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 후지산 아래서 온 저 나무
2021. 2. 9. 00:02

 

일본과 유럽 혼합양식의 저택이 희미하게 위용을 드러냈다. 민규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저택을 멍하니 바라보며 침을 꿀꺽삼켰다. 아름다우면서도 날카로워 보이는 저택이었다.

 

차가 저택의 입구 앞에 잠시 정차를 했고 민규는 가방 하나를 챙겨 차에서 내렸다. 차는 메케한 연기를 내뿜으며 멀리 떠나버렸다. 저택의 현관에서 민규를 기다리고 있는 카케라 부인. 카케라 부인은 등롱을 들고 어두운 화관 복도를 앞만 보고 걸으면서 기복 없는 억양으로 민규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민규는 아무 말 없이 카케라 부인의 뒤를 쫓아갈 뿐이었다.

 

 

 

" 도련님 일과는 간단해. 나리마님하고 옷을 만들거나 뒷동산에 산책을 가거나.. 도둑질이 밝혀지면 그날로 떠나야 한다? 물론 미즈노는 그런 사람이 아니겠지만. "

 

 

 

미즈노라는 말에 민규는 카케라 부인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본 카케라 부인은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 아, 미즈노는 네 일본식 이름이야. 네 이름 민규에서 따서.. 이 집에선 다 일본식이거든. 나리마님 앞에선 일본말만 쓰고. "

 

 

 

계단 홀로 연결된 복도를 걷는 카케라 부인과 민규. 민규는 계단을 오르며 벽에 붙은 큰 액자 속의 초상화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보라색 하카마를 입은 대여섯 살짜리의 초상화였다. 그 그림을 얼마나 현실처럼 잘 그려놨는지.. 마치 그 두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있는 것만 같아 잠시 몸서리를 치는 민규였다.

 

카케라 부인은 방의 문을 열고 있었고 민규는 그런 카케라 부인 뒤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벽장보다 조금 클까 싶은 방 안쪽에 침구가 있었고, 맞은편에는 미닫이문이 있었다. 카케라 부인은 방 안으로 들어와 침구 머리맡 등잔에 불을 옮겨 붙였다. 그리곤 미닫이문을 향해 턱짓하며 민규에게 속삭였다.

 

 

 

" 원우 도련님은 신경쇠약이라 잠이 잘 깨셔. "

 

" 도련님이 조기 계시다고요..? "

 

 

 

민규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자 카케라 부인은 쉿! 하며 민규에게 주의를 주었다. 민규는 놀란 눈으로 미닫이문을 마주 보았고 카케라 부인은 조심스레 방을 나갔다.

 

 

 

미닫이문에 그려진 파도 모양 연속무늬. 혼자 남겨진 민규는 계속해서 멍하니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흔들리는 등불에 벽지의 파도가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민규는 침을 꿀꺽 한 번 삼키곤 조심스레 문을 열어 도련님의 방을 들여다본다. 휭- 밀려드는 바람 소리에 흠칫 놀란 민규는 잠시 문을 닫았다가 열기를 반복하며 계속 도련님의 방에 기웃거렸다. 뭔가 사람 형체 같은 그림자가 너울거리는 것만 같다고 생각한 순간 가까이서 들리는 쿵- 소리. 민규는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로 누가 볼 새라 후다닥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니미럴...,

 

 

 

 

 

" 間違っていた !! .... "

 

잘못했어요

 

 

 

도련님의 방에서 들려오는 애절한 목소리에 민규는 눈이 번쩍 떠졌다. 그 좁디좁은 방에서 자신이 자고 있었다는 것을 민규는 잠시 까먹었는지 벌떡 일어나다가 그만.. 머리를 천장에 박아버렸고 민규는 아픈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도련님의 방문을 활짝 열곤 원우가 있는 침실로 뛰어갔다. 원우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두꺼운 책을 안고 자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 도련님, 도련님! 괜찮으세요? "

 

" 미코니..? "

 

 

 

민규는 원우의 식은땀을 닦아주며 말을 이어나갔다.

 

 

 

" 미코는 쫓겨났고요, 제가 새로 왔어요. 무슨 안 좋은 꿈이라도 꾸셨나봐요. "

 

 

 

민규가 계속해서 원우에게 말을 걸어오자 원우는 차츰 현실감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무섬증은 안 가라앉는지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곤 얼굴만 빼꼼 내민 채로 민규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 저기 큰 벚나무 보이지, 우리 엄마가 미쳐서 거기 목을 맸거든? 가끔 달 없는 밤이면 엄마가 저기서 대롱대롱... "

 

 

 

원우의 말을 듣곤 민규는 창가로 가 잠시 큰 벚나무를 바라보았다. 그 틈에 원우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몰래 민규 뒤에 서 있었고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민규는 뒤를 돌아본 순간 너무 놀라 소리를 꽥 지르고야 말았다. 미안미안, 그 정도로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민규는 원우를 다시 침대에 눕히고 원우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원우는 그 토닥임에 안정을 되찾았는지 잠에 빠진 채로 계속 말을 하며 중얼거렸다.

 

 

 

" 다들 잘라버리자고 했는데도 이모부는 고집을 부렸어. 후지산 아래서 온 저 나무가 엄마 영혼을 빨아들였다면서. 근데 그해부터 꽃이 더 탐스럽게, 오래 피긴 해.. "

 

" 그런가요..? "

 

 

 

원우의 말이 잠꼬대인 것을 알면서도 민규는 꼬박꼬박 대답을 해주었다.

 

도련님, 저희 엄마는 잠꼬대를 심하게 하는 저에게 무슨 말을 하건 항상 대답을 해주셨대요. 왜냐면 어미는 아침부터 일찍 일을 나서니까 말동무가 없어서 잠에서라도 저러나 싶어서 그려셨다고 하더라고요. 아, 도련님이 말동무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고..,

 

 

 

 

 

카케라 부인이 기다린다는 것을 확인한 민규는 급하게 고무신을 찾는데 고무신에 발이라도 달렸는지 고무신을 보이지 않았다. 입구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지켜보던 하인 셋은 뭐가 그리도 기쁜지 자기네들끼리 꺄르륵대며 웃었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해 땅이 젖는 걸 보기 시작한 민규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씨발 것들을..

 

원우는 자그마한 탁자 앞에 앉아 있었고 카케라 부인과 민규는 방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버선까지 벗은 왼쪽 맨발의 발가락을 오므리고 선 민규는 무척이나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 ミズノです。 "

 

미즈노입니다.

 

" 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マペット "

 

잘 부탁드립니다. 도련님

 

 

 

허리를 한껏 굽혔다가 펴면서 민규는 그제야 원우의 얼굴을 비로소 완전하게 볼 수 있었다.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 해졌지만 애써 침착한 척을 해 보이는 민규. 밝은 데서 다시 보니 유난히 창백한 피부에 군데군데 발그레한 복숭아빛까지..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니다.

 

염병.. 예쁘면 예쁘다고 미리 말해줄 것이지..,

 

 

 

" 見て良い。 "

 

만나서 반가워.

 

 

 

원우가 대본을 읽는 것 같이 또박또박 천천히 인사말을 건넸다. 민규는 엉겁결에 다시 한번 허리를 숙여 저도요,라고 말했다. 형식적인 자기소개와 인사말을 주고받자 카케라 부인은 잠시 그 둘을 바라보다가 방에서 나갔다. 카케라 부인이 방을 나가는 것을 확인한 원우는 한숨을 쉬며 민규에게 편지봉투를 주며 말했다.

 

 

 

" 네가 좀 읽어줄래? "

 

" 네? "

 

 

 

민규는 적잖게 당황했지만 원우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 봐 편지봉투를 뜯어 편지 내용을 읽는 척 하며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 도련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나요? 새로운 하인이 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하인은 마치.. 감자? 감자처럼..? 아닌가.. 쓰읍 "

 

 

 

편지를 쥔 민규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결국 민규는 원우에게 사실을 털어놓는다. 사실은 저 글 읽을 줄 몰라요, 도련님. 사실을 고백한 민규의 표정에는 수치심이 보였다.

 

 

 

" 글 같은 거 배우면 그만이고, 욕을 해도 좋고 도둑질도 해도 좋은데.. 나한테 거짓말만 하지 마. 알았니? "

 

 

 

민규는 속상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예, 도련님!

 

 

 

" 발은 왜 그래..? "

 

 

 

원우는 민규의 왼쪽 발을 가리켰다. 민규는 부끄러운 마음에 급하게 발을 숨긴다. 그런 민규를 본 원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장 앞으로 가 문을 열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신발로 빼곡히 차 있는 신장을 보며 민규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원우는 담담한 표정과 목소리로..

 

 

 

" 갈 데가 없잖아, 난.. 태어나자마자 이 집에서 계속 자랐는 걸.. 근데 새 신을 신으면 노상 다니던 길도 처음 가는 것 같거든.. "

 

 

 

원우는 세 번째 칸을 가리키며 민규에게 여기에 있는 신발들이 발에 맞을 거라며 알려주었고 민규는 냉큼 한 신발을 집어 들었다. 꽤나 수수한 신발이었다.

 

 

 

" 왜? 더 예쁜 거 고르지. "

 

 

 

민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우는 잠시 시선을 민규에게서 손목시계로 옮겼다. 원우는 시계를 보더니 크게 한숨을 쉬며 " 다도회 연습 갈 시간이야. "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민규가 따라나설 채비를 하자 원우는 단칼에 혼자 갈 거라며 거절했다. 손목시계를 풀어 민규에게 주며 애절한 눈빛으로 원우는 이렇게 말했다.

 

 

 

" 정오 되면 와서 문 두드려줘, 꼭.. 알았지? "

 

 

 

민규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윽고 원우가 방에서 나가자 민규는 마치 이 방의 주인이 자신인 것처럼 서랍도 열어보고 옷장도 열어보고.. 모자를 쓰고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기도 했다.

 

옷장 맨 위 칸 서랍에 놓여있는 상자들을 꺼내 모조리 꺼내 보던 민규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뱀이 똬리를 틀 듯 동그랗게 말린 밧줄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어디에 쓰려고 있는 걸까..,

 

 

 

 

 

부슬부슬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이 종종걸음을 재촉하며 다도회장으로 향했다. 다도회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큰 벚나무. 민규는 원우가 말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탐스럽게 핀 벚나무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집이 너무 넓어서 미친걸까?

 

다도회장 앞에 도착한 민규는 시곗바늘이 정오를 가리키자 문을 세 번 두드렸다.

 

 

 

" また、また、また ! "

 

또 또 또!

 

 

 

똑똑똑-, 이모부의 꾸짖음과 민규의 노크 소리가 겹쳤다. 소리가 겹친 탓인지 원우와 이모부가 민규의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하자 민규가 직접 다도회장의 문을 열었다. 문이 끼익- 스산한 소리를 내며 열리자 원우와 이모부가 동시에 문 앞에 서 있는 민규를 바라보았다. 민규를 본 원우는 이모부에게 급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 新しく来た使用人です。 "

 

새로 온 하인이에요

 

 

 

민규가 이모부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들어오려고 하자 원우가 흠칫 놀라며 큰 소리를 냈다.

 

 

 

" そこでもはや出番ない。 "

 

거기서 더 이상 들어오면 안돼

 

 

 

결국 민규는 다시 다도회장의 문을 닫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원우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원우가 다도회장에서 급하게 나왔다. 민규는 우산을 펴 원우에게 씌워주며 둘은 나란히 걸었다. 원우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진 것만 빼면.

 

방에 돌아온 원우는 급하게 대야로 가 모든 걸 게워냈다. 민규는 그런 원우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원우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원우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 괜찮아.. 찻잎 향을 너무 맡으면 속이 울렁거려서 그래. "

 

 

 

원우가 이제야 속이 괜찮아졌는지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보며 입을 손수건으로 꼼꼼하게 닦았다.

 

 

 

" 우리 벚나무 아래로 소풍이나 갈까? 바람이라도 쐬고 싶어서 말이야. "

 

" 도련님이 가고 싶으시다면 가야죠! "

 

 

 

민규가 급하게 짐을 싸기 시작했다. 찻잎을 챙길까 했지만 원우가 차는 마시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기 때문에 사탕과 빵, 물을 챙기곤 둘은 벚나무 아래로 향했다. 원우가 앉기 전에 민규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원우의 자리에 깔아주었고 원우는 그 위에 살포시 앉았다. 민규는 그냥 잔디밭에 앉았고. 비가 온 탓인지 엉덩이가 축축해져 기분이 조금 더러워진 민규였다.

 

 

 

" 도련님은 무섭지 않으세요? "

 

" 응? 뭐가? "

 

" 저번에 말씀해주셨던 이야기.. "

 

 

 

아, 그 이야기 말이구나. 원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민규는 혹시나 저가 도련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던 찰나 원우가 말을 이어나갔다.

 

 

 

" 무섭지.. 근데 엄마 귀신이 무서운 건 아니야.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이 무서운 거지. "

 

 

 

사탕 포장지를 뜯고 사탕을 먹기 시작하는 원우.

 

 

 

" 우리 엄만.. 착하셨어. 벚꽃 잎이 흩날릴 때면 난 엄마의 무릎을 베고 엄마가 얘기해주는 이야기들을 듣곤 했거든. "

 

 

 

아..., 원우가 말하다 말고 짧은 탄식을 내뱉는다. 민규가 무슨 일인가 싶어 원우의 얼굴을 바라보니 원우의 눈에 물기가 가득했다.

 

 

 

" 왜 그러세요? "

 

" 입안이 자꾸 베여.., 이 하나가 뾰족한가 봐. "

 

"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도련님. "

 

 

 

원우의 말에 민규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거리며 꺼냈다. 은제골무를 손가락에 껴 원우의 입안에 손가락을 넣어 이를 갈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이가 갈리는 소리와 침을 꿀꺽 삼키는 원우의 모습. 분위기가 갑자기 묘해졌다. 눈을 감고 있다가 이내 결심이라도 했는 듯 눈을 뜨는 원우. 원우의 눈과 민규의 눈이 마주치고..,

 

 

 

" 아.., "

 

 

 

민규는 탄식인지 감탄사인지 모를 무언가를 내뱉었다. 이 냄새였구나.

 

이가 다 갈렸다고 생각한 민규는 원우의 입속에서 골무를 낀 손가락을 빼곤 은제골무는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다시 원우의 이를 만져보더니 매끈매끈하다고 말하며 생긋 웃었다.

 

 

 

 

 

 

 

다음날이 되자 백작이 타고 있는 차가 원우의 집으로 들어왔다. 백작은 기모노 차림이었고 하인들의 눈을 마주 보며 웃어주었다. 민규를 포함한 남자 하인들은 역겨운 표정을, 여자 하인들은 부끄러운듯 볼을 붉혔다.

 

민규가 백작의 짐을 받아들고 원우가 있는 응접실로 안내를 했다. 백작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민규에게 말을 건다. 너 잘하고 있는 거 맞지?

 

 

 

사실 백작과 민규는 아주 잘 아는 사이였다. 아니.., 백작이 아니라 광주에서 온 노비출신이었지만. 백작은 원우와 결혼을 해 재산을 홀라당 먹어버릴 계획이었고, 민규가 백작을 도와주면 백작은 패물과 오만을 떨어트리겠다고 거래를 제안해 이 집에 하인으로 민규가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족제비 같은 백작은 원우에게도 거래를 제안했다. 이모부에게서 벗어나게 해주는 대신 자신과 결혼을 해달라고. 결혼을 해서 재산을 주면 자유로운 곳에 풀어주겠다며. 그래서 원우는 백작에게 부탁했다. 하인으로 쓸 만한 남자애 하나를 구해달라고. 갑자기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애로.

 

 

 

"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정신병원에 넣어두기로 해요, 내 이름으로요. 거기선 땅에 구덩이를 파서 환자를 하나씩 넣고 묻어둔대요. 난 내 이름이 그 구덩이에 묻히기를 원해요. "

 

 

 

민규는 잘하고 있으니 걱정말라며 눈을 치켜뜨며 백작을 바라보았다. 저 재수 없는 놈..,

 

백작이 응접실에 들어오자 원우가 고개를 돌려 백작, 그리고 민규를 바라보았다. 원우는 쑥스럽다는 듯이 조그맣게 웃는다. 민규는 그런 둘을 뒤에서 지켜보며 입술을 꽉 깨문다. 얼마나 세게 물었으면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였으니까.

 

 

 

 

 

밤이 되자 포도주를 많이 마셨는지 얼굴이 붉어진 채로 방에 돌아온 원우. 민규는 그런 원우의 넥타이를 풀어준다. 그리곤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한다.

 

 

 

" 미즈노, 너도 한 번 입어볼래? "

 

" 네..? "

 

 

 

셔츠를 풀다말고 원우는 옷장에서 옷을 꺼내와 민규에게 대보기 시작했다. 네 몸에 맞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민규가 양복을 입은 자신을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움직이며 바라본다. 민규의 표정을 보아하니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런 민규의 모습을 바라보며 원우는 피식 웃는다.

 

 

 

" 너도 이렇게 입으니까 도련님 같다. 그치? "

 

" 우와.. "

 

 

 

민규는 거울 속의 자신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원우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 백작님 말씀.. 뭔지 알 것 같아. 자려고 누우면 네가 생각나더라..? "

 

" 도련님도 참.. "

 

 

 

민규가 어색하게 웃는다. 저 말의 뜻이 뭔지 한 번에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벚나무 아래에서 느꼈던 묘한 분위기가 다시 흐른다. 

 

 

 

 

 

백작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 저택에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그런 백작을 바라보며 민규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원우가 자신의 소유물은 아니였지만.. 백작에게 빼앗긴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민규는 자려고 누우면 자꾸 원우 생각이 나 한숨을 푹푹 쉬기도 했고, 백작이 뒤를 돈 순간이면 몰래 침을 뱉기도 했지만.. 그런다고 기분이 썩 나아지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요즘따라 민규는 원우에게 투덜대기 시작했다. 다른 하인들은 민규를 보며 하극상 부리지 말고 얌전하게 굴어야 한다며 핀잔을 주었지만 민규는 계속해서 원우에게 투덜거렸다.

 

컴컴한 방에 누운 민규는 오늘도 쉽게 잠에 빠져들지 못한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는데 건너편에 있는 원우네 방은 불빛이 훤했다. 민규가 자고 있지 않다는 걸 원우는 아는지 민규네 방에 연결된 끈을 잡아당겨 민규를 호출했다. 민규의 조그마한 방에 방울소리가 가득 채워진다. 민규는 못 들은 척을 하며 귀를 막아보지만.., 원우가 얼마나 세게 잡아당겼으면 줄이 팅-하고 끊어졌고 결국 민규는 세차게 일어나 쿵쿵쿵-발소리를 내며 원우네 방으로 들어갔다.

 

 

 

" 나 왔는데 내다 보지도 않더라? "

 

" 죄송합니다. 요즘 피곤해서 신경을 쓰지 못했나봐요. "

 

 

 

원우는 이불의 한 쪽을 젖히며 명령조로 " 악몽 꿀 것 같아. 여기서 자. " 라고 민규에게 말했다. 민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원우의 옆자리로 가 누웠다. 민규와 원우는 등을 맞대고 누워 있었고 둘 사이에 고요함만 흘렀다. 그 고요함을 먼저 깬 쪽은 원우였다.

 

 

 

" 백작님이 청혼하셨어. "

 

 

 

민규는 흠칫 놀라지만 원우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잠자코 듣기만 하고 있었다.

 

 

 

" 일본으로 달아나재. 이모부 함경도 가시는 틈을 타서. "

 

" 도련님은 뭐라셨어요? "

 

" 난.. 모르겠다고 했어. "

 

 

 

의미 없는 대화만 주고받는 민규와 원우. 민규는 조금 짜증이 났다. 백작이랑 결혼한다고 나한테 말해서 뭐하게?

 

 

 

" 있잖아.. "

 

 

 

원우가 민규 쪽으로 몸을 돌려 눕는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원우의 목소리에 민규가 숨을 헙-하고 멈춘다.

 

 

 

" 결혼하면.. 밤에 말이야... 먼저 입을 맞추겠지..? "

 

 

 

원우의 말에 민규도 몸을 돌려 원우를 바라보았다. 정말 순수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원우. 에라 모르겠다. 민규는 침대 옆에 있는 서랍을 열어 사탕 하나를 꺼내 포장지를 뜯어 혀와 입술로 정성스럽게 핥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 원우의 입술에 제 입술을 슬며시 가져다 대고 비빈다. 숨을 깊게 쉬고 침을 삼킨다. 원우는 제 입술에 묻은 사탕물을 맛본다. 원우의 반응이 만족스럽다는 듯 원우의 입술에 한 번 더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댄다. 원우는 아예 민규의 입술이 사탕이라도 되는 마냥 혀로 핥아댔다.

 

쓴가 하면 달고, 단가 하면 시고.. 원래 사탕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맛이 났나?

 

 

 

" 이게 바로 사랑을 원하는 느낌이에요. "

 

" 정말..? "

 

" 네, 그럼요. "

 

" 백작님이 시체와 교접하는 느낌이라고 하시지는 않을까..? "

 

 

 

민규가 떨리면서도 단단한 목소리로 원우에게 묻는다. 더 가르쳐드릴까요 도련님?

 

원우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둘은 손을 맞잡는다. 둘의 관계는 하인과 도련님에서 이미 벗어난 지 오래였다. 그걸 깨달은 게 오늘일 뿐이고..

 

 

 

 

 

 

 

오랜만에 차 같이 마실래? 원우가 읽던 책을 덮어놓고 민규에게 물었다. 창가에 앉아있던 민규는 좋은 생각이라며 창가에서 내려왔다. 주방으로 내려간 민규는 주전자에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충분히 차를 우려낸 다음 한 쌍의 찻잔을 챙겨 원우네 방으로 다시 올라갔다.

 

탁상 위에 찻잔과 주전자를 올려두고 민규는 원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원우가 주전자를 들어 먼저 민규의 찻잔에 차를 부어주었다. 그리곤 민규에게 차를 마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 미즈노, 차는 세 번에 나눠서 마셔. "

 

 

 

눈으로 보고,

 

코로 향기를 맡고,

 

혀로 음미하고.

 

 

 

민규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린 뒤에 눈으로 보고, 코로 향을 맡고, 혀로 음미하며 세 번에 걸쳐서 차를 마셨다. 녹차가 너무 우러난 탓이었는지 차는 조금 썼다. 민규는 인상을 찌푸렸고 그런 민규를 본 원우는 크게 웃어댔다.

 

 

 

" 도련님은 이렇게 쓴 걸 어떻게 드세요? "

 

" 어렸을 때부터 마셨으니까.. 입맛이 길든 거지, 뭐. "

 

 

 

허허-웃으며 녹차를 한 입 마시는 원우였다. 저 말이 짠하게 느껴진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민규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원우의 차가운 발을 정성스레 주무르며 발 마사지를 해주는 민규. 민규는 혼자서 재잘댄다.

 

 

 

" 요즘 발톱이 무척 빨리 자라세요. 사랑에 빠지셔서 그런가?... 도련님은요, 그런 거 모르고 평생 사는 게 좋아요? 큰 바다에 얼마나 많은 배들이 오고 가는지.. 시장에 얼마나 다양한 음식들을 파는지.. 도련님이 제일 멀리 가본 곳이 어디예요. 뒷동산이죠? "

 

 

 

아무런 반응이 없자 민규가 살짝 고개를 들어 원우를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울적해 보이는 원우의 기분.

 

 

 

"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아.. 너만 같이 있어 준다면.. "

 

 

 

애써 덤덤하게 말하며 민규의 눈을 탐색하는 원우였다. 덤덤함이 오히려 더 슬프게 느껴지는 민규였다.

 

 

 

" 도련님은 참 운이 좋으세요. 한 평생을 함께 할 남자가 도련님을 지켜줄 수 있는 능력까지 가졌잖아요. "

 

" 난.. 모르겠어. 내가 그분을 사랑하는지. "

 

" 사랑하세요. "

 

 

 

그 말 한 마디에 원우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마치 사망선고를 받은 기분이었고, 엄마가 죽은 걸 목격한 기분이었다. 민규에게 화가 난 원우는 민규의 손에서 발을 휙하고 뺐다. 민규는 어리둥절하게 원우를 쳐다보았다.

 

 

 

" 내가 사랑이 아니라도 해도.. 그분이 아니라 딴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도.. "

 

 

 

원우의 말에 민규는 살짝 뜨끔한다.

 

 

 

" 내가.. 천지간에 아무도 없는 내가.. 그분하고 꼭 결혼했으면 좋겠어? 너는..? "

 

" 네. 사랑하게 되실 거예요. "

 

 

 

찰싹-, 원우의 손이 민규의 뺨을 세게 때렸다. 갑자기 느껴지는 따가운 고통에 민규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원우가 한 번 더 세게 민규의 뺨을 때렸다. 그리곤.. 민규를 거세게 밀치며 방 밖으로 내보내 버렸다. 민규는 다리에 힘이 풀린 채로 엉엉운다. 도련님, 도련님...

 

원우는 옷장 서랍에서 상자들을 꺼내 마구 뒤지기 시작한다. 밧줄이 들어있는 상자를 들곤 쿵쾅거리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열린 채 잔디밭을 나뒹구는 빈 상자.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원우는 벚나무 가지에 밧줄을 묶는다. 목에 밧줄을 걸고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生まれていない場合よかった..

 

 

 

눈을 감고 손을 놓는 순간, 누군가가 원우의 다리를 잡았다. 원우가 눈을 뜨고 아래를 바라보니 역시나 민규였다. 민규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 놔. "

 

" 도련님.. 제가 잘못했어요.. "

 

" 놔. "

 

" 제가 잘못했어요.. 죽지마세요, 도련님.. "

 

" 뭘 잘못했는데..? "

 

 

 

민규는 눈물을 터트리곤 웅얼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 나쁜 새끼하고 도련님하고 결혼시키려고 했고요.. 도련님을 정신병원에 처넣으려고 했어요.. 죽지마세요.. 결혼하지 마세요.. 도련님..

 

 

 

" 민규야.. 내가 걱정돼? "

 

 

 

민규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 난 네가 걱정돼. "

 

 

 

원우의 독백을 잠자코 듣고 있던 민규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지나간다. 어라..?

 

 

 

" 제 이름.. 어떻게 아셨어요? "

 

" 넌 네가 날 속여먹을 줄 알지. 속은 건 너야.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건 너라고. "

 

 

 

지난 시간을 반추하는 듯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기는 민규. 머릿속의 퍼즐이 하나씩 맞춰진다. 그러니까 백작이 도련님에게 거래를 제안했고.. 그리고 나에게도 거래를 제안했고...,

 

 

 

" 이 나쁜 새끼!! "

 

 

 

민규가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른다. 짐승이 죽기 전 마지막 발악처럼.

 

 

 

 

 

 

 

둘은 힘을 합쳐 이 저택에서 도망치기로 했다. 백작도, 이모부도 엿 먹일 수 있는 그런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계획을 실행시키는 날은 이모부가 함경도에 가는 날.. 그리고 원래라면 원우가 백작과 결혼하는 날이었다. 원우는 백작과 결혼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튈 셈이었다. 위조 된 여권을 챙긴 채로.

 

위조 된 여권은 민규가 구해왔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최고의 명대도 미숙이가 도와준 덕분이었다. 민규는 이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미숙이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미숙이는 쑥스럽다는 듯이 손을 휙휙 저었고 가끔 편지라도 보내라며 말했다. 미숙이의 말에 민규는 생긋 웃으며 당연하지! 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떠나기 하루 전날 밤, 원우의 침대 옆자리에 누운 민규가 원우에게 묻는다. 도련님, 기분이 어떠세요? 민규의 물음에 원우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

 

 

 

" 민규야. "

 

" 네..? "

 

 

 

무언가를 결심한 듯 민규의 손을 꽉 잡고 원우가 진심을 담아 민규에게 얘기한다.

 

 

 

" 넌 나 버리지 마. 나 혼자 두고 가지 마.. 알겠지..? "

 

" 당연하죠, 도련님. "

 

 

 

민규의 대답을 들은 원우는 만족스러운지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띄웠다. 불을 끄고 둘은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본다. 내일이면 도련님하고 도망을 가는거야.. 내일이면 이 지긋지긋한 삶도 끝인 거야..

 

 

 

 

 

자동차에서 모자챙을 들어 인사하는 백작 너머로, 현관 앞에 선 원우와 이모부. 그 뒤에 선 카케라 부인과 집사와 하인들, 그리고 민규. 백작이 탄 차가 먼저 출발한다. 곧바로 다음 차가 들어와 서자 이모부와 집사가 탄다. 이모부가 손짓하자 쪼르르 달려 나가 앞에 서는 원우. 귀에 대고 속삭이는 이모부.

 

 

 

" 自由を得たとして逃げるもなら.. "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 何が起こるか、あなたよりよく知っているだろうと考えている。 "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네가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원우가 침을 꿀꺽삼킨다. 겁을 먹은 원우의 눈동자. 그 말을 끝으로 이모부를 태운 차가 출발을 했고 진입로를 빠져나간다. 하인들 사이에서 민규를 쳐다보는 원우. 하인들은 각자 할 일을 찾아 떠나고 북적이던 현관에 둘만 남았다.

 

 

 

" 나하고 좋은 데 갈래? "

 

 

 

달빛이 드리우는 밤, 둘은 미리 싸놓은 짐들을 챙겨 다도회장으로 향한다. 원우는 능숙하게 다도회장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민규는 이모부에게 혼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지 들어가기를 잠시 머뭇거린다. 원우가 괜찮다며 안에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자 그제야 민규는 다도회장 안으로 발을 들인다.

 

민규는 다도회장을 조심스럽게 둘러본다. 처음 보는 한자들이 적혀 있는 병들이 가득했다. 그렇게 민규가 다도회장을 둘러보는데 원우가 민규에게 병 하나를 건넨다. 민규는 뭐지..? 싶어 병의 뚜껑을 열고 그 안을 확인하는 순간..

 

 

 

" 설마.... "

 

 

 

대답 대신 눈물만 흐른다. 병을 움켜쥐는 민규, 반사적으로 말리려드는 원우의 손길을 뿌리치고 병을 거칠게 바닥에 내팽개친다. 유리병은 와장창-하며 깨졌고 유리파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민규는 이쪽저쪽 구석구석을 누비며 모든 유리병들을 깨기 시작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깨진 유리조각을 집다가 유리날에 베여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완전히 매혹되어 멍하니 민규를 바라보는 원우.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미즈노

 

나의 민규...

 

 

 

민규의 얼굴은 땀으로, 원우의 얼굴은 눈물로 뒤덮였다.

 

 

 

 

 

바쁘게 움직이는 다리 네 개. 뒤로 저택이 시커멓게 보인다. 벚나무 아래를 지나는 민규와 원우, 큰 가지에서 늘어진 밧줄을 올려다본다. 어느덧 꽃이 많이 졌다. 자꾸 뒤돌아보는 원우를 잡아끄는 민규.

 

무릎 높이로 낮게 둘러친 담장이 길게 이어졌다. 민규는 한걸음에 사뿐히 담을 넘는다. 원우는 담 앞에 서서 그 너머, 저택 바깥을 응시할 뿐 꼼짝도 못한다. 숨마저 가빠져 오기 시작했다. 도로 넘어온 민규는 트렁크를 담 앞에 눕혀 계단을 만들어준다. 얼어붙은 원우의 발을 트렁크 위에 올려놓고 다시 담을 넘어 바깥에서 원우에게 손을 내민다. 저 손길이 구원인지 파멸인지도 모르지만 원우는 민규의 손을 잡고 담을 넘는다.

 

바깥에는 눈이 수북이 쌓였다. 민규가 앞장 서 눈밭을 걷기 시작했고 원우는 민규의 발자국에 맞춰 천천히 따라 걷기 시작했다.

 

 

 

 

 

천천히 늦게 가더라도

 

너를 꼭 따라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