을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움켜쥐었다. 원우는 그런 민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섬뜩한 죽음의 소리와 역겨운 죽음의 냄새가 자신들에게도 드리울까봐 그들은 애써 서로를 외면하고 외부를 외면하고자 했다.

 

 

“다… 먹었으면, 치울까요?”

“… 그래, 그러자.”

 

 

도저히 숟가락을 움직일 용기가 나지 않아 반 이상은 남아있는 음식을 버리며 민규와 원우는 서로에게 몸을 기댔다. 원우형. 그릇을 씻으려는 듯 싱크대의 물을 틀며 원우를 부른 민규가 원우를 바라봤다. 원우는 그런 민규를 올려다보며 눈을 마주쳤다. … 이거 다 씻으면, 형 좋아하는 책 좀 읽어줄래요? 민규의 물음에 원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규는 잔잔하게 웃었고, 원우는 고개를 돌려 그릇을 씻는 민규의 손을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는 쏟아지는 물줄기를 봤던 것 같다. 위에서 아래로, 거세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꼭 자신들과 닮아있어서, 운명 따위는 거스를 수 없다는 것만 같아서 원우는 숨을 토해내고서 민규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민규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민규는 묵묵히 그릇을 씻어냈다. 막을 수 없는 운명이 그릇에 가득 차서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커튼을 친 탓인지 어두컴컴해진 방 안에는 침대에 앉은 원우와 그 옆에 누운 민규가 있었다. 익숙하게 스탠드 불을 켠 원우가 안경을 고쳐 쓰며 책의 표지를 넘겼다. 읽어줘요, 형. 민규의 어리광 같은 목소리에 살짝 웃은 원우가 민규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읽어주면 안 돼요? 아무런 대답이 없는 원우를 올려다보며 투정을 부린 민규가 원우의 미소를 보며 이내 자신 또한 미소를 지었다. 가볍게 민규의 머리카락을 계속 쓰다듬던 원우가 천천히 입술을 벌렸다. 입 밖으로 여러 단어들이 튀어나와 문장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열 살 때 우리 소도시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체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련다.”

 

 

꽤 유명한 책이었다. 제목이 뭐더라. 제목을 떠올리다가도 원우의 낮고 편한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은 민규는 다시금 천천히 눈을 뜨며 책에 집중을 하고 있는 원우를 바라봤다. 단어 하나하나를 뱉으며 벌어졌다가 다시 닫히는 붉은빛의 입술을 응시하던 민규가 다시 눈을 감았다. 정말로 죽어버린다면, 이렇게 죽어서 더 이상 형을 못 보게 된다면 나는… 나는 어쩌지. 괜히 눈물이 날 것만 같은 느낌에 괜히 몸을 뒤척인 민규가 원우에게서 등을 돌렸다. 자? 자신의 물음에도 입을 다문 채로 굳건히 눈을 감고 있는 민규에 원우는 민규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흘러내린 눈물이 베개를 적시기 시작했다. 아래로 추락한 여성의 모습이 어두컴컴한 눈앞을 아른거렸다.

 

 

시간은 빨랐다. 정체 모를 행성은 어느새 하늘을 뒤덮었고, 민규가 무거운 눈을 들어 올렸을 때 원우는 방 안에 없었다. 불안해진 마음에 다급하게 방을 뛰쳐나온 민규는 푸른빛을 바라보며 몸을 웅크리고 있는 원우를 찾아낼 수 있었다. 형 여기서 뭐해요.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며 원우에게로 다가간 민규는 천천히 고개를 든 원우와 눈을 마주했다. 깊은 우울감에 물들어 툭 건드리면 울 것만 같은 얼굴을 한 원우와.

 

 

“… 형.”

 

 

조심스럽게 원우를 끌어안은 민규가 불을 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푸른빛으로 환하게 빛나는 거실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아주 느리고 다정한 손길로 원우의 등을 토닥이기 시작한 민규가 서서히 젖어드는 어깨에 원우를 품에서 떼어내고 그의 얼굴을 살폈다. 나 죽기 싫어. 죽기 싫어, 민규야. 무서워…. 이렇게 무너져내린 원우를 언제 본 적이 있었나, 싶어 잠시 멍해진 민규가 말없이 원우의 뺨을 쓰다듬었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자신 또한 죽음이 두려웠고, 하늘을 집어삼킨 저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나도…”

 

 

나도 무서워요. 죽는 것도 싫고, 우리의 최후가 이럴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서 너무 무서워요. 그제야 민규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한 원우가 민규의 얼굴에 묻어있는 공포를 확인했다. 그래도, 난… 형 옆에 있는 거, 그것만 볼래요. 지금 내가 형 얼굴을 보고 행복해하는 거, 그것만 느끼고 싶어요. 원우는 침묵하며 고개를 숙였다. 당연한 일인 것처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서럽게 울음을 터트린 원우가 민규를 꽉 끌어안으며 그에게 매달렸다. 사랑한다고 해줘. 물에 젖어 흐릿해진 목소리가 민규의 귓가에 닿았다. 민규는 그런 원우를 끌어안은 채로 울음을 삼켰다. 고요해진 집 안에서 들려오는 것이라곤 속절없이 똑딱거리며 흘러가는 시계의 소리뿐, 모든 소리가 다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사랑…, 해요. 사랑해요.”

“… 민규야.”

“….”

“우리…, 죽어서도 만날 수 있을까. 다음 생에도, 이렇게 만날 수 있을까.”

 

 

원우의 물음에 쓴웃음을 지은 민규가 원우의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이제는 빛이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죽음이다. 정말로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와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두려움에 빠르게 뛰던 심장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만 같았다. 아니,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점점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있었다. 형. 마지막 목소리를 쥐어짜낸 민규가 원우와 눈을 마주쳤다. 원우는 붉게 물든 얼굴로 민규를 바라봤고, 민규는 애틋하게 원우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민규는 또다시 입을 열지 않았고, 대답은 없었다. 그저, 얼마 전의 밤처럼 쓰디쓴 입맞춤만이 그들을 감싸 안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푸른 섬광이

 

 

그들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