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갈색빛을 띄는 큰 나무에 달린 손바닥만 한 나뭇잎이 제 색을 뽐내듯 푸른빛을 띠고 매미는 시끄럽게 울어대며 하늘은 맑게 개어 있을 적의 이야기이다. 벌써 7월이 찾아와 사람들을 더위로부터 빠져들게 하고 있었다.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그야 불판 위에 있는 고기처럼 익어버릴 정도의 더위였지만 유독 더위를 잘 느끼지 못했던 원우는 부채질로 더위를 거뜬히 이겼다. 그러고 보니 민규가 오늘 병실에 찾아온다고 기대해라고 하던데. 들뜬 마음으로 병실의 문을 한참 바로 보다가 얼마 채 되지 않아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와 두둑한 가방을 손이 들고 병실로 발을 내디뎠다. 뭘 이리 많이 들고 왔어. 그러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떠나지 못했던 원우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민규를 맞이했다. 민규는 앓는 소리를 절로 내며 근처에 놓인 의자에 앉고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놈의 병실은 왜 에어컨을 안 틀어줘? 싫어하는 반찬을 먹기 싫다는 어린아이처럼 민규는 입술을 쭉 내민 채 투정을 부렸다. 내가 안 틀어놓은 거야. 민규의 투정에 원우는 이길 수 없다는 듯이 협탁의 서랍을 열고는 리모컨을 꺼내 에어컨을 틀었다. 경쾌한 효과음이 나더니 에어컨은 시원한 바람을 내 보내며 병실의 공기를 시원하게 만들었다. 혼자 있는 것도 나름 적응됐나 봐? 민규는 침대의 식탁을 꺼내더니 가방에서 3단 도시락을 꺼냈다. 응, 그럭저럭 지낼만해. 외롭지는 않아? 괜찮아, 네가 맨날 찾아와주잖아. 원우의 말에 민규는 크게 하하, 웃으며 원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매일 올 거니깐 외로워하지 마. 알았지? 민규의 말에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식탁에 올려진 도시락으로 시선을 돌려 도시락을 분리하고는 나란히 배열해보니 전부 원우가 좋아하는 음식들뿐이었다. 나름 감동 먹은 원우는 민규를 향해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병원 밥이 도저히 입에 맞지 않아 몰래몰래 밖으로 나가 빵을 사 먹곤 했는데 민규에게 들킨 날로부터 항상 올 때마다 도시락을 싸오며 늘 저가 즐겨먹거나 좋아했던 음식을 가지고 왔다.
"형 요즘은 괜찮아요?"
"응? 아, 요즘도 뭐 평소랑 똑같지."
"형 얼른 회복되서 나랑 같이 놀러다녀야 할텐데, 그쵸?"
"그러게, 나 오랜만에 바닷가 가고싶어."
"그럼 다 나아서 같이 가기로 약속할까요?"
"응. 약속하자."
너의 순수한 눈빛과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을 보면 거짓말 없이 순수하게 너에게 모든 것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폐렴인 줄 알고 입원해서 곧 나을 것 같았지만 폐의 염증이 날마다 커져갔고 진단서를 차마 너에게는 보여줄 수 없을 것 같아 서랍 안쪽 깊숙이 숨겨놓았지만 이 병이 낫고 나면 너에게는 꼭 말해줄 생각이다. (진단서에 대해 말하려고 생각하니 술 한잔 사주면서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말아지, 흐흐.) 나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져 가는 증상들. 기침이나 두통은 참을만했지만 한꺼번에 몰려오는 피로감이라던지, 근육통이 심하게 찾아오는 날에는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힘들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숨 쉬는 것도 조금씩 불편해져 가는 것. 의사는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몇 번이나 외쳐댔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의사의 말이나 간호사의 말이나 믿을 수가 없이 그저 자신이 나아지는 그날까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아지기는커녕 가면 갈수록 진단서에는 좋은 말이 적히지 않기 시작했고 더 이상 희망이라고는 없었다. 하지만 너에게는 왜 이리 뻔뻔하게 거짓말을 치고 있을 수 있을지.
"원우형, 무슨 생각하길래 밥을 안 드시고 계실까?"
"......"
"형, 원우형!"
"어? 어어, 왜?"
"무슨 생각하냐고."
"음, 그게. 네가 가져온 밥 맛있어서!"
"아직 안 먹어 봤잖아."
"네 음식 원래 맛있으니깐 말해본건데..."
"얼른 먹어봐."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뜯어 네가 해준 계란말이를 한 입에 넣고 싶었지만 왜 이리 크게 만들어 놓았는지 앞니로 반 토막을 내 절반은 젓가락에 절반은 입안에서 오물오물 씹어먹었다. 응, 맛있네. 눈웃음을 지으며 음식들을 하나하나 입안으로 넣기 시작했다. 너는 밥 먹었어? 음식을 오물오물 씹으며 민규에게 말하자 민규는 원우의 입가에 묻은 음식을 닦아주며 먹었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밥도 못 먹고 아침부터 원우 먹여줄 생각에 열심히 요리를 했다는 사실. 이런 일상이 매일 반복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거라고 항상 믿고 있었고.
매미소리가 귓가에 울리던 선선한 여름밤이었다. 잠에 들지 않아 한참 뒤척이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다가도 도저히 눈이 감기지 않아 이불을 걷어차고는 벌떡 일어나 소파에 민규에게 조심조심 다가갔다. 세상모르고 자고있는 민규의 볼을 검지손가락으로 쿡쿡 누르다가도 답답해 보이는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겨 주었다. 잘 때는 천사라니깐. 고등학생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어른이 되어 대학교를 다니는 어엿한 어른이라니, 하염없이 민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제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보았다.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하게 들어간 눈코입이 잘생겼었다. 어릴 적에 그렇게 좋다고 쫄래쫄래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했던 녀석이 이제는 제 옆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로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못된 형이어도 받아줘서 고마워. 아무리 감고 있는 눈이라지만 감고 있는 눈 위에 손을 올려 덮고는 꾹 닫힌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살포시 포개었다. 따뜻했다. 입술을 떼고 나니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황급히 일어나 자신의 침대에 누웠다. 모르겠지, 모를 거야.
민규는 억지로 붙이고 있던 눈을 떼고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원우형 방금 나한테 뭐 한 거지... 당하고도 얼떨떨한 느낌에 부스스 해진 뒷머리를 헤집으며 다시 소파에 푹 기대어 누웠다. 하필이면 오지않던 잠이 쿵쾅거리는 심장 때문에 더욱 잠에 들지 못했다. 지금 이 심장소리가 원우에게도 들릴까 봐 걱정이 되어 덮고 있던 얕은 담요를 왼쪽 가슴에 가져다 대며 절대 심장소리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놓는 다곤 했지만 귓가에 생생하게 울리는 심장소리에 어둠 속에서도 더욱더 빨개지는 얼굴이었다.
쿵쾅 대는 심장에 숨이 과하게 쉬어지는 건가. 아님 너무 좋아서 그런가. 아니, 이런 상상하면 변태 같잖아. 아 몰라 전원우가 해주는 거 다 좋으니깐 그렇지.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귓가에 울려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끝없이 넓고 여름 하늘 처럼 푸른 하늘과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푸른 하늘이 자신이 밟고 있는 바닥과 반사되어 마치 하늘에 떠있는 느낌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바닥은 발목까지 닿는 수심이 얕은 물이였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혼자 물을 발로 툭툭 차대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을 때 물 위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비춰졌다. 예쁜 조개. 그것을 주우려고 몸을 숙여 제 손에 잡혔지만 하얀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려 사라져버렸다. 그 조개 가루가 날아간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그 곳은 이 밝은 곳과 다르게 캄캄하고 어두웠던 곳이였다. 그 어둠 안에는 민규가 서 있었다. 여기로 오려나. 어차피 제 뒤로 쫄래쫄래 뒷따라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등을 돌려 한걸음 나아가려 할 때, 귓가에 민규의 애절하고 간절한 목소리가 울렸다.
형, 형!! 원우형!! 죽지마, 안 돼!!
응? 무슨 소리야? 몸을 뒤로 돌려 민규를 쳐다보려고 했지만 차갑고 거센 바람이 캄캄하고 어두운 곳에서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 바람으로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한 채 실눈으로 너를 쳐다보았지만 너는 그 어두운 곳에 없었다. 왜일까, 몸이 저절로 그 어두운 곳으로 향하며 어렵게 한 발, 두 발 걸어가며 찰랑거리는 물을 파헤치고 걸어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바람은 더욱 거세지는 바람에 눈에 바람이 저꾸만 들어와서 따까움에 눈조차 제대로 못 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멈췄을 땐 다시 끝없는 하늘과 옅은 물바다가 펼쳐지고는 사라진 너를 찾지 못해 허탈하게 바람을 막고 있던 팔을 내리고는 멍하니 서 있었다. 윽, 으... 작은 신음과 함께 배가 아파졌다. 숨을 쉬어내고 있었지만 숨을 쉴 때마다 통증이 느껴져 몸이 자꾸만 꼬꾸라졌다. 자꾸만 심하게 느껴지는 통증으로 인해 숨을 빠르게 몰아쉬었다. 하지만 통증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엄청난 어지러움에 저가 쓰러져 찰랑 거리는 옅은 물에 빠지게 되었다. 몸이 무거웠고 머리가 아팠다. 숨 쉬는데 왜 숨을 더 쉬고싶을 정도 일까. 숨을 가쁘게 몰아 쉬며 눈가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 안 죽을게. 안 죽을 건데, 내가 너무 아파.
눈을 번쩍 뜨고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식은땀은 옷과 베개까지 흠뻑 젖게 만들 정도로 흘려댔으며 눈가에는 눈물자국이 흥건했다. 꿈에서는 분명 자신이 서 있었고 민규는 죽지 말라고 소리를 쳤고 숨 쉬는데 통증이 느껴졌고, 그리고... 그 뒤로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꿈에서는 숨을 쉬었을 때 배가, 아니 정확히 폐가 아파졌었다. 쿵쿵 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었다. 꿈은 아닌가 보다. 폐에서 엄청난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염증이 커진건가. 협탁에 올려진 알약을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물없이 알약을 삼킨건 처음이였지만 나쁘지않게 목구멍 안으로 알약 몇개가 넘어들어갔다. 알약은 효과가 없었지만 그래도 믿고 먹어보는 거니깐. 숨 쉴때마다 폐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엄청났기 때문에 이제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하는 할지 앞이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염증은 가면 갈 수록 커질텐데. 메마른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네가 등돌리고 자는 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다 바짝 말라 거칠해진 입술을 떼어내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가 죽지말라고 했잖아, 나도 안 죽고싶은데..."
"......"
"아프대, 내가. 응. 아픈데, 아프다는 걸 말 못해서 더 아파."
"......"
"미안해... 좀처럼 병이 안 나아. 그래서 더 심해진 것 같아."
"......"
수면상태에 빠져있는 그에게 울먹거리는 목소리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마디 한마디 꺼낼때마다 심장이 자꾸만 쿵 갈아앉아서 더욱 마음이 저리고, 아파왔다. 왜, 아파할 일도 아닌데 왜 아픈지 모르겠다. 숨을 쉬기 위해서 오늘도 과하게 숨을 쉬었다.
7월 15일
김민규, 형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어-. 이제 민규가 투정을 부리지 않으니 원우가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하룻밤 사이 민규는 왠지 모르게 어른스러워졌다. 그것에 의문점이 생긴 원우이긴 하지만 그래도 민규가 자신을 챙겨주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귀여워서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안 돼, 기침 그렇게 해대면서 무슨 아이스크림이야. 소파에 다리 꼬고 앉아 휴대폰을 하던 민규가 원우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씨, 이거 감기 걸려서 기침하는 게 아니라 폐렴 때문이거든?! 그래놓고 며칠 전에 여름 감기 걸렸잖아. 민규의 말에 원우는 딱히 할 말이 없다는 듯 두 손을 놓고는 에잇. 하며 침대에 푹 누웠다. 매미가 며칠 전보다 더 울기 시작한 7월 15일. 곧 원우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원우가 가보고 싶다고 한 바닷가에 생일날에 데려갈까 하며 여행코스를 짜며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하며 알아보는 민규였지만 휴대폰하고 자기한테 무관심하다며 투덜거리는 원우는 민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싶었다.
"김민규우-."
"네에-."
"너 왜 자꾸 휴대폰 해?"
"내 유일한 친구예요 "
"흥, 그러셔?"
"질투하는 거예요?"
"아니야!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사 와!"
원우의 소리침에 민규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매점으로 향했고 원우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 멍하니 생각하기 시작했다. 7월 15일, 곧 제 생일이였다. 괜히 소녀 같은 마음에 혼자 푸흐, 웃고는 이불을 발로 퍽 퍽 차 댔다. 민규와 드디어 바다에 놀러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폐는 아팠지만 그래도 한 번 울컥하고 나니 괜찮아지는 컨디션에 오늘따라 뭐든 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그 희망을 바란 계절은 더웠지만 하늘이 푸르게 맑았으며 나무의 잎들이 바람의 힘에 밀려 서로 부딪히며 시원한 소리를 내던 더운 여름날의 잠시나마 시원한 느낌이였다. 민규가 사온 아이스크림은 다름 아닌 팥이 들어간 아이스크림. 나 팥 안 좋아하는데. 입술을 쭉 내밀며 오만 싫은 표정을 다 지으면서도 팥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뚝딱 먹어치웠다. 덕분에 조금 더위를 날려서 입가에 미소를 둥둥 띄었다.
"형, 침대 있는 곳이 나아, 아니면 바닥에서 이불 펴고 자는 게 나아?"
"둘 다 괜찮은데, 굳이 따지면 침대."
"저녁은 뷔페가 낫겠지?"
"무리해서 돈 쓰지 마."
"알바해서 돈 많이 모았으니깐 걱정하지 마."
민규가 저를 생각해서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알아봐 주는 건 좋았지만 혹시나 돈을 다 쓸까 봐, 생활비가 부족할까 봐 걱정되었다. 항상 나를 위해주고 챙겨줬으니깐. 숨을 쉬는 건 언제나 힘들고 폐가 아팠지만 그걸 말할 생각은 없었다. 아직 진료를 안 받아봤기 때문에 무턱대고 아프다고 징징거리기는 싫었다. 직장생활을 해야 할 어른이 아직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에게 징징거리고 투정을 부리다니,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원우는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는 걸 본인은 알까.
민규가 오후 수업을 들으러 학교로 돌아가고 방금 전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실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콧잔등위로 흐르는 안경을 다시 올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굴렸다. 몇 분 뒤 간호사의 부름에 진료실에 발을 내디뎠고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책상에 놓인 모니터를 보며 마우스를 달칵 거리고 있었다. 원우가 자리에 앉고는 의사가 자신에게 말을 건내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켜나갔다. 10분 뒤 의사는 한숨부터 내쉬며 원우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최근에 숨 쉬실 때 어디 불편하시나요?"
"폐가... 아파요."
"늘 이런 말 드리기 정말 죄송합니다... 후, 폐의 염증이 흉막까지 침범하였습니다."
"......"
"이대로라면 폐의 1차 기능인 산소 교환에게도 염증이 이르게 돼 호흡부전으로 사망하시게 됩니다. 수술은... 저희도 가능성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전 죽나요...?"
원우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의사를 올려다보았다. 의사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책상위에 올려진 차가웠던원우의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 한마디가 어찌나 아프던지. 심장이 쿵 가라앉았다. 고개를 숙이고는 눈에 차오른 눈물 때문에 허벅지 위로 눈물을 투둑 떨어트리고는 끅끅대며 울기 시작했다. 최근들어서 왜이리 많이 울게 되는지. 꽤 안면이 있었던 의사는 원우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등을 토닥여주고는 별말없이 그의 옆을 지키듯 있었다. 죽는다고 한다. 내가, 아직 27살 밖에 안 됐는데. 돈 벌어서 민규한테 맛있는 것도 사주고 같이 집도 차리고 늙을 때까지 너와 함께할 것이라고 했는데. 안 되나 보다. 미안해, 내가 그냥 전부 미안해. 그리고 너무... 사랑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엉엉 울어댔다. 사탕을 뺏겨 놀이터에 주저앉아 우는 아이처럼, 엄마가 혼낸 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너를 생각하니 더 눈물이 나는 건 왜 일까. 오늘도 너를 생각하니 호흡이 빨라졌다.
7월 16일
숨 쉬는데 폐가 아팠고 그 끝으로는 호흡부전이 다가오고 있었다. 몇 시간 전부터 계속 숨이 턱 막혀 괴롭다가도 다시 숨이 가쁘게 쉬어지기 시작했고 이게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곧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겁나기 시작하며 자꾸만 손톱을 뜯으며 불안 증세를 나타냈다. 에어컨을 18도나 틀어놓아도 몸은 뜨겁고 추웠다. 그리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숨으 쉬는 도중에도 통증이 느껴지는 폐로 인해 마른 배 위로 손바닥을 쓸며 숨을 과하게 쉬었다. 엄청나게 흘려대는 식은땀으로 베개가 축축하게 젖었지만 지금은 숨을 쉴 때마다 통증이 느껴지는 폐를 어떻게 하고 싶어 베개에 얼굴을 묻어 인상을 꾹 찌푸리며 고통을 호소해냈다. 이대로 있다가 민규가 찾아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고통을 얼른 없애고 싶었다. 숨을 쉴 때마다 아픈 거라면, 숨을 안 쉬면 아프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숨을 꾹 참아봤지만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는 미치도록 숨을 빠르게 쉬어냈다.
아, 진짜 안되겠다. 못 참겠다.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민규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예쁜 내 애인.
이제는 숨이 꾹 막히며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헛구역질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띵 해지며 옆으로 몸이 쏠려 쓰러지고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숨이 막힌 목을 쥐어 잡으며 뒤집어진 눈알으로 마지막 이승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파랗다.
장마가 시작되려는 듯 아침부터 지금까지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 여름은 장마가 늦게 오려는 것 같았다. 원우가 쉬고 있을 병원으로 익숙하게 발걸음을 옮겨 자주 뵙던 간호사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타 익숙하게 13층을 눌렀다. 얼른 층에 도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발을 동동 굴리다가 승강기에 붙어있던 거울을 보고는 앞머리를 단정하게 손으로 빗고 옷깃도 잘 다듬어 보이고는 이왕 보일 거 잘생기게 보여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본인 외모에 신경쓰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가 13층에 도착했다는 듯 효과음이 울리며 13층이라고 알려주는 기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 열리자 보폭을 넓게 잡고는 1304호 개인 실로 향해 몇 번이고 길을 꺾어 들어갔다. 근데 오늘따라 왠지 이 길들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자신이 걸어 온 길을 고개를 돌려 멍하니 응시했다. 하늘이 우중충했다.
원우가 있는 병실의 문을 열어 병실의 발을 내디딜 때까지는 몰랐다. 원우는 차가워진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작게 탄식을 내뱉고는 원우에게 급하게 뛰어갔다. 형, 형!!! 그의 얼굴을 잡고 흔들어보았지만 미동조차 없었다. 호출 벨을 누르려고 했지만 예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절대 호출 벨을 누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호출 벨을 누르려고 하던 손이 떨려오고는 눈물이 가득 맺혀서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가워진 원우의 손을 맞잡으며 제발 일어나라고 자신의 온기를 그에게 전했지만 눈가에 눈물을 맺힌 채 입가는 축 쳐져있었지만 어째서인가 웃고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 같다.
옅은 물을 파헤치며 빛이 있는 곳으로 걸어나갔다. 아, 뒤로 돌아보자 자신의 뒤를 따라올 것 같았던 민규. 하지만 민규는 이곳에 없었다. 당연히 이곳에 없어야 할 게 맞는 거니깐. 이제 이곳은 과하게 숨을 쉬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아프지도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민규의 얼굴은 못 보겠지만... 하지만 슬퍼해선 안 된다. 슬퍼한다고 그를 볼 수 있는 것 또한 아니었기 때문에.
네 곁에 없어진 것이 아니라 네 곁에 잠시 떠난 거라고 생각해줘. 고마웠고, 정말로 미안했고
사랑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