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학교에서 엎어지면 코가 닿을 법한 거리에 있는 납작한 집들이 추위를 이기려는 듯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에서 자랐다. 그 동네는 누구 하나가 특출나게 잘 살지도 않았고, 누구 하나가 특출나게 못살지도 않는 다같이 가난한 동네였다. 그런 동네에서 자란 우리는 누구나 그렇듯 가난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내 아버지가 월급이 밀려 엄마와 번번히 싸우는 시원찮은 회사원이자 남편일 때, 그 애의 아버지는 멀끔하지 못한 옷을 입고 지하철역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내 어머니가 안방 한 구석에 산처럼 쌓아놓은 곰인형에 눈을 만들어줄 때, 그 애의 어머니는 장날 시장에 나와 커피와 요구르트를 팔았다. 장날이 아닌 며칠 간은 붉은 간판이 자극적인 곳에 들어가 몸도 팔았다. 우리 집 식구 네 명이 방 두 개짜리 전세금에 쩔쩔매고 있을 때, 그 애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다리만 보일 법한 집에서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가스버너를 의자 위에 올려 만든 부엌이 달린 집이라고도 할 수 없는 공간에서 살았다.
나는 어린이 날에 선물을 받지 못한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고, 그 애는 엄마가 외박하는 밤이면 날아오는 자신의 얼굴보다 조금 더 작은 주먹에 아파하며 울었다.
말하자면 그렇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그 애는 가난하고, 불쌍했고, 불행했다. 그 불쌍한 애의 이름은 전원우였다.
가난한 동네에 위치한 초등학교는 곧 폐교가 될 학교처럼 크기도 작았고 시설도 좋지 못했다. 그런 학교에서 3년을 보낸 후에 나름 고학년이라고 불리우는 4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는 처음으로 같은 반이 되었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된 전원우의 뒷통수를 보고 나는 확신했다. 앞으로 전원우는 혼자가 될 거라고.
내 예상과 다르지 않게, 사이좋게 지내세요- 라던 선생님의 말에 모두 입을 모아 네, 라고 대답한게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전원우는 혼자가 되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전원우를 괴롭혔다. 책을 숨기기도 했고, 다 낡아 곧 버려야 할 것 같은 실내화를 숨기기도 했다. 그래도 전원우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그렇다고 울지도 않았다. 누구나 그렇든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흥미를 잃기에 아이들은 천천히 전원우를 무시했다.
무시 당하는 삶이 슬프지 않은가, 하며 내가 전원우에게 관심을 가질 때 즈음, 그 애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오늘은 원우가 아파서 학교를 쉬게 됐어요. 내일 원우가 돌아오면 꼭 다 나았냐고 물어보세요"
밝지도 어둡지도 않아보이는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에 그 누구도 전원우에게 관심이 없는 듯 빈 자리를 힐끗 쳐다보고 말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아이들이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갈 때마다 보이는 전원우의 슬픈 눈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
같은 동네에 살기도 했고, 입학하던 순간부터 학교에서 유명인사였던 전원우의 집을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익숙하던 문방구와 놀이터를 지나 우리 집을 가기 전 한 번은 지나쳐야 했던 내 발보다 더 아래에 있는 창문으로 전원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 찬찬히 전원우를 관찰했다. 전원우가 입은 늘어난 러닝셔츠엔 울긋불긋 얼룩이 져 있었고, 얼굴에는 러닝셔츠에 묻은 얼룩보다 훨씬 더 붉은 핏자국이 굳어있었다. 눈싸움인지 기싸움인지 서로를 꽤나 한참동안 노려보다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너네 집 달고나 만들기 편하겠다.“
지금 생각하면 참 생각없이 말한 것도 같다. 전원우한테 꽤나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걔는 태평하게 날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만들면 되잖아."
전원우의 말이 끝난 후에 나는 집에 달려가서 설탕과 엄마가 달고나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고 샀지만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국자를 훔쳐왔다. 뜨끈한 불에 젓가락을 휘휘 저으며 녹이고 있을 때, 전원우가 처음으로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나 불쌍하지."
그 말에 설탕을 녹이고 있던 젓가락질을 멈추곤 그 애를 바라봤다. 처음으로 전원우를 가까이서 본 거였는데, 생각보다 얼굴이 예뻤다. 하얗고, 쌍커풀이 없는 눈은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한참을 그렇게 전원우의 얼굴을 관찰하다 겨우 질문에 답을 하려고 하자 생각나는 말은 응, 불쌍해 였다. 그런데 그렇게 대답하면 그 묘한 분위기가 있는 눈에서 눈물이 흐를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게 국자를 바닥을 다 태울 때까지 달고나를 만들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
사정이 좀 풀려서 조금 더 잘사는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꼭 편지 써줘야 해. 알겠지?"
"알겠다고 몇 번을 말하냐. 편지 꼭 쓸게. 아프지 마."
처음으로 전원우의 손을 잡았다. 생각보다 전원우의 손은 따뜻하니 기분이 좋았다.이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친척이 소개를 한 회사에 나갔다. 월급은 밀리지 않았고, 엄마는 곧 곰인형을 손에서 놓았다.
나는 내가 약속한대로 전원우에게 편지를 썼다. 크리스마스에는 1년동안 쓴 딱딱한 커버의 일기장을 걔에게 보내기도 했다. 뒤이어 전원우도 나에게 얇은 공책을 하나 보냈다. 일기는 몇 줄 되지 않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3월 4일 개학했다. 선생님한테 맞았다. 4월 6일 김민규 생일이다. 6월 1일 딸기를 먹었다. 7월 17일 내 생일이다. 9월 3일 누나가 아파서 아빠가 화를 냈다. 11월 4일 그냥 좀 아프다. 전원우는 딸기를 먹으면 일기를 썼다. 그 애한테는 딸기를 먹는 것이 일기를 쓸만한 일이었다.
일기가 오고 간지 좀 되어서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다.
***
전원우의 아버지가 전원우의 누나의 생일선물을 사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는 그 얘기를 어머니를 통해서 들었다. 어머니들은 모르는 이야기가 없었다.
전원우는 캄캄한 밤이면 아무 연립주택이나 문 열린 옥상에 올라가 패트병을 반으로 자른 곳에 키우는 방울 토마토같은 걸 따버린다고 편지를 썼다. 아, 이제 담배를 배웠다는 내용도 있었다. 나는 새로 관심을 가지게 된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쓰다가 미술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썼다. 좀 짧아보이는 편지에 처음으로 롯데리아에 갔고 거기서 미팅을 한 얘기도 썼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것까지. 한 번 보자, 전화나 하자 하고 몇 통의 편지가 오갔지만 전원우와 나는 만나지도, 편지를 쓰지도 않았다. 어느 날 전원우의 편지가 오지 않았고, 나는 담배를 시작했다.
전원우가 없는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던 고3의 생일, 나에게로 전화가 한 통 왔다. 민규야, 만날래? 대답은 항상 정해져있었다. 그래 만나자.
우리는 내 집과 전원우의 집 중간 즈음에 위치한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깠다. 생일 선물이라며 들고 온 꽤 비싸보이는 옷보다 나는 전원우의 얼굴에 시선이 갔다. 상처없이 깨끗한 얼굴이었다.
"...오랜만이네"
"그러게... 더 잘생겨졌네? 키도 큰 것 같고"
"넌... 더 예뻐졌네. 선물은 어떻게 샀어?"
"너한테 주려고 알바 좀 했지"
술에 취했는지 씨익 웃는 얼굴에 나는 차마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지금보다 한참은 더 어렸을 때 전원우가 불쌍하다고 물었던 질문에 고개를 저었을 때, 그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헤어질 때 전원우가가 말했다. 시간나면 또 올게, 만나자.
"알겠어. 미리 연락 해.”
"어엉, 아라써. 잘가 밍구야!“
"조심해서 들어가, 원우야”
전원우와 내 이름이 오고 갔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전원우가 준 옷을 입고 잠을 잤다. 그 옷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전원우의 체취를 생각하면 볼이 붉게 달아올라 잘 가 민규야 라며 소리치던 그 애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괜히 그 얼굴이 생각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병신같게도. 그렇게 또 전원우가 없는 고3을 보낸 후에 나는 미대를 입학했고, 꽤나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후에 디자인에 관한 회사원이 되었다.
전원우를 마음 속에 고이 모셔두자 라고 다짐했을 때 전원우가 미니홈피로 연락을 줬다. 우리는 4년만에 다시 만나 술을 마셨다. 오랜만에 만난 전원우의 얼굴은 ...여전히 예뻤다.
전원우는 어느 연예 소속사에 캐스팅 되어 연습실에 틀어박혀 4년을 보냈다고 했다.
"하루에 몇 번씩 같은 곡을 연습했어. 너도 알잖아, 나 체력 엄청 바닥인 거. 그래서 금방 지치고, 또 좀 쉬다가 연습하고. 다른 애들 다섯 번 할 때 나는 두 번 했어. 그래서 내 길이 아닌가 싶어서 그만뒀어. 근데 그만두고 나니까 무섭더라. 난 4년동안 노래부르고 춤만 춰서 세상에 나가니까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
전원우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내 앞에서는 절대로 흘리지 못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전원우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전원우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곤 어깨를 들썩거렸다. 나는 가만히 그 작은 어깨를 토닥였다. 전원우가 나직하게 말했다.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하게 사는 걸까. 이제 가난하지도 않은데, 왜... 울고 있는 전원우를 다 달래고 나서야 우리는 헤어질 수 있었다.
***
어렸을 때 그리 친하지도, 안 친하지도 않은 친구로부터 전원우가 취직할 길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나지 마, 연락도 하지 말고. 걔가 뜬금없이 취직할 길 구한다는 거, 이상하지 않아? 화를 내볼까 하다가 이상해 보일까 싶어 그 친구에게 대충 알았다고 얼버무렸던 나는 전원우로부터 전화가 오자마자 받기부터 했다. 할 말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 우리 언제 다시 만날까 민규야
"...너 시간 되면 만나자. 보고 싶다."
- 그래.
아무렇지도 않게 통화를 끝냈는데 마음이 싱숭생숭 했다. 어째 더 기운이 없어진 목소리가 거슬렸다. 그렇게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만났다. 만나서 하는 일은 술마시는 것밖에 없었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가 내가 연애를 할 틈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하게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다.
"원우야"
"어엉? 왜"
"너 일 할 곳 없으면, 우리 회사에서 일 해볼래?"
"...누구한테 들었어“
...그냥, 전에 알던 애한테서. 조금은 날카로워 보이는 전원우의 표정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상처를 건들인 건가, 싶었다.
”...너한테는 이런 부탁 하고 싶지 않았어.“
”왜 나한테 하고 싶지 않아. 그런 고민이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야지. 너 미술도 좀 하잖아. 우리 회사 들어오면 너 잘 할 수 있을 거야.“
”생각 좀 해볼게. 너네 회사 들어가면 그땐 내가 밥 산다.“
알겠지? 전원우의 웃음에 나도 따라 웃었다.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지 얼마 되지 않고서 전원우가 우리 회사에 취직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한 번 해보려고. 이제 피하는 건 질려서.
"잘 생각했어. 바로 나오는 것도 괜찮은데, 어떻게 할래? 아, 한 잔 하면서 얘기할래?”
- 한 잔 하면서 얘기하는 거 좋네. 언제면 돼?
"난 빨리 만나는 게 좋지. 바로 내일 볼까?“
- 음...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약속을 한 날 술을 거하게 마시며 전원우가 말했다. ...나 결혼해. 누나가 소개해준 사람하고.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울었다. 펑펑 울었다. 전원우가 내 곁에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지독하게 내 목을 조여와서.
”...너무 그렇게 울지 마. 나도 슬퍼.“
왜? 네가 왜 슬픈데?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겨우 삼킨 후에야 나는 전원우의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왜?
"모르겠어. 그냥 좀... 슬퍼"
다시 내 눈에서 소리없이 눈물이 떨어지는 걸 가만히 보고 있던 전원우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
까만 정장을 입은 전원우는 멋지고 잘생겼다기 보다는 참 예뻤다. 전원우가 미웠지만 더럽게 예쁜 그 얼굴을 보고서 나는 화를 낼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걔의 행복을 빌어주는 일이었다.
"결혼 축하해. 잘 어울린다."
"...고마워."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오고 갔다. 이젠 진짜 끝이었다.
***
전원우는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남자였다. 한 번도 말한 적 없었지만 이따금 나는 우리가 평생 함께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결혼을 할 수도 있지 않겠냐, 라는 생각도 했다. 한 번도 안아본 적이 없었지만 전원우의의 작고 마른 몸을 안고 잠이 드는 상상도 했다.
그 어렸을 때, 전원우는 나에게 말했다. 난 소중한 건 아주 귀하게 여길 거야. 나한텐 그런 게 별로 없으니까. 라고 했다. 그러나 내 사랑은 계산이 빠르고 겁이 많아 아무 말도 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할 수도, 살 수도 있었다. 난, 용기가 없었다.
전원우와 나 사이의 불청객이 전원우의 아내였는지, 내 부족한 용기였는지, 어릴 적 우리의 가난이었는지 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내가 걔를 사랑했다는 거다.